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2010 바둑대상 옥의 티, 다음엔 이렇게
| ||
시상식 준비-진행 무난했으나 부문 구성, 선정에 문제 보여 12월 21일 오후 6시 30분 역삼동 GS타워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2010 바둑대상 시상식’은 전체적으로 예년에 비해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먼저, 팬의 한 사람으로 이 행사의 준비, 진행에 애쓴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백대현 8단과 박성희 리포터의 진행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자리에 없는 시상자나 수상자를 호명하며 객석에 박수를 요청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실수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좋았다.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시상자와 수상자들의 소감도 만족스러웠다. 기록(다승, 승률, 연승)부문은 일찌감치 이세돌 9단으로 수상자가 확정된 데다 최고의 영예인 최우수기사상 역시 복귀하자마자 24연승을 달리며 세계타이틀(비씨카드배)을 포함한 3개의 타이틀을 움켜쥔 이세돌 9단이 워낙 돋보였기 때문에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국내 여자기사 최초로 세계대회(삼성화재배) 16강에 진출한 박지연 2단의 신예기사상 수상은 신선했고 삼성화재배 준우승, 춘란배 4강진출을 앞세워 황소클럽(박영훈, 원성진, 최철한)의 각축전 속으로 뛰어든 허영호 8단의 감투상 수상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여기까진 다 좋았다. 다 좋았는데 경쟁부문 중 ‘시니어기사상’과 ‘여자기사상’ 수상은 문제가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수상보다 후보자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 시니어기사상 수상자인 양재호 9단은 수상소감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시니어기사상’을 받기에는 너무 젊다. 수상자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은 나이 50이 넘은 사람도 시니어란 말을 들으면 쑥스러워 하거나(좋은 일일 경우) 불쾌하게(나쁜 일일 경우) 생각한다. 63년생으로 기사생애 절정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양재호 9단에게 시니어란 표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만 45세 이상의 프로기사 중 성적이 특히 우수하거나 바둑의 홍보·보급 활동, 바둑대회 유치, 사회기여 활동에 노력한 기사에게 수여’한다는 이 상의 근거나 양재호 9단의 공로는 수상의 조건을 채우고도 남는다. 의아한 것은 왜 하필이면 시니어의 연령기준이 ‘만 45세 이상’이냐는 것이다. 어림짐작은 있다. 시니어 여류대항전으로 인기를 모은 지지옥션배에서 시니어의 연령기준을 만 45세 이상으로 정했다는 것. 사실, 만 45세(종전 만 50세)로 낮춰진 지지옥션배의 시니어 연령기준은 제1회 때 여기사들이 압도적 전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후유증이다. 시니어의 연령기준을 낮춘 것은 전력 강화의 비상수단이었다. 일방적으로 끝나버려 추락한 대회의 흥미를 끌어올린다는 일종의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려 얘기하면 대회의 효율을 위해 적용한 임시방편의 연령기준을 공식행사의 수상기준으로 삼는 우를 범했다는 뜻이다. ‘이 상을 받기에는 너무 젊다. 다른 상을 받고 싶다’는 양재호 9단의 수상소감은 공연한 겸손이 아니다. ‘시니어기사상’이 신설된 이유가, 첨예한 승부현장에서는 한걸음 밀려났지만 엄연히 한국바둑의 오늘을 만든 숨은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노장 기사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자긍심을 북돋는 데 있다는 기자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양재호 9단의 ‘시니어기사상’ 후보선정부터 부적합한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양재호 9단은 한국바둑의 중심에 있는 최고의 프로다. 많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방송스타로서 평소 기전유치나 바둑보급, 사회기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바둑선수단을 지휘해 금메달 3개를 휩쓸어온 그가 바둑대상의 수상자가 됐다는 데에는 박수를 보내 마땅하지만 그 상이 ‘시니어기사상’이라는 것은 갓 쓰고 양복 바지저고리를 입은 것처럼 언밸런스하다. 아시안게임이 매년 개최되는 행사도 아니고 매년 금메달을 휩쓸어온다는 장담도 할 수 없는데 ‘특별상’ 같은 것을 만들어 수상할 수는 없었을까. 