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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 《나를 채우는 인문학》
지난달에 이 책의 저자 최진기의 《전쟁사》1,2권을 읽으며 나름대로 유익했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저자의 다른 저서를 찾던 중에 눈에 띤 책이 이 책이다. 책은 사랑·마음·여행·직장·미술·교육·음식·인물·독서 등 10가지 주제를 담고 있는 「인생 책」이라고 책을 펴낸 출판사는 광고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주제를 ‘상처’라고 하는데, 흔히 말하는 마음의 상처를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상처 입는 일이 흔한데 그 상처에는 직장에서의 상처, 사랑의 상처, 심지어 위염을 앓는 일도 상처일 수 있다고 하였다. 제1장은 직장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제2장은 상처 받는 주체인 마음이란 무엇인지? 또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어떤 ‘위안’이 필요한지. 제3장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예술의 영역 미술에 대해, 제5장은 삶에서 위안이 될 수 있는 음식과 여행에 대해서다.
만약에,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면 힘차게 나아가되,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제8장과 제9장에서는 미래의 희망인 교육과 역사에서 귀감을 찾고, 희망을 준 인물도 살폈다고 한다.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학생과 대중을 상대로 얕은 지식을 팔아먹은 장사치라는 비난과 상처에도 스스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에 담긴 것들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책은 유튜브보다 소중하다”고 했다. 이것은 소통의 주류 매체인 유튜브가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는 매체기도 하다고 본 것 같다.
직장인이면 누구나 바라는 직장에서의 성공과 보람의 조건은 무엇일까? 말콤 글래드 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공은 대개 보통사람이 30초 만에 포기하는 것을 22분간 붙잡고 늘어지는 끈기와 지구력, 그리고 의지의 산물이며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하루 3시간씩 10,000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를 마스터하게 되고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다. 단지, 그 시간동안 엄청난 집중력을 바탕으로 반복했을 때라야 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통찰이 생겨난다는 것이 핵심이다.”새겨볼만한 말이다 싶다.
*아웃라이어(Outlier)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혹은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를 말한다. 저널리스트인 말콤 글래드 웰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추상적 것에 매달려 있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찾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져보면서 우선 ‘남성은 한번 만난 여성과도 섹스를 하려 들고 여성은 왜 그렇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그것이 인간의 본능인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성의 경우 정자를 퍼뜨리기만 하면 되지만, 여성은 출산과 양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책임질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함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진화심리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연세대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이란 책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낀다.’고 했는데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진화론에 의하면 사람은 동물과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이며 동물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잘 먹고 안전하게 지내면 행복이라는 보너스가 주어진다.’고 한 것인데 ‘안전과 행복이라는 보너스를 받지 못한 유인원은 굳이 잘 먹고, 안전해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종한 것’이라고 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인간은 진화과정에 ‘행복’이라는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성과 서로 사랑하면 행복감을 느끼고, 행복감이 강한 종족이 이성과 사랑을 더 많이 추구하게 되고, 그 종족이 더 많이 번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들이 오늘날의 현생인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사랑했는데도 불행하다면 그 종족은 아마도 멸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 교수는 불행히도 인류는 이것을 모르고 살아왔고, 오늘날도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이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이 이론을 모르고 지낸 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믿었다. 하지만 1859년 찰스다윈이 진화론을 밝히면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는 ‘창조론’은 깨어지고 말았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원숭이가 진화한 것으로, 인간의 삶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살기위해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행복은 별거 아닌 것, 특별히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마음속의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종의 쾌락, 맛있는 것을 먹고 섹스를 즐기는 감정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행복이란 놈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금방 사라진다. 