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현재 연 3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것은 제주도가 그 만큼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제주도의 관광권은 제주시와 서귀포권, 동쪽과 서쪽권, 한라산과 섬들로 구분할 수 있다. 각 관광권에 따른 관광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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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혈, 관덕정, 제주 자연사 박물관, 목석원, 오현단, 제주 성터, |
| 제주시 | |
| | 용두암, 용연, 사라봉, 삼사석, 제주 민속 박물관, 산천단, 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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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문 관광 단지, 천제연, 외돌괴, 삼매봉, 천지연, 패류 화석 지대, |
| 서귀포시 | |
| | 정방 폭포, 돈내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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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북정, 산굼부리, 만장굴, 김녕사굴, 비자림, 성산 일출봉, 혼인지,|
| 동 쪽 | |
| | 성읍 민속 마을, 제주 민속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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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령 계곡, 항파두리, 신천지 미술관, 빌레못 동굴, 명월대, 한림 |
| 서 쪽 | 공원, 협재굴, 쌍용굴, 절부암, 수월봉, 대정 성터, 김정희 유적지, |
| | 산방산과 산방굴사, 제주 조각 공원, 용머리 해안, 안덕 계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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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 | 한라산, 백록담, 아흔 아홉골과 천왕사, 한라 영송, 영실과 오백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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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자도, 비양도, 차귀도, 가파도, 마라도, 범섬, 문섬, 새섬, 섭섬, |
| 섬 | |
| | 우도, 토끼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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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주도를 구경하고 있는 관광객들은 2-3일의 단기 일정에 따라 관광을 하고 있어서 위의 관광지를 전부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위의 전부를 구경하지는 못하고 일정에 따라 대충 구경하고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단체 관광으로 짧은 일정 속에서 가능한 여러 관광지를 보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의 관광 욕구에 따라 관광 코스를 정하고 있어서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제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관광지를 찾아가서 관람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지만, 못 가보거나, 어느 지역에 있는지, 교통편은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해서 제주의 관광지 전부를 구경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 또한 제주도의 관광지 전부를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있다면 필히 그 곳에 가서 그 곳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고, 그 곳에 대한 여러가지 사항들도 알고 싶다.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친구와 함께 사진 찍으러 다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사진 렌즈에는 비가 안 들어가도록 하여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던 일, 서귀포시에 사진 찍으러 갔는데 동쪽에는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서쪽 중문 하늘에는 햇빛이 활짝 비취던 일들이 떠오른다.
각 관광지의 소재지와 특징을 살펴본다면,
'삼성혈'은 국가 지정 문화재 사적 제134호(1964.6.15지정)로 제주시 이도 1동 KAL Hotel 뒷편에 있으며, 삼성혈은 탐라 개국의 발생지이며, 제주도 원주민 즉, 三神人(고을 나, 양을 나, 부을 나)이 태어난 곳으로, 이곳의 총면적은 7천 1백여평에 이르고 70여종의 진귀한 나무들로 삼성혈의 구멍을 보호하듯이 둘러싸여 있다.
품자형(品字形)의 3개의 구멍은 지금은 거의 메워져 있으나 눈이 내릴 때 보면 주변에는 눈이 쌓여도, 이 구멍에는 신기하게도 눈이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의 지열이 매우 높은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이곳 주위의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모두 한결같이 三神人이 태어난 굴혈(掘穴)을 향해 머리숙인 듯 나무 가지가 뻗어 있다.
개국 신화를 보면 三神人이 이곳에서 태어나 수렵 생활을 하다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의 세공주를 맞이 하면서부터 농경 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 왕국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조 중종 21년(1526년) 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처음 표단과 홍문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春秋奉祭)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목사에 의하여 성역화(聖域化)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에도 매년 춘.추제(4월 10일, 10월 10일)및 건시대제(乾始大祭, 12월 10일)를 지내고 있다.
'관덕정'은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 제322호로 제주시 삼도 2동 중앙로 우체국 왼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주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관덕정은 제주 역사를 한 몸에 안고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1448년(세종 30년) 목사 신숙청(辛淑晴)이 병사를 훈련시키고 상무(尙武) 정신을 함양할 목적으로 창건하였다. 건국 연대가 가장 오래다고 할 수 있는 관덕정은 당시 제주 관민이 함께 공사를 의논하거나 큰 행사 또는 잔치를 베풀던 곳이었다. 말하자면, 당시 관민들을 위한 센터 역활을 한 곳이였다.
이 관덕정 정면의 현판에 있는 글씨는 세종 대왕의 세째 아들 안평 대군의 친필이라고 한다. '관덕'이라 함은 '평소에 마음을 바르고 正하게 하여 덕을 닦는다'라는 뜻이다. 수십개의 기둥으로 떠 받쳐지고 있는 관덕정은 사방이 트여 있으며 중앙 서까래의 넓은 나무 기둥에는 채색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알아보기 어려워서 자세히 보아야 그 윤곽을 알 수 있다.
