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주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깊은 진리를 어린 아이들에게 계시하십니다.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세대 중에 현대시대보다 더 질실한 세대는 아마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11:2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진리를 계시하시고 우리가 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보라주님,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어린 아이는 자신의 지혜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언제든지 배울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 학생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린 아이는 가르치는 선생의 말씀에 반대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내놓을 줄 모릅니다. 우리가 성경 연구로부터 최대의 유익을 얻으려면 성경을 펼 칠 때 이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사상을 미리 가지고 그것을 성경으로부터 확증하기 위해 성경에 접근하는 우( 愚)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하나님의 사상이 어떠한가를 알려는 마음으로 성경에 접근하세요.
자기 자신의 견해를 확증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기를 기뻐하시는 대로 가르침을 받으시면 됩니다.
성경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물론 성경에서 그 같은 사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어린 아이처럼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사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은 것, 즉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바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근거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사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바가 들어갈 여지 ( =공간) 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처럼 이런 단계에 머문 적이 있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31 절을 참조해 보겠습니다.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말 그대로 분명하고 명백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그리스도께 일어난다는 점에 관해서는 제자들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절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도 우리 자신이 미리 갖고 있는 선입견과 성경이 다를 때 성경의 명백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보라주님.. !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성숙한 무오류의 철학 속에 예수님의 말씀을 끼어 맞추기 위해 성경에 접근하기보다는 어린 아이와 같이 가르치시 대로 가르침을 받고 행동에 옮긴다면 산상 수훈 해석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점들이 그대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비성경적인 신학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잘못된 신학을 버리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평생이 걸리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합니까?
" 아! 도대체 이 성경 귀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당황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외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런 자들이 좇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부여한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교묘한 지혜와 속임수로 본래의 의미를 곡해하여 자신의 체계 속에 끼어 맞춘 의미인 것입니다.
성경이 자신이 이해한 대로 의미하고 있기를 바라고 성경을 펼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어떤 의미로 말씀하시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성경을 펼치지시를 권고드립니다.
사람들은 자주 " 그러나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참 진리를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석되도록 원하시는 의미인가요?
우리가 성경 연구를 통해 최대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만 합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저를 어린 아이가 되게 하소서. 저 자신의 생각을 버리게 하옵소서. 그리고 제게 당신의 생각을 가르쳐 주소서.
당신의 말씀이 지금까지 제가 생각해 왔던 것과 아무리 반대된다 하더라도, 당신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린 아이와 같은 자세를 갖게 하소서."
성경은 이와 같이 어린 아이와 같은 자세로 접근하는 자들에게는 널리 열려져 있으나, 베드로나 바울보다 자신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지혜로운 바보들에게는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누간가의 멋진 표현대로 성경 연구의 최대 방법은 " 아기방법" 인 것입니다.
나는 성경의 한 단락의 의미에 관해 아는 지인과 오래전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라고 그는 내 말에 대꾸하였습니다. " 그러나 그것은 내 철학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 분은 매우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연구를 할 때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인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은 소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자세로 성경을 대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나보다 아는 것이 많으시며, 진정으로 우리의 최고의 지혜가 가장 무지한 어린 아이의 지식보다 못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같이 변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는 사실 등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성경 연구를 통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실을 너무나 쉽게 그리고 항상 잊어버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 아버지시여, 저는 단지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저를 가르쳐 주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보라주님, 시편 119편 18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시편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내 눈을 열어 주십시오. 그래야 내가 주님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볼 것입니다.
Open thou mine eyes, that I may behold wondrous things out of thy law.
* 소경이다, 제 정신이 아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 "보라주" 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보라주님이 결코 미워서 그런게 아닙니다. 다만, 화가 나고 답답해서 감정에 치우쳐서 그랬습니다*
* 보라주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7 을 통해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
보라주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Bora-Ju, Think not that I am come to destroy the law, or the prophets: I am not come to destroy, but to fulfil.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로 온 줄로 생각지 말라 ~ 보라주님, 미리,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초등학생처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5:17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He saith unto them, Come and see. They came and saw where he dwelt, and abode with him that day: for it was about the tenth hour.
"Come and See " 와서 보라 = 직접와서 눈으로 보시오 = 오래전 부산에 있는 자갈치 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갈치시장 입구 현판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영어로 말이죠 ( 외국관광객을 위한) Come and See !!
말이 필요없으니, 와서 직접 보시오! " 빌립과 나다나엘은 직접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보라주님, 마음속에 사상이나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성경을 직접 펼쳐서 있는 그대로 예수님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PS: 보라 주 ... 보라 (See) 주님을 (Lord) 좋은닉네임을 가지고 있네요.
보라주님, Come And See ( 우리 함께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펼쳐요,
그리고 주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를 보고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
보라주님~ 평안한 주일 되세요 - from : 룰룰랄랄라 -
첫댓글 룰루랄라님께서 지적하신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태5:17)] 말씀에 대해 아직 영안이 열리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율법은 흠이 있고 완전하지 않아 어떤 완전한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요. 선지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취하신 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입니다.
