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종가음식 산업화에 나선 (주)예미정은 종가음식 메뉴 개발 방향을 7첩반상과 9첩반상을 중심으로 퓨전화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전통 일상식 상차림인 반상(飯床)은 겸상이 아닌 외상(독상)으로 차려질 예정이다.
예미정 종가음식 메뉴는 상차림 접시마다 재료나 양념, 조리법이 중복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 이를 여타 한식과의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차려진 음식마다 맛과 식감, 모양, 색깔, 느낌이 각기 달라 독특하고도 유별스런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안동비빔밥뿐만 아니라 안동건진국수, 누름국수도 7첩, 9첩반상과 접목, 국수 상차림을 고급화해 낸 것도 눈길을 끈다.
와인이 오르는 세계 보편적인 식탁처럼 후식으로 알싸하거나 부드러운 두 가지 전통주로 반주를 내는 것도 무척 인상깊다.
◆안동 음식으로 차린 예미정 7첩반상
7첩반상의 원형과 퓨전화 된 상차림은 안동 종가음식 맛 체험관에서 개최한 우리 맛 품평회를 통해 공개됐다.
안동지역 향토 음식 산업화에 앞장 서온 경산1대학 김기희(52) 교수는 7첩 원형 복원과 퓨전화 된 상차림의 대가이다.
김 교수와 우리 음식연구회 회원들이 차린 7첩반상은 삼색 명태보푸라기와 대구난, 청멸치조림, 간 고등어찜, 문어숙회, 배추전 대부분 안동냄새가 물씬 나는 향토 음식이다.
불그스름한 빛깔의 해주상에 육회와 소고기 장조림, 더덕구이, 소고기 갈락전, 떡갈비, 삼색나물과 간장 3가지를 더하고 밥과 국을 올리니 음식이 울긋불긋 어우러져 상차림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먼저 소고기와 파를 가늘게 썰어 꼬치로 꿰 팬에다 지저 낸 파산적을 집어 봤다.
입안 가득히 소고기의 풍미가 퍼진다.
오랜만에 보는 청멸치 조림도 쌉싸래한 맛이 옛날 그대로다.
안동 특유의 향토 음식인 청멸치는 짚불에 굽고 간장에 조린 뒤 다시 야채와 버무려 내야 제 맛이 난다고. 토막 낸 간고등어도 굽지 않고 깨와 실고추를 얹고 밥솥에 쪄 냈다.
삼색 명태 보푸라기와 대구살을 무채와 버무린 대구난은 어릴 적 맛 보고는 처음이다.
고향 정취가 가득한 음식들이 할머니를 만난 듯 가슴을 설레게 한다.
명태보푸라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밥 위에 얹고 깨소금 간장에 문어 한 점을 살짝 찍는다.
맑은 황태 무국에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적셨다.
모두가 금방 입에 넣기 아까워 한참 들여다볼 정도로 정감 넘치는 음식들이다.
잣으로 꾸밈을 한 떡갈비는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다.
부드럽고 짭짤해 밥반찬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숟가락을 놓으니 안동소주 한잔을 반주로 권한다.
목구멍을 탁 쏘는 싸아한 술 맛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애주가들에게 밥상을 물리고 곧장 주안상을 재촉하게 한다.
◆푸짐한 9첩반상, 상다리가 휜다
예미정에서 선 보인 9첩반상은 소고기 장조림, 배추 숙주, 고사리 볶음, 도라지 무침, 황태찜, 상어돔배기 조림, 갈비찜, 조기구이과 함께 7첩반상에서 오른 삼색 명태보푸라기와 더덕구이, 안동 청멸치 무침도 올렸다.
상다리가 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7첩반상에 없던 수란채이다.
“수란채는 9첩반상을 고급화 시켜 주는 음식이다.
맛은 정갈하면서도 기품이 넘칩니다.
원래 종가음식이라기 보다 궁중음식이었는데 맛이 좋아 지방 사대부 집에서도 즐겨 만들어 귀한 손님 접대에만 사용했다고 한다”
부잣집으로 소문난 경주 최씨 종가에서는 지금도 수란채의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는다.
예미정 맛 체험관에서 선보인 수란채는 안동 권씨 집안에서 보편적으로 해오던 방식인데 종손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레시피를 공개하게 됐다.
