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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길에 뿌리고 다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비하는 가장 중요한 자투리 시간은 출퇴근 시간이다.
따라서 자투리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출퇴근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출퇴근 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첫째, 나는 출퇴근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가?
둘째,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2002년 6월 한 채용정보회사에서 직장인 1천317명을 대상으로 하루 평균 출퇴근 소요 시간을 조사한 결과, 평균 한 시간 56분으로 나타났다.
일주일에 6일 동안 직장에 나간다고 할 때, 하루 두 시간씩 총 열 두 시간이다.
한 달로 계산하면 무려 48시간이다.
하루 근무시간을 8시간으로 계산할 때, 한 달 중 일주일을 그냥 흘려보내는 셈이다.
만약 이 시간을 제대로만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한 달에 6일이라는 시간을 보너스로 받게 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하는 시간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짜증나는 뉴스를 듣거나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면서 흘려보낸다.
변호사이자 작가인 스콧 트로는 전철로 출퇴근하면서 몇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썼으며,
마리오 푸조는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그 유명한 영화 〈대부〉의 원작 소설을 썼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시간을 붙잡아서 요긴하게 사용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조각난 시간들을 꾸준하게 활용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
큰 시간을 잠깐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작은 시간들을 유용하게 보내는 습관을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차를 운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동차의 핸들을 조금만 돌려도 진행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알 것이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만 다르게 사용한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https://blog.naver.com/pcd3510/222321134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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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 류비셰프 이야기 -
<時間을 지배한 사나이>
구 소련의 작가 ‘다니일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은 그의 작품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를 통해,
우리들에게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통계를 낸 후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중요성에 대한 알려주고 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알렉산드로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세프'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그의 ‘시간 통계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시간통계법’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읽는 소설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자기계발이나 자신의 자서전적 소설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사람이란 죽은 다음에라야 모든 진상들이 밝혀지고, 그의 참된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살아 있을 때보다 죽고 없을 때 더 많은 권리가 주어지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간의 개념,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행위들...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권리라는 것에 대한 소유의 문제들을 짚었다.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많은 권리가 주어진다고 하는 작가의 생각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살아있을 때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으로 모르고 있으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미숙한 상태다.
항상 긴장하고 소의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고는 하지만 시간에 대한 전정한 고찰이 이뤄지지 않으며 단편적인 사전적 의미의 시간에 대한 개념만이 자리잡고 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결코 아프리카에 가서 의사 노릇을 하라고 그 누구에게도 호소한 적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길, 자신의 방식을 골라잡고 자신의 원칙을 실제 행동으로 지켜 나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슈바이처의 업적은 결국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준 것이다.」
위 문장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시간활용에 대한 보상과 시간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사용한다고 어떤 시대심리나 보답, 부러움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냥 사용한다면 사후에 그 공을 인정받고 존경받고 권리와 기회를 얻게 된다.
앞 문장에서 슈바이처가 스스로의 길을 걸었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다는 것은 결코 타인에 의한 수동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이 작품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시간통계법’에 대한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문장으로 의미를 압축해놓고 있다.
작가는 류비세프라는 구 소련 시절 과학자를 모델로 삼고 있다.
그 당시 소련의 과학자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후한 대접을 받았으며, 존경을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하루 24시간, 일주일, 한달, 일년을 기준으로 시간을 쪼개어 통계를 내고 무엇을 했는지 꼼꼼히 기록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류는 바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실용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진보란 실용주의자들 자신에게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간을 아낄 목적으로 실용주의자들은 마차에서 내려 기차를 잡아탔으며, 기차에서 내려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니까.
이윽고 전보와 전화가 발명되어 편지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텔레비전이 극장을 대신하였으며, 지퍼가 단추를 대신하였으며, 만년필이 거위깃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은 그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해 적었기 때문에 현대사회와는 동떨어진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글의 의미를 봤을 때 우리는 주어진 시간속에서 더욱 실용적이고 편리하게 알뜰하게 시간을 활용하는 법에 대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시간은 우리들을 합리주의자로, 염세주의자로, 개인주의자로, 실용주의자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모델을 따를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사람에게 있어 제일 귀중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생명이다.
