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말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기르는 친척이 있었는데 늙어서 쓸모없어진 말을 잡아 몸보신을 하면서 우리 집에 좀 나눠 주곤 했습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그때의 말고기 맛을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두 가지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말고기를 먹는 순간 기름이 입속에 쫙 번졌고 육질이 굉장히 질기다고 느껴졌습니다.
지난번에 언급한 대로 오늘도 말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역사소설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를 자유칼럼에 소개하고 나서 얼마 후 작가 권무일 씨와 말고기 요리를 먹게 되었습니다. 김만일의 방계 후손인 김형수 전 서귀포 시장의 주선으로 작가 권 씨와 목장주 강남환 씨 등 몇 명이 찾아간 곳은 제주공항에서 지척지간에 있는 ‘백마가든’이란 곳이었습니다.
“말고기 음식점이 백마가든이라니.” 식당 이름만 보고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동행자들이 말의 전문가들이니 토를 달 수가 없었습니다. 식당 대표 안해영 씨를 만나 보고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씨는 말의 고장인 제주도에서도 최고의 말을 길러냈던 표선면 가시리 출신입니다. 임진왜란 때 김만일이 조정에 바쳤던 5백 마리의 말을 길렀던 갑마장(甲馬場)이 바로 가시리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 부잣집 딸로서 어릴 때 몸이 약해 부친이 달여 주는 말고기를 먹으며 건강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제주의 말고기 전문 식당은 약 50군데가 됩니다. 안 씨의 말을 들어보니 말고기라고 다 같은 말고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의 음식점에 공급되는 말고기의 루트는 네 갈래, 즉 제주마, 한라마, 중국말, 몽골말입니다. 제주마는 소위 조랑말이라고 불리는 제주 재래종이고 숫자가 1천5백여 마리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라마는 제주마와 외국 경주마의 교배종입니다. 제주도에 약 2만5천 마리가 사육되고 있으며 보통 제주산마(山馬)로 분류됩니다. 이밖에 말고기 소비가 늘면서 중국과 몽골에서 말이 수입된다고 합니다.
안 씨가 말하는 말고기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생간. 안 씨는 도축된 말의 간을 보면 말고기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말이 어릴수록 그리고 족보가 토종인 제주마일수록 좋은 말고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도 제주마 말고기를 먹기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보호종인 데다 값도 비싸기 때문입니다. 음식점에 가장 많이 공급되는 것이 제주에서 사육되는 한라마와 중국말이라고 합니다. 한라마는 비육마로서 길러지기도 하지만 종마로서, 어미말로서, 또는 경주마로서 역할을 다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사람의 음식이 되어 봉사하는 게 그들의 일생입니다.
생간 한 조각을 집어 맛보았더니 약간 달짝지근하다는 느낌을 빼고는 쇠고기 생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코스 요리를 경험하면서도 이게 쇠고기인지 말고기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요즘 영국 등 유럽에서 말고기가 쇠고기로 둔갑해 유통되는 사태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다 조리기술과 양념의 발달 덕분에 말고기와 쇠고기의 구분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말고기는 일반적으로 부드럽고, 기름기가 적고, 단백질 함유량이 높습니다. 서양인들도 말고기의 맛은 쇠고기와 사슴 고기의 중간에 있다고 평가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맛본 말고기가 아주 질겼던 것은 평생 일만 하다가 늙은 말의 고기였기 때문일 것이고, 입안에 퍼진 기름기의 감촉은 별로 육류를 먹지 못하던 당시 식생활 패턴 때문일 것입니다.
