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에 각각 데이트 약속이 있던 세 여자 시오반, 미란다, 제인은 줄줄이 바람맞는다. 그것도 조지프 카터라는 한 남자에게. 그의 수상한 노쇼는 어찌어찌 일단락되고 그들만 모르는, 보이지 않는 관계가 줄타기하듯 위태롭게 계속된다. 조지프는 정신없이 일하는 라이프 코치 시오반과는 매달 하루 호텔에서 만나는 장거리 연애, 수목 관리 전문가 미란다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소개하고 가정사를 공유하는 진지한 연애, 어느 날 문득 런던을 떠난 제인과는 독서 모임을 하는 썸 타는 연애를 이어간다. 성격도, 직업도 다른 세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며 네 남녀의 과거와 비밀을 둘러싼 엇갈린 로맨스가 펼쳐진다.
저자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설정과 참신한 콘셉트로 몰입감을 높이고 소설 속 모든 것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클라이맥스로 향할수록 무관하게만 보였던 에피소드 사이에 접점이 생기고, 이내 사건의 전말이 불쑥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지막 반전이 얼마나 놀라운지는 “가장 신선한 로맨스 소설”, “마음을 사로잡는 플롯” 등 수많은 해외 유력 매체와 독자의 극찬으로 짐작할 수 있다.
나타나지 않은 남자의 비밀스러운 정체, 불가사의한 행적
조지프 카터, 그는 누구인가?
로맨스 역사상 가히 역대급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조지프 카터는 시작부터 행적이 묘연하다. 처음에 그는 세 다리를 걸친 간 큰 남자, 바람둥이 같기도 로맨티스트 같기도 한 남자, 한없이 순진하다가도 굉장히 어른스러운 남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나쁜 사람이라는 인상은 느껴지지 않는데, 그 점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 사건’이 베일을 벗고,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낱낱이 공개된다.
작중 조지프는 매사에 여유롭지만 때때로 조급해하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조지프에 대한 제한된 정보만을 건네며 알 듯 말 듯한 그의 정체를 유려하게 숨기고 드러낸다. 독자는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조지프의 정체를 추리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저자는 예상을 뒤집는 그의 면모를 슬쩍슬쩍 보여주며 독자의 추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독자와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를 하며 끝까지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작가의 탁월한 이야기 솜씨는 이 작품을 특별한 로맨스 소설로 만든다.
“카터의 삶의 일부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보니 무엇을 알게 될까 싶어 약간 두려워졌다.”(90쪽) 적극적으로 비밀을 숨기는 사람과 내게 비밀의 열쇠를 쥐여 주는 사람 중 누가 옳고 그른가? 여기서 조지프는 전자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가 사랑을 할 때 흔히 겪는 딜레마 중 하나다. 저자는 ‘타인의 전부를 아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으로 표현되는 믿음이란 화두를 무겁지 않게 던진다. 작품 전반에 걸쳐 변화하는 조지프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사랑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 자체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유를 찾아보면 매일이 좋은 날이다
시오반, 미란다, 제인의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성장
순정이 사라진 시대의 진정한 판타지. 롤러코스터 같은 플롯이 독자를 쥐락펴락한다. 미란다처럼 살고 시오반처럼 성공하며 제인처럼 사랑하고 싶다. - 박지선(옮긴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인 시오반, 미란다, 제인은 자신의 분야에서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나가며 언제나 삶에 최선을 다한다. 간혹 흔들릴지언정 어떤 것도 그들을 온통 지배하도록 두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따금 실수를 저지르고 ‘웃픈’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솔직 당당하고 개성 넘치는 대응은 세 가지 색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일, 사랑, 우정. 뭐 하나 순탄하게 흘러가는 게 없는 세 사람이지만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태도를 견지한다. 소중한 자신이 불행이란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으며 행복을 만들어간다. 시행착오는 있어도 포기는 없는, 그래서 응원하고 싶어지는 이들의 자세는 시련을 딛고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용기와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다.
혹자는 모든 건 타이밍이며, 따라서 사랑도 타이밍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타이밍이 전부일까? 이 책은 사랑하면 기다리게 되고, 기다릴 가치가 있는 사랑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비단 사랑만이 아니다. 그런 사람, 삶도 있다고 강조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기다림을 이야기하는 건 일견 뒤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완벽함보다는 온전함을 추구할 때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한다.
《내가 빠진 로맨스》는 실험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짚는다. ‘한 권의 책에서 독자를 웃기고, 기절시키고, 울리고, 마음 아프게 하는 재능(에밀리 헨리)’이 고스란히 녹아든 이 작품은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치유와 회복, 일상의 아이러니에 관한 통찰을 준다. 나아가 짜임새 있는 서사로 우리가 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독자는 한번 들면 놓을 수 없는,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처럼 맛있게 읽히는 이야기에 매료돼 밤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