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가려야 가져 갈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심리(心理)는 다른 사람들에게 질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치열(治熱)한 입시경쟁(入試競爭)이나
어느 일류(一流)기업(企業)이라고 자처하는
기업의 광고(廣告)를 보고 경쟁(競爭)을 합니다.
그리고 아파트나 좋은 주거(住居)의 용지(用地)나
사람들의 욕심(慾心)을 자아내게 하는 것들을 보면
사람들은 경쟁(競爭)을 합니다.
모두 한심스럽고 답답할 뿐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모든 것이 만족(滿足) 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모자라게 살면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덜 쓰고 가진 것이 많으면
남과 나눔을 가지고 살면 별탈이 없을 터인데
사람의 욕심(慾心)은 끝이 없습니다.
양보(讓步)는 사람에게는 미덕(美德)입니다.
무엇이 던지 남에게 양보(讓步)를 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出勤) 할 때나 일을 마치고 퇴근(退勤)을
할 때에 차를 서로 먼저 타려고 경쟁(競爭)이 아닌
차(車)타기 전쟁(戰爭)을 치릅니다.
먼저가나 늦게 가는 시간의 차이는 오 분 아니면
십 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아랫글중에서)
경쟁은 죄악이고 양보는 아름다움입니다.
글 조 처음
치열한 경쟁(競爭)사회(社會)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 경쟁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첫째 물질(物質)이고 그 다음이 출세(出世)를 하기위한
무한(無限) 경쟁(競爭)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치열(治熱)한 경쟁(競爭) 속에서 목숨을 걸다 시피 경쟁(競爭)을 합니다.
이렇게 과다(過多)한 경쟁(競爭) 속에서 실패(失敗)하고 나면
사람이면 누구나 지치고 실망(失望)하며 그로 인하여
사람이 본의(本意) 아니게 타락(墮落)을 하거나
더 심하면 자살(自殺)에 이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욕심(慾心)이 지나쳐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욕심(慾心)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돈을 남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동료(同僚)끼리
같은 회사(會社)에 다닐 지라도 동료(同僚)보다
더 우월(優越)해 지고 남보다 승진(昇進)을 빨리 하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심리(心理)입니다.
사람들의 삶에서 돈은 조금 덜 벌고
덜 쓰면 되는 것을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교회(敎會) 목사(牧師)들도
사람들이 하는 행동거지(行動擧止)는 마찬 가지입니다.
남의 교회(敎會)보다 더 많은 신자(信者)들이
있어야 하고 교회(敎會)건물(建物)도 남의 교회(敎會)보다
더 좋게 지어야 직성(直性)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욕심(慾心)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세월(歲月)이 가면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세상의 삶을 마치고 막상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치열(治熱)한 경쟁(競爭)을 해서 모은 돈과
물질(物質)이나 명예(名譽)와 권세(權勢)등!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갑니다.
가져가려야 가져 갈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심리(心理)는 다른 사람들에게 질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치열(治熱)한 입시경쟁(入試競爭)이나
어느 일류(一流)기업(企業)이라고 자처하는
기업의 광고(廣告)를 보고 경쟁(競爭)을 합니다.
그리고 아파트나 좋은 주거(住居)의 용지(用地)나
사람들의 욕심(慾心)을 자아내게 하는 것들을 보면
사람들은 경쟁(競爭)을 합니다.
모두 한심스럽고 답답할 뿐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모든 것이 만족(滿足) 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모자라게 살면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덜 쓰고 가진 것이 많으면
남과 나눔을 가지고 살면 별탈이 없을 터인데
사람의 욕심(慾心)은 끝이 없습니다.
양보(讓步)는 사람에게는 미덕(美德)입니다.
무엇이 던지 남에게 양보(讓步)를 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出勤) 할 때나 일을 마치고 퇴근(退勤)을
할 때에 차를 서로 먼저 타려고 경쟁(競爭)이 아닌
차(車)타기 전쟁(戰爭)을 치릅니다.
먼저가나 늦게 가는 시간의 차이는 오 분 아니면
십 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아침출근(出勤) 시간(時間)이 늦으면 직장(職場)에 늦게 도착(到着)을 해서
상사(上士)에게 싫은 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것을 대비(對備)해서 집에서 조금 일찍이 나온다면
모든 것이 해결(解決)될 것입니다.
어느 회사(會社)에 근무(勤務)하는 중년(中年)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자택(自宅)이 경기도(京畿道) 수원(水原)이었는데
아침이면 차를 타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침 출근시간에는 차타기 경쟁(競爭)을 해야 했습니다.
수원(水原)에서 출퇴근(出退勤)을 하는 사람이면 이것을 알 것입니다.