제가 영안이 열렸는지, 안 열렸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부분이므로 접어두시고, 보라주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은 흠이 있고 완전하지 않아" 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것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다시 표현하면 율법이 흠이 있고 또한 불완전하다 라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흠이 있고 불완전한 율법을 주셨더라면, 왜 하나님께서 흠이 있고 불완전한 율법을 그대로 방치하셨겠습니까? 흠이 있고 불완전한 율법을 다시 정정해야지요, 율법을 주신분도 하나님이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분도 하나님입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왔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라주님께서 율법은 "완전하지 않아 라고 표현하셨는데" 적절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개역성경 마태복음 5:17절 하반부에서 예수님꼐서 " ~완전하게 하려 함이로라 " 이 말씀에 기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KJV 영어성경도 함께 참조 해보시면 번역본- 개역성경을 보충해 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Fullfil 입니다. 성취하려 함이로다" 가 적절합니다. 그것은 모세오경에서 모세는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야만 그 예언이 성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나를구원하소서님 말씀에 동갑함니다. 저도 누구한테 배워서 깨달은것이 아니고 고난을 통해 깨닫게 되더군요.
어떤 현대인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길을 잃었는데 문명이 전혀 없는 원주민 거주 지역에 들어갔다고 칩시다. 셈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하겠는데 그들은 도무지 계산기를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주판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땅에 그림도 그리면서 주판 사용 방법들도 가르켜 줍니다.. 나중에 본국에 돌아갈 기회가 생겨 계산기 실물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보여 줄 때가 왔다고 칩시다. 그들에게 그동안 이해를 시켰던 주판과 그림들은 필요 할까요? 안할까요? 그 완전케 하려 함이 주판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계산기를 보여줌으로 완전하여진 것일까요??
1) 길을 잃어서 문명이 전혀 없는 원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사고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처음 여행목적은 아프리카인데, 그 여행자가 주판을 여행준비물로 챙겨가지 않았을게 아닙니까? 뭐..주판을 원주민 사는 어느 지역에서 주웠다고 가정하면 말이 되겠네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 나중에 본국에 돌아갈 기회가 생겨 계산기 실물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보여 줄 때가 왔다고 칩시다"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겨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그 원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계산기를 가지고 왔다는 말인가요? 그리고 그들에게 계산기를 보여줄 기회가 왔다는 말인가요? (줄여서 표현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주판 사용법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설명을 하였겠군요. 물론, 원주민 언어로 할 수 없다면, 그림이나 수화로 통하겠지요...
3) 그 동안 이해를 시켰던 (주판사용법에대한 강좌) 의 실물인 주판과 그림이 필요할까요? 안할까요?
그 동안안 문명인으로부터 주판사용법과 그림에 대해서 강좌를 혹독하게 받았는데, 갑자기 등장한 문명인은 계산기를 꺼내 들면서 이것이 당신들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입니다? 라는 말인가요? 그런가요???
ㅋㅋ 원주민들이 무지 혼란스러웠겠네요.주판사용법도 겨우 익혔는데, 이제는 더욱더 심도가 깊은 계산기라니...! 분명, 원주민들 모두 머리통 잡고 발악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군요. ㅎㅎ ^^
원주민과 계산기 이야기 잘들었습니다. 보라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예시와 예화보다도 더 명확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입니다. 마태복음 5장17절로 돌아오셨으면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주판이나 그 가르친 선생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한 것을 너희에게 전달하고 보여줄려고 왔노라] 입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주판으로 셈을 배워 왔던 사람도 계산기를 사용하면 옛 방식은 별로 효용성을 얻지 못할 것이며 주판 안배운 사람도 계산기 사용에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죠.!!
저도 그 옛날 학창시절때에 주산학원에서 주판 사용법과 암기법을 배운적이 있습니다. 암산은 손가락으로 주판을 팅구어 가면서 계산을 하는 방식이였습니다. 물론, 눈 앞에 주판은 없지만, 있다고 가정하에 그렇게 훈련하는 것이지요. 계산기를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주판도 함께 사용을 합니다. 계산기의 유용성이 크지만, 동시에 주판의 활용법도 다양하고 그 용도도 매우 다양해서, 지금도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계산기가 주판보다 사용법이 쉽다고 하여서 계산기는 효용성이 있고 , 주판은 효용성이 없다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냥 쉽게 말해서 "계산기 사용법이 주판보다 쉽다" 라고 표현하심이 옳은 줄로 압니다
그러나 나이가 지긋이드신 어떤 노인분들에게는 계산기가 더 어렵고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계산기 액정화면의 숫자라던지 터치식 버튼이 오히려 익숙하지 못하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팅구어 가면서 쓰던 옛날방식의 주판이 더 편안할 수도 있습니다.
