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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가는 추색(秋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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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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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가는 추색(秋色)
말간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노래하지만, 그늘진 마음의 잔재마저도 깨끗이 씻기는 듯하다. 푸른 하늘은 높아 시계(視界)도 끝없이 창공을 활공한다. 점점이 엷은 솜털 같은 흰 구름은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조각배처럼 여유롭고 한가롭기만 하다. 펼쳐진 쌍돛에는 가을바람을 가득 채워진 풍선처럼 터질 듯 날고 있다. 인세(人世)의 풍진(風塵)들을 실어 날려버렸으면 좋을 것 같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음속(音速)을 자랑하는 전투기의 훈련비행에 화들짝 놀라 바라보니 찰나 간에 사라진다. 귀청을, 찢는 굉음만이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가까이 나르는 온갖 새들은 앞으로 날고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리면서 자신의 활공을 뽐내는 모습이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남쪽 하늘에서 온 철새들은 언젠가 때 되면 귀소(歸巢)를 위한 준비의 모습일 것이다. 남을 자는 남고 가야 할 자, 갈 준비에 예외 없는 만물들이다. 파란 가을 하늘은 거대한 우산이다. 우산은 호보 막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이들에게 이롭게 복(福) 주시기 위하여 궁창(穹蒼)을 열었다. 사계(四季)를 열고 필요한 곳에 우로(雨露)를 주시며 한서(寒暑)도 잊지 않으신다. 밝음과 어두움을 주시며 일할 때 일하고 쉬 때에 쉬라고 크신 선물이다. 하늘은 영원하다, 계절 때라 색색이 변화무쌍하게 잘한 곳에는 복도 주시고 잘못된 곳에는 벌도 주시는 궁창이다. 현자(賢者)는 나이 50에 지천명(知天命) 하였다고 한다.
50년을 살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의 이치(理致)를 알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궁창은 하나님의 뜻이다. 어느 누구도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진리(眞理)이다. 누구나 이를 깨우치고 실천하고자 평생을 몸부림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곳이 없다고 노래하였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올라보았을까? 궁창의 세상에 올라 체험한 사람 되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군상들을 바라보시는 하늘이다. 말간 가을 하늘은 익어가는 계절이다. 매일 바라보는 하늘이지만 느끼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하늘이다. 으래 있는 것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것이다. 궁창이 없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다가 가는 것이 인간들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보아야 그때야 궁창의 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미물들이다. 짙어지는 추색(秋色)은 궁창이 만들어내는 걸작 품 중에 하나일 뿐이다. 중추(仲秋)도 지나 만추(晩秋)에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한 부모님의 피를 받아 자라고 성장한 형제자매들이다. 각자 자신들이 구축한 삶의 터전이 달라서 자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모인다고 몇 달 전부터 노래처럼 하였다. 하늘은 높아지고 정수리에서 거리감을 두기 시작하더니 날씨도 몹시도 힘들던 염천도 서서히 꼬리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활동하기에 좋은 날씨라는 생각도 잠깐, 초동(初冬)처럼 변하기 시작하였다. 길섶에 잡초들도 논과 밭의 들 색들도 변하기 시작하였다. 바라보는 금봉산(金鳳山)과 계명산(雞鳴山)의 산색도 변하기 시작하였다. 중추가절(仲秋佳節)에 시작한 하나님이 거하실 장막(帳幕)을 인도하심에 따라서 새로이 단장하기 시작하였다. 또 기존의 시설들 철거에 날밤을 기도와 실행으로 1개월이 꿈결처럼 자나 갔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하나님을 모시는 장막을 준비한다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11월 2일에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오전에 큰 처남을 만나 집에서 시장기를 때우고 터미널에서 막내 처제와 합류하였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이동하였다. 각 지역마다 장구한 세월 동안 지역민들이 살아온 역사적 흔적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실상을 보면서 체험하는 장소로 중앙 탑이 있는 공원으로 이동하였다.