관덕정 정면에는 양 옆에 돌하르방-원래 높이는 190cm정도였으나, 시멘트 포장에 의해 눈에 보이는 크기는 좀 적은 편-은 24시간 관덕정을 지켜 서 있다.
'제주 자연사 박물관'은 제주시 일도 2동에 위치, 삼성혈에서 약 5분 거리에 있으며 제주 관광에 있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풍습, 민속 자료를 한 울타리 안에 집합시켜 놓은 곳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왼쪽 통로로 자연사실에 들어서면 제주의 특유한 화산 지질로 형성된 제주에서만 있는 진귀한 암석 표본을 진열하여 놓고 있다. 그리고 민속 전시실에는 제주 농경법을 위주로 하여 온 제주의 각종 민속 풍습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연자 방아 등 제주의 특유한 역사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특별실을 돌아 나오면 지금도 제주 촌락에서 볼 수 있는 정낭 등이 있는 야외 전시당으로 나오는 길목이 나온다.
이 야외 전시장에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소규모의 석불이라든가 묘비석 또는 연자방아들을 수집하여 놓고 있으니 제주의 풍물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시없는 전람장인 것이다.
'목석원'은 제주시 아라동 제1횡단 도로 변에 위치하여 있다. 제주도 각처에서 수집한 빼어난 괴석들과 수 백 년 묵은 조록나무 뿌리들을 정리, 전시해 놓은 곳이다.
이곳에 전시 또는 보관된 목석들은 모두 제주도산들이다. 이들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제주도에서만 자생 분포하고 있는 아열대성 상록 교목인 '조록 나무'의 고사목근(枯死木根)으로 살아서 몇 백 년, 죽어서 수 백 년의 세월이 응고 했을지도 모를 '조록형상목(形象木)'들이다.
이들의 특성은 물에 뜨지 않고, 보통 나무가 탈 수 있는 熱에 강하며, 목피(木皮)에 깨알같은 비늘이 부분적으로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은 이 조록목을 이용하여 담배통, 머리빛, 갯판 등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들 천연의 형상목 중 20점은 1973년 4월 14일 도 지정 문화재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고, 1977년 12월 27일 제주도 고시 제1069호에 의거, 외부 담장 내외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오현단'은 제주시 이도 1동 동문시장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조 초.중기에 사화와 당쟁에 휩쓸려 유배되었던 충암 김 정, 규암 송 인수, 동계 정 온, 청음 김 상헌, 우암 송 시열의 五賢을 추앙해서 모신 사당이다.
오현단 바로 옆의 '제주 성터'는 도 지정 문화재 기념물 제3호로 고려 숙종 때 축성.현존되어 있는 부분은 이곳에만 일부 남아있다. 이 성터는 이 지방에 많은 화산암을 이용하여 쌓아졌으며 여러 변란으로부터 제주민을 구하였다.
옛 자취가 거의 없어졌으나, 탐라국 때 부터 있어오던 유서 깊은 유적지이다. 또한 성터 안에는 샘이 없어 별도로 중성을 쌓아 급수하도록 하였다.
'용두암'은 제주시 용담동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주 관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해안가에서 용이 울부짖으며 하늘로 오르는 듯한 용머리 형상의 괴석으로서 한라산을 향해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듯이 목을 세우고 있다.
바위 높이가 10여m나 되고 길이도 30여m가 된다. 이 기암은 2만 년 전 용암이 분출하여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용두암에 얽힌 전설은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옛날 용암의 사자가 한라산에 불로초를 캐러 왔다가 노한 산신이 쏜 화살에 맞아 죽으면서 시체의 일부는 바다에 잠기고 머리만 떠 오른 것이 용두암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먼 옛날 하늘을 오르려고 하는 용이 승천하면서 한라산 산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물고 달아나다가 산신령이 노해서 쏜 화살에 맞아 바다로 떨어지면서 몸체는 물 속에 잠기고 머리 부분만이 돌출하여 울부짖는 것이라고 한다.
서쪽 100m쯤에서 파도가 칠 때 보아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만끽할 수 있다.
'용연'은 제주시 용담동 용두암 옆에 위치하고 있다. 용연은 오라동에서 흘러내리는 한천(漢川)의 하류로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인데, 이곳에서 서쪽으로 200m지점에는 용두암이 있다.
