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청년 주일 예배를 잘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불러 모아 주신 귀한 청년들로 하여금 복음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오빠가 교통사고로 다쳤습니다.
장애를 가진 독거노인의 서글픔을 봅니다.
주님만이 도움이시니,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본문 주해)
시편 50편의 표제어는 ‘아삽의 시’이다.
아삽은 다윗 시대 때 찬양인도자이다. 그를 선견자라고도 불렀다(대하29:30). 선견자란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자를 말한다.
1~3절 : 온 땅의 창조주가 되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신다.
그런데 특별히 하나님의 빛을 비춘 곳이 있는데 그곳은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예루살렘이 있는 산)이다.
그곳에 하나님이 오신다.
그런데 그 하나님 앞에는 삼키는 불과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분다고 한다.
4~6절 :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판결하시려고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고 하나님의 성도를 하나님 앞에 모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사로 언약한 백성들을 소환하신다. 그것은 심판을 위한 소환이다.
그 이유는 제사를 잘못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사를 드리는 의미도 모르고, 제물 드린 것으로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였다고 생각한 백성들이었다. 제물을 드렸으니 복을 달라는 식이 되어버렸다면 제사 언약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구약 제사의 가장 중요한 뜻은 (제물을 통한)속죄였다.
7~15절 : 하나님께서 제사로 언약한 백성을 불러놓으시고는 그들의 제물 때문에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들이 제사를 안 드린 것도 아니고, 제물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제물이 필요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온 세상에 속한 것이 다 내 것인데 내가 무슨 제물이 필요하다고 제물만 가져오느냐’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마치 자기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제사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이런 의미 없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은 나갈 수가 없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은 대속하는 제물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아주셨다면 속죄가 일어났기에 감사하는 것이다.
제물을 바친 자신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제물을 받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바른 제사인 것이다. 제물을 받아주심으로 죄인을 용납하신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의 서원한 것을 가장 높으신 분에게 갚아라.
그리고 재난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내가 너를 구하여 줄 것이요,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14~15절, 새번역)
이런 마음을 드리는 예배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재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는 그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그를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
(나의 묵상)
이스라엘은 제사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니, 제사의 제물을 통해 속죄의식을 치르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새 그들의 마음에 그와 같은 대속의 제사를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니, 이제는 내게 복을 주시는 것이 마땅하다는 식이 되고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물’이 아니라, 제사 드리는 자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전5:1, 새번역)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호6:6, 새번역)
구약 시대의 제물에 해당하는 것이 오늘날 각종 제목으로 드리는 헌금이요, 교회 중심의 헌신과 봉사 활동 등이다.
나도 과거에는 이러한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할 것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충성했으니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겠지 기대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복음에 눈을 뜨고 나니 이 모든 제물보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제물 드림’이 ‘거래’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드려지는 것이 된다.
나는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감으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에 복음을 듣고 또 들으며, 연약한 부실한 존재가 십자가에 연합되기만을 간구하고 소원한다.
어제 청년부 헌신 예배 때 강사 목사님의 말씀이 매우 길어져서 청년들이 힘들어했다.(^^)
강사 목사님은 ‘복싸습간’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복음과 싸움과 습관과 간증’의 줄인 말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싸움은 탐심과 자존심과 불순종에 대한 싸움, 습관은 말씀과 기도의 거룩한 습관, 그리고 간증이 있는 신앙을 강조하였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 보이심임을 이미 수도 없이 청년들에게 선포하였었다.
싸움은 바로 십자가에 연합되는 것이다. 탐심과 자존심과 불순종의 마음은 옛 사람의 죄성이니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도 설교로 묵상으로 수없이 청년들에게 말하였다.
말씀과 기도의 거룩한 습관은 기독교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마지막, 간증이 있는 신앙.....이것이 문제다.
많은 교인들이 이 간증에 목을 맨다. 그것은 암울한 현실에서 갑자기 기적이 일어나 문제해결이 되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수없이 많은 치유와 기적을 보여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고 그분을 믿고 따르게 하고자 함이었지, 문제해결을 위한 기적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확실히 보여주시는 완성된 성경이 이미 있다. 그런데도 계속 기적과 같은 간증거리에 목을 매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확실하고도 분명한 진리의 말씀이 있는데 왜 기적과 표적을 운운하는지......
하여튼 ‘간증’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전과 지금의 나에 대한 변화’에 대해 나눌 교제의 말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청년들이 이러한 간증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기도했다.
어제와 같은 말씀을 들으며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음은 수년 간 이어져 온 주님과의 교제 시간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온 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 내가 무언가를 드린다면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드릴 수 있을까?
아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어른에게 선물로 준다면 그 장난감이 좋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기특한 것이 아닌가?
주님께는 참 필요도 없는 장난감이지만 내 마음이 담겼으니 기쁘게 받아주시리라.
가장 소중한 내 마음, 감사가 넘치는 마음을 드리며 예수님을 알아가기를 원하는 이 교제의 시간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리라.
(묵상 기도)
주님,
상한 마음으로 나아간 말씀의 자리이지만
언제나 평강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은밀한 거래의 마음이 담긴 제물 드림을 그칩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우선이 되니
감사의 마음이 담긴 온전한 제물 됨을 믿습니다.
이 시시한 장난감을 매일매일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질시와 판단이 사방에서 조여 오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은혜 주시는 주님께
더욱 충성된 자가 되어 묵묵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