행복이 오래 지속되면 그 종족은 멸망하고 마는데 한 예로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한 번의 사냥으로 얻은 많은 음식을 먹고 끝없이 행복하고,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면 그 원숭이들은 다시는 사냥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영원해서도 최고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행복은 잠깐 느낀 후 더 큰 행복을 찾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별것 아니지만 얻기가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행복이란 기본적으로 감정이고, 쾌락이지만 ‘미래를 위해 맹목적으로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바보짓일 수밖에 없다.’현재를 즐겨야 한다. 또한 인간은 철저히 동물이기에 최소한 자신을 지키는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전을 보장하는 데는 힘으로 될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힘보다는 돈으로 가능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힘 쓰고 싸우고 천민자본주의까지 발흥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말은 쉽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너무 어려운 이야기다. 우리가 늘 이론만 앞서고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노?’하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살고 있는데 왜 나이가 들면 같은 시간이라도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뭔가에 쫓기듯 조급한 마음에서, 나이 든다는 의식과 불안 때문에 오는 것일까? 하지만 뇌과학자들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의 뇌는 모든 기억을 평등하게 저장하지 않는다. 첫 경험이나 강렬한 인상을 받은 일이나 충격적인 일은 오랫동안 생생하게 남는 반면에 반복적인 일상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난생처음 불안과 떨림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흥미진진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기억 속에 아주 자세히 기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경험들은 자동적인 일상으로 대치되고 하루 또는 일주일치 알맹이 없는 일상들이 이전의 모든 기억 속에 섞이게 된다. 그래서 더는 기억이 선명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마리 기요’(1854.∼1888)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것을 ‘심리학적 시간’이라고 하면서 이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요인들을 지적했다.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우리의 느낌과 생각의 강도, 이 두 가지가 교체되는 속도, 느낌과 생각의 횟수, 우리가 거기에 쏟는 관심, 기억 속에서 그것들을 저장하는데 드는 노력, 그것들이 불러내는 감정과 현상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점점 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나의 속도로 흘러가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기회 있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로 시간을 채워야 한다. 새로운 조각들을 모아서 내 인생의 캔버스를 다채롭게 물들인다면 언제 어디서든 소중한 순간들을 뒤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백 권의 책이 담긴 한 권의 책 시리즈’라고 했다. 이 말은 이 책에 백 권의 책을 요약해 담았다는 이야기로 모두 547페이지인 책을 189페이지까지 읽자 이미 30권을 읽었다는 기분이 드는 그런 마음이다. 그 중 ‘한국의 아름다움에 새로이 눈을 뜨는 법’이라고 한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이란 책은 “조선미술의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주옥같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싶으십니까? 김홍도의 〈씨름도〉에 숨겨놓은 미스터리를 찾아가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조선미술은 참 아름답습니다.”고 했다. 하지만,
“오주석님은 지병으로 49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나올 책이 없다는 것이 속상하고 속상할 뿐입니다. 우리 문화재와 그림을 너무 사랑하셔서 가끔은 문화상대주의를 넘어 자문화 중심주의의 시각을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까지도 멋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책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읽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난해한 주역사상이 깔려있는데다 현대미술에 끼친 친일의 그림자 때문이라고 했다. 동양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주역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게 느낄 것이고, 친일파의 행각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아’읽기 거북할 것이라고 했다. 언제 제대로 친일청산을 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시기를 이제는 정녕 놓친 것일까? 라고 묻기도 한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명화는 왜 유명할까?』하는 명제에 답하는 책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17세기의 거장 에그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 프랑스 모드니즘 창시자 로드 모네의〈수련〉등, 세계미술사를 대표하는 작품과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피카소까지 폭넓게 다루면서 다양한 질문들로 채워져 있다. 피카소의 미술세계와 여성편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켈란젤로의 여성상은 왜 항상 옷을 입고 있을까? 등
