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Ⅱ-70]전각예술인 정병례의 ‘새김아트’ 작품
수 년 전 국보급 전각예술인 진공재(호 공재, 본명 영근) 거사를 친구로 사귀어, 그의 작품을 수시로 감상하면서 ‘전각篆刻’이 무엇인지 조금 눈을 뜨게 됐다. 흔히 돌이나 상아象牙 또는 뿔 등에 글자를 쓴 후 깎아 도장 만드는 것을 전각이라 하지만(암각화 포함), 그 재료들에 장인匠人의 마음을 글이나 그림 등으로 새겨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전각예술’이라 할 것이다. 최근 그런 전각예술인 중의 한 분인 고암古岩 정병례(1948-2022)의 시와 에세이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라딘중고서점에서 검색을 하니, 서울 롯데월드점에 한 권 있었다. 『마음새김-고암 정병례의 전각과 시와 에세이』(2009년 중앙북스 발행, 207쪽)이 그것으로 짬을 내어 기어이 구해 통독을 했다. 전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면 고암을 비롯해 다른 각가의 작품세계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공재의 작품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국보급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전라고6회 동창회 | [문화야 놀자]천상천하유아독존, 전각예술인 진공재 - Daum 카페
아무튼 고암은 전남 나주 출생으로, 전통적인 전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2006년 전각의 현대화를 시도한 <새김아트>를 창시하는 등 전각예술에 대한 열정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나 2022년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그의 90여개의 작품(대부분 10×10cm 크기의 돌)을 싣고 시나 에세이 형식으로 해설한 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그의 마음을 새긴 멋진 책인데, 감상을 한 후에도 다시 떠들어보고 싶은 작품이 여러 개 있었다. 50년 동안 독학자습으로 한 길을 걸어온 외우畏友 진공재 작가가 ‘마음으로 새긴다’는 뜻으로 ‘심각心刻’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듯, 예술가들은 서로 통하는 그 무엇이 있으리라. 돌에 마음을 새긴 전각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자는 취지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칼(석도石刀)을 들기 전에 마음을 먼저 새긴 후, 칼을 들어 돌을 새기고, 그 칼을 놓고 가슴에 새기는 ‘심각’은 거룩한 단어이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는 고암과 공재가 닮음꼴이지만, 추구하는 작품세계와 그것을 소화시켜 예술롤 승화시키는 내공은 각각 다름이 있으리라.
먼저 52쪽에 실린 <생명>이라는 작품(20×10cm)을 감상해보자. ‘태어날 때와 죽을 때’라는 제목의 에세이도 작품 못지 않게 멋져 전문을 인용한다. “태어났을 때, 나희는 울음을 터뜨리고 세상은 기뻐했다./죽을 때, 세상은 울음을 터트리고 너희는 기뻐하도록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라. -인디언의 속담 중에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인생에 완벽하게 만족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조금씩은 마음에 안들고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껴안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준 생명에 대한 배려이며, 산이 부여한 삶에 대한 경건한 태도이다.”빗김체의 밑줄친 구절은 ‘삶과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되새김질할 좋은 말이지 않은가.
다음으로 144쪽의 <덤이 인생> 작품(10×10cm)을 보시라. 그림을 감상하며 그 옆쪽의 글을 읽자. “인생은 빈 그릇을 채워가는 여정이다. 그 길목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고 절망하거나 넘쳐난다고 자만할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한 채워가다 보면 비어 있어도 가득 차 있고 그 위에 덤으로 빛나는 행복이 얹어질 테니.” 이 역시 ‘은근히’ 명언이다.
세 번째 작품 <반야심경>이다. 작가는 1993년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반야심경을 새기면서 우주 삼라만상을 담은 예술이 전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반야심경 제목을 뺀 전문 260자를 10×10cm 크기의 돌에 새기려면 치밀한 장법과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터인데, 정말 감탄스럽다. 외우 공재도 ‘반야심경’을 여러 형태로 새긴 작품이 많지만, 이 작품 역시 유별나지 않은가. 작가의 공력功力 값으로도 기백만원을 부른들 아까울까 싶다. 아무튼, 반야심경의 끝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그 뜻도 마저 알고 넘어가자. “도달한 때, 도달한 때, 피안에 도달한 때,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때 깨달음이 있나니, 축복하소서”이라고 한다. 심오하다. 어리석은 중생으로선 그저 알 듯 모를 듯 고개만 끄덕일 일이다.
한 작품만 더 소개하자. 이 작품의 제목을 나는 한눈에 알아봤으니, 조금은 전각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대상무형大象無形>(10×10cm)이다.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聖 大象無形 道隱無名”해석을 어떻게 할까? “대지는 모퉁이가 없고/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며/큰 소리는 드물게 나고/큰 형상은 모양이 없으며/도道라는 것은 숨어있어(눈에 보이지 않아) 이름이 없다”무슨 의미일까? “절대적인 불변의 참된 도는 너무나 광대하여, 그 정체를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된 도’인 것이다”점점 더 모를 소리만 늘어놓는 꼴일까?
하여간, 고암 선생의 전각책 한 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솔찬히 아득하다. 어쩌면 공재와 고암의 전각 작품을 만나거든, 선뜻 주머니를 털어 서재에나 화장대 위에 놓아두고 늘 감상하며 그 뜻을 새겨도 좋을 일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