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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 外
참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2001년 12월 10일에 ㈜현암사에서 초판 발행을 한, 글 조면희에 그림 이영원에 펴낸이 조미현의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 外’라는 제목의 120쪽짜리 책이었다.
내가 그 책을 읽게 된 것은, 검찰에서 엇비슷한 시대에 같이 몸담고 있었고, 이제는 sns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되어 글로써 어울리고 있는 송해은 변호사님 덕분이었다.
한 달 전쯤인 지난 2021년 8월 6일 금요일에 송 변호사님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 한 편이 바로 그 계기가 됐다.
이런 글이었다.
어느 벼슬아치가 진양군수로 부임하였는데 백성을 다스리는 규칙이 까다롭고 세금을 징수하는 데도 대중이 없어서 산림이나 과일, 채소 등 이익이 될 만한 것이면 빠뜨리는 법이 없었다. 절에 거주하는 중들까지도 그 영향을 받았다.
어느 날 운문사의 중이 찾아왔다. 군수가 물었다.
"너희 절에 있는 폭포가 올해는 매우 볼 만하겠구나."
중이 얼결에 폭포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이 안 나는데다가 혹시 그것에 세금을 매기지나 않을까 두려워 이렇게 대답했다.
"올 여름에 우리 절 폭포를 돼지가 다 먹어 버렸습니다."
강릉에 있는 한송정이라는 정자는 경치의 아름다움이 관동 지방에서 으뜸으로 쳤다. 그래서 사신이나 중국에서 온 구경꾼들이 탄 수레와 말이 모여들어 그들을 접대하는 비용이 많았는데 그 지방 사람들은 늘 '저 한송정을 언제나 호랑이가 물고 갈 것인가?' 하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풍자하여 시를 지었다.
폭포는 그 해 돼지가 마셔 없어졌는데
한송정은 언제나 호랑이가 물어 가려나?
<서거정(1420-1488), 폭포를 삼킨 돼지, 태평한화>//
그리고 그 글이 실린 책인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 外’의 앞뒤 표지 사진과 글을 쓴 작가 조면희의 이력을 적은 부분을 찍은 사진을 덧붙이고 있었다.
책에 실린 글 중의 한 편을 골라서 그렇게 소개해주신 것이었다.
해학이 넘치는 글이었다.
그 글을 읽은 뒤에, 내 시선이 특별히 가 닿는 곳이 있었다.
바로 작가 조면희의 이력 중의 첫 대목이었다.
곧 이랬다.
‘1934년 경북 문경 출생’
출생이 그렇다면, 나와 같은 고향이라는 인연인 셈이었다.
그 고마운 인연을 생각하면서, 내 이렇게 답글을 남겼다.
‘방금 이 책을 인터넷 주문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어요. 참 희한한 인연입니다. 저자 조면희 님이 우리 고향 문경 사람이더란 말입니다. 1938년생이시니, 저보다는 10년 연상인데, 그렇다면 우리 문경중학교 선배님들 중에서도 훌륭한 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기수인 4회 선배님이 될 것 같기도 하고...이제부터는 그 분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어요. 인연이란 이렇습니다. 참 희한하게 맺어진다는 거지요. 엊그제 엘리시안강촌cc를 다녀왔는데, 거기서 우리 송 변호사님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이 한 편 글과 마주하게 되는군요. 이 또한 귀한 인연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그 책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날로 곧바로 인터넷 주문을 했고, 그 다음날로 그 책을 우체국 택배로 받아볼 수 있었다.
내 그 책을 펼치기 전만 해도, 내 그 책의 제목에 대해 작은 착각을 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내 무식의 소치였다.
제목의 끝에 ‘外’라는 한문 한 글자를 붙인 것으로 봐서, 여러 편의 글이 실려 있겠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는데, 정작 제목의 머리글인 ‘황소’에 대해서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이름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축 황소를 생각했던 것이다.
도대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황소에게 무슨 격문을 날리는가 하는 의아심이 들기까지 했다.