저온으로 익힌 계란반숙 위에 표고, 전복, 해삼, 문어 등을 얹고 하얀 잣 국물을 부어 기본을 만들고 나서 밀가루를 살짝 뭍힌 석이버섯, 홍고추, 쑥갓을 약한 불에 익힌 후 해산물 사이사이에 끼워 오방색을 연출한다.
고명인 셈이다.
고소한 잣 국물에 싱싱한 해산물이 어우러져 아주 시원한 독특한 별미를 선사한다.
원래 7첩, 9첩반상은 퓨전화 된 예미정 상차림과는 달리 대체로 음식이 소박하고 검소했다.
그 옛날 조선시대 7첩반상 원형은 아기상처럼 앙증스럽고 자그마할 정도다.
고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쓴 장계향 여사의 친정집으로 유명한 종가음식 명가 안동장씨 경당종택에서는 육원전과 우거지 고등어조림, 삼색나물, 안동찜국, 명태찜, 들깨부각, 사슬산적 등으로 7첩반상 상차림을 한다.
예미정과는 조금 상차림이 다르지만 ‘가가예문’이다.
모두 인공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안동비빔밥과 안동건진국수도 별미
원래 비빔밥은 안동비빔밥을 최고로 치고 그리고 진주비빔밥, 그다음이 전주비빔밥이라고 한다.
전주비빔밥은 콩나물국을 곁들여 육회, 날계란 노른자를 비빔나물 위에 고명으로 얹는다.
진주비빔밥은 선짓국이나 바지락국을 곁들이고 숙주나물을 쓴다.
“안동비빔밥에 쓰는 나물은 대게 볶지 않고 삶은 후 물기를 빼고 참기름에 무쳐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식용유를 많이 쓰지 않아 느끼하지 않고 맛이 담백한 게 특징이다”
안동비빔밥은 전국 비빔밥 가운데 지방이 과다하지 않고 콜레스테롤 또한 낮아 담백한 저지방 웰빙식으로 평가해 주는 유일한 비빔밥이라는 것이다.
고사리와 도라지, 토란대, 가지, 무채숙주, 콩나물, 배추숙주 등 7채를 기본으로 하는 안동권씨 비빔밥은 깨소금 대신 ‘장똑똑이’라고 부르는 육장을 비빔장으로 쓰기도 한다.
시원한 배추전과 나막김치, 문어숙회, 잡채, 간고등어구이와 함께 코스요리로 상어산적, 너비아니, 황태찜을 푸짐하게 곁들이고, 앙증스럽게 썬 안동버버리찰떡과 함께 안동식혜를 후식으로 낸다.
퓨전화 한 정월대보름 9채비빔밥도 일품이다.
은어를 고아 국물을 낸 안동건진국수도 향토색 짙은 별미다.
안동건진국수는 면을 삶아 찬물에 헹군 다음 대바구니에 건져 놨다가 시원한 국물에 다시 말아 낸다고 해 붙여진 이름. 안동지역은 바다와 멀리 떨어진 산간분지라서 멸치나 새우 등이 귀해 대신 민물에서 나는 물고기를 말려 음식에 활용해 왔다.
면(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30% 정도 콩가루를 섞어 밀가루 반죽을 만든다.
구수한 국물을 식혀 둔 다음 실 같이 가는 국수를 꼬들꼬들하게 삶아 건져내 말고 볶은 애호박, 쪽파와 달걀 흰자, 노른자로 오방색을 내 고명으로 얹는다.
석이나 능이로 흰 면발에다 검은색을 연출하니 한지에다 붓으로 먹을 툭툭 찍어 놓은 듯 국수그릇에서 격조 높은 선비의 기품도 엿보인다.
배추전과 풋고추 장떡, 돼지고기 수육, 닭고기 냉채를 전식으로 선보이고, 본식에서 풋고추(또는 제비콩) 콩가루찜과 삼색 명태보푸라기, 은어 석쇠구이, 나막김치 등을 곁들인 다음 후식으로 증편(기지떡)과 배조각을 띄운 오미자 화채를 낸다.
칼국수처럼 제물에 삶는 누름국수엔 조밥을 곁들인다.
(주)예미정 권용숙 홍보팀장은 “일반적으로 국수 상차림은 간단히 쌈과 간장, 반찬만 곁들인 새참 형태이지만 예미정에서는 손님을 맞는 ‘접빈객’이라는 차원에서 퓨전화 하여 상차림을 푸짐하도록 코스요리화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