용연은 '신용(神龍)이 사는 못'이란 뜻으로 용이 살았을 만큼 거울같이 맑은 수면이 바닷가에 인접해 있고, 병풍같은 절벽에는 상록수가 우거져 있다. 옛날에는 어린애들이 멱을 감기도 했고, 선비들의 배를 타고 주연을 베풀며 시흥을 돋구기도 했으나, 지금은 도시의 둔탁한 합성 세제의 거품물이 흘러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옛 영화만 남아 있을 뿐 관광객들은 찾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사라봉'은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러 체육 시설과 제주시의 온갖 모습을 전망할 수 있는 장소이며, 모충사, 만덕관, 조봉호 기념비, 팔각정 등이 자리잡고 있는 공원이기도 하다.
그 중 의여반수(醫女班首) 김만덕 묘비는, 1794년 제주도 전역에 대흉년이 들어 아사(餓死)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에 김만덕은 巨金을 내놓아 육지에서 米穀을 사들여 도민들을 구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왕(정조)은 김만덕을 궁중에 불러 금강산을 구경시키고 의여반수의 직위를 내렸다.
또한 팔각정은 영주 10경의 하나인 사봉낙조(沙峰落照)-해 질 무렵 빨간 해가 바다로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너머로 들어가는 석양의 광경-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사라봉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정자에 올라서면 제주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며 뒤로는 푸른 바다와 수평선이 보인다.
'삼사석'은 도 지정 문화재 기념물 제4호로 제주시 삼양동 일주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돌담으로 조그맣게 둘러진 그 가운데 비석처럼 생긴 자연석에 큰 화살촉이 박힌 듯한 자국이 남아있는 돌을 세워 놓았다.
태고적 최초의 三神人이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아 혼례를 치르고 살 곳을 정하기 위하여 활을 쏘았다. 그 때 쏜 화살이 지금의 일도, 이도, 삼도동에 떨어지면서 박힌 곳이 지금의 삼사석이라는 것이다.
이런 유래와 전설을 지닌 삼사석이 오랫동안 버려져 오다가 조선조 때 제주의 선비 양종창이 모아서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제주 민속 박물관'은 제주시 삼양동, 제주시내에서 약 3.5K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시에서 동회선으로 약 20분 쯤 가다가 버스에서 내리면 자그마한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이 바로 민속 박물관인데 이곳은 제주에서 태어난 민속 학자로서 거의 일생을 바친 진 성기씨가 평생동안 모은 각종의 민속 자료를 정리.진열해 놓은 곳이다.
지금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민속품은 거의 3천 여 점에 이른다. 제주시내에 자연사 박물관이 생기자, 시내에서 좀 떨어진 이곳에 새워지긴 했지만 그 뒷편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다.
곰솔이 있는 '산천단'은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예로부터 제주 목사가 백록담에 올라가 천제를 올렸으나 산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빠 이를 시행하기 어려울 때에는 이곳에 제단을 만들어 천제를 드렸다고 한다. 그로 말미암아 곰솔의 거목(巨木)들이 지금까지 보존된 것으로 여겨진다.
'곰솔'은 소나무과 식물로 흔히 '해송(海松)' 또는 '흑송'이라고도 한다. 분포 지역은 남부 지방과 본도(本島)의 700고지 이하이다. 이곳에 있는 곰솔들은 모두 8주(?)로써 키가 19-22m, 둘레 3-6m로 수령은 500-6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160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곰솔은 700여 년 정도로 높이 32m, 둘레 6m이다.
'연대'는 도 지정 문화재 기념물 제23호로 제주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대는 옛날 적이 침입하거나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써 방호소(防護所)나 수전소(水戰所)등 군대가 주둔한 곳에 빠르게 연락했던 통신망의 하나이다.
도 일원에는 산을 이용한 봉수대(烽燧臺) 24개소와 해안선 고지대에 설치한 연대 38개소가 있었다. 이곳 연대는 비교적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높이가 4m, 가로가 8m, 세로가 10m로 여기에는 별장(別將) 6인과 망지기 12명이 배치되어 교대로 지키고 있었다.
'중문 관광 단지'는 서귀포시 색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주 관광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제주 중문 관광 단지는 한.소 정상 회담으로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곳이자 천혜의 자연 속에 자리잡은 국제적인 관광 휴양지이다. 중문 관광 단지는 국가 시책 사업으로서 제주도 종합 개발 계획에 의거 한국 관광 공사가 1978년부터 개발을 착수, 2001년까지 국제적인 관광 휴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한라산을 등에 업고, 태평양을 품에 안고, 살아 숨쉬는 아열대의 수림, 강열한 태양과 사철 온화한 날씨, 푸른 바다와 모래 언덕의 조화가 절묘한 천혜의 해수욕장, 이 모든 것들이 중문 관광 단지가 지니고 있는 자연의 보물이다.
