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동시 먹는 달팽이』 가을호(15호) 원고 환경동시와 시인의 시선 -안학수
지구가 많이 아프다
-안학수
베어지고 불에 타고
숲들이 사라지는 건 폐암이다
막히고 돋아지고
갯벌이 마른땅 된 건 간암이다
갇히거나 말라가고
강이 흐르지 못하면 위암이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무너지는 건 뇌종양이다
하늘도 땅도 점점 뜨거워져 간다.
개발과 매연, 쓰레기에 시달리다
지구의 병이 깊어져가는 거다.
욕심 많은 사람이 그 병균이라 한다.
지구에겐 병원도 의료보험도 없다.
<동시 먹는 달팽이> (2021년 가을호)
잃어버린 바다 /안학수
보령은 바닷가다. 나는 열 살부터 그 바닷가에서 자랐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산송장이었던 나를 다시 살려내고 길러낸 사실적인 고향 바닷가다. 나는 평범하지 못한 외모로 인해 좋은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4학년 말쯤 섬 분교에서 전학 온 아이도 급우들의 텃세로 왕따였다. 그 아이의 등하굣길이 나와 같은 방향어서 나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섬 아이와 놀다보니 더러운 진흙수렁인줄만 알았던 진흙갯벌이 신나는 놀이터인 걸 알게 되었다. 여름방학 내내 갯벌에서 짱뚱어와 꼬마 게들을 쫓으며 낙지와 고둥, 조개 등 보물찾기를 하며 놀았다. 광활한 갯벌에 새카맣게 덮였던 꼬마 게들은, 우리가 다가가면 구멍으로 피하는 모습이, 바람에 밀리는 물결 같았다. 개흙을 뭉쳐서 포환던지기를 하다보면, 던진 진흙에 맞아 잡힐 때도 있을 만큼 꼬마 게들이 많았다. 낙지 조개 고둥 등 보물찾기도 좋았고, 온 몸에 바른 진흙이 하얗게 말라붙으면 진흙미끄럼을 타며, 골 깊은 뱃길 물속으로 빠져드는 재미가 최고였다. 보령 바닷가는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이 자란 곳이다.
임금님께 진상할 정도로 가장 맛좋은 김이 생산되던 보령 바닷가, 사리 간조 때 독살 안에 갇힌 물고기들이 수레로 가득할 만큼 풍족했던 바닷가, 그 밤의 썰물에 횃불 들고 나가면, 낙지, 해삼, 성게, 민꽃게, 고둥, 조개, 등 동이에 충분히 담을 수 있던 바닷가, 심거나 가꾸지 않아도, 기르거나 먹이는 비용 없어도 풍족했던 바닷가다.
지금은 큰 화력발전소와 그 관계 시설물들이 절반쯤 차지한 보령바닷가, 나머지 절반도 제방에 막혀 농경지나 마른 땅이 되었다. 항구 확장과 해수욕장의 인조물을 설치 등에 의해 바닷가 고유의 아름다움은 대부분 지워져버렸다. 발전소의 연료를 실은 큰 배들이 나드는데 장애 된다고, 아름다운 삼형제 무인도를 모두 폭파해 없애버렸다. 동화의 무대처럼 아름다운 모래갯벌을 품은 아담한 분교가 발전소 확장에 희생되었다. 증설을 멈추고 남은 거라도 보존하자는 외침은 지금까지 모기소리만큼도 듣는 귀가 없다.
온 가족이 함께 모래찜을 하며 해물 칼국수를 끓여먹던 옛날 바닷가 모래펄이 그립니다. 그 아름다운 바다는 영영 찾을 수 없고 지금의 바다는 매우 낯설기만 하다.
안학수
《대전일보》 신춘문예 등단. 동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낙지네 개흙 잔치』,『부슬비 내리던 장날』,『아주 특별한 손님』, 『안학수 동시 선집』과 장편소설 『하늘까지 75센티미터』펴냄. 대일문학상 수상. 권정생창작기금 수혜. 서울문화재단 단행본지원금 수혜.
<동시 먹는 달팽이> (2021년 가을호 특집1 환경 동시와 시선의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