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너무도 소중한 만남을 가지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밤잠을 설칠 만큼 흥분되는 만남이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서로의 말에 집중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니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정직한 그 영혼의 간구를 들어주시옵소서.
오늘 청년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청년들과 함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순서를 맡은 모든 청년들로 하여금 정결한 마음으로 잘 준비하게 하시고
생명의 말씀이 선포될 때, 온 영혼들이 힘을 얻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진리로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본문 주해)
13~15절 : “이것이 자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의 말을 기뻐하며 따르는 자들의 운명이다.
그들은 양처럼 스올로 끌려가고, '죽음'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아침이 오면 정직한 사람은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시들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내 목숨을 건져 주시며, 스올의 세력에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 (셀라)”(새번역)
“양이나 소가 끌려가 죽고 말듯이 죽음에 몰려 저승으로 곧장 가리라. 올바른 자가 그들을 다스릴지니 아침에 그 모습 사라지고 영원히 저승을 벗어나지 못하리라.”(14절, 공동번역)
생명을 살릴 수도 없는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평생 산 사람이나, 생명을 줄 수 없는 세상의 온갖 지혜라는 것을 말하는 자들은 결국 스올, 곧 지옥이 그들의 영원한 거처가 되고 만다.
‘양 같이’(14절)라고 표현한 것은 세상의 어떤 부자든, 권력자든, 지혜로운 자든, 다 죽음을 방어할 수 없는 연약한 자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나’에 해당하는 자가 있다.(15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영접하시고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 주실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자격은 단 하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그들은 어리석은 자들처럼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재물의 허무함, 자기 지혜의 헛됨도 알게 된다. 이런 과정 자체가 환난이지만, 이것이 바로 믿음의 길인 것이다.
16~20절 : “누가 부자 되었다 해도, 그 가문이 명성 떨친다 해도 너는 시새우지 마라.
죽으면 재산을 가져가지 못하고, 명예도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세상에서 잘산다고 스스로 축복하고 복스럽다고 사람들이 칭송한들
그는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곳, 조상들이 모인 그 곳으로 가고 말리라.
사람은 제아무리 영화를 누려도 잠깐 살다 죽고 마는 짐승과 같다.”(공동번역)
세상의 부자나 재물이 점점 늘어나는 자들로 인해 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빈손으로 죽을 뿐, 스올에 들어갈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그의 재산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이 땅에 머물 때는 그 재물 때문에 칭송을 받을 수 있지만, 죽을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다 두고 떠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산다. 이것이 바로 깨닫지 못하는 인생이며, 짐승처럼 멸망을 향해 가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나의 묵상)
시편 49편은, 사람이 이 땅에서 아무리 영화를 누려도 그 종말을 생각하여 돌이키지 못한다면 곧 죽을 가축과도 같다는 말씀이다.
전에는 이런 말씀을 들었어도, ‘그래도 돈이 좋지....’ 했다.
복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이 귀에 들리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자기 생명을 살리지도 못할 재물과 권력에 목숨을 걸고 더 가지려고 안달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기에, 그 마음이 땅에 붙은 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스스로 위의 것, 하늘의 것을 절대 구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저 공중권세 잡은 죄의 세력에 그 마음대로 조종당하여 멸망의 길로 치달아 가는 인생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순종하여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리심으로 자신을 내어주셨다.
주님의 보혈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심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니 이때까지 땅만 보고 살던 자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위의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라도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이 현실에서는 땅의 것을 갈구하던 마음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진리를 알게 되었으니 세상의 탐심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진리를 따르는 삶으로 인도받기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멸망하는 짐승으로 살 것이 아니라, 돌이켜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을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오늘 시편 49편과 같은 말씀이 실제임을 알게 하시고,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게 하신다. 인생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것과 종말을 생각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 과정이 고난이요 환난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이미 자신의 살이 되어 있는 땅의 것을 떼어내는 아픔을 겪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바로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이다.
과거에는 그저 땅의 것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삼았던 자였기에 재물이 늘어나는 자가 부럽고, 권력을 가진 자를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나의 영원하신 기업인 예수님을 누리게 되니 이 기쁨과 감격만을 전하는 자가 된다.
시편 49편이 바로 나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재물을 믿고 의지하는 자였는데,
주님만을 믿는 자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들려주신 복음으로
뭇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 시편이 저의 노래가 되어
주님만을 찬양하는 한 날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