이 안에는 박진감 넘치는 돌고래쇼와 물개쇼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로얄 마린 파크(해양 수족관)'를 비롯해, 동양 최대를 자랑하고 지구촌 식물들의 만물상인 관광 식물원 '여미지'-면적 약 3만 4천 평-가 해바라기처럼 펼쳐져 있음은 물론 Hotel, 콘도, 골프장 등 다양한 위락 시설을 갖춘 종합 관광 단지이다. 또한 주변에 천제연 폭포와 중문 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볼거리도 많다.
관광 식물원은 온실 식물 1500여 종, 옥외 식물 1000여 종, 한국식 정원을 시작으로 해서 일본, 이태리, 프랑스 정원등 세계의 정원이 이곳에 집합해 있다.
'천제연'은 서귀포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12Km 떨어진 중문 관광 단지 동쪽에 위치한 3단 폭포이며, '천제연(天帝淵, 하느님의 못)'이란 이름은 옛날 하늘 나라 옥황 상제의 선녀들이 밤중이면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곤 했다고 해서 붙어진 것이라 전해진다.
천제연의 제1단 폭포는 높이가 22m, 폭이 21m로 형성되어 있으며, 제1단 폭포에서 약 20m정도 하류에 제2단 폭포가 있는데 높이가 30m나 된다. 이 폭포 윗쪽으로는 아치형의 '선임교(일명, [칠선녀교])'가 있다. 이 선임교는 오작교의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이 곳에서 천제연 폭포를 보면 더욱 장관이다.
'외돌괴'는 서귀포 시내에서 서쪽 2Km지점에 위치한 삼매봉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다. '바다로 외로이 서 있는 바위'라 하여 '외돌괴'라고 부르고 있다.
외돌괴는 한라산이 폭발시 용암이 분출하여 굳어진 기암인데, 그 형상이 노파의 모습과 닮았다. 그런데 바다에서 외돌괴를 바라보면 장군이 우뚝 서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위의 높이는 20m이고 그 둘레는 10m인데 그 주위에 둘러 쌓인 해안 절벽과의 조화는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외돌괴 너머로 멀리 섬이 보이는데 석양이 넘어갈 때에는 이 주변을 물들이는 노을은 참으로 볼 만 하다. 서귀포에서 가까운 외돌괴 일대는 나무와 해안 절벽이 어우러진 경승지로서 이름나 '남주(南州)의 해금강 (海金剛)'으로 불려지고 있다.
해발 158m의 '삼매봉'은 세개의 봉우리가 매화를 닮았다고 하여 '삼매봉 (三梅峯)'이라 불리우고 있는데 앞에 펼쳐진 외돌괴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처로 애용되고 있다.
이곳은 서귀포 전역을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는 곳인데,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 조용한 휴식과 야경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명소이다. 하지만 가로등 시설이나 방범 순찰이 강화되지 않는 한, 야간에 삼매봉을 오른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정서 함양을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해야 좋은 듯 하다.
제주도의 여러 폭포 중 규모나 경관 면에서 으뜸으로 치는 '천지연 (天地淵) 폭포'는 서귀포시 천지동에 있는데 시내버스가 이 폭포 입구까지 수시로 왕래하며 도보로도 20분밖에 안 걸린다.
웬만해서는 물줄기가 줄지않는 이 곳 폭포의 주변에는 바닷가의 움푹 들어간 곳이어서 천연적으로 명승지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이 폭포의 높이는 22m이며 깊이는 20m나 되며, 폭포가 떨어지는 주변 언덕 기슭의 남대림 지대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는 '담팔수'라는 진귀한 나무가 빽빽히 둘러싸여 더욱 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서귀포시에서 명승지 제1호라고 말할만 한 곳이다.
또한 이곳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27호로 지정 보호되는 '무태장어 (大鰻)' 서식의 북한계선이라는 점에서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곳은 자연의 원형을 보존하는 표본 지역으로써, 이곳의 영구 보존을 위하여 난대림 지대를 문화재 보호법에 의거 천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 보호를 하고 있어 일체의 벌목, 식물 채집, 야생 동물 포획등 자연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패류 화석 지대'는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195호로 서귀포시 서홍동에 위치하여 있으며, 시내버스로 천지연 계곡 입구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약 10분 정도의 해저 관광선 터미널 근방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의 맞은 편 해안가를 보면 집체 만큼한 큰 바위덩이들이 해안가 일대에 나뒹글어져 있다. 바로 이곳이 '제주의 패류 화석 지대'이다.