그러나 이 생명을 자세히 분석해보라,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이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이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한 시간, 1분 1초가 축적되어 시간을 이루고 생명이 곧 그 시간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주인공 류비세프 박사를 통해 ‘시간=생명’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또 시간에 생명을 불어 넣어 여러 가지 시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모든 유효 시간을 파악하야 하고 시간의 굴곡과 공백도 파악해야 한다....<중략>...
시간이란 어떤 시간이나 다같이 귀중하다.
사람에게는 나쁜 시간, 쓸모없는 시간, 남아도는 시간이 있어서는 안되며, 휴식시간이 있어서도 안된다.
휴식시간이라는 것은 시기를 잘 맞춰 제대로 하는 그루갈이처럼 어떤 일에서 다른 일로의 교체를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성의, 그리고 추진력, 긍정적인 마인드, 충성심, 성실함 등은 시간에 대한 예의이며, 우리가 시간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자신이 더없이 보람찬 일에 종사함으로 해서 자신의 건강과 능력이 더없이 훌륭하게 유지되었다고 굳게 믿었다.
이를테면 곤충에 대한 연구는 그의 생활방식의 한 내용이 되어 그로 하여금 운동부족을 막아 주었고 단순성이 강한 작업인지라 학문에 대한 지속적인 흥미를 북돋아 주는 영양제 구실을 했던 것이다.」
「자기에게 보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이중적 심리 혹은 희극적 심리를 의미한다. 자기가 자기에게 쓰고 보고하며 그런 다음 자기가 자기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니까 말이다......<중략>......
시간의 귀중함은 성숙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바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더욱 소중하였다.
시간통계법을 통해 그는 단 1초의 시간이라도 더욱 아끼고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역시 시간통계법을 통해 단 1초라도 소중하며, 자신이 귀중하고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도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람에게 있어 시간이란 무엇인가?
사람에게 있어 일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 소설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내어줄지 모른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시간관리를 가장 잘하고 또 시간을 지배했던 사람 중 하나로,
유명한 러시아의 과학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세프(Aleksandr Aleksandrovich Lyubishchev)>에 대한 이야기.
류비세프는 하루 24간 중에서 효과적인 시간, 즉 순수 집무 시간을 10시간으로 잡고, 그것을 3등분한 것을 1단위 시간(1.0)으로 잡았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1단위 시간 혹은 그 절반의 시간(0.5)씩으로 시간을 할당하여 사용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활동을 제1부류와 제2부류로 나누었다.
저술 및 연구, 다른 사람의 논저를 읽으면서 노트하기, 편지 쓰기 등의 일이 제1부류의 일이다.
학술 보고, 강연, 토론, 문예작품 독서 등(직접적인 과학 연구에 속하지 않는 모든 일들)이 제2부류이다.
예를 들어서 1965년 8월의 경우, 제1부류 업무는 총 136시간이었다.
그는 이렇게 월말 결산을 하고 있다.
기본과학 연구 59시간 45분 / 곤충 분류학 20시간 55분 / 부가적 업무 50시간 25분 / 조직 활동 5시간 40분 / 합계 136시간 45분
그리고 위에서 "기본과학 연구"로 분류된 활동을 다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분류학: "분류법의 논리"에 대한 연구보고서 작성 6시간 25분 / 잡무 1시간 / "다도노파에 대한 연구" 교정 30분 / 수학 16시간 40분 /
일상 참고서:랴프노프 55분 / 일상 참고서: 생물학 12시간 / 학술 통신 11시간 55분 / 학술 메모 3시간 25분 / 도서 색인 6시간 55분 / 합계 59시간 45분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는 다시 이들 항목을 세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일상 참고서: 생물학"은 다시 이렇게 정리된다.
도프르잔스키의 "인류의 진화" 372페이지 다 읽었음 6시간 20분 / 야노쉬 카로이의 "동물에게 사고력이 있는가?" 91페이지 2시간 / 베르그의 원고 1시간 50분 / 네로코, 오스펠트 17페이지 40분 / 레트너의 원고 1시간 10분 / 합계 12시간
이렇게 무시무시한 시간 정리는 결국 그의 무시무시한 메모 및 일기 습관에 기초하고 있다.
