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병신’이나 ‘장애인’을 달고 사는 너는 사실 장애가 뭔지도 잘 모른다. 지적장애와 신체장애를 구분하는 용어도 모르면서 ‘장애인 같다’라는 말을 쓴다. 너는 ‘장애인’과 ‘병신’을 주로 ‘웃긴 행동을 하는 친구’를 부를 때 쓰는데. 지칭 대상에 대한 비하보다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만들고 싶어 쓴다.
언제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는 공간에서 네가 친구를 손가락질 하며 ‘병신’,‘병신’ 거리는 걸 봤다. 내가 “병신이란 말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라 듣기 불편합니다.”라고 했더니 근데 이 새끼 장애인 맞잖아.”라며 더 크게 웃는 널 보고 나는 힘이 쭉 빠져 버렸다. 너의 설명으로 비추어보면 ‘병신 짓’이란 지적장애인을 비유한 말이다. 특이하거나 웃긴 행동을 하는 친구는 지적장애인과도 같다는 이야기인데, 생각해보자. 우스운 짓 = 장애인 같은 짓. 그러니까 '장애인은 우스운 사람이다.’ 라는 혐오기재가 디폴트여야 가능한 비유다.
다른 예로 너는 장애인 폄하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지체장애인’이라는 말도 함께 쓴다. 이 역시도 눈에 띄거나 웃기는 행동을 하는 친구에게 사용하더라. “재 지체장애야.”라며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너는 지적장애를 이야기 하고 싶던 모양인데 사실 '지체장애'는 네가 생각하는 '정신지체장애'가 아니라 신체장애다. 몸의 기능이 제한된 것을 지체장애라고 한다. 이제는 ‘지적장애’라고 고쳐 쓰이는 ‘정신지체’는 신체장애를 이야기하는 ‘지체’와는 다른 한자어를 가지고 있다. 지체장애’는 사지 지 (肢) 와 몸 체(體)자를 써 신체를 의미하는 단어이며, ‘정신지체’에서의 ‘지체’는 늦을 지 (遲)와 막힐 체(滯)자를 써 느리고 더딤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 ‘정신’과 관련되었다고 다 같은 장애도 아니다. ‘지적장애’와 ‘정신장애’는 다른 말이다. ‘정신분열’이나 ‘우울장애’와 따위가 지속적으로 발병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것이 ‘정신장애’에 속하며, 지적장애(mental subnormality)는지능검사를 통해 지능지수 (IQ)에 따라 판정 받는 장애다. 가끔 그저 ‘장애’라는 말을 발음하는 것 만으로도 어딘가 불편해 하는 사람을 보는데, 네가 얼마나 ‘장애’를 비하의 의미로 쓰면 아예 단어 자체를 욕으로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싶다. 어느날은 군 인권 문제 관련해서 올린 게시글에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자기 아버지를 장애인이라고 하다니’라며 나에게 쌍욕을 한 일도 있다. 그 사람은 누군가를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욕인 줄 알았나보다.
장애인은 나쁜 말이 아니다. 장애는 장애 그대로 받아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기피하거나, 꺼려하거나, 배제해야할 것이 아니다. 너는 친구를 놀리거나 남을 욕할때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 실제로 장애인을 지칭하려 할 때는 아주 조심스러워진다. ‘장애인’을 욕으로만 써왔으니 어딘가 찜찜해 “장애우 분들”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틀렸다. 장애인은 장애인이다. 그리고 너는 ‘정상인’이나 ‘일반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다. ‘장애우’라는 표현은 어딘가 조금 더 부드럽고 친근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친구’라는 말을 붙이는 것부터가 기만이다. 장애인은 네가 측은하게 바라봐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로 장애우라는 말은 틀린 표기, 틀린 발상이며 아무것도 가감하지 않은 '장애인'이 맞는 말이다. 친근할 필요도, 부드러울 필요도 없다. 너와 내가 너와 나 인 것처럼 장애인은 그냥 그들을 (우리를) 부르는 이름일 뿐이다.