수 만 년 전 바닷물 밑에 잠겨있던 각종 조개들이 돌로 굳어져 있다가 그것이 융기하여 바위가 되었다가 풍화되어 떨어져 나온 것이다. 이 패류 화석을 자세히 보면 그 당시 패류들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없고, 작은 비석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정방 폭포'는 서귀포시 서귀동, 시내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하여 있으며, 바다로 직접 떨러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로서 높이 23m, 너비 8m, 깊이 5m이며, 무지개를 그리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폭포 양쪽은 해식으로 인한 기형의 해안 절벽이며, 폭포 서쪽에는 화석층이 노출되어 있다. 폭포 서쪽 500m지점에 자연 석굴이 있는데 높이 10m, 길이 10m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서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곳의 전설을 보면, 중국 진시황제의 사자 서불이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에 불로초를 캐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5백 여 명을 거느리고 왔다가 돌아가면서 폭포 서쪽 바위 벼랑에 '서시과차 (徐市過此)'라 새겨놓고 돌아갔다고 한다. 또 이 폭포에서 피리를 불면 바다로 부터 황금빛 용이 나와서 춤을 춘다고 전해진다.
'돈내코'는 5.16도로변에 있으며 서귀포시에서 시내버스로 30분이면 도착하고 승용차로도 입구까지 진입이 가능하다.
'돈내코'란 이름은 '효돈(孝敦)에서 따온 돈(敦)', '내는 제주 방언인 川', '코는 제주 방언으로 입구'라는 '효돈천의 입구'라는 뜻이다.
입구에서의 울창한 숲길을 5분 정도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푸른 물과 큰 바위들이 어우러진 물줄기가 시원하게 남쪽으로 뻗어내리고 또한 이곳은 물맞이 장소로 유명하다. 높은 바위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다보면 신경통이 자연히 치료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름철에는 이 자연이 베푸는 물리 치료를 받기 위해 몰려든 피서객들로 몹시 붐빈다.
'연북정'은 도 지정 유형 문화재 제13호로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바닷가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육지와 내왕하는 문호의 하나였던 조천은 제주에 사는 백성들로 하여금 북쪽 한양에 임금님을 사모하는 정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북방의 나랏님을 그린다'는 이 정자를 '연북정 (戀北亭)'이라 한다.
이 것은 선조 23년(1590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그 후 이곳에 귀양 온 선비들이 이 연북정에 올라 북쪽의 임금을 그리며 살았다고 해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산굼부리(山君付里)'는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263호로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에 위치하여 있다.
산굼부리는 해발 약 400m의 평지에 생긴 구멍(화구)으로서 그 깊이는 약 100m, 밑바닥은 해발 308m이다. 화구의 지름은 600-650m로서 한라산 화구보다 약간 더 크다. 이 화구는 형성 과정에서 가스 이외의 다른 물질을 많이 분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주변의 높이가 낮아진 '마아르 (Maar)'형태로 분류된다. 그래서인지 이 화구 안에는 아무리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또한 이 화구 안에는 420여 종이나 되는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이 산굼부리에는 산돼지, 사슴등이 서식하는 소굴이었다. '산군'이란 '호랑이의 별명'이며, 호랑이등의 맹수가 없었던 제주에는 산돼지가 왕노릇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와전되어 '산굼부리'라고 불려지고 있다.
더불어 이곳은 학술적으로도 동.식물의 보고라도 할 수 있다. 그 둘레가 2Km가 넘는 이 산굼부리는 날아다니는 새들도 그 안으로 들어가면 빠져 나오기 힘들 만큼 움푹히 패인 곳이어서 관광객에게는 더 없는 신비감을 갖도록 한다.
'만장굴'은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98호로 북제주군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하여 있다.
이 만장굴은 높이 3-20m, 폭 3-20m, 길이 13,422m로서 세계 제일의 동굴이다. 화산 폭발때 용암이 흘러서 이루어진 이 용암 동굴은 화산 폭발시의 고온 때문에 용암이 물처런 녹아 내리면서 생기는 용암 수로이다.
폭 13m, 높이 15m나 되는 이 만장굴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그리스 신전의 복도를 지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 안으로 약 600m 들어가면 커다란 거북 바위가 있다.
중간으로 들어설수록 넓은 곳이 있는가 하면 비좁은 용의 몸통이 지나간 듯한 굴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그 사이에 기둥을 받친 듯한 용암 기둥이 우뚝 서 있기도 하다. 이굴을 보면 한라산의 화산 폭발시 그 엄청난 화산 활동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의 동물인 커다란 용이 비틀거리며 지나간 갱도를 연상할 만치 무서움증마저 드는 이곳 만장굴은 그 자체가 관광의 독특한 스릴을 맞보게 해 준다.
현재는 용암 기둥이 있는 약 2Km지점까지만 공개되어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굴 속이 시원하므로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김녕사굴'은 만장굴과 같이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되어 있고, 만장굴로 가는 아스팔트 길에 들어서서 800m가량 올라가다보면 왼쪽 숲 속에 보인다.