처음 시간 통계법을 시행하기로 결심한 뒤 50여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하루 동안 한 일과 그것에 걸린 시간을, 앞서의 업무 분류법에 따라서 분 단위로 정확하게 기록했던 것이다.
통상적인 일기가 아니라, 일종의 시간 명세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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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간, 그 열린 가능성]
-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수위원, ‘미래를 예측하는 힘’ 저자 -
에너지경제ekn@ekn.kr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우주를 구성하는 2대 요소인 시간과 공간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무한대의 시공간인 우주를 이루고 있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자 우주의 주역으로 그 속에서 사건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인간을 더하면 ‘삼간(三間)’이 된다.
한자 ‘사이 간(間)’자가 들어간 가장 중요한 세 개의 낱말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연속된 시간이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현재는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시간이다.
실제 존재하는 것은 현재뿐이다.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세계 4대 성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틱낫한 스님은 <천천히 가는 삶 17계명> 중,
첫 번째를 ‘삶이란 오직 지금 이 순간, 즉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에만 존재한다’라고 가르친다.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시간은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을 갖는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벤자민 버턴의 시간은 거꾸로 갈지 모르지만 현실의 시간은 결코 거꾸로 가지 않는다.
한번 지나온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반복되지도 않는다.
모든 주어진 시간은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들이다.
"인간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삶이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구소련 과학자 류비세프의 평전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를 쓴 알렉산드로 그라닌의 말이다.
그라닌이 시간을 정복한 남자라고 소개한 류비세프는 곤충연구를 했던 과학자로 평생동안 자신의 일상을 시단 단위로 기록한 시간통계노트로 유명하다.
26세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일기를 썼고 시간을 기록했다.
"곤충분류학(어제 그렸던 곤충의 정체를 완전히 밝혀냄) 2시간 20분, 이 곤충에 대한 논문 집필 1시간 5분, 편지쓰기 3시간 20분, 문학신문 66쪽 1시간 30분(...)"
이렇게 자신이 보낸 시간을 분 단위로 매일 기록하고 월별 통계도 내면서 그는 시간관리를 했다.
그 결과 류비세프는 놀랍게도 일생동안 70권의 학술서적을 냈고
1만 25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연구논문(100권 분량)을 남길 수 있었다.
류비세프는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주어진 24시간을 쪼개고 쪼개 최대한 활용하면서 한 달을 일 년처럼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시간관리에 철저했던 류비세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루 평균 8시간 이상을 자고, 운동과 산책을 즐겼으며, 한 해 평균 60여 차례 공연과 전시회를 관람했다고 한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사회는 단어 뜻 그대로 풀어보면 ‘돈이 근본인 사회’이지만 돈으로도 살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바로 시간이다.
흙 수저부터 금 수저에 이르기까지 물질적으로 격차가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도 시간만큼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흙 수저의 빈민이건 금 수저의 대기업 총수이건 태어나면서부터 시간 앞에 평등하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똑같은 자본을 갖고도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듯이,
똑같이 24시간을 사용하면서도 누구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고 누구나 헛되이 시간을 죽이면서 살아간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하고 보내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나 조직, 국가도 마찬가지다.
과거나 현재도 소중하지만 미래는 또 다른 의미에서 소중하다. 기대와 희원이 담겨있으며, 열린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었던 바로 그 내일이다.
내일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열심히 준비하는 미래이다.
장밋빛 미래가 될지, 잿빛 미래가 될지는 오늘 어떻게 살고 지금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크게 좌우된다.
물론 지금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결국 미래에 이루지 못하는 일도 있겠지만,
아예 노력하지도 않고 얻으려고 하거나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가 미완의 형태로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
https://blog.naver.com/pljh01/220787576630
[시간관리법 -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56년의 기록, 류비셰프의 시간관리 1]
[자투리시간 활용법, 효율적 시간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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