장애에 대한 무지와 혐오는 우리사회에 아주 넓고 깊게 퍼져있다. 너와 별로 다르지 않게 나도 불과 몇 년 전 까지는 ‘병신’이란 말을 자주 썼다. “그런 뜻으로 쓰는 게 아니야.”라며 똑같이 자기 방어를 하곤 했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그런 의미’로 쓴 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쳐도 사실 그런 의미가 맞다. 너는 네가 그 ‘장애인 비하’의 함의를 주체(의도)하지 않는다 항변하고 싶어 한다. ‘병신’이라는 언어는 지금 시대에 공유되는 문화적 유머코드일 뿐이니까. 넌 그 유머 하나를 주워 입에 올린 것일 뿐인데 소수자를 비하하는 사람으로 몰리니 정말 억울해 한다. “나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상적 혐오와 비하는 발화자의 참된 의도까지 마음 깊숙이 꿰뚫어 보며 선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무결한 네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난 장애인이 역겹고 혐오스러우니까 미움을 온 마음에 담아 이 용어를 써야지.’하면서 ‘병신’이란 말을 쓴다고 치자. 그런데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사이코나 너나 사실 다른 게 없다. 내 ‘본심’과 내 ‘의도’는 발화에 각주를 달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병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건, 세상에 장애인이 우리 아빠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난 후 부터다. 우리 아빠는 ‘병신’이란 말에 그다지 감흥이 없었지만 우리아빠가 괜찮아 한다고 다른 모든 당사자들이 괜찮은 게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말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한다. 단어들이 그렇게 큰 힘을 가졌냐고 한다. 맞다. 우리는 말로 무뎌지고 말로 힘을 얻는다. 즐거운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모든 혐오는 피어나고, 또 재생산 된다. 한 번, 두 번 말하다 보면 어느새 ‘괜찮은 것’이 되어 버린다.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진지충’이나 ‘씹선비’가 되고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목소리를 내기 꺼려한다. 너는 맨 처음부터 그곳에 혹시라도 불편한 사람이 있는지 신경조차 쓴 적이 없다. 네가 가지는 기득권이 어떻게 타인의 목소리를 묵살하며 어떻게 소수자를 배제하는지 너는 모르고 살아왔다. 어떻게 알까 네가. 별다른 생각 없이 지하철을 오르내리다 간간히 사람이 미어터지는 시간대에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대는 네가, 이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알까. 너에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가 누군가에겐 그날 열차안 승객의 협조에 따라, 장애인 엘리베이터의 고장 유무에 따라, 승강장과 열차사이 그 작은 틈에 따라서 한 시간의 고된 여정이 될 수 있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까. 당연히 모른다. 네가 들이쉬는 기득권의 공기는 네가 쟁취한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에게 봉사를 하러 다니라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인권 활동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네가 누릴 것은 모두 누려도 좋으니 제발 내 마음만 아프게 하지 말아달라는 거다.
마음이 아프다. 누가 때리는 것 같다. 혐오와 멸시, 차별이 느껴질 때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곳에 없더라도 누군가는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아 달라. 네가 악의없는 그 말들을 뱉을 때 마다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는 걸 좀 알아달라.
🖐친구가 보여줘서 읽게 된 글인데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단어인 '병신'이란 말을 쓰는 사람 따로 상처받는 사람 따로인 것을 아주 잘 설명해준 글이라서 많이 봤으면 해서! :) 카페에 올리는 것 허락 받았어!
첫댓글 마자 늘 생각하곤 있었지만 습관처럼 썼는데 이 글 읽고 병신 ㅉㅉ 키보드에 써졌을때 지우고 다른말로 쓰게 돼 ㅠㅠ 장애인같다 라는 말은 안썼는데 병신은 첨생각해봤어
ㅜㅜ진짜 안써야해..
장애인같다 이런 말은 애초에 써본 적도 없지만 병신같다는 말 나도 모르게 써왔는데 이제 진짜 안 써야겠어 매번 생각은 하는데 격해지면 나와서 스스로도 실망함 ㅠㅠ정말 습관 들여야지
맞아 나도 이거 요즘에 머리속에 계속 염두하고 조심한다 ㅠㅠ.... 쓰면 안되는데 입에 너무 붙어서 ㅠㅠㅠ....
장애인같다는 말은 안쓰지만 병신 진짜 조심해야겠다...
하필 올해가 병신년이라서 더 많은 희화화가 있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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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장애인같다는 진짜 모욕인거고 병신은 진짜 일반적으로 박근혜처럼 사람구실 못하는 인간들 욕하는 말로 쓰이지 않나..?
병신이라는 말이 뿌리부터 장애인 비하였는데 욕으로 많이 쓰이면 그 뿌리가 바뀌나? 아님. 그리고 장애인인권단체에서도 쓰지말라고 한 단어이고. 안 쓸 이유 충분하고 비장애인이 가타부타 써야할 이유에 대해 얘기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
222'년'이라는 말이이제는 그냥 욕인데 그안에 분명 성차별적 함의가 들어있듯이 똑같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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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병신이라는 말 진짜 많이 쓰는데 이제 절대 안 쓸거야ㅠㅠ반성합니다..
3333ㅠㅠ
나도병신많이쓰는데고쳐야겠다
그래서 요즘 등신이라고해... 등신이란말도 안쓰려고 노력하는데 안고쳐진다ㅠ
박근혜 맨날 병신이라고햇는데..안해야되나..하지만 박근혜랑 제일 어울리는 단어인걸 ㅜㅜ... 더이상 어울리는단어가없는데..어떡하지.. 왜케 욕이 다양하지않은거야
@2지배 오글쿠나..! 근데 등신은 뭔가 좀 귀여운욕같아소ㅜㅜ 그래도노력해바야지
ㅠㅠ나를 반성합니다.....
일상적인 혐오에 민감해져야겠어 고맙습니다
안쓸게요..
글 되게 차분하게 잘쓴다 맞아 나도 이런부분에서는 '진지충', '씹선비'가 되는걸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좋은게 좋은게 아닌때도 있으니까 진짜 설득력있고 들어야 하는 말인것같아
병신 많이쓰는데 고쳐야겠다
지랄 미친 병신 바보 멍청이 또라이 고자 찐따 전부다 장애인혐오표현이래... 병신만 등신으로 바꿔 쓰면 될 줄 알았는데 저 단어들 이제 뭐로 대체해야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