높이 13m, 폭 10m, 길이 600m로 그 규모는 만장굴에 비해 소규모이긴 하지만 이 굴을 둘러싼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 이 뱀굴에는 그 몸통의 크기가 다섯 섬들이의 항아리 만큼이나 된 구렁이가 살고 있었다. 이 구렁이 때문에 많은 재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는데 반드시 15세의 처녀를 희생물로 바쳤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제앙이 닥쳐왔다. 그러나 서린(徐燐) 판관은 이 구렁이를 죽이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10여 일 만에 숨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비자림'은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182-2호로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30Km되는 곳인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에 위치하여 있으며, 평대리에서 '송당리'행 버스로 입구까지 갈 수 있고, 3백-4백 년 생의 비자나무 3천 여 그루가 자생하는 단일 수종의 군락림으로는 세계 제일의 천연 식물원이며, 또한 난초과의 푸른 콩란의 줄기와 이끼들이 두껍게 덮여 있어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하기도 한다.
비자나무과의 상록 침엽 교목인 비자나무는 수피가 회백색이며,북위 35o 이남에서만 자라는데 4월부터 향기짙은 꽃이 가지마다 피어나고 추석 무렵부터 가을비가 오고나면 적자색을 띤 비자 열매가 뚝뚝 떨어진다.
이 비자 열매는 기름이 많고 맛이 떫고 등유, 도료(塗料), 구충제로 사용하고, 또한 이 비자나무는 향기가 그윽하여 목재 가구로서 인기가 대단하다.
'성산 일출봉'은 도 지정 기념물 제36호로 남제주군 성산읍 성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한라산 360여개의 자화산 중 유일하게 바다속에서 분출하여 굳어진 암산으로 높이 182m의 석봉으로 성산 반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분화구는 129,943m2나 되는 분지 초원을 이루고 있는데 그 둘레에 우뚝 솟은 99개의 기암의 봉우리는 매우 아름답다.
성산 일출봉의 동쪽, 서쪽, 남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기 때문에 새들도 앉지 못한다고 하며, 북쪽 부분만 비교적 완만하게 흘러내려 교묘하게 본도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중간마다 우뚝 솟고 구멍이 뚫린 기암 괴석들이 여기저기 우뚝우뚝 서 있는데 그 사이를 거쳐 정상에 오르면 일시에 복판이 깨진 듯한 큰 쟁반같은 분화구가 펼쳐진다. 정상은 8만 여 평의 광활한 분화구로, 이 분화구를 에워싸고 있는 99개의 작은 석봉들은 마치 일출봉을 호위하는 장수들 같다
특히 동쪽 수평선에 떠오르는 일출 광경-성산일출(城山日出)-은 동해의 넘실거리는 물결과 더불어 장관이다. 하지만 변덕이 심한 제주의 날씨는 이 장대한 아침 해돋이 광경을 그리 쉽게 보여주질 않는다. 그야말로 행운이 있는 사람만이 이 해돋이 장관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혼인지(婚姻池)'는 도 지정 기념물 제17호로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인, 성산에서 표선쪽으로 약 5Km지점에 위치해 있다.
혼인지는 제주 시조인 고.량.부 삼을라가 온평리 바닷가 화성개로 상륙한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렸다는 신비하고도 낭만적인 전설이 전해지는 거울처럼 맑고 잔잔한 수면을 이루는 작은 못이 있으며 주변에는 인가가 없어 조용한 대신 천연 상록수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성읍 민속 마을(정의 고을)'은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해 있다.
이 정의 고을은 제주도 동부 지역을 관할하는 정의현청이 있던 곳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 팽나무 등을 볼 수 있고, 민속 가옥을 새로이 단장해 놓고 있어서 제주의 옛 생활 풍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총총이 들어선 고을의 집집마다 가급적이면 제주의 풍속과 풍물을 그대로 재현시켜 놓았기 때문에 제주 관광의 진수를 이곳에서는 맛볼 수 있다. 처음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그 신기한 풍물 앞에서 호기심을 못이겨 물허벅도 져보고 지게도 져보면서 추억의 사진 촬영에 넋을 잃는다는 곳이다.
이곳의 역사를 보면, 1300년 경으로 마을이 있었던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1423년(세종 25년) 정의현정이 세워진 이래, 1914년 군현제가 폐지될때까지 500여 년 간 군정치소였고, 옛 이름은 {정의 고을}이며, 1961년 지금의 성읍 1리로 개편되어 싱, 히, 등, 시 4개동에 303가구 1395명의 주민들이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제주 민속촌'은 남제주군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해 있으며, 인간의 힘으로 이룩한 놀이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즐긴다기보다는 보는 쪽에 많이 비중을 둔 곳이다. 이 민속촌은 제주 민속 개발 주식회사에서 14만 여 평의 광활한 대지 위에 사라져가는 제주의 민가, 풍물, 풍속등을 재현시켜 놓아 보기좋게 조성한 것이다.