그런 발상의 유연함이 아쉽다. 바둑대상 시상식이 끝나고 우연히 잠실 장미아파트 상가의 한 카페에서 열린 ‘초지회(初志會- 양상국 9단이 1996년 성균관대 사회교육원에서 시작한 16주 바둑강의 수료자들의 모임. 현재 14기째 이어지고 있다)’의 송년모임에 들르게 됐는데 카페를 가득 채운 동호인들을 바라보다가 양재호 9단의 ‘시니어기사상’ 수상 모습이 왜 그리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확연히 알게 됐다. 양상국 9단은 49년생으로 승부무대에서는 오래 전부터 얼굴 보기 어려운 노장 기사인데 많은 팬들은 그를 여전히 ‘최고의 프로’라고 꼽아준다. 그는 90년부터 EBS 바둑교실을 맡아 20년간 단 한 번의 결방도 없이 올해 봄 방송 1천회를 돌파했다. 바둑계는 물론, 방송계에도 흔치 않은 대기록이다. 또 그가 이끄는 초지회의 회원 중에는 제1기부터 14년째 꼬박 강의를 수료한 사람도 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양상국 교수가 좋고 그 때문에 수료자들의 모임 ‘초지회’까지 좋아져서다. 한국바둑계에서 누가 이만한 업적을 쌓고 이만큼 바둑보급에 기여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런 프로가 존재한다면 그분 역시 노장 기사일 것이다. 반드시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전제돼야 할 테니까. 양상국 9단이 바둑대상 ‘시니어기사상’ 수상자가 되었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시니어기사상’이라면 나이와 활약의 내용이 그 이름에 어울리는 후보가 선정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예를 들었을 뿐이다.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억지로 틀을 짜맞춰 안겨주는 상은 수상자뿐 아니라 일없이 들러리만 서게 되는 후보자들과 지켜보는 팬들까지 다 불편하다. 관계자에게 차기 행사 때는 균형 잡힌 눈, 넓은 시야를 가져주기를 부탁드린다. ‘시니어기사상’에 이은 또 하나의 ‘옥의 티’는 ‘여자기사상’이다. 수상자로 선정된 이슬아 초단에게는 손톱만큼의 유감도 없다. 아니, 오히려 한국바둑의 미래를 위한 ‘바둑요정’의 탄생이 진심으로 기쁘다. 이번에도 시빗거리는 후보자 선정 적합성이다. 투표를 행사한 기자들의 상당수가 여자바둑에 기여한 공로나 성적을 생각하면 다른 여기사를 뽑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에는 이슬아 초단이 너무 아까워서 이슬아 초단에게 표를 줬다고 한다. 뭐,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을 통과했으니 그 정도면 실력도 입증됐으니까. 다시 말해서 이슬아 초단의 ‘여자기사상’ 수상은 아시안게임 파급효과라는 뜻이다. 아시안게임을 전후해서 ‘얼짱’으로 이름을 높인 데다 2개의 금메달까지 획득하면서 신문, 방송을 오르내린 상승작용이다. 그렇다면 이건 ‘여자기사상’보다는 ‘인기상’감인데? 그러고 보니 남녀기사 ‘인기상’이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없어졌다. 수년째 남녀 최고기사로 선정된 이창호, 박지은 9단이 ‘인기상’ 수상자로 중복 선정되는 바람에 ‘인기상’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기량과 인기가 어느 정도 비례하는 건 사실이지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최우수기사상’이나 ‘여자기사상’의 절대기준은 기량이다. 전적, 타이틀, 상금획득 같이 명백하게 드러난 전과가 최우선의 기준이라는 뜻인데 ‘인기상’의 기준은 훨씬 다양하다. 기량이 최우선의 기준이 아니다. 외모가 뛰어나거나 방송의 재능이 탁월하거나 특정대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도 그 기간만큼은 최고의 성적을 내는 기사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사견이지만 ‘여자기사상’과 ‘인기상’이 함께 존립했다면 이번에는 수상자가 나누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한다. ‘여자기사상’ 후보 중 박지은 9단은 올해 세계대회 개인전(궁륭산병성배) 우승, 세계대회 단체전(정관장배) 4연승 한국 우승견인, 지지옥션배 최종전 대 조훈현전 승리 여자팀 우승견인이라는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전과를 기록하고도 수상에 실패했다. 상의 수준과 권위는 후보자, 수상자의 엄정한 선정으로부터 나온다. 바둑대상 후보자를 선정하는 관계자, 수상자를 결정하는 기자단 투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바둑대상 시상식은 한국바둑의 1년을 마무리하는 큰 잔치다. 잔칫집에서는 축하할 일(상을 주고받는 일)이 많을수록 좋다. 2011년 바둑대상 시상식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축하가 오가는 즐거운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
첫댓글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