이것을 피해서 그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공원(公園)에서
운동(運動)을 하다가 일찍이 첫차로
서울 회사(會社)로 출근(出勤)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30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의 생활(生活)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단 한 번의 지각(遲刻)도 하지 않고 30년을 버티어 왔습니다.
그는 회사(會社)에서 평직원에서 시작(始作)해서 대리(代理)로
그리고 차장(次長)에서 부장(部長)으로
부장(部長)에서 이사(理事)로 승진(昇進)을 계속(繼續)했습니다.
그는 누구와도 경쟁(競爭)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평소(平素)처럼 근면성실(勤勉誠實)했고
평생(平生)을 남과 다툴 일이 없었습니다.
그의 평생(平生)생활(生活)이 남에게 양보(讓步)를 하고
욕심(慾心)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가 회사(會社)에서 승진(昇進)을 했기 때문에 회사(會社)에서
승용차(乘用車)를 한 대 주었지만 그는 차를 사양(辭讓)했습니다.
그리고 평소(平素)처럼 버스나 지하철(地下鐵)로
출퇴근(出退勤)을 했습니다.
사람의 삶에서 우리의 평생의 시간을 보낼 때나
어느 때던지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급하거나 급하지 않니 한다 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歲月)의 공간(空間)은 마찬가지니까요?
성경(聖經)은 기록하기를 이렇게 기록(記錄)했습니다.
세월(歲月) 안에서 아무리 서둘러도
모두 허무(虛無)하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목전(目前)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瞬間) 같을 뿐임이니 이다(시 90:4)☚
☛주께서 그들을 홍수(洪水)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 이다(시 90:5)☚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우리의 삶에서 치열(治熱)한 경쟁(競爭)은
아무 필요(必要)를 느끼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작은 양보(讓步)라도 할 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경쟁(競爭)이 화(禍)를 좌초(坐礁)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이 시대(時代)에는 비리(非理)가 만연(蔓延) 했습니다.
이 모두가 일하지 않고 급하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의
욕심(慾心)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을 망치고 가정(家庭)을 파괴(破壞)하고
나아가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사람들입니다.
경쟁심(競爭心)을 버리세요! 그것은 욕심(慾心)입니다.
그리고 조급(早急)한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모두가 우리들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조급한 생각에서 조금 늦는다고 마음을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것이 본인(本人)의 목숨을 단축(短縮)시킬 수도 있고
불이익(不利益)을 가져 올 수도 있습니다.
경쟁(競爭)은 죄악(罪惡)이고 양보(讓步)는 아름다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조금 늦으면 어떻고 조금 빠르면 어떻습니까?
자동차(自動車)를 운전(運轉)하고 목적지(目的地)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고속도로(高速道路)위를 무작정(無酌定)하고 달립니다.
앞에 가는 차를 추월(追越)하고 앞서가지만
목적지(目的地)에 도착(到着)하는 시간은
오 분이나 십 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 무렵에서 잘못 하면 사고(事故)로 이어져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생활(生活)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실수(失手)나 작은 실수(失手) 모두 급한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에서 물질(物質)이나 돈을 조금 못가지면 어떻습니까?
출세(出世)나 우리의 명예(名譽)가 없어진 것들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조금 많으면 어떻고 조금 적으면 어떻습니까?
출세(出世)나 명예(名譽)는 우리의 삶에서 거품이나 안개 같이
햇빛이 비치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聖經)은 우리의 허무(虛無)한 인생(人生)을
아래와 같이 이렇게 기록(記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忿怒)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平生)이 순식간(瞬息間)에 다하였나이다.
(시 90:10) 우리의 연수(延壽)가 칠십(七十)이요
강건(强健)하면 팔십(八十)이라도 그 연수(延壽)의 자랑은
수고(愁苦)와 슬픔뿐이요 신속(迅速)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시 78:33)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두려움의 연속(連續)이었습니다.
언제 어느 때에 무슨 일로 어떻게 죽을지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언제 어느 때에
갑자기 무슨 일을 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 고요히 잠들다가 해일(海溢)이 밀어닥쳐서
갑자기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그 일이 미리 일어날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世上)이 말세(末世)이니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에서 치열한 경쟁(競爭)이나 마음의 조급(早急)함을
모두 버리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祈禱)하라
범사(凡事)에 감사(感謝)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向)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聖靈)을 소멸(消滅)하지 말며
예언(豫言)을 멸시(蔑視)하지 말고
범사(凡事)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 5:16-22) 악(惡)은 어떤 모양(模樣)이라도 버리라
오늘도 승리(勝利) 하는 하루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아멘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