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덕의 필요성
한 개인의 누리고자 하는 자유와 단체와 상충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체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전체의 룰을 따르는 것이 상식이다. 즉, 이 상식은 소위 배우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잘 따르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아니 배움 못배움을 떠나서 고집이나 아집과 연관 있다고 보아야 옳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지식을 배워 높은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는 도덕 윤리나 룰을 무시하면서까지 자기 이익만을 누리려 한다면 그것은 후진국적 사고관에 의한 권위의식의 발로로써 선진국에서 말하는 소위 유아적 사고관을 벗어나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즉, 윤리나 도덕 룰이란 전체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니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특히 사회 모범을 보여야 하는 특권층이 그런 행동을 보인다면 사회전체는 부정과부패 그리고 그런류의 사람들의 모방적 발상으로 인하여 그 사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로 변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형상이 늘어나면서 그 사회에서는 그런 현상이 당연시 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선진국 입장에서 보면 한심하기 짝이없는 작태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 한심한 국가요 민족이라는 손가락질 대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실감나게 기술하기 위해 필자가 경험한 토대를 바탕으로 말하고자 한다.
80년도 아직 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인들 틈에 끼어서 스위스를 간 일이 있었다. 그중에는 고집세기로 유명한 일명 꼴통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의 고집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사람들 많은 버스를 타고 그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을 보고 그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담배냄새가 싫음 버스에서 내리려 다른 버스를 타고 가라고할 정도로 아하무인의 달변가요 권력의 소유자였다. 물론 신분상 대중교통수단은 별로 이용하지 않으나 가끔 이용할 경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제버릇 개못준다고 스위스에서도 무궤도버스를 타고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꺼내물자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그를 향하자 꺼냈던 담배를 얼른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
아마도 한국 같았었다면 자신의 지위를 믿고 담배에 불을 붙였을 것이리라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이곳은 그런 지위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선진국이기에 사람들의 기에 눌려서 그 잘난 힘 한번써보지 못하고 비굴하리 만큼 굴실대는 그 모습이 가소롭기까지 했다. 한국 같았으면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을텐데 하는 생각에.......
그 다음날 스위스 대사의 초청으로 대사관 만찬에 참석하여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을 잔득먹고 레만호수 옆 공원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꿀맛 은 담배맛에 휴~하면서 연기를 내뿜는 순간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가락 세례를 받었다. "아불사~ 이곳에 휴지통이 없는 것을 보니 금연지역인 모양었다" 우리 모두는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원에서도 금연을 할 줄이야~ 국가적인 망신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다~
담배 한대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담배 한 대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국가나 단체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면서도 자신의 자유만을 고집한다면 이는 분명 유아적 사고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진국형 권위주의 발상인 것이다.
배움이란 별것이 아니다. 배운 지식으로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도덕 윤리를 무시하며 자기합리화만 고집한다면 그는 자신보다 더 큰 권력앞에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그러기에 사회에는 도덕윤리가 필요한 것이요, 모두가 지키고자 약속한 룰을 솔선하여 지켜야만 하는 것이 배운사람들의 도리인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른다면 그는 분명 배운 사람이 아니요 무시 당해도 싸다는 말을 듣게되는 것으로, 그 몰상식의 힘이되는 그 자리를 물러날 때 그의 주위는 아무도 없는 찬바람만 분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 앞에서 아부하는 사람은 날 두려워 하는 사람이요, 잘못을 혹독하게 질책하여 그릇됨을 고쳐주고자 하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라고 하질 않는가 !
옛부터 사리판단하는 마음이 원래부터 없는 이는 바보요,
사리판단을 함에 있어서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이는 똑똑한 사람이요,
그 비뚤어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올라있다고 할지라도 그릇된 행동을 바로잡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 수 밖에 없으니 이는 배움의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유아적사고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배움의 다음과 같은 단계가 있는 것으로,
먼저 배운 학생이 선생이요, 이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면서 그 배움이 깊어지고 성숙됨에 따라 學 그본연 원리을 새롭게 창조하고 생산하며 동시에 모순의 타파를 하는 사람을 진정한 학자라고 볼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학자란 학문의 최고경지를 달리는 선각자라고 말하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학의 깊이와 높이는 헤아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이라는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환하게 펼쳐진 시야에 의해 모든 것을 다 통달한 것인양 착각에 의해 巧智가 가져오는 오류의 연속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교언영색이 단순한 사고의 발로일 때는 애교로 봐줄 수는있으나 악의에 찬 음모일 때는 한 나라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일이 아닐 수가 없듯이......