미술교육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 아멜리아 아레나스는 그리스·로마시대 이상이던 미를 그리스도교식으로 번안한 〈비너스의 탄생〉에서 사랑과 절대미의 이미지를 읽고,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서는 아담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상처받기 쉬운 육체를 통해 비극적 운명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서 그렇게 고전주의적 이상을 재현한 미켈란젤로 예술의 비범함까지를 밝혀내고 있다. 너무 유명해서 무심코 지나쳐버린 우리 주변의 명화를 다시 새롭고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기회와 명화의 세계로 입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 (9.8 오전에 이 책과 함께 어린이 소설 《돈키호테》를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주문했다. 내가 읽겠다기보다 손자 지원이, 태원이에게 주기 위해)
우리사회가 청산해야 할 병폐 중의 하나가 ‘왕따’라고 생각한 것은 오래전 일로 그것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로, 큰 틀에서 보면 있다/없다로 구분하는 구별 짓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졸업장 있니/없니? 직장 있니/없니? 애인 있니/없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구별 짓기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이들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무엇일까? 집? 애인? 직장? 자동차? 못된 친구?..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지만 이것들은 단순히 자본에 의해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문화에 의해 규정되는 문제이다. 예로 한국의 부자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해 주려고 할까? 그들은 자식을 외국인학교에 진학시키거나 외국 유명대학에 보내는 코스를 선택하거나, 그도 아니면 외고에 진학시키려 대치동 사교육장으로 보내 무장시켜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려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느끼지 못하는 어떤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의식과 행동을 내면화하기 바라는 그것, 말로는 뭐라 할 수 없지만 무엇인가가 있다. 상류층과 하류층은 똑같은 옷, 똑같은 차를 타고 다녀도 뭔가 다른 무엇, 부모들은 자식들이 무의식적으로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내면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회화는 기본, 악기 하나쯤 다룰 수가 있으며, 사회 이슈에 대해 어느 정도 토론도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독서도, 공부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또 사회적 약자도 배려할 줄 알고, 예의범절을 갖춘 아이가 되길 원하는 그 무엇 말이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들의 또 다른 바람이기도 한 재테크 방법론으로 무장한 아들보다 더 귀여울 것으로 그것은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그냥 단순히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아들보다 사회에서 더 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모 스스로 사회에서 무수히 그걸 겪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구별 짓기》라는 책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부르디외는 여러 사회계급들 간의 구별 짓기가 어떻게 벌어지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은 단순한 자본주의로 인한 폐해가 아니라 생활양식을 중심으로 한 포스트 모드니즘 시대에 도래한 또 다른 어떤 양상이라고 하였다.
전래적 병폐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도인은 이것을 ‘바르나’라고 부르고 그것은 ‘색깔’이라는 뜻이다. 인도에는 원래 거주민 드라비다 인이 있었지만 유럽계열의 아리안 족이 쳐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지배층은 아리안 족이, 피지배층은 드라비다 인이 된 것이다. 아리안 족은 하얀 피부, 드라비다 인은 검은 피부로 대별되어 수천 년을 이어 온 것이 카스트제도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나날이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우리에게도 ‘구별 짓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해야 맞을지 모른다. 주변의 누군가가 상처받으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 염려스러울 뿐이다.
앞서 본 《명화는 왜 유명할까?》라는 책에 인상파 화가에 대한 평가가 와 닿는다. “오늘날 대중들에게 인상파의 그림만큼 사랑을 받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인상파 화가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이가 바로 ‘클로드 모네’다. 이전까지 풍경화는 일정한 지점에서 바라본 것처럼 모든 것이 반듯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운전을 하다가 좋은 경치를 발견하고는 차를 멈추고 촬영한 풍경과 비슷했다. 특히 리얼리즘 중에서도 19세기 미술을 지배한 아카데미 파 화가들의 회화는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각을 모방하려고 애썼다. 그에 비해 인상파 화가들은 산책을 하면서 혹은 두리번거리다가 마음속에 그려지는 단편적이면서도 두서없는 감각, 즉 순간적으로 마음에 떠오른 이미지를 붙잡으려고 했다. 인상파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멍하니 있거나 편하게 쉬고 있을 때 우리는 주위의 세계를 그런 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 다음의 그림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1905년부터 1908년 사이에 그린 ‘수련(연작)’그림으로 201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762,500 (459억 1000만 원)에 팔린 것이다.
《명화는 왜 유명할까?》에는 모네 외에 레오나르도 다비치, 미켈란젤로, 고대 알타미라 동굴벽화, 뭉크의 절규,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에 대해서도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너무도 잘 알려진 고흐에 대해 보자. 고흐는 한때 탄광촌을 전전하기도, 임신 중인 창녀와 함께 살기도 했지만, 가난하고 궁핍하여 직업으로서 예술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실패와 좌절을 안겨주었다. 다행히 동생 테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적으나마 생활비를 조달해 준 덕분에 10여 년간 그림에 매달릴 수 있었다.
