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0.1그램의 희망』을 읽고
한새야,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매번 하는 잔소리지만 틈틈이 운동하면서 체력을 관리해야 해. 요즘 신종 플루로 온 세상이 긴장하고 있는데 특별히 조심해라.
지난 달에 내가 소개한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란 책 다 읽었니? 중간고사가 끼어 있어서 아직 못 읽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책은 1962년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듀이 왓슨’이란 과학자의 자서전이다. 유년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하던 시절 그리고 하버드대 부설 연구기관의 책임자로 살아온 최근까지를 적은 책인데 그의 인생 행적이 과학자의 길을 가려는 네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추천했던 거야.
이번에 또 아빠가 좋은 책 하나 네게 소개하려 해. ‘0.1그램의 희망’(랜덤하우스)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이상묵 교수(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의 자서전이야. 지난 일요일 TV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보는 바람에 책과 TV로 두 번이나 감동을 받았다.
지은이 이상묵 교수를 간단히 소개하면, 자수성가한 은행원인 아버지와 부산의 부잣집 딸인 어머니 사이에 62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인도네시아로 아버지를 따라 갔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중·고교를 졸업하고 1년 재수한 뒤에 서울대 자연과학대 해양지질학과에 입학했고 대학원 시절 국비유학생이 되었으며 1995년 5월 미국MIT 박사과정을 마친 뒤 1996년에 영국 더램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1998년 한국 해양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옮겼고 2003년 1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조교수로 임용되어 지금까지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분이다. 이쯤이면 넌 의문이 생기겠지. 흔히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갔던 길을 간 지은이가 왜 책을 쓸 정도로 특별한 사람이냐구? 더 들어봐라. 이 분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는 중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미국 칼텍과 공동으로 미국 LA에 인접한 신안드레아스 단층 탐사를 하던 중 손수 운전하던 차의 전복으로 C4 척추를 완전히 손상, 목 아래 부위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어. 그런데도 불굴의 의지와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강단에 섰고, 연구하고 강의하는 교수로 거듭나 세상 사랑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한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란 별명을 얻은 분이야.
이상묵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가서 외국인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여기서 배운 영어가 훗날 귀국해서 학교 공부할 때나, 대학원 마치고 국비유학생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해. 또 아버지가 데리러 올 때까지 매일 서너 시간 도서실에서 책을 본 것이 매우 유익했다고 회고한다. 한새야, 너도 대학원 졸업 후 유학을 가는 것이 목표이니까 영어 공부에 매일 시간을 투자하기 바라고 틈틈이 독서도 하기 바란다.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 말에 의하면 인문학적 지식이 과학적 창조에 도움이 된다고 했어.
그리고 아빠는 네가 유학 가는 것을 전적으로 찬성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상묵 교수도 MIT에서 공부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적고 있기 때문이야. 같은 전공의 외국 학생들 못지 않게 같이 유학 온 한국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회고하고 있어.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 교수는 영국 더램 대학 연구원 시절 얘기로 강조하고 있다. 연구는 미국 시절보다 반절만 했지만 학문적 교류를 많이 한 덕에 칭찬은 두세 배 넘게 받았다는 거야. 친구들과 어울리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교수님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라.
이 교수가 2007년 7월 2일 미국 야외 지질탐사 프로젝트에 참가 연구·조사과정에서 당한 사고로 장애를 입은 것에 대해 단지 운이 없어서 일어난 사고로 봐서는 안돼. 그는 학생들에게 가슴을 울리는 특별한 일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실행한 거라고 말하고 있어. 그냥 연구실에서 연구나 하고 교실에서 강의만 해도 되는데 자기 일에 적극적이고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쏟다가 사고가 난 것이지.