비록 후자와 같은 의미는 없었다고 할지라도 巧智에 비판이 가해지면 지식은 예리한 면도날로 변하여 무자비한 공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식의 오류가 가져오는 사회적 병폐는 참으로 크다고 볼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學이라는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휙 둘러본 사고에 의해 學 그 본래의 모습을 자기류로 고착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1호흡, 즉 호~하고 불어낸 그 입김을 흡하고 다시 들여 마시지만 호하고 불어낸 것을 흡하고 모두 다 들이 마실 수 없다는 개념을 단순한 형체인 호흡(氣)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단순한 호흡(氣)이 理에 따른 작용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한 개체가 단순한 그 개체 존재로만 존재하는 것이냐 그와 동시에 우주원리와 융합한 전체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그 이후에 번지는 파장은 어마어마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즉 세상 이치를 달관한 도학자의 입장에서의 해석이냐 아니면 단순히 글자 해석에 지나지 않는 학자의 편협된 해석이냐에 따라서 세상 이치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교가 사물에 대한 자취를 말하는 학문이라면, 불교는 진심을, 도교는 자취와 진심 사이를 접하는 道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나타나서 볼 수 있는 것은 자취이고, 오묘하여 볼 수 없는 것은 性(진심)이니 볼 수 있는 것은 가깝고도 얕은 道요, 볼 수 없는 것은 멀고도 깊은 道이니 유교는 불교 大覺의 경계를 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학파의 말한 바가 은연중에 일치하여 입으로 말한 것 같으나, 마음을 닦고 지혜로움을 길러 안목을 갖춘 뒤 다시 본다면 머리가 저절로 끄떡여 짐을 알게 될 것이니 내 어찌 구차히 말하여 그대를 놀라게 하겠는가 라고 말하신 기화스님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學과 道는 다른 것이다.
즉 學者가 학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學 그 자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道의 위치에서 學을 논해야 만 완숙한 학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道란 무엇인가? 상식적인 면에서의 道란 그냥 길이라고 말하고들 있다. 이런 도란 우리가 생을 영위함에 있어서 걸어가는 길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좀 더 세분화하여 보면 종교적인 입장에서의 도와 학문적인 입장에서의 도로 나눌 수가 있다.
종교적인 입장에서의 도를 말한다면 불교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불교에서는 도의 단계를 10단계로 나누어 최고의 경지에 달한 사람을 확철대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도를 닦으며 걸어가는 그 길에서 처음 도를 통한 사람은 자기의 단계가 어느 정도 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보다 먼저 도를 통한 사람에게 점검 받으며 그 길을 계속가는 단계를 10단계로 나누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적인 입장에서 본 도란, 그 길이 종교적인 입장에서 본 길보다는 더 힘이 든다는 입장에서인지는 모르나 학문에서의 1통을 종교적인 입장에서의 2통과 같은 수준으로 말하고 있다. 즉 도란 만물의 근원이며 존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인가 그 존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 받아야만 하는데 그 정당성의 근원이 도이며 우주만물 가운데서 오직 도는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홀로 서 있다는 것으로, 그 단계를 9단계로 보고 있다.
이런 단계로 볼때 인류 사상 최초로 9단계에 오른 분은 제석환인 한 분이라는 것이며, 석가와 노자를 6단계까지 오른 분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6단계 이상은 神의 경지라하여 神의 칭호를 사용해도 된다는 경지이다. 이러한 경지를 범인들의 입장에서. 외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의 외적 요인을 볼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사람이 1단계씩 오를 때마다 우주의 氣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달라져 몸에서 세포분열 이 일어나며 우주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기 때문에 육신의 변화와 더불어 무궁무진한 氣를 느끼며, 그 느낌은 위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앞에서는 자연히 고개가 숙여진다는 것이다.
내적인 면에서의 도란 우주의 원리와 상통한 두뇌의 뇌파수는 마치 물의 원리와도 같다고 본다, 즉 물이란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고여서 건수가 되고, 그것이 여러 내 외적인 변수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방황 끝에 지하수를 만나는 것과도 같은 이치로, 이 과정에도 지하수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서 물의 맛과 질이 달라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과정을 걷기위해 화두를 정해놓고 그곳에 몰입하는 과정을 건수가 지하수로 향하기 위한 단계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도란. 인간이 우주와 하나가 되게 해주는 매개체의 길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단순한 학자의 글자풀이와 도학자의 글 자풀이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런 연유로 인해 그 양식을 먹고사는 제자들의 품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시냇물과 강물, 그리고 바닷물과도 같이 그 질과 양이 달라져서 그 쓰임새가 달라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라고 볼 수가 있다.