1888년 12월 정신착란을 일으켜 한쪽 귀를 잘라내 요양소로 옮겨졌고 진료를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나, 1890년 7월 27일 권총 자살을 기도했고 이틀 후에 죽었다. 정확히 총을 겨누지 못한 모양이다. 고흐의 그림은 생전에 단 두 점이 팔렸고 그가 죽자 그의 작품은 한 점에 30센트 정도로 화방에 넘겨졌다. 그의 정신병을 치료해 주던 「가세박사의 초상화」가 몇 년 전 일본인 수집가에게 1,300억 원에 팔린 것과 너무 대조 된다.
고흐가 그린 모든 정물화는 보는 관점에 따라 초상화가 되듯이 풍경화에서도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아를르 시절(정신착란을 일으키던 직전에 살던 곳) 그린 그림에서는 선명한 색채가 마치 육체에 갇힌 영혼처럼 몸부림치고, 생 레미에서도 올리브 고목의 뿌리가 땅속에서 몸을 비틀고 가지는 앞뒤 생각 없이 태양을 향해 뻗어 있기도 하다. 오베르에서그린 그림은 기운 센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을 물결치면서 흘러간다. 세 살쯤 된 아이처럼 자기중심적 솔직함과 고대 로마 시인처럼 강한 자애심의 소유자였던 고흐에게는 태양이 빛나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는 것도 모두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었다.
※ 아래 그림은 1,300억 원에 팔린 고흐의 「가세박사 초상화」 이다.
이 책 첫 장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냥 지나쳐서는 도저히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모나리자에 대한 설명을 본다. “미소를 머금은 모나리자는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에 대해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상대는 누구일까? 그림을 의뢰한 늙은 남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였을까. 아니면 모나리자를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었다는 권력자 줄리아노 데 메디치였을까? 깊이 파고 들어가면 대답은 하나, 레오나르도에게로 다다른다. 모나리자는 자신을 응시하는 레오나르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의 예리한 시선은 화가의 본심을 꿰뚫고 있다.”
“신체의 윤곽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모나리자는 그늘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폭신한 팔걸이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주 편안한 자세임에도 목덜미만은 서 있는 사람처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정취가 담긴 정원이 그림의 배경이라고 짐작하겠지만, 전혀 다른 풍경이 전개된다. 험준한 바위산이 다소나마 부드럽게 보이는 것은 짙게 드리워진 안개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계절과 시각을 헤아릴 단서는 찾을 수 없고, 마치 늑대나 박쥐의 소굴로 딱 알맞아 보인다. 이런 환영과 같은 경치와 모나리자는 자연스런 조화를 이룬다. 모나리자의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는 어깨에 걸친 숄의 주름에서 나온 것 같으며, 왼쪽 고불거리는 작은 길의 불그스름한 빛은 모나리자 소매의 구릿빛이 메아리친 것 같다. 다리와 그 밑을 통과하는 길에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지만 시선을 위로 올릴수록 원시 자연의 낯선 풍광이 이어진다. 이어서 얼굴 주위의 근접하기 어려워 보이는 얼어붙은 대지가 따뜻하면서도 친밀한 모나리자의 시선과 어우러져 복잡한 인상을 만든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화면 속에 모든 것이 세심한 배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와 풍경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위해 배경의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흐릿하게 처리했다. 자세히 보면 모나리자에게는 외부의 빛이 전혀 닿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실을 감싸는 황금빛 그늘은 촛불의 어른거림을 연상시키는데 그래서인지 모나리자는 열린 창이 아니라 그림 앞에 앉아 있는 듯하다.
