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익명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실명을 숨길 수 있을 때 무책임해지고, 이기적이 되고, 공격성이 높아지며 법이나 규범도 지키지 않게 되어 버리는데 바로 인터넷이 그런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영화 <할로우 맨>에서 잘 나타난다. 남들에게 자기 모습을 숨길 수 있게 된 주인공은 처음에는 사소한 장난으로 시작한 악행이 성추행, 살인, 마지막에는 연구소까지 파괴하려는 정도까지 악화된다.
그러나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는 익명성에 대해서 조금 다른 얘기를 한다. 뜻하지 않게 억울한 죽음을 당해서 유령이 된 주인공에게도 익명성이 주어진다. 아무도 그가존재하는지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주인공은 익명성을 누리고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닌, 애인과 원수에게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한다. 마침내 영력으로 동전을 움직이고 빈 깡통을 날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주인공이 느끼는 희열은 대단하다. 주인공은 심지어 영매의 몸에 들어가서 애인과 직접 대화를 하고 키스까지 한다.
그렇다면 익명의 공간이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할로우 맨처럼 그 익명성을 만끽하면서 나쁜 짓만 하고 돌아다닐까? 아니면 자기가 누구인지 남들에게 알리고 확인받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할까?
그 해답은 가까운 네X버 지Xin이라는 인터넷 서비스의 성공비결을 보면 알 수 있다. 2002년 10월에 운영을 시작한 이 서비스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시작할 당시 사용자가 110만 명이었으나, 현재 한국 검색 포탈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1위 포털사이트가 되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 네X버 지X iN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 서비스는 질문을 올리면 일반인들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써서 올려준다. 특별히 큰 혜택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성의껏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익명성이 아주 잘못된 것처럼, 없어져야할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할로우 맨>처럼 움직이기보다는 <사랑과 영혼>의 유령처럼행동한다. 즉, 익명성이 주어지면 처음에는 익명성의 자유에 적응을 못해서 일탈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인터넷의 유령이 되기보다는 뚜렷하게 남에게 인정받는 명확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왜냐하면 온라인 공간에서 내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내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게시판이나 채팅방, 게임공간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한다. 하다 못해 짧은 리플이라도 남기지 않으면 나의 존재는 거기에 없다. 물론 인터넷에서 꼭 자신을 표현할 필요는 없다. 그냥 구경하고 돌아다녀도 된다. 인터넷을 처음 사용할 때는 다들 그렇게 유령처럼 돌아다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에서 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여기서 단순한 유령처럼 지내는 것만으로는 허전하고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오프라인 현실 공간에서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표현하지 않아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 나의 사회적 역할, 연령, 혹은 외모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자아의 모습을 표현해야 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인터넷에서는 '나는 표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인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블로그를 만들고 미니홈피를 관리하며 투데이가 많이 올라가면 뿌듯해하는 것이고 자신의 글에 리플이 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에서의 내 존재의 증명이다.
현재 뉴스나 기사를 보면 훈훈하고 아름다운 내용에 악플을 다는 사람들을 보고 사회적인 문제다 인터넷(네티즌들) 정말 큰일이다. 라는 식으로 표현을 한다. 하지만 그런 글들을 보면 악플을 다는 사람들보다는 악플을 단 사람들 질책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으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타인에게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한 가지 현상의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이슈화하고 그것을 그대로 믿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며 악인들보다는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 하긴, 100% 선한 사람은 세상에 한 명도 없지만, 남들처럼 평범하며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항간에는 인터넷의 익명성이 위험하다고 떠들면서 이걸 없애기 위해서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겟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없애는 것을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니 기술적인 측면은 제외하더라도 이건 정말 무모한 발상이다. 도시 인구가 수백만이 되면 자연스레 익명성이 발생하는데, 수천만 명이 돌아다니는 인터넷에서 실명제를 실시하면 익명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그 순진한 믿음은 사회나 역사에 대한 무지로 밖에 설명이 해석되지 않는다. 덧붙여 익명성을 없애야만 인터넷이 깨끗하고 안전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미신일 뿐이라는 충고도 덧붙이고 싶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살인이 있어 왔으며, 익명성은 단지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을 약간 바꿨을 뿐이듯, 익명성을 없애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헛된 망상보다는 익명성의 규칙에 맞는 새로운 대응방법을 찾아보라는 충고 말이다.
-출처 <팝콘 심리학> 장근영
첫댓글 으흠 ~
좋은 글이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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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심검님 그 대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오인용 라디오극장에서 나온... ㅋㅋㅋ
좋....군요...
좋...겠죠?....언젠가(?)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