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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길 위에서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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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스크랩 배 풀고 베풀며 살자
홍성태 추천 0 조회 39 14.02.25 09: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배 풀고 베풀며 살자

 

 

우리 부부는 월요일 저녁마다 산약초 공부를 하고 있다. 월요일 저녁 7시~9시에 10여 명이 모인다. 한 가정 당 한 달에 3만원의 수강료를 낸다. 시골 목회를 하다 보니 성도들 가운데 대부분이 환자이다. 특히, 시골인지라 허리, 무릎, 다리, 어깨 등이 아파 고통을 호소하는 성도들이 많다. 농사일이 고되어 뼈가 많이 상해서 골다공증, 관절염으로 밤에는 잠을 못 이루는 분들이 많다. 그저 보고만 있자니 답답하던 차에 2013년 봄부터 이웃 교회 목사님의 안내로 산약초 전문가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 강사의 좌우명은 <배 풀고 베풀며 살자>이다. 강의 중간에 ‘배 풂’과 ‘베풂’의 삶에 대한 예화를 많이 한다. ‘배 풂’이란 배를 잘 풀어서 변을 잘 싸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강하게 주장한다. 그는 대부분의 병이 변비로부터 온다고 강조한다.

 

배를 잘 풀어서 변이 대장에 쌓여있지 않게 해야 건강할 수 있단다. 학생 중에 허리가 아픈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 시범적으로 배 푸는 방법을 보여주고 가르쳐준다. 허리병도 변비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배를 풀고 나면 아프던 허리통증이 말끔히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그는 좋은 먹거리를 가르쳐주고 자기도 실천한다. 그는 우리가 사는 자연에 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약을 마련해주셨다고 말한다. 어느 해에 어떤 풀이 번성하면 그 해에는 그것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이 만연하곤 한단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온 들과 산을 다니며 백성들을 치료할 풀을 채취하고 손수 밭에다 재배하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도 시간이 날 때마다 산과 들을 다니며 약초들을 샅샅이 조사하고 채취한다. 필요한 약초를 발견하면 갈무리해 두었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준다. 그것이 그의 ‘베풂’의 삶이다. 그는 약초에 관한 정보를 모두 무료로 제공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청년 시절까지는 교회에 다녔다는데 무슨 연유인지 자세히 밝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 태인시찰연합제직회 연말 세미나에서 박문희 권사를 초빙하여 간증을 들었다. 그녀는 김익두 목사님의 손자며느리로서 탈북자이다. 남한 교회에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예배드리는 것이 소원이어서 탈북을 했다고 간증했다. 탈북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들으며 듣는 이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남한에 와서 가는 곳마다 온 천지에 버려진 물건들과 음식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더러운 물이나마 개인용으로 떠다 먹을 그릇이 없어 더러운 깡통에 담긴 물을 떠먹곤 했는데 남한에서는 새 물병이 한 번 쓰고 쓰레기통에 엄청 쌓여 있어 “저런, 아까운 걸 저렇게 버리다니”라며 안타까워한다고 말했다.

 

요즘 남한에서는 버리는 음식물이 엄청나다. 우리 교회만 해도 주일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남은 음식쓰레기가 한 수대 나온다. 물론 누군가가 집에서 기르는 짐승의 먹이로 가져간다. 사택에는 종종 성도들이 여러 가지 음식을 가져온다. 대부분 다 먹을 수 없다. 때로는 이웃집에 나눠주기도 하지만 많은 음식을 제때 다 먹지 못해서 상하여 버리는 것이 많다. 그때마다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김제에 사는 친척이 몇 년 전에 만났을 때 말했다. 어느 핸가 동짓날에 목사님 사택을 갔는데 벌건 동지팥죽이 개밥그릇에 있더라는 것이었다. 마침 그 해에 동지팥죽을 못 끓였는지라 그것을 보고 마음이 불쾌했다는 것이다. 속으로, 없어서 못 먹는 사람도 있는데 먹기 싫으면 남에게 좀 나눠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치 나의 흉허물인양 가슴이 철렁했다. 목회자의 삶은 사적인 삶이 아니구나, 모든 이들의 눈이 목회자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니 조심해야겠는 걸.

 

며칠 전에 수천 마을의 한 성도가 전화를 해서 김장하고 남은 배추가 많은데 아주 맛있어서 쌈 싸먹어도 좋고, 겉절이해서 먹어도 좋다고 한 자루를 줄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사실, 다른 반찬도 많아서 냉장고가 가득 차있는 상태라서 가져오면 또 방이 비좁아지겠구나, 하면서도 거절할 수가 없어 즉시 차를 타고 갔다.