보라주님, 율법의 일점, 일획 one jot or one tittle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에 점 하나, 획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글 또한 "님" 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면 붙이면 "남" 이 되어 떠나가는 세상입니다. 단어 용법과 표현에 있어서도 아주 신중해야 함은 물론이고, 단어의 용법이나 동사의 의미 - 어절 하나 조차도 적절하지 못한 표현을 사용하게 되면 큰 혼란이 찾아 옵니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라는 말과 "폐하셨다" 라는 각각의 표현은 서로 상반 (相反)됩니다. 보라주님께서 어떤 예를 들어서 설명하시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마태복음 5:17을 곡해(曲解) 할 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5:17 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말씀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보라주님은 이러한, 저러한 예를 들어서 결론을 내리시는데, 그 최종결론이 " 율법은 폐하여졌다" 라고 말씀하시니, 스스로 모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보라주님께서 작성하실 글 - 15456 의 제목 : 모세언약은 폐하여졌고 율법도 폐하여졌느니라! "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 (마태복음 5:17) 과 전적으로 상반(相反) 됩니다.
주님을 보라 라는뜻인줄 알았네요ㅡㅡ;;; . 보라주님 하지마시고 한칸 띄워주세요......보라주 님
제 닉네임이 그런 뜻입니다. "보라~주님"
말보회를 언급하신 것 보니, 말보회와 속상한 일이 있으신가보군요, 제가 소유하고 있는 성경은 KJV ( 영어로만 기록) 되어 있습니다. 교회당을 성전이라 우긴 적이 저는 없습니다. 신자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단순한 건축물(교회건물) 과는 구별되어 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예수님 예언대로 모두 돌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말하기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한 것과 같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똑같이 지금 행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을 빙자하여서 자신의 이를 취하고 말하기를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율법주의자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나 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두려움에 떱니다.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다수에게), 그대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물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요,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내보내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내가 선지자나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라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서 매번 강조하나, 그것은 저의 생각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저는 강조해서 성경구절을 보라주님에게 매번 제시하였지만, 보라주님은 말하기를 " 율법이 폐하여졌다" 라고 하니, 누가 성경말씀 곡해하는 자인지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17절 말씀을 하니 , 보라주님은 또 말하기를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자 라고 하시니, 보라주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율법주의자라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말씀을 정죄하고 스스로 예수님을 부정하고 계시니, 저로서는 의아할 뿐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강조하고, 또한 성경은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결과는 행함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을 향해서 당신은 믿음이 없고 그저 행하는 자이다, 라고 말합니다. 또한 "율법은 폐하여 진 것이 아니다" 라고 마태복음 5:17 을 언급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은 율법주의자다" 라고 말합니다. 또한 성경말씀을 읽고 그대로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 당신은 영안이 깨어 있지 않다" 라고 비방합니다
이제는 와서 저에게 말보회라고 비방하시니, 참으로 참담하군요. 한 가지 제안하겠습니다. 말씀으로 토론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말씀을 최종권위로해서 토론하는 지성방이 되었으며 합니다.
제가 얼마나 답답해서 보라주님을 향하여 "소경이다" 라고 하였겠습니까?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보라주님은 "율법을 폐하셨다" 라고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계속 언급하고 있으니,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아니다 라고 부정하니, 소경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 일로 사과를 드렸지만, 소경은 쉽게 말해서 두눈의 기능이 상실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아닙니까?
보라 주님 , 왜 주님을 보실려고 하면서, 주님이 기록한 마태복음 5:17 은 보지 못하십니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때에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그리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Philip findeth Nathanael, and saith unto him, We have found him, of whom Moses in the law, and the prophets, did write, 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번역하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그를 찾았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선지자( 대언자) 가 기록한, 그 사람, 나사렛의 예수, 조셉의 아들
이와 같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대언자가 기록한 그 사람을 빌립과 나다나엘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그 기적을 목격하면서도, 바리새파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순절날 베드로가 서서 큰 소리로 말하기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그리스도와 주가 되게 하셨느니라" 저희는 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그들이 그토록 비방하고 모욕한 예수님이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서 성령께서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존귀함과 영광을 보여주어 그 실체를 알게 하시니, 그들이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합쳐도 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 예수님을 부정하고 믿지 아니한 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이 느껴졌고, 그들은 깊은 회심과 통곡을 하며 가슴을 치면서 말하기를 " 우리가 어찌할꼬" ....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 세상에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 보지 못하지만 보는 사람 전자는 두 눈을 멀쩡이 뜨고도 믿지 아니하므로 눈뜬 소경이고, 보지 못하지만 보는 사람은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지만,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믿는 자를 말합니다. 바리새파인들은 말하기를 "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 너희가 눈 멀었다면 도리가 죄가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차라리 소경이였다면,
예수님을 보지 못했겠지요 , 보지 못했으니,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비리새파인들은 예수님을 보고 믿지 아니하므로 그들의 죄가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보라 주님, 보라 주님은 예수님을 보실려고 그토록 노력하고 닉네임도 그렇게 지으셔놓고서는 왜 두 눈을 뜨고 예수님을 보지 아니하실려고 하십니까?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번역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그의 영광을 보았으니, 그 영광은 아버지의 외아들의 영광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님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바리새파인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같으니,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라는 성경구절을 무시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