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이곳이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가 각축하던 전략적 요충지였음이 유물들을 보면서 오래고 오랜 옛날 선인들의 삶의 흔적들을 돌아보았다. 거대한 칠층탑의 위용을 바라보고 잘 조성된 공원과 아름다운 탄금 호와 오색으로 물들던 풍치는 마치 선경이 여기인지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신라 사람들은 동남쪽 궁벽한 해변에서 부족국가로 탄생하였다. 빈번한 왜구의 침략을 당하면서 명맥을 이어 오다가 웅지(雄志)를 품은 위정자들이 나타났다. 영토를 확장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모아 삼국통일에 거보(巨步)를 시작하였다. 북방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한강을 수중에 넣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충주지역을 관통하는 달천(達川)과 남한강(南漢江)을 통하여서만 이 기능하다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문경시 관음리에서 충주시 미륵리까지의 하늘재를 개통하기에 이른다. 역사상 최초로 영남에서 소백산을 넘는 도로를 개통하게 된다. 이 도로를 통하여 각종 정보를 취득하고 남한강을 어떻게 이용하여 한강에 손쉽게 도달할 수 있는지에 치밀한 계획이 수립된다. 고대 정복 국가 시대의 이동 수단은 우마와 사람뿐이었다. 누가 가장 빨리 이동하느냐에 따라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시대였다. 병사들과 전쟁 물자들은 하늘 재를 넘어 탄금대 합수지역에서부터 뗏목이나 도선으로 한강까지 순식간에 도달하여 외세를 몰아내어 통일의 대망의 꿈을 이루었다. 통일 신라는 전국에 9주 5소경을 설치하면서 이 지역에 중원소경을 설치하였다가 후일에 중원경으로 개칭하였다.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 중원 고구려 비각으로 이동하였다. 가금면 마을 입구에 큰 입석(立石)이 자리하고 있어 그 마을을 입석리라 칭하였다. 70년대에 지역의 예성 동호회라는 향토사학자들의 단체에서 이 입석이 단순한 자연석이 아니라 판단하고 사학계에 알리고 전문인들이 입석의 진면목을 밝혔다. 모형은 광개토대왕비를 닮았다 하여 중원고구려비로 명명하였다. 연대로 보면 20대 장수왕이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아버지 광개토 대왕은 중국 일대와 몽골 그리고 유럽에 이르기까지 대제국의 위업 이루었으나 그의 아들 장수왕은 남진정책으로 충주지역을 점령하고 국원성을 설치하였다. 이를 기념하고자 비석을 새웠다고 한다. 삼국이 서로 각축하였다 하였는데 제일 먼저 백제는 이곳에 미을성(未乙省)을 설치하였고 이어서 고구려는 백제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국원성(國原城)을 설치하였다. 다음에 신라는 통일 신라의 찬란한 위업을 이루고 중원경(中原京)을 설치하였다. 큰 처제와 동서가 온다고 연락이 왔다. 중앙탑공원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주변을 돌아본 후에 시간적으로 오후 5시가 되어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사전 예악 된 정가(情家)로 이동하였다. 주력 메뉴가 약돌 삼겹살이다. 조병천과 변혜숙 내외분은 문경온천지구 뒤편에 위치한 금강산 가든을 경영하시다가 충주에서 매일 출퇴근하기가 부담이 되어서 이곳에서 정가(情家)라는 상호로 개업하였다. 약돌 돼지는 문경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거정석이 사람에게 이로운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이 돌을 갈아서 분말을 돼지 사료와 섞어서 사육하였기에 약돌 돼지로 명명하고 문경시의 특산품으로 전국에 각광받고 있다. 생산량이 한정되어 생산지에서 공급해주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양만큼 가서 구입한다고 하였다. 육질이 매우 존 득하고 돼지의 특유의 냄새가 없으면 참나무 숯불에 구워 먹는 자연의 맛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특히나 변 사장님은 음식 솜씨가 뛰어나 이 지역에서는 그 명성이 자자하다고 알려졌다. 전국이 맛을 음미하는 식도락가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만남의 장소인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 소재한 정재기 사장님의 소유인 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어제 주문하였던 동해안 회가 택배로 도착되어 물건을 찾아 마즈막재를 넘으니 일몰 되어 사위는 캄캄한 암흑가였다. 충주댐 주변 도로를 지나 동량면을 거쳐서 산척면으로 이동하여 국도에 차를 올렸다. 백운면에서 애련리를 알리는 이정표를 보고 시골길을 드라이브하였다. 내비에 애련리를 찍고 가는데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라서인지 착오를 자주 일으켰다. 간신히 찾아 도착하니 벌써 먼저 온 권용웅 처남(妻男)과 정지현 동서(同壻)가 먼저 도착하였고 별장 주인이 신 정재기 사장님과 오랜만에 반갑게 해후(邂逅) 하였다. 온다는 사람 다 모였다. 가지고 온 물건들과 별장에 있는 물품들을 식탁에 올리니 백 부자가 따로 없다. 이곳이 바로 왕후 장사처럼 먹거리 천국이 되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안부도 묻고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였다. 개 같은 시국 이야기도 하면서 점점 취기기 올라 구름을 타는 기분이었다. 