 

손이 큰 그 성도는 매우 많은 생 배추를 자루에 담아 차에 실어 주었다. 그나마 비좁은 방에 그 자루를 놓으니 발 디딜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저걸 어쩌나, 하고 있는데 그날 오후에 전주에 사는 형님 부부가 놀러 왔다. 돌아갈 때 형님에게 배추 한 포대와 무 한 포대를 주었더니 한동안 반찬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면서 매우 좋아했다.

 

무 한 포대는 왜 주었는고 하면, 방에 무가 세 포대나 있다. 월요일 저녁에 함께 산약초 공부를 하러 가는 목사님 한 분이 있다. 그는 홀로 남으로서 도시에 살다가 늙고 병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시골에 내려와 있는 사람이다. 그가 당분간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함께 약초공부를 하러 다닌다. 그는 임시로 공장에 나가 일을 하는데 월요일에 퇴근해서 집에 가서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저녁을 굶고 공부를 하러 가곤 했다. 이를 눈치 챈 우리가 어차피 차린 식탁에 수저젓가락만 한 벌 더 놓으면 되니까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였다.

 

어느 날 그는 “대추 있어요?”라고 물었다. “우리 집에 대추 많은데요.” 다른 날 또 물었다. “팥 있어요?” “우리가 팥 농사지었잖아요.” 또 다른 날 “무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제야 나는 눈치를 채고서 아, 이 분이 뭔가를 주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했다. “무 많으면 좀 주세요”라고 내가 말했다. 다음 날 무 세 포대를 가져다 놓고 갔다.

 

이웃 교회 이 목사님은 음식 안 남기기로 유명한 분이다. 그는 자기 교회 주일날 점심시간에 모든 성도들에게 음식 남기지 않도록 감시를 철저히 한다. 그는 심지어 성도들이 가져온 음식을 안 버리기 위해서 상해도 다 먹는다고 사모가 말했다. 어느 해에 그 교회에서 도시의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를 했다. 이 목사님은 이 기회에 도시 청소년들의 식습관을 바르게 지도해야겠다고 별렀다.

 

3박 4일 동안 매 끼마다 그는 청소년들의 식판 검사를 자청하여 음식 한 톨도 안 남기고 다 먹도록 지도를 했다. 아이들의 수련회 소감문에는 이번 수련회 동안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식판 깨끗이 비우기’였노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동안 소홀히 했던 음식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문희 권사가 탈북 하여 중국에 있다가 이웃의 고발로 붙들려 북송되어 감옥에 갇혔다. 40~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감옥에 150~200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탈북 하다가 잡혀온 자들이 하도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토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전도를 하여 예수 안의 형제자매들이 생겼다고 한다. 밥이라고는 석탄부스러기가 섞인 옥수수주먹밥을 한 덩이씩 주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누고 희생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녀는 “나에겐 나누고 싶어도 아무 것도 없는데 무얼 나누라 하실까”라고 의아해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자기 손에 들린 한 덩어리의 옥수수주먹밥이 눈에 보였다. 자기는 몸이 작아 조금 덜 먹어도 목숨을 유지하는데 덩치가 크고 젊은 자들에게는 그것이 한 입 거리도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절반은 자기가 먹고 절반을 음식이 더 필요할 것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주었다고 한다.

 

베풂의 삶은 아름답다. 그러나 베풂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현대를 사는 우리네 삶이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이 사는 삶인 것은 사실이다.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언제 뒤를, 옆을 돌아볼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철저한 개인주의가 몸에 배어 있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남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이 드물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의 일에 간섭하려 하지 않고 남에게 간섭을 받고자 하지도 않는다. 편하긴 하지만 베풂도 희귀해지고 말았다. 요즘엔 시골에서도 담 넘어 음식을 담은 그릇이 오고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또한 모두 배부른 시절이라 담 넘어 온 음식이 그리 귀하지도 않다. 당장은 배가 불러 안 먹고 하루 이틀 지나면 곰팡이가 나서 버려야 한다.

 

이제는 육신의 음식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나누어야 할 때이다. 현대인들은 육은 배부르지만 영은 기갈로 몸부림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육의 삶이 풍족하면 할수록 영의 삶은 황폐하여 절망과 고뇌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많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사 55:1-3)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확실한 베풂은 하나님의 구원으로의 초청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베푸시는 영생으로의 초대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심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베풂이다.

 

필 자 / 산성교회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창골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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