이곳에는 19세기의 제주도를 한 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전통 취락 단지인 산촌, 중산간촌, 어촌, 어구 전시장, 야외 전시장, 장터, 무속 신앙 지구를 비롯하여 조선 왕조 시대의 목사청, 장청, 향청등의 지방 관아와 귀양 온 유배 죄인들의 배소 (配所)가 있다. 또한 전통 민속놀이 공연장과 민요, 전설, 방언 등의 대표적인 무형 문화재를 보존.전승하는 무영문화의 집들이 곳곳에 옛 멋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오랜 연구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복원된 것들이다. 이 가운데에는 2-3백년 전의 건물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도 많다. 이곳에서 특히 눈을 끄는 것은 관가의 드넓은 대청마루 앞에 놓인 형틀이나 죄인을 가두던 옥사, 어촌의 어구 전시장 등일 것이다.
수 만 평의 대지 위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이곳 민속촌은 한바퀴를 돌아나오는 데는 꽤 시간을 잡아야 한다.
'광령계곡'은 북제주군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데 시내버스 '고성'편으로 제주시에서 고성쪽으로 20분 가량 가면 광령교가 나온다. 이 곳이 바로 '광령계곡(일명,[무수천])'이라 한다.
이 계곡은 제주시와 북제주군의 경계를 이루며, 발원지는 한라산 윗세 오름 서북 벽에서 시작되어 다른 계곡보다 발원지가 가장 긴 계곡이며, 길이는 무려 4Km에 이르고 나비는 약 10-20m이며 현무암으로 형성되어 있고, 주상절리(柱狀節理)와 판상절리(板狀節理)가 잘 발달되어 절벽과 맑은 물과 맑은 하늘로 유명한 경승지이다.
이곳은 사람들의 손이 아직 덜 닿은 곳으로서, 광령교 아랫쪽이 윗쪽보다 경관이 빼어난데, 아랫쪽 입구로 내려가면 웅장한 계곡이 펼쳐진다. 계곡 양쪽의 울창한 나무 숲이 한 낮의 강한 더위를 막고 그늘을 만들어주어 여름이면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고, 곳곳에 산저한 넓고 평평한 바위들은 식사를 하고 담소를 즐기기에 좋은 조건이다. 아울러 시내에서 가깝고 가족 단위 피서에 적합하다.
'항파두리'는 도 지정 기념물 제28호로 북제주군 애월읍 고성리에 있으며, 제주시에서 '고성'행 버스를 타고 25분 쯤 가다보면 항파두리가 보인다. 차에서 내려 아스팔트 위쪽으로 10분 가량 걸어 올라가면 양쪽에 큰 토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토성은 고려 시대에 김 통정 장군이 이끄는 삼별초군의 몽고 침략군에 항거했던 항몽 유적지로 항파두성은 15리(약 6Km)에 걸쳐 토성으로 외성을 쌓고 그 안에 다시 석상으로 내성을 쌓아 이중으로 성곽을 구축하여 각종 방어 시설은 물론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요새였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침식되어 원형은 잃었으나, 당시의 우람한 성터의 일부가 현대인의 손질을 거쳐 일부 복구되어 있고, 성곽구축이라는 것은 대들보 받침돌인 돌쩌귀만이 남아 있다. 궁궐과 관아는 불에 타다 남은 재조차 없다.
이곳의 항파두리 전시관이 있는데, 몽고의 침략과 그에 대항하는 고려인, 강화 협정, 삼별초의 죽음의 항쟁과 제주인의 항쟁이 그림과 함께 역사 이야기가 전개되어 있다.
'신천지 미술관'은 북제주군 애월읍 광령 2리, 시내 중심가에서 서부 산업 도로 버스를 타고 2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에게 신선한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1987년 4월 25일에 개관했다.
신천지 미술관은 3만 여 평의 대지위에 250여 점의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야외 전시장, 회화 100여 점과 조각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 실내 전시장과 각종 부대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이곳의 명칭은 미래 지향적인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여 '신천지'라는 고유 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일반 유원지와는 다른 문화의 장소이기 때문에 미술 문화를 향유하는 문화인으로서의 태도를 가지고 공중도덕과 질서를 지키면서 작품을 손으로 만져 훼손시키는 일 등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신천지 미술관은 제주도민은 물론이고 제주를 찾는 세계인들 모두가 다녀가는 미술 문화 관광의 명소를 상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협조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빌레못 동굴'은 천연 기념물 제342호로 북제주군 애월읍 어음 2리에서 동남쪽으로 1.4Km에 위치하고 있다.
60여 개의 가지굴까지 합쳐 11,749m의 빌레못 동굴은 단일 동굴로서는 세계 최장이며, 옛부터 '어음굴(빌레못 동굴)에 고양이가 들어가면 한림이나 협재에서 나온다.'라는 전설이 전해져서 아무도 굴 끝을 본 사람이 없는 긴 굴이다.
