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ium[뉴스 박물관]건물 6층 옥상 라비에 비치를 한 중국에서 온 각종신문이 전시되는
대자보 옆 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왼쪽 단풍닢 깃발이 보이는 곳이 캐나다
대사관이고 오른쪽길옆의 각이 진 건물은 조형이 있는 조각 박물관이 된다.
사람들은가을 하늘이 높다고 말을 하지만 실은 겨울하늘이 습기가 없어서 더 높다.
야심의 소년-1
중학교 영어책[English Readers]에 나왔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라는 격언으로 되어 있었다.
어느 한 소년이 책방에서 항해에 관한 책을 만지작거리며
서성거리는 것을 옆에 있던 노신사 한분이 물어 보았더니
책은 갖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하니 마음씨가 갸륵하다고
생각한 그는 자비심에서 그 책을 사준 일이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노인이 탔던 배가 항구를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는데도 선장의 지혜로 무사히 항구에 도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획기적으로 발달했지만 그전에는 배가 거센 풍랑을 만나면 SOS라
는 비상 구조 신호를 전신으로 보내는데 이것은
“배를 구하라(Save our ship)”
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전신키(… --- …)를 두드리기에 가장 쉽다니
아마도 2가지가 복합된 것이리라.
도착 후에는 모든 승객을 대표하여 이 부자 노인이
“능숙한 선장의 항해술 때문에 우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라고 여러 승객을 모아놓고 치하를 했다.
그리고 난후에 선장으로부터 화답을 하는 연설이 있었는데 이번의
풍랑에서 모두들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 노인의 선심덕분이라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기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은
그 노인의 공이었다고 찬사(讚辭)를 아끼지 않았으며 오래전에
가난했던 이 선장이 야심의 소년시절 책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여 승객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고 한다.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던 소년시절 나는 살기가 빠듯하다고
하기 보다는 조금 낳은 표현으로 구차한 가정형편 때문에 꿈의
나래를 접지 않을 수 없었고 중 고등학교시절 6년 동안 다른 학생들이
수학여행의 길에 오르면 나는 언제나 빠지게 되니 종일 입맛이
씁쓸하며 찐한 마음으로 집에서 놀게 되는데 그 당시
나는 불가능을 팔자로 돌리고 체념 할 줄을 알았다.
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듯이 마음속의 서러움을
안으론 서려 담아 누르고, 삭이고, 겉으론 태연함을 가장했는데
그렇다고 부모님의 일을 도우 는데 몸을 사리지도 않았고 또한 내색도 하지 않았다.
물론 마음으론 같이 가고 싶고 부모님에게 돈을 달라면 주시겠지만 학교
에서는 내가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주어진다.
첫째 그당시 5명의 동생을 두었고 할머님까지 9명식구(먹는입의 뜻)의
장남의 착한 아이가 되어서 모범을 보여야 되고, 둘째는 모름지기 나 하나
보다도 가정이라는 공동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가진 돈은 한정되어 있고 빚이란 것이 나달이 흐를수록 자란 후면 ‘더미’라
불리고 무럭무럭 자라는 이자(利子)라고 이름 한 아들을 거느리니 생각만
해도 움츠려 들게 마련이고 꼭 쓰지 않아도 될 곳에 돈을 쓰게
되면 팥죽을 떠먹은 자리같이 자국이 남기 때문이다.
이민을 온 후 지금은 미래의 설계가 잘 이루어진 셈인데 그 동안 한번은
가보아야지, 가보아야지 하며 반복하던 염원(念願)의 수학여행이 한꺼번에
성취된 셈인데 한 달의 여정으로 처와 같이 비록 시기야 늦지만 일본과
한국을 한 바퀴 돌았는데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에서 스킵을 한 부여와 경주를 견학을 했다.
일본에서는 후광이 고향인 후광 김대중 전대통령이 야당시절
납치 되었던 동경의 그뤤드 펠레스(Grand Palace; 웅대한 궁전)호텔,
뱃부(別府)의 그랜드(Grand; 웅대한)온천 호탤은 김영삼 문민대통령이 머문 적이
있다고 했는데 다다미가 깔린 방과 서양식으로 2가지가 겸용된 특실이 되는데
일본의 전통 의상 유까따(underwear 가 전연 없다)를 처음 입어보았다.
여기서 느낀 것은 엘리베이터가 소음과 손톱만큼의 흔들림도 없으니 천분의
1인치까지 종이 두께의 갈라진 틈을 재는 필러게이지(filler gauge, 영국 gage)를
사용한 그들의 정교함을 체험으로 느끼니 가히 상 줄만했다.
여인이 남탕서비스를 하는데, 느낌에 축구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온실처럼
유리로 만든 대욕장(大浴場, 길이 약 70m)이 있고 계란이 익을 정도의 뜨거운
김이 솟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본 것은 나에게 전무후무다.