또 다른 고전인 거북이의 꼬드김으로 토끼가 용궁을 다녀온 이야기를 담은 판소리 소설 ‘별주부전’(鼈主簿傳)이나, 호랑이를 꾸짖는 내용을 담은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나오는 단편소설 ‘호질’(虎叱)등을 생각하면서, 그 글도 가축인 황소를 꾸짖는 뭔가의 내용을 담고 있겠거니 했다.
아니었다.
신라 헌안왕 때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마침 난을 일으킨 소금장수 황소(黃巢)를 치는 격문, 곧 ‘격황소서’(檄黃巢書) 그 전문을 담고 있었다.
하도 부끄러워, 쓴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다음은 ‘계원필경’(桂苑筆耕)에 담겼다는 그 격문 전문이다.
광명(廣明) 2년(881년, 신라 헌강왕 7년) 7월 8일,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아무(某)는 황소에게 알리는 바이다.
대기 옳고 바른 길을 정도(正道)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는 것을 권도(權道)라고 한다. 슬기로운 자는 정도에 입각하여 이치에 순응하므로 성공하고, 어리석은 자는 권도를 함부로 행하다가 이치를 거슬러서 패망하는 것이다. 인간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 살고 죽는 것은 예측할 수 없지만, 모든 일은 양심이 주관하여야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지금 나는 황제가 내려 준 군대를 거느리고 역적을 토벌하려는 것이지 너와 같은 역적을 상대로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토벌을 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은혜로써 회유하여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것인데,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무력으로써 너희가 침탈한 경도(京都)를 수복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너를 회유하려는 것이 바로 정도이며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 진지한 태도로 들어주기 바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는 본래 먼 시골에서 살던 하찮은 백성이었다. 무모하게도 갑자기 작당하여 강도가 되고 또 그 기세를 몰아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어지럽히고 말았다. 분수에 맞지 않게도 깊숙이 갈무리해 두었던 흉포한 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어 하늘이 정해 준 황제의 지위를 넘보는 데까지 이르렀다. 황제가 계신 도성과 궁궐을 무참히 짓밟았으니 그 죄를 하늘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의 당·우로 헤아려 보건대 성인인 순(舜)임금을 배반한 묘(苗)·호(扈)와 같이 양심과 체면, 의리와 충성을 팽개쳐 버린 무리는 어느 때나 있었다. 멀리는 진(晉)의 왕실을 엿보아 반란을 일으킨 전조(前趙)의 임금 유요(劉曜)와 왕돈(王敦)등이 있고, 가까이는 당(唐)의 황실을 배반하고 양귀비와 내통하여 연(燕)을 세운 안록산(安祿山)과 대진국(大秦國)을 세운 주자(朱眦)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많은 군대를 거느리거나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있어서 한번 큰소리로 호령하면 수많은 사람이 벼락을 피하여 도망가듯 사라지고, 은근한 소리로 속삭이면 권력에 아부하는 무리가 마치 연기가 바람을 따라 몰려오듯 온통 그의 주위를 감싸며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잠시나마 그들의 역모는 성공을 거두는 듯했지만 결국 모두 무참히 섬멸당하지 않았느냐? 밝은 해가 온 세상을 비추고 있는데 어찌 도깨비 같은 요기가 함부로 날뛸 수 있으며, 황제의 군대가 칼을 뽑아 들었는데 어찌 역적이 목을 온전히 가질 수 있겠느냐?
다시 말하거니와 시골구석에서 태어난 하찮은 농민 출신인 너 같은 역적이 관청을 불 지르고 양민을 학살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으니,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악질적인 죄인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 세상사람 중에 너의 고기를 맛보려고 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로 원한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한다. 너 때문에 불행히 죽어 땅속에 묻힌 원귀가 하루 속히 네가 목 없는 귀신이 되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지난번 우리 조정에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너를 달래기 위하여 지방의 요직에 임명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너는 만족할 줄 모르고 오히려 못된 독기를 발산하여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이고 군주를 욕되게 하여, 결국 황제의 덕화(德化)를 배신하고 말았다. 곧 너는 과분하게도 중서성(中書省)의 병권(兵權)을 장악하자 공후(公侯)들을 멀리 귀양 보냈고, 마침내는 황제까지 먼 지방으로 파천하도록 하였다. 결국 너는 은혜를 원수로 갚아 백 번 죽어 마땅한 대역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고도 네 어찌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이냐? 도대체 네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도덕경(道德經)』에 이르기를, “갑자기 부는 회오리바람은 한나절을 지탱하지 못하고, 쏟아지는 폭우는 하루를 계속하지 못한다.”하였다.