특히나 정재기 사장님의 배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두 번째로 왔지만 세월이 생소하게만 느끼게 되었다. 밤은 깊어지면서 손뼉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만남의 의미를 엮어갔다. 취침시간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은 여성 동무들의 헌신으로 매운탕으로 공복을 채웠다. 나이가 많아지면 자신의 시간이 많아야 하는데 요사이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상주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사람, 강태공들의 약속도 있다고 하였다. 저녁에 교회 일로 시간 맞추어 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보면 한가로운 사람은 큰 처남과 나뿐인 모양이다. 대충 정리를 하고 정원에서 기념촬영도 하였다. 큰 선물도 받았겠다. 여기서 죽치고 있어도 좋고 이동하여도 좋다. 별장이 너무 크고 좋았으며 위치기 감춰진 비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앞산은 오색 단풍으로 거실 창문 안으로 가득하고 계곡 수는 1급수에만 있는 어족들로 물 반 고기 반이란다. 2층은 명당 중에 명당이다. 해가 뜨면 방안으로 햇살이 가득하다. 양택(陽宅) 지로는 최고다. 현직에 있을 때에 강 건너 충주지역 석천리 마을에 예산 배분 관계로 온 기억이 지금 생생하다. 석별의 정을 나누고 출발하였다. 옛 정취가 가득한 박달재의 가을 담으려고 옛길로 접어들었다. 천등산 박달재 노래처럼 몇 가지의 볼거리를 구경하는 기회도 가졌다. 특히나 박달 총각과 금봉 아가씨의 애틋한 이별을 생각하면서 청풍명월(淸風明月)의 탄생지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시골 길이라 몇 번의 착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중앙고속도를 타고 남 제천에서 청풍문화재 단지로 이동하였다. 거대한 청풍호가 세파에 찌들어진 마음마저 시원하고 나, 호수를 가운데 두고 여러 종류의 위락시설들이 즐비하다. 호수 중앙에는 예나 지금이나 수중분수는 하늘이 향해 토해낸다. 단지 내에 주차를 하고 매표소로 이동하여 표를 매입하고자 하였더니 노인 어른들께서는 무료 관람이라 하여 노인들의 세(勢)를 인정하는 모양이다. 충주댐으로 호수 바닥에 있던 문화재를 이곳 언덕으로 이전하고 관광지로 가꾸고 있다. 볼거리도 많고 담을 거리도 많다. 대표로 상징되는 한벽루(寒碧樓)에 올라 옛사람들의 그림자를 생각하기도 하고 반들반들 루(樓)의 바닥은 거쳐 간 선인들이 생각 나가도 한다. 바라보는 곳마다 천국이다. 아마도 천국에 가본 사람의 증언을 듣는다면 이런 모습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호수 건너편 오색 물결은 의 겹겹이 진처 진 능선이 아름답다 아니할 수 없다. 청풍 현감의 죄지은 자들의 태형을 치면서 불호령이 떨어질 듯 착각도 들었다. 오후 1시가 지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다. 식당가로 이동하여 큰 처남이 쏘는 산나물 비빔밥으로 중식을 해결하였다. 웅이 처남은 낚시하러. 윤 교장 일행은 시간 맞추어 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작별하였다. 남은 자 나와 권 여사와 큰 처남 그리고 예쁜 영선이 처제와 함께 충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오는 도중에 상주에 결혼식에 갔던 정지현 박사가 상주에서 출발하여 충주터미널에서 만나 서울로 이동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월악산으로 방향을 정하고 아름다운 국립공원이 진수를 드라이브하면서 풍치를 간직하였다. 패망한 신라의 왕손들이 금강산으로 들기 전에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불법으로 내세를 기원한 흔적들이 돋보인다. 영봉(靈峯)으로 오르는 중간지점에는 덕주공주는 덕주사를 창건하고 현세 불에게 구복을 빌었으며, 미륵리에는 마의태자가 미륵사를 창건하고 미래불이 오시기를 기도 한 곳이다. 눈총이 가는 곳마다 기암이요 가을의 청취를 만끽하게 한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바닥에 깔린 돌멩이 하나하나 의미 없는 곳 하나도 없다. 생생히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제천과 충주의 경계선인 만수봉 계곡을 분기점으로 충주 땅에 들어섰다.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단풍은 단풍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도에 차를 세우고 진홍색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기록하기에 여념이 없다. 칼라에 너무나 반하여 토하는 소리 들어 보소! 영선이 처제의 왈 미치고 환장하겠다 하였다. 이곳을 지나 연도에 과수원 길을 따라서 수안보를 거처 충주로 이동하였다. 정 박사는 벌써 터미널에 도착하였다고 하였다. 서둘러 이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전부터 교회 청소와 정리로 힘들은 모양이다. 오늘은 가면 또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다. 절망을 접고 내일을 향하여 진군하련다. 모두들 감사하고 즐거웠다. 기회가 닿는 데로 또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장을 접을까 한다. 끝
2018년 11월 5일 월요일 오후 작성
夢室에서 김광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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