초등학교 시절 한국전쟁 후 우리 집에는 미국의 씨얼스(Sears)백화점에서
나온 케털로그(catalog)가 있었다.
이 책에는 모든 미국상품들이 빳빳하고 매끄러운 종이에 컬러로 선명하게
인쇄가 되어 있었는데 모든 물건 중에서 미제가 최고라고해도 아무도 반박하는
말을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사진으로 보는 미국 산의 물건들은 소년의
눈을 호릴만했고 그것들을 실재로 가져 본다는 것은 한갓 허망한 꿈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산 기역자형 손전등 하나를 보더라도 초점이 정확하니 밤에 초가지붕
속에 잠자는 새를 잡을 적에 더 효율이 좋았으니 말이다.
절대적 이상은 현실화가 불가능이지만 자란 후에 미국영화를 볼 즈음에는
가능성이 있는 이상으로 변했는데 생활터전의 진로에 대해서 곰곰이
구도(構圖)구상을 하던 나에게 이민의 문호가 개방된 후에는 상대성
이상으로 바뀌었는데 대생에다가 덧칠을 하니 더욱 또렷해지고 가능성도 엿보였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나에게는 그동안 오리무중이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꿈도 야무져서 나도 달러화를 벌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스스로 격려해보며 기다리다가 수 십 년 후 환전은행에서 한화를 달러화($1,200)로
바꿀 적(400 :1)에는 돈의 가치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절감하니 환희가 터져 나왔다.
이민자와 그의 가족에게 주어지는 혜택, 보잉 747점보기를 외상으로
생후 처음으로 탔는데 나는 동안 그동안 산과 산 사이로 동그랗게만 보이던
시퍼런 하늘이 확 트이며 시야가 시원스럽게 발아래로 상상의 나래마냥
끝없이 펼쳐졌데 출소하는 기분이 이런정도 가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처음으로 태양을 등지고 한반도를 뒤로하며 태평양 상공을 날아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도는데 아침에 비행기에 올랐는데 내리니 날짜변경선을
넘는 바람에 같은 날 오후가 되는데 결국 지구의 회전이 비행기
보다 빠른셈이고 꿈과 이상이라는 단계변경도 하루만에 급격히 진행되었다.
16세 언상이신 어머님은 모유가 없으니 나는 쌀죽으로 연명을 했는데
그때부터 내게는 살아가는데 필요한것을 감지해내는 세포가 자라기 시작을 한것 같다.
학교에 다닐적에는 교우들이 나에게
“희미한 친구!” 또는 눈이 크니
"깔쟁이"라고 불렀는데 그래도 지금의 나는 인류에게 퇴화가 된
감각이 살아 있어서 나는 귀를 움직일 수가있고 손가락 끝마디만
굽힐수가 있는 옛날사람이어서인지 성인병은 전연 없다.
내가 덩치가 크면 배고픔이 더하니 체중을 줄이려는 신경계통이
작용을 해서인지 허리둘레 30인치를 유지하니 남보다 반을 먹는 셈이 된다.
그리고 생활환경도 어는정도로 빈약했느냐 하면 장리벼 한가마니를 년리
50%로 빌렸는데 4년후에는 복리로 계산이 되니 4.98가마니를 갚아준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예로 여기서 은행이 예금을 하면 년리는 0.2%가 되니
미국의 평균 인플레이션 3.22%를 따라잡지를 못하고 오히려 원금을 까먹는 셈이 된다.
생활속의 부족함을 해결하려고 돈벌이 두뇌는 발달을 했는데 부정행위나
허황된 돈벌이는 관계를 접었는데 복권, 파친고머신, 증권에는 관심도 없으며 현재의 나는
'건강은 행복의 어머니'
라고 새로운 문화와 연결이 된 커피, 맥주 담배, 치즈, 햄버거, 보약등도
거리가 멀어서 인지 남보다도 이마도 덜 넓고 네추럴치아도 28개를 보관을
하고 있는것를 보면 나는 야심의 소년이었다는 생각이다.
시간적으로 차이가 있는 글입니다.
**글들을 가는글씨체로 입력하는것을 방금 알았답니다.
그동안 굵은글씨체만 사용했네요 미안 미안.... . **
첫댓글 야심의 소년 잘
보았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감솨요
창공님의 글로 당시 미국을 좀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산것보다 미국에서 산것이 더 긴데
제2의 고향보다 태어난고향이 추억이 묻어있어서
더 좋네요
감솨요.
항해사와 노인의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이네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
6세에 입학을 하니
교실의 좌석 번호가 5번 미만이어서
모든것이 미약했답니다.
'희미한 친구이엇지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