10: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 유대 지방으로 가셨다가,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셨다. 무리가 다시 예수께로 모여드니, 그는 늘 하시는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10:2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10: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10:4 그들이 말하였다. "이혼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10:5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이 계명을 써서 너희에게 준 것이다.
10: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10:7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10:8 둘이 한 몸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10: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이 말씀을 두고 물었다.
10: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남자는, 아내에게 간음을 범하는 것이요,
10: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 주해
1. 3년 동안 복음을 듣고 표적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 복음”을 비로소 가르치나 이 또한 깨닫지 못한다.
1) 처음 수난 예고와 자기 부인의 제자도를 가르치신 후, 변화산에 3제자를 데리고 간다.
2) 두 번째로 수난을 말씀하시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묻기조차 두려워한다.
3) 제자들이 “누가 크냐”며 다툰 것을 아시고는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며 섬김의 제자도를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하여서 물 한 잔을 주는 자는 그의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1) 예수님 때문에 하는 섬김이 너무 귀하다. 예수님 때문에 물 한 잔만 주어도 상을 준다.
2) 섬김이 이렇게 귀한 반면, 섬김의 반대는 실족시키는 것이며 이는 죄가 된다(42-50절).
3) 믿는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시키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42절).
4) 실족하게 하는 죄를 짓는 것 보다는 손과 발을 찍어 버리고, 눈을 뽑는 것이 낫다.
5) 예수님은 “누가 크냐”며 다투지 말고, 실족시키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며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신다.
3. 가이샤랴에서 갈릴리로, 갈릴리에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는 예루살렘으로 가신다.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에서 무리가 오자 예수님은 다시 그들을 가르치신다.
1) 이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며 물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2) 만일 예수님이 아내 버리기를 허락하면 이혼을 조장한다고 비난하고, 아내 버리기를 금하면, 아내 버리기를 허락한 모세의 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할 것이다.
4. 예수님은 성경박사들인 그들에게 모세의 법에는 어떻게 명하였는지를 묻는다.
1)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4장에 근거하여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했다”라고 대답한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신 24:1-2).
2)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어떤 점”을 발견하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이혼 증서를 써줌으로써 아내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
3) 이혼 증서는 남편의 완악함을 방지하고 버림받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바리새인들의 주장처럼, 아내를 버리는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5. 바리새파 중 샴마이파는 수치 되는 일을 ‘음란 죄’에 한정시켰으나 힐렐파에서는 포괄적으로 해석하여 국을 태우는 것도 수치 되는 일로 보았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심과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한 명령을 함께 알려 주신다.
2) 창조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다(창 2:24).
3)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창조시 하나님의 뜻)을 “사람”(모세의 율법)이 나누지 못한다.
4)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이혼을 허락하였으나 이혼 증서를 써 주라는 율법으로 이혼을 정당화하거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않된다.
- 모세의 규정을 근거로 이혼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정당화해서는 않된다.
6. 집에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라는 말씀은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오용하는 자를 향한 말씀이다.
1) 하나 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본심을 외면하고 자기 원함과 정욕을 위하여 이혼을 하고 다시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은 율법대로 한 것이 아니라 “간음”이라고 경고하신다.
2) 율법을 근거로 이혼과 다른 데에 장가(시집) 드는 것을 합리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7. 반대로 창조 시에 둘이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심 때문에 이혼한 것에 대하여 지나친 죄책이나 정죄감을 가져서도 않된다.
1) 하나님의 본심대로 하나 되고자 모든 노력을 다 했으나 나 자신의 연약함이나 상대방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이혼하게 되었다면 하나님이 그 연약함을 아시고 “이혼 증서를 쓰고 이혼하게 한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평안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같다.
- 부모는 결혼한 자녀가 하나 되고 이혼하지 않기를 바란다.
3) 또한 모든 노력 후에도 이혼한 자녀가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으로 살기를 원치 않는다. 피치 못하여 이혼을 했다면 자녀가 평안을 누리며 혼자라도 잘 지내던지, 다른 데에 장가가거나 시집가기를 원한다.
8. 창조시의 결혼과 연합은 영적인 연합과 함께하는 한 몸 됨이었다.