천지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도 이와 같이 오래가지 못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착하지 못한 자를 돕는 것은 좋은 조짐이 아니라 그 흉악함을 기르게 하여 더 큰 벌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다.”하였다.
지금 너의 흉포함이 쌓이고 쌓여 온 천지에 가득 찼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 속에서 스스로 안주하고 반성할 줄 모르니, 이는 마치 제비가 불이 붙은 초막 위에 집을 지어 놓고도 만족해하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솥 안에서도 즐거워하며 헤엄치는 것과 같다. 눈앞에 닥친 삶겨 죽을 운명을 생각지 못하고 말이다.
나는 지금 현명하고 신기로운 계획으로 온 나라의 군대를 규합하니 용맹스런 장수가 구름처럼 모여들고,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용사들이 소나기처럼 몰려온다. 진격하는 깃대를 높이 세워 남쪽 초(楚)나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잠재우고, 전함(戰艦)과 누선(樓船)을 띄워 오(吳)나라 강의 풍랑을 막으려고 한다.
진(晉)의 장군 도태위(陶太尉)같은 장군은 적군을 무찌르는데 용맹하고, 수나라 장군으로 사공(司空)인 양소(楊素)같은 이는 귀신도 두려워할 만한 위엄을 가졌다. 온 세상을 널리 살펴보고 만릿길을 거침없이 횡행(橫行)함에 너와 같은 좀도둑은 마치 활활 타는 용광로 속에 기러기 털을 넣는 것과 같고, 높이 솟은 태산 밑에 참새 알이 깔린 것과 같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때는 마침 가을이다. 물의 귀신이 우리의 수군(水軍)을 맞이하며 가을바람은 생물을 죽음의 시련으로 몰아넣으려고 한다. 새벽이슬은 어둡고 미련스러운 기운을 씻어 버린다. 파도가 가라앉고 도로가 뚫리면, 석두성(石頭城)에서 닻을 올려 최후로 남은 손권(孫權)의 군대에게서 항복을 받던 유예와 같이, 나는 경도를 순식간에 수복할 것이다. 그 기간은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람 죽이기를 싫어하는 우리 황제의 인자한 뜻을 받들어 엄한 법을 적용하지 않고 덕으로써 포용하려는 것뿐이다. 황제께서는 조정에 영을 내려, “역적을 토벌하는 자는 개인적인 감정을 버리고, 무지하여 방향을 잃은 자를 깨우치는데 힘써야한다.”고 하셨다.
나는 이 격문을 보내 너의 눈앞에 닥친 위급한 상황을 한 번 더 알려주는 것이니, 고집을 버리고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그리하여 허물을 알고 그것을 고치면, 나는 황제께 아뢰어 너에게 나라의 땅을 나누어 주어 대대로 부를 누리도록 하겠다. 그러면 머리와 몸뚱이가 따로 떨어져 나가는 횡액을 면할 뿐 아니라 나라로부터 공명(功名)을 얻어 영원히 빛ㄴ알 수 있지 않겠느냐?