모나리자의 위대함에 관해서 논하다 보면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든다. 모나리자가 위대하게 된 것은 훌륭한 예술성 덕분만은 아니다. 레오나르도가 의도하고 학자들이 상상한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걸작이란 보는 사람이 작가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모나리자 1503∼1504년(추정) 판넬 유채 77×53㎝, 루브르미술관〉
며칠 동안 외유를 하고 돌아온 느낌이다. 다시 《나를 채우는 인문학》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은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어떡하면 살아날 수 있을까보다는 ‘네가 왜 날 쏘았지?’라고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태도인데도 니가 왜? 하고 묻는 것은, 몰라도 되는 진실을 알려고 하는 태도이며 진실마저도 궁금해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일상을 돌아보면 나일론 다음으로 옷감 재질로 많이 사용하는 것이 면화다. 면화는 지구 재배면적의 4% 내외를 차지하지만, 농약사용은 25%이상 소모한다. 병충해에 취약해서 많은 농약을 필요로 하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또 면화는 재배과정에 물을 엄청 많이 필요로 한다. 물 분쟁의 요인이 되는 대표적인 작물이기도 하다. 대안으로 나일론 혁명으로 이뤄낸 인공섬유가 옷감의 60∼70%를 차지하지만, 이건 기본적으로 석유화학제품이라 반환경적일 수밖에 없다. 또 이 옷들은 세탁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을 만들어내어 해양오염의 주범이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어떤 재질의 옷을 입어야할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입을 수 있는 옷감은 양모와 비단 정도다. 하지만 비싸서 망설여지는 옷감이다. 거기다 비단옷은 내구성이 약해서 오래 입을 수가 없고 또한 비단옷을 만들려면 살아있는 번데기를 쪄서 실을 뽑아야 하고, 고치 안의 누에들이 뜨거움 속에 고통 받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역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또한 양털을 얻기 위해서는 양을 키우는 과정에 양의 엉덩이 주변에 파리 떼가 붙어 양이 죽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엉덩이 살을 잘라내는 몰싱(mulesing)이라는 작업을 하는데, 그것을 보면 양털로 만든 옷을 입고 싶은 마음도 싹 가신다.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에 대해 고통을 행하는 것은 범죄다.’아마도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낙지마저 고통을 느끼기에 칼로 탕탕이를 만들어 먹는 것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얼마 전 뜨거운 냄비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낙지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 ‘낙지 탕탕이 금지법’이 만들어질지 모를 일이다.
나도 좋아하는 술에 대해서 보자. 포도는 당도가 높아서 유일하게 과일 중에서 자연 상태로 발효되지만 다른 과일은 설탕을 넣어서 발효시킨다.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되고, 포도주를 증류하면 코냑, 막걸리를 증류하면 소주, 사탕수수로 만든 주정을 증류하면 럼, 용설란의 주정을 증류하면 데킬라가 되는데, 술은 발효주와 증류주뿐이다. 그러면 안동소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말젖을 발효시켜 마유주를 먹던 몽골인들이 아랍을 침공하여 거기서 증류주 만드는 것을 보고 말젖으로 만든 마유주를 증류시켜 만든 술이 소주다. 그 몽골이 고려로 쳐들어와 공민왕이 안동으로 도망가고, 몽골은 일본을 원정하기 위해 전진기지를 안동에다 만들면서 안동소주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다음은 커피다. 커피는 차나 술보다 역사가 길지 않다. 하지만 커피는 세계사의 중요한 대목마다 등장하여 자유를 위한 투쟁에 영감을 준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커피는 6세기경 처음 알려져, 9세기 아랍권의 기록에 등장하는데 시원지는 예멘으로 알려져 있으나 에티오피아 또한 시원지를 자처하면서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해 예멘에서 최초로 재배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유럽은 1615년 이스탄불을 오가던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소개되었는데 처음에는 ‘아라비아 와인’이라는 뜻의 ‘카와’라고 불렸다.
17세기 들어 소금, 향신료, 설탕, 담배 등을 대체할 상품이 되면서 노예들을 양산하는 노예참혹사의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는데, 막대한 양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하여 강대국들은 식민지에서 인력을 충당했던 것이다. 구한말 우리나라에 전래된 커피는 외교활동에 활용되기도 했다. 아무튼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나라마다 낡은 구습을 타파하도록 용기를 주었으며 부당한 압력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도록 시대적 각성을 돕는 중요한 촉매제 역할까지 했던 것이 커피다.