1) 그러나 죄가 들어온 후 영적인 연합이 없이 육적인 연합의 결혼이 되곤 했다.
2) 남자들이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게 된 것이다(창 6:2).
3)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결혼”은 쌍방이 하나님의 언약관계 안에서 맺는 결혼이다.
4) 부부 각자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의를 이루게 되면 의의 결과 평화가 임한다.
9. 죄가 개입한 상황에서는 한 편이라도 언약 관계를 떠나면 불의의 결과 고통이 임한다.
1) 하나님은 부부가 하나 되기를 원하나 무조건 이혼을 반대하지 않는다.
2) 하나님은 결혼 관계에서 화평을 중요시하며, 피치 못하여 갈라지는 것을 허락하신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전 7:15).
10. 구약에서 이혼을 명령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허용’이다.
1) 피치 못하여 이혼을 한다면 배우자(당시엔 남편)의 횡포로부터 보호를 받게 하고, 부당하게 이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결혼의 축복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3) 배우자의 완악함 때문에 이혼한 사람들은 평안을 누려야 하고, 공동체는 그가 안전하고 평안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나의 묵상
구약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창조시의 결혼과 고대시대에 쓰여진 성경이기에 조선시대처럼 이혼을 반대하고, 억울하던 불행하던 참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성경이 말하는 것으로 여겼다. 한 세대 전만해도 목사님들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본심은 창조시 처럼 하나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이해하신다. 이혼의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우지 말라고 하신다. 그에게 외적인 피해가 없도록 보호하라고 하시며, 내적인 정죄와 분리와 차별이 없게 하라고 하신다.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를 처벌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허락”하신다. 본심이 아닌데 허락하는 것은 사랑이다. 목사니까 본심은 아닌데 허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를 위하여, 그의 편에서, 허락하는 경우가 있다. 너무나 힘들어 하거나, 너무나 원하면 나의 본심이나 옳음이 아니라 그의 결정을 ‘허락’해 준다. 내 편에서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며 배려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 되지 못하고, 이혼까지 갈 때, 하나님은 옳음으로 강요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허락’해 주신다. 그런데 그 허락을 이용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경고하신다. 허락을 이용하는 자는 간음을 행함이라고 하신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본심대로 행하지 못한 나를 수없이 ‘허락’하여 준 것을 안다. 얼마든지 책망하거나 심판하거나 정죄하셔도 합당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허락’하여 주셨다. 허락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너무 연약하고 너무 부족하다. 완악함까지 배려하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허락하는 사랑을 받았다. 십자가의 용납과 용서는 언제나 그렇게 부어진다. 합당하지 않으나 용서하시고 용납하여 주신다. 용납을 넘어 사랑을 부으시고,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워 주신다. 하늘 나라의 자녀된 권세를 주신다.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용납하시는 그 사랑, 처음부터 지금까지 품어 주시는 십자가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내 안에 생명을 주시고, 생명으로 거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말씀을 이용하는 자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말씀의 본심과 생명을 알기 원한다. 자격 없으니 끝까지 사랑하시고 성실하심으로 함께 하시는 그 사랑안에 거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시대가 변하여서 이혼이나 가정이 깨어진 것을 용납하고 사랑하여 주어야만 생각했는데, 하나님 모세 때부터 아픈 가정, 이혼하는 가정, 또 이혼 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배려하시고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상처 입은 자가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기를 원하시는 주님, 이 죄인을 용납하여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나 되지 못하는 현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하지 않게 하시는 그 크신 사랑을 부어 주시옵소서. 관계로 아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 분열의 영들을 소멸하시고, 상하고 깨어진 마음들을 만지시고, 붙드시고, 하늘에 속한 영광과 사랑으로 임하여 주십시오.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각 지체들에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믿음 없는 자를 도와 주십시오. 생명을 주는 말씀이 제 안에 샘물이 되게 하시고, 생명을 주는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게 하옵소서. 다음세대와 함께 하는 한밤의 기도회입니다. 주님, 이 악한 세대 가운데 다음세대에게 부흥이 일어나게 하시고, 다음세대를 위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는 부모와 교사와 사역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