덧붙여 말하건대 얼굴로만 알게 된 벗들에게 신의를 생각지 말며, 영활ㄹ 후세 자손에게 내릴 수 있도록 하라. 이는 하찮은 아녀자들의 말이 아니라 진실로 대장부끼리의 약속이다. 너는 너의 생각을 일찍이 결정하여 나에게 알려 주고 쓸데없이 의심하거나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 나의 신의는 저 말고 깨끗한 물과 같은 마음에 바탕을 두었다. 나의 말은 틀림없이 하늘이 살펴볼 것이다. 은혜를 베푼다고 해놓고 개인적인 원망을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헛된 욕망에 이끌려 함부로 날뛰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지네가 수레바퀴에 저항하는 형상이고, 세상의 변화를 모른 채 옛 건만 고집하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마침내 곰을 잡고 표범을 쫓는 우리 군대가 몰아친다면 큰소리만 치던 너의 오합지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칠 것이요, 너의 몸은 도끼에 묻은 기름이 될 것이며, 너의 뼈는 전차(戰車)에 치여 부서진 가루가 될 것이다. 게다가 처자식도 무참히 처형을 당할 것이며, 종족들 또한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때를 당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터이니, 너는 지금 너의 진퇴를 깊이 헤아려 결정하라. 내가 너를 위하여 너의 앞날을 점쳐 보건대 네가 나라를 배반하여 멸망하게 되는 것보다야 나라의 명령에 순종하여 영화로운 장래를 보장받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내가 다만 바라는 바는 장사다운 기개로 과단성 있게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집념에 얽매여 우물쭈물 의심만 하지 말기를 간곡히 바란다.
아무(某)는 알린다.//
얼마나 섬세하게 짚고 있는지, 후세의 내가 읽는데도, 얼핏 소름이 끼치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책의 그 부제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책에는 온갖 고전들이 수두룩하게 수록되어 있었다.
출판사 서평에 의하면 역사를 풍미한 우리나라 최고 문장가들의 대표작 40편을 이 한 권에 담았다고 했다.
한 편 한 편 그 모두가,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구수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국문학자 김선아는 책의 초입에 ‘우리 고전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추천의 글을 남겼다.
다음은 그 핵심 대목이다.
‘문학은 시대와 사회와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비추어 주는 거울이다. 특히 고전 문학 작품은 인생과 세계에 대한 선인들의 치열한 경험과 진지한 사객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바람직한 삶을 사는 지혜와 힘을 얻거나, 인간의 큭 작은 꿈을 들여다볼 수있게 된다. 고전은 우리 삶의 길잡이이며 자양분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고전이 지성과 감성을 연마하는 한 방법이라고 배워온 까닭이다.’
이 글에 걸맞는 작품들이 이 책에 실려 있었다.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살았는데 언문(諺文: 한글)으로 된 소설이나 이야기를 늘 낭독하였다. 주로 「숙향전(淑香傳)」 「소대성전(蘇大成傳」 「심청전(沈淸傳)」 「설인귀전(薛仁貴傳)」 등 전기문이었다.
매달 초하룻날에는 청계천의 첫 번째 다리 밑에 앉아 낭독하고, 둘째 날은 두 번째 다리 밑에서, 셋째 날은 배오개(梨峴)에서, 넷째 날은 교동(校洞) 어귀에서, 다섯째 날은 대사동(大寺洞) 어귀에서, 여섯째 날은 종루(鍾樓: 종각) div에서 낭독한다. 이레째 되는 날부터는 대사동에서 시작하여 다시 내려갔다고 올라왔다가 하면서 한 달을 마친다. 새 달이 되면 앞에서 하던 순서대로 다시 시작한다.
이 사람이 하도 소설책을 잘 읽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를 둘러싸고 앉아서 듣는데,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가면 그만 읽던 것을 그치고 사람들을 돌아본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다음 내용이 듣고 싶어서 다투어 가며 돈을 던져 주는데 이렇게 돈을 던지게 하는 방법을 ‘요전법(遙錢法)’이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시인인 조수삼(趙秀三)의 ‘추재기이(秋齋紀異)’에 실린 ‘전기수(傳奇叟)’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덧붙인 보충설명에 의하면, ‘전기수’란 글자 뜻대로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늙은이라는 뜻으로, 조선 말기에 전기수라는 노인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번화한 곳을 찾아다니며 유명한 소설책을 읽어주었다고 했다.
문득 내 철부지 어린 시절에 고전 책을 펼쳐놓고 손자인 내게 그 내용을 읽어주시고는 하던 할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꼭 읽어봐야 할,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