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도, 그리고 오래도 살고있다. 그럼에도 왜 사는지를 모르고 있다. 어떻게 사는게 맞는지, 혹은 옳은지도 모른다. 잘 사는게 어떤 것일까. 누군 그랬다. 성공이나 부가 절대 가치는 아니라고. 그럴듯한 표현인듯 싶기도 하지만, 괘변이고 말 장난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크건 작건, 또 형태는 다르더라도 우린 모두가 성공을 꿈꾸고 있다. 실패나 좌절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침체시키고 절망에 이르게 하지않던가. 사람은 자기가 알던 모르던간에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며 존제하고 있는것일수도 있다. 큰 성공, 가령 동내어귀에 현수막을 거는, 그런 거창한게 아닐지라도 사람은 수많은 순간마다 성공을 경험하고 있을수도 있지않을까. 걷고 숨을 쉬고, 말을하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이런 동작 하나하나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성공인것을 알면 불평할게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왜 기쁘지 않는것일까. 감사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인생은 어떤 인생이었기에? 내가 성공이라고 우쭐댈만한 인생은 어떤인생인데? 아직도 열등감에서 못벗어난 것은 허영심탓인가. 사탄은 한결같이 소근거린다. 부끄럽다고 민망하다고 속삭인다. 90억에 달하는 인간들이 모두가 다 성공한 삶을 살수는 없지않을까. 아니,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성공과 실패의 개념은 분명 다른것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가 누릴수 있는 물질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으면, 탐욕만 버리면 훨씬 부드러운 삶을 즐기며 살수있었을탠데 사람은 그렇지 못한 탓이다. 분쟁이 곳곳에 있다. 내가 그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맑다. 화창한 햇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감사다. 오늘 하루를 내가 만든것 아니다. 내가 값을 지불하고 내것으로 만든것도 아니다. 오늘 이 하루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을 받지못하고 스몰로 내려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한다면 절로 감사가 나오지 않을까. 감사에만 인색한게 아니다. 사랑에도 인색하다. 아니, 내가 아는게 별로 없다. 배려나 협력도 말로만 하고있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할수있는게 없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바란다. 하나님께 바라고 이웃에게 바라고정부에도 바란다. 내가 하려고 한것은 하나도 없다. 밥값? 밥값좋아하내. 나는 공짜로 살길 원하지 노동력을 제공할 생각도 없다.
빨래를 하고, 내다가 널려고 빨래걸이를 내 놓았는데, 없어졌다. 이 황당함이란. 저만끔 우리 빨래걸이를 들고가는, 골목청소원 조끼를 입은 분을 발견하고 황급히 쫒아가며 불러세웠다. 버릴려고 내놓은줄 알았단다. 어휴! 조금만 늦게 나왓더라면 잃어버릴뻔 했다. 언제 샀더라? 한 20년전? 기억에도 없다. 낡은것은 맞지만, 그래도 고장은 없으니 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다시 살려면 돈이 들잖아. 운동화 한컬래를 살까 말까 하며 신발가게 앞에서 망서리고 있는게 벌써 얼마나 오리전부터인데,,,. 나는 참 답답하게 사는 인간이다. 78년째를 살고있는데도 여전히 길이 없어 더듬고 있다. 부르시는 목소리가 이미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면 큰일이 아닌가. 기억나진 않지만 참 어수선한 꿈에서 깨어나면서 부르실때가 되긴 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우산을 수리하려 간다. 어제는 내가 잘못알고 헛걸음을 했다. 어제는 화요일이고, 화요일인줄도 알고 있었는데, 수요일로 착각아닌 착각을 했다. 이런 실수는 앞으로도 거듭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