맥주는 발효방식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뉘는데 에일, 라거, 람빅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맥주는 저장 공정에 숙성시킨 라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세계15위,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17병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양이다. 이탈리아 국민이 맥주를 사랑하는 광고가 흥미롭다. ‘맥주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어울린다. 무더운 여름은 물론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과하지 않게 마신다면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음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음에는 교육에 대해서다. 어쩌면 초딩인 손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첫째, 공부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BS 제작팀이 만든 『학교란 무엇인가?』에 그 해답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 공부를 하는 이유여야 한다.”고 했는데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면 공부에 성공할 수 없고, 자기 회사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사업에 성공할 수 없고, 여자 친구가 자기한테 실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연애에 성공할 수 없다’는 말과도 연결된다. 다시 말해 ‘자기의 부족함을 모르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둘째, 부모의 어떤 행동이 자녀의 공부실력을 떨어뜨릴까? 하고 묻는데 그것은 칭찬만이 능사가 아니다. 꾸중할 자리에서 칭찬하거나 타이르는 것은 버릇없는 아이로 만드는 지름길임을 강조한다. 잘못된 칭찬은 부정적 효과를 가져 오고 오히려 자신감을 없애고 도전을 방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칭찬은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칭찬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의 시험결과에 대해 ‘시험 잘 봤네.’하면서 칭찬하고 기뻐하는 부모가 아니라 열심히 노력했구나 하고 격려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어릴 때에 천재로 불린 아이가 어른이 되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부모가 어떻게 해야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가? 묻는다.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앞에서 본대로 자기가 모르거나 부족한 것을 알아야하고 선행학습은 시키지 말라고 한다. 선행학습은 공부에 흥미를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복습만은 꾸준히 하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복습에는 독서도 포함되는 것으로 공부의 기초는 결국 독서량이 말한다고 했다. 여기서 독서란 아동이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 주는 것,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의 반응을 끌어내고 아이의 반응을 살피면서 질문을 유도해 내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은 사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묻고, 사교육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되 만약에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은이도 겁낸다는 대한민국 중3정도 되면 아이들이 부모보다 학원에 대한 장단점을 더 잘 안다며 아이를 믿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교육에 대해 다음 아홉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1. 남들이 좋다는 학원에 현혹되지 마라
2. 아이와 함께 의논하라
3. 학원 다니는 기간과 목적을 미리 정하라
4. 강사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가져라
5. 학원과 학교 숙제는 꼼꼼히 챙겨라
6. 학원을 보상이나 벌로 이용하지 마라
7. 아이가 좋다는 말을 다 믿지 마라
8.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지나치게 힘들어하면 과감하게 끊어라
9. 학원 레벨 테스트 결과에 연연하지 마라
전 세계인의 관심꺼리기도 한 교육을 위해 『최고의 교육』이란 책은 로베르타 골린코프과 캐시 허시파섹, 두 발달 심리학자이자 교육과학연구자가 저술한 것으로 “현대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루틴화(단순화,무인화)된 일자리를 점점 더 많이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로봇들도 깊이 사고하기 시작했다.”고 경고하며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적응하고 나아가 그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기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묻고, 다가오는 미래에는 협력·의사소통·콘텐츠·비판적 사고·창의적 혁신·자신감 등 여섯 가지 역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인간은 철저한 사회적 존재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 과제가 되고 있고, 협력은 능력일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기본적 소양이고 ‘협력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것이 의사소통이고 의사소통이 삶에서 부재하는 순간은 한시도 없다고 하였다. 또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거두는 성과가 콘텐츠라고 했고 그리고 우리 주위의 모든 사건과 정보의 결과가 콘텐츠며 새로운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콘텐츠를 재빨리 그리고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마스터해야 한다.’고 했다. 콘텐츠 선별을 위해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고 ‘창의적 혁신은 콘텐츠와 비판적 사고가 더해졌을 때 탄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채우는 인문학》 이 책은 백 권의 책을 담았다고 했지만 실제로 나는 한권밖에 읽지 않았다. 새로운 것들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전에 《전쟁사》를 읽으며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카탈로나의 찬가』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서는 앞서도 언급한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 『명화는 왜 유명할까』, 『미쳐야 미친다』, 구광열의 소설 『반구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등을 덤으로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읽어 볼 생각을 갖게 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힘들어하고 있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거도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당국이 정한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도, 그들의 고마움에 대해 ‘덕분에’라는 생각만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올해는 어느 해 보다 건강에 관심이 가는 해다. 다들 건강하길 기원한다. - 20200921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