이렇게도 힘든 道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통하게 되는 것일가? 道를 통하게 되는 주체인 사람은 三魂七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즉 한 사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3개의 혼과 7개의 넋이 있어야만 완전한 사람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중 넋은 사람의 형식적인 구성요소로 관념적인 세계와는 별도의 것으로 보고는 있 으나, ' 넋나간 사람같다'라는 말에서 보는 바와도 같이 그래도 정신의 세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영혼은 사람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을 말하는 것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은 영이라고 부르며, 육신을 떠난 영혼은 혼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영혼은 3개의 혼으로 분리되어 죽음과 동시에 천상으로 올라가는 혼과 떠돌며 매개체 역할을 하는 혼 그리고 묘를 지키는 혼으로 분리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한 인간이 탄생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혼과 넋들이 우주공간을 떠돌면서 고대하고 고대하여야 겨우 인간이 될 수 있는가를 대변해 주는 것으로, 이런 인간이 道를 통하기 위해서는 3생을 거치며 지식과 수양을 통하여 영적 능력을 최고도로 향상시켜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우주 가운데를 떠돌던 수많은 혼과 넋들이 선행과 수행을 통하여 인간으로 탄생하 고, 이렇게 탄생한 인간이 지식과 수양을 쌓으며 선행하는 과정을 3생 동안 연속적으 로 해야만 영적능력이 우주의 이치와 교감을 갖으며 道를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道의 첫 관문에서는 모든 번뇌와 사심을 버리고 대자연과 내가 하나됨을 느끼는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잔잔한 호수같이, 혹은 무한한 우주가 나와 호흡을 같이하 듯이 수 만리 떨어진 곳의 소리와 영상까지 보이게 되는 그런 것과도 같이......
이러한 과정속에 있는 우리네 삶이기에 "바람을 거슬려 티끌을 날리면 반듯이 제게로 날아온다"는 이치를 염두에 두는 삶 즉 많은 사람들이 지켜야한다고 약속한 그 약속은 아무리 권력자라고 할지라도 꼭 지켜야만 현명한 삶이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첫댓글 공중도덕은 꼭 지켜져야합니다...그것은 남을 위한 배려입니다.
저도 노력은 하고 있지만 잘못을 저지를 때가 많으니 후회나 반성하며 고칩니다...힘든 공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존경
공정사회 님의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존 경 .
공중도덕 지켜야 합니다.관청카페의 공지사항도 많이 읽고 적용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법 이전에 공중도적은 사람으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공중도적은 인간의 가치를 상승시키며
법이 없어도 되는 기본이기에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시 향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중도덕도 반드시 지켜야 하고 법도 반드시 지켜야하는데
법을 몰라서 한두번 실수로 법을 못지키면 무죄,
법을 잘알고 있는 자가 법을 위반하면 두배 처벌로 유죄,
공정한 사회가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를 ..........
깨달음이 많았습니다.
위글을 보니 제 자신이 숙연해 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꾸벅^^
시향기님 윤리와 룰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유아적 사고다. 도가 바탕이 되어 학을 논해에 진정한 학의 경지에 이른다 배움이란 별것이 아니다.
배운 지식으로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도덕 윤리를 무시하며 자기합리화만 고집한다면 그는 자신보다 더 큰 권력앞에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른다면 그는 분명 배운 사람이 아니요 무시 당해도 싸다는 말을 듣게되는 것으로, 그 몰상식의 힘이되는 그 자리를 물러날 때 그의 주위는 아무도
없게 된다고 저에게 질타한 말입니까 ?
이글은 8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뽑힌 사람들과 같이 유럽 여행길에 행동을 하다보니 한 사람의 고집불통이 자신의 권좌를 믿고 아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반성하라는 뜻으로 참여연대에 몇 년전에 쓴글 그대로 옮긴겁니다. 호수님이 현 정부요직이라는 대단한 위치에 있나요, 그렇다면 반성해야 합니다.
내가 정부요직에 있지 않은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 때 맞추어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지니 하
는 말입니다.
배운사람이라면 행운목보다 내가 더 배웠다고 공고되었으니 배운지식으로 선악을 구별못한다는 것은 배운 사람이 무시 당해도 싸다 그렇다면 내가 행씨에게 무시 당했다는 모양인데
행씨가 내게 무시당한 것 아닌가요. 도대체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지 못하니 행씨와 비슷합니다.
시향기님이 두사람의 설전을 삭제헸나요 ? 아침나절 내내 쓴 것을 지우라는 권한을 누가 주었나요.
.
내 고집은 옳은 것은 옳고 그런 것을 그르다고 한 것을 고집불통으로 보았다면 분별력이 모자라는 것 아닌가
무슨 글 뭔소린지 모르겠고요, 난 아직까지 내 댓글을 포함해서 어느 하나 문제가 된 글은 지운 것 없습니다. 그리고 승리님하고 행운목님 싸우던 말던 그런거 관심없고요, 호수님이 누구보다 더배웠는지 못배웠는지도 관심없습니다. 단지 통상적인 사람으로써의 도리를 나열한 것뿐입니다. 승리님한께 누가 되었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단 게시판에 올린 글은 내맘대로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모든분들의 덧글이 사라지니까요 그러니 모두가 지우라고 한다면 지우겠습니다.
시향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게시판지기 황혼의 어부 입니다.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를 바랍니다. 존경
시향기닙
정독하고 갑니다.
오늘 아침은 상쾌합니다.
항소심 첫재판이 8월12일이어서 마음 부담이 많이 있었는데.....
끝문장 명심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와같이 생각한다면
법이 필요 없을텐데요. ㅎㅎㅎ
늘 감사드립니다.
추천하고, 스크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