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꿍을 찾습니다
- 박동신(본시아노)
짝꿍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명사] 1. 짝을 이루는 동료. 2. 뜻이 맞거나 매우 친한 사람을 이르는 말. [유의어] 단짝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셨고(창세1,26-27참조)”, 신약성경에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남자는 <…>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19,4-6참조)” 고 기록되어 있다.
어릴 적 초등학교시절의 내 옆자리에 앉은 짝꿍은 더러 생각이 날 법도 한데 이제 세월이 60년이나 많이 흘러서 특별히 기억에 떠 오르는 얼굴이 없다. 다만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그해 6.25전쟁 때문에 군산에서 피난을 내려온 한 가족이 우리 마을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가족은 부모와 함께 외동딸이 있었는데 그 딸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그 이름이 아마 권인숙(?)인 것으로 기억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튼 인숙이는 자주 내 집에 놀러 왔다. 나의 가족은 홀로 되신 어머니와 위로 누나 하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뿐이었다. 인숙이와 내가 서로 만나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정답게 나누었다. 그 시절에도 인숙이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느꼈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인숙이는 전쟁이 소강상태로 되고 남한이 수복된 후에 우리 마을 떠나 어디론지 이사를 가 버렸다. 어릴 적 내 짝꿍은 그저 순수한 감정으로 만나고 그리고 헤어졌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그의 나이도 이미 일흔이 넘었을 터인데 이 세상에 살아 있기나 하는지 퍽 궁금하다.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나이 들어 20대 초반에 병역 의무를 마치고 후반이 되어서야 삶의 터전을 옮겨 비로소 공직이라는 자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삼월 삼일이던가 그해, 천 구백 육십 팔년. 학력도 덕행도 부족한 스물아홉 시골 청년이 도도히 흐르는 세파世波에 선뜻 몸을 던졌다. 목포, 이곳이 내 공직 초임지公職 初任地일 줄 어찌 알았으랴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설계를 꾸려야 할 처지였다. 꿈을 가진 사람은 희망이 있다고 말들을 한다. 성경에는 야곱이 장인 라반을 위해서 7년 동안 일을 하고 나서야 아내를 맞이 했는데 나도 공직 생활을 7년 동안 하고 난 후에 내 짝꿍을 만났다. 이렇게 내 인생은 짝꿍(루시아)과 함께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짝꿍과 더불어 내가 시작한 사업(?)이 번창하여 아들 하나에 딸 넷이 되었다. 내 가족은 모두 일곱 명이 되었다.
내가 정년으로 공직의 길에서 물러나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내게도 아직 얼마큼의 삶이 남아 있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슨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도와 줄 일은 없을까 하고 궁리해 보았다. 고민 끝에 광주 성 요한병원에서 실시하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2주간)을 2004년 6월 25일에 마치고 3개월 동안 기다리는 중에 광주보훈병원 호스피스 담당 간호사(양○○ 선생)로부터 부름을 받고 그해 10월부터 봉사의 길로 나섰다.
내가 호스피스의 길에 들어선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는 매일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에 하루, 그것도 오전이나 오후 시간에 자원봉사자의 자투리 시간을 할애하여 3시간만 봉사하면 되는 것이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활동하게 되는데 처음 시작할 때에는 함께 자원봉사 교육을 받았던 분이 내 첫 짝꿍(최○○)이 되어서 3년 남짓 봉사하다가 그 짝꿍이 다른 봉사해야 할 일이 생겨서 봉사 날짜를 수요일에서 금요일로 바꾸게 되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외짝이 되어 몇 달이 지나도록 혼자서 봉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짝꿍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얼마 안 되어 새 짝꿍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두 번째 짝꿍(김○○)하고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아 참 좋았다. 호스피스 환우들에게 나하고 짝꿍이 서로 역할을 바꾸어 가며 봉사하게 되니 분위기가 훨씬 부드럽고 화기애애한 것이다. 그리고 또 세월이 약 3년 정도 흘렀다. 두 번째 짝꿍도 갓 태어난 손주를 돌보아야 할 처지여서 호스피스 자원 봉사하는 일을 쉬게 되고, 세 번째 짝꿍(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분도 다른 삶의 터전으로 옮기게 되었다. 당분간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혼자서 해야 할 형편이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루카10,2참조) 호스피스 자원봉사의 길에서 만난 첫째 짝꿍은 다른 봉사의 일로, 두 번째 짝꿍은 손주 보는 일로, 세 번째 짝꿍은 다른 삶의 길로 떠났습니다.
내 짝꿍을 찾습니다.
누가 제게 새 짝꿍을 보내주십시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참조)
季刊 「동산문학」 2013년 가을호 * 사진 첨부
첫댓글
성재 사백님!
아름답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김동길 선생님(작고)을
강의장에서 마주치어
“선생님! 아름답습니다”하였더니
통쾌하시면서 손을 잡으시고
“그래요? 기억하겠습니다”
한 적이 있습지요.
남자(성)도 아름다운 분이 있지요.
박동신 선생님!
아름답습니다.
소망이루소서!
나무성재사백님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