말고기 요리를 먹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별미를 맛봤다는 것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쇠고기를 먹었다면 아무 감흥이 없었을 것이니, 역시 말고기는 아직 우리 음식문화에서 보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 주민들도 말고기는 아직 별미로 먹는 것이지 보편적으로 먹는 것은 아닙니다. 말고기 요리를 드는 사람이 느는 추세인 것은 분명합니다. 안해영 씨는 별미로 말고기를 먹는 손님은 현지 주민에서 단체 관광객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말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단체관광객을 맞으려면 쇠고기나 돼지고기 요리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일행이 쇠고기파와 말고기파로 갈리고 말고기를 절대 못 먹겠다는 손님이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고기를 준비할 필요가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말고기를 경험삼아 먹어보겠다고 나서기 때문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말고기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음식문화에서 차지하는 보편성이 떨어집니다. 법으로 말고기 유통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습적으로 금기시(禁忌視)하는 나라는 많습니다. 말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말을 스포츠나 전쟁 등에 함께 출전하는 인간의 반려동물로 생각하고 애완동물과 비슷한 지위를 인정하는 문화입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 영어 사용국입니다. 말고기 먹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든 간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차지하는 말의 위상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 말고기를 종교적 터부로 생각하는 문화입니다. 유태인들은 말이 통발굽이고 반추동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고기를 율법으로 금지합니다. 그리고 초기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 그레고리 3세가 게르만 이교도 의식에 쓰인다는 이유로 말고기를 금지했습니다.
말고기를 일상의 주요한 육류(肉類)로 취급하는 곳은 몽골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지역입니다. 초원과 사막을 누비던 이곳 종족들에게 말은 곧 전쟁물자이자 주요한 식량자원이었던 것입니다. 중국, 일본, 중남미, 유럽대륙에서 말고기는 돼지고기나 쇠고기보다는 덜하지만 광범하게 식품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식용으로 말고기를 많이 공급하는 국가는 중국, 멕시코, 카자흐스탄, 몽골, 아르헨티나 순이며 연간 전 세계에서 4백70만 마리의 말이 식용으로 공급된다는 사실을 볼 때 말고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꽤 많이 식품으로 유통됨을 알 수 있습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진 후 식도락이 유난히 강해진 것이 한국인의 식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고기 먹기를 주저주저합니다. 반려동물이란 인식도 그 이유이겠고, “말고기를 먹으면 재수 없다.”는 속설도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가 권무일 씨는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하여 말에 대한 기록을 찾아다녔고, 제주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은 사람입니다. 권 씨에 따르면 조선조 중앙의 권력자와 부호들의 제주에 대한 관심은 귤이나 전복이 아니라 말이었다고 합니다. 자동차도 아스팔트 도로도 없던 시절 말은 절대가치를 가진 교통수단이었고, 농업도구였고, 전시에는 전쟁무기, 즉 전마(戰馬)였습니다. 말은 죽어서도 이용 가치가 많았습니다. 말고기는 식량이었고, 말총은 갓의 원재료로, 심줄은 활소재로 쓰였습니다. 이렇게 말의 쓰임새가 귀중하다보니 세도가에게 뇌물로서도 그만이었다고 합니다.
말고기는 조선조 상류사회에서 은근히 인기 있는 육류였나 봅니다. 세종 임금은 말이 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말고기 먹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당시 재상이었던 황희(黃喜)가 어느 날 말고기를 뇌물로 받아먹었다며 잘못을 임금 앞에서 실토했다는 일화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습니다. 말고기가 서울 도성에서 많이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과 인조 때라고 합니다. 전쟁 중에 식량사정이 나빠졌으니 가축도 남아나지 않았을 겁니다. 제주도의 말도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수컷은 전마로 반출되었고, 암말은 도축되어 고기와 활 재료로 보내졌기 때문입니다. 지방 수령들은 중앙에 잘 보이기 위해 말을 잡아 건마육(乾馬肉)을 만들어 뇌물로 바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말고기가 고관의 부인들까지 찾는 음식이 되자 헌종은 말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칙령을 내렸고, 정조 때에 이르러서도 말고기 먹는 것이 멈춰지지 않자 임금이 “말고기를 먹으면 재수 없다.”는 말을 유포시켰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한국인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가 넘었으며 쇠고기를 비롯하여 중요한 육류 소비국이 되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전 세계의 좋은 쇠고기를 수입해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고기가 보편적 육류로 자리잡을 수가 있을까요. 영일만 지역의 고래 고기처럼 제주의 별미로 관광객에게 관심을 끄는 현재의 수준에서 어떤 진전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예부터 동해안에 관동팔경(關東八景)이 있듯이 제주에는 영주십경(瀛州十景)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고수목마(古藪牧馬)입니다. 한라산록의 천연림을 배경으로 말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고 선인들이 감탄했던 경치입니다. 지금도 5·16도로변 30만평의 도립 마방목장(馬放牧場)에서 고수목마의 진수를 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말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자연 속을 뛰노는 그 모습 자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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