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
요약
『니코마코스 윤리학』제 7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크라시아(자제력 없음)와 즐거움의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피해야 하는 세 가지 품성 상태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결함과 자제력 없음. 그리고 짐승 같은 품성 상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적 즐거움과 관련된 자제력 없음과 분노와 관련된 자제력 없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엥크라테스는 자신의 판단과 일치된 행동을 하는 반면 아크라테스는 자신의 판단을 포기한다. 엥크라테스는 자신의 욕구들이 나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들에 저항하는 반면, 아크라테스는 자신의 행동들이 나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감정 때문에 그 행동들을 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인 즐거움과 또한 분노와 관련해서 아크라시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감각적인 즐거움과 관련된 아크라시아가 분노와 관련된 아크라시아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후자에는 이성과 반성이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즐거움은 과정이거나 과정과 함께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즐거움은 활동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다. 또 즐거움은 무엇이 생성될 때가 아니라 어떤 능력이 발휘될 때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은 모든 종류의 즐거움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본성의 완성으로 이끄는 즐거움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이런 까닭에 즐거움이 감각 가능한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본성적 상태의 활동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또 ‘감각 가능한’ 대신에 ‘방해를 받지 않는’ 활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설명에 따르면 즐거움은 본성적 상태의 방해를 받지 않는 활동이다.
논평
자제력 없음은 피해야 할 대표적인 품성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자제력 없음은 결함과 짐승 같은 품성 상태를 총괄하는 성격을 띤다. 순간적인 즐거움도 순간적인 분노도 모두 ‘자제력 없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크라시아란 가장 피해야할 품성 상태임이 틀림없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다른 존재들과의 구분이 가장 확실한 것이 이성이며, 이성은 우리에게 절제(자제)의 방법을 가르쳐준다. 이성에 따르는 삶은 탁월한 삶이므로 모든 일에 자제하며 중간적 선택을 하는 것 또한 탁월한 삶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인 즐거움과 관련된 아크라시아가 분노와 관련된 아크라시아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겠다. 순간적 쾌락과 관련된 자제력 없음과 분노와 관련된 자제력 없음은 같은 양의 수치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화를 적재적소에 내는 것을 탁월하다고 말하였는데 분노의 자제력 없음이란 적재적소에 화를 낼 수 없는 것이므로 탁월하지 못한 것이다. 아크라시아는 ‘아크라시아’의 의미만을 포함할 것이므로 감각적인 즐거움과 분노의 아크라시아는 비슷한 양의 수치스러움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