그는 매우 긍정적인 생활을 한 사람이야. 장애를 입은 후 그는 스스로를 재활용 인간(Recycle Man)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갑자기 자율신경이 과반사해서 발작을 일으켜 죽을 수도 있는 증세인 AD에 대해서도, 장애를 입고 나서 시작하는 제 2의 인생을 가볍게 볼까 봐 하늘이 AD라는 감시자를 붙여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세상은 First come, first serve', '나는 내가 good하기 보다는 lucky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말에서도 그런 면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한새야, 네게 아빠로서 미안한 맘이 드는 대목도 있었어. 지은이가 대학 4학년 때 아버지의 직장 출·퇴근길과 같아서 아버지의 승용차 안에서 30분씩 부자간 대화로 얻은 아버지의 멘토링 덕분에 중요한 인생의 전환기에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 네 고등학교 때도 별 얘기 못 나누고 지금도 방학 때나 만나는 아빠가 네게 도움 줄 것이 없어 안타깝다. 아빠의 부족함을 대신해 친구나 교수님을 너의 멘토로 삼기 바래. MIT 유학 초창기에 폴 황이라는 중국계 캐나다인 친구의 도움이 컸다고 그는 회고하고 있어. 인생에서 참 친구, 스승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교수가 대학 4학년 때 했다는 갈등도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의사나 각종 고시에 합격해 앞날이 보장된 친구들 앞에서 초라해졌다고 말하고 있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공계 홀대로 지금도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고 이공계 대학을 졸업하고도 의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많다는 보도를 접하면 아빠도 네 앞날이 걱정되기도 해. 하지만 너같이 자신보다는 해당분야의 학문적 발전과 인류 공동의 행복을 위해 뛰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흔들리지 말고 네가 정한 길을 꿋꿋하게 가길 바란다. 이 교수는 과학자에게 공부란 끝없는 여정이라고 했어. 그리고 그 여정의 한 구간에서 조금 빨리 가고 늦게 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한새야, 너도 서두르지 말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말고 공부에 임하길 바란다. 안철수 KAIST교수 말대로 인생의 본질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며 좋아하는 일을 하되 과정을 사랑해야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은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해.
아빠가 놀란 대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서울대 공대 기계항공과 이건우 교수가 제2회 경암학술상 상금 1억원을 생면부지인 이상묵 교수의 회복과 연구활동에 쓰라고 기부했다는 내용이야. 이 돈으로 이 교수는 강단에 서기 위한 제반 준비를 완벽히 할 수 있었고 나머지 돈으로 연구 탐사 때 사망한 학생인 이혜정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했지. 주역에 있는 적선지가필유여경 (積善之家必有餘慶)이란 말을 기억할 거야. 봉사하고 기부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꼭 실천해야 할 일이다. 지금도 난 너와 함께 너의 고2때 보령시 호도섬으로 기름띠 제거하러 갔다온 일을 기억하면 지금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한새야, 아빤 네가 연구실에서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기계 같은 과학자이지 않길 바래. 이 교수는 2003년 1월 1일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 해역을 탐사하던 중에 모든 단원들을 기쁘게 하려고 배 위에서 새해맞이 이벤트를 해서 모든 사람들을 감격시켰다고 했어. 또 자기 인생을 즐기기도 했지. 1996년 1월부터 영국 더램대학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골프를 치고 집에 와서 맥주를 마시며 행복해 했다고 적고 있다. 김운용 전 IOC위원처럼 모두를 감동시킬 수 있는 피아노 실력은 못 갖추더라도 네 인생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악기를 하나 다룰 수 있길 바라고 누구와도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운동 하나쯤 갖추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는 아빠가 이해하고 느낀 것이고, 한새 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네 방식대로 만나길 바래. 이 외에도 해저 지질 및 전공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국비유학생 자격 획득 과정, 미국에서의 적응과정, 그의 공부하는 법, 교수님들과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얻은 교훈 등등 많은 내용들은 네가 직접 읽으면서 네 자양분으로 축적하기 바란다.
한새야
너의 대학교 교정에도 낙엽이 뒹굴겠지? 첫눈이 오기 전에 이 책을 다 읽기 바란다. 그리고 ‘0.1그램의 희망’에서 ‘0.1그램’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 맞춰 봐라. 맞추면 용돈 더 주마. 잘 있어라, 우리 아들! ^-^ 사랑해.
가을 끝자락에서 첫 눈을 기다리며, 아빠가.
□ 전라북도 교육청 창의실용 독후감 응모작
독후록.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