1973년에 발견된 동굴로 이 동굴은 구석기인의 주거지였다는 사실과 동굴 입구에서 약 900m 지점에 큰 곰, 붉은 사슴, 노루 등의 뼈 화석과 기타 구석기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동굴의 발견으로 이 어음리 일대가 제주도에서 최고 최초의 선사인이 살았던 주거지로 밝혀졌던 것이다.
'명월대(明月臺)'는 도 지정 기념물 제7호로 제주도에서 납읍리와 함께 양반촌으로 알려진 북제주군 한림읍 명월리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지는 옛날 고려 원종때 삼별초군의 김통정 장군이 제주를 지키기 위해 수군 만호(萬戶)를 두어 제주 북동부에 해안 경계를 담당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옛 명월 성터가 남아 있다.
명월대는 원형의 축대로써 옆으로는 맑고 고운 시냇물을 끼고 있으며 수십 그루의 팽나무가 울창하여 한 여름 찌는 더위를 식히기에는 좋은 곳이다.
'한림 공원(아열대 식물원)'은 북제주군 한림읍 협재리에 위치하여 있는데 서회선 일주 도로 버스로 바로 앞에 도착할 수 있다. 1972년 공원이 되기 전에는 이 일대가 모래밭이었다. 이곳에 많은 흙을 깔고 토양을 객토한 후에 각종 열대 수목의 종사를 파종하여 현재의 한림공원이 된 것이다.
이 한림공원에는 와싱토니아, 카나리엔시스 등의 아열대 식물군의 하와이를 연상시키며, 돌담 틈에 자생하는 선인장은 이 지역 특유의 식물로서 남국의 정취를 물씬 자아내고 있다.
'협재.쌍용굴(挾才.雙龍窟)'은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236호로 북제주군 한림읍 협재리의 한림공원 안에 위치하여 있다.
협재.쌍용굴은 종유 동굴과 용암 동굴이 혼합된 2차원의 동굴로서 천정, 바닥, 벽면의 다양한 변화 과정이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길이 109m, 높이 6m, 폭 12m의 협재굴은 약 250만 년 전에 한라산 일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성된 용암 동굴로서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동굴이다. 왜냐하면 동굴 위를 덮고 있는 석회질의 흰모래가 빗물 등에 용해되어 이온 상태의 석회수로 변하면서 동굴 내부까지 스며들어 새까만 용암 동굴이 황금빛 종유석(鐘乳石)과 석순(石筍)을 만들면서 계속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종유석은 100년에 1Cm정도씩 자란다고 한다.
이 협재굴을 빠져나가면 곧 쌍용굴 입구에 다다른다. 이 굴 입구의 천정은 용의 무늬처럼 아름답다. 마치 용두마리가 굴 내부에 있다가 빠져나간 듯한 형체가 뚜렷이 아로새겨져 있고, 내부로 이어져 있는 천정의 이중굴이 그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절부암'은 도 지정 기념물 제9호로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에 위치하여 있으며, 서회선 완행 버스로 용수리에 하차하여 도보로 10분정도 걸으면 절부암이 보인다.
이곳의 전설로서는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자, 갑자기 날씨가 변하여 광풍이 몰아쳐서 남편을 잃었다. 젊은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 죽은 남편의 시체라도 떠오르기를 하늘에 빌었으나, 끝내 찾을 수가 없어서 배우 실망하여 동네 앞 바닷가에 있는 큰 팽나무에 목을 메고 말았다. 그 후 그 자리 밑에 남편의 시체가 밀려왔다.
이리하여 이곳 팽나무에 목을 매어 죽은 곳을 '절부암(節婦岩)'이라 이름짓고 해마다 묘제를 지내곤 했다.
'수월봉'은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에 위치하여 있으며, 서회선 직.완행 버스로 고산리에 하차 후 도보로 약 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수월봉은 해발 77m높이의 제주의 가장 서부 지역의 해안가에 있는 나지막한 봉우리인데, 조그마한 정자가 서 있어서 서쪽 바다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맑은 날 앞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면서 떨어지는 낙조의 모습은 장관이다.
그 정자 바로 밑 바다쪽 절벽은 깎아지른 듯한 아름다운 모습의 단애로서 행렬을 이루며 동쪽으로 약 2Km가량 이어진다.
벼랑 곳곳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 흐르는 것을 '녹고물'이라 부르며, 여기에는 병든 홀어머니의 약을 구하기 위해 오갈피나무를 구하려다 끝내 숨진 '수월남매'의 슬픈 전설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대정 성터'는 도 지정 기념물 제12호로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에 위치해 있다.
태종 17년(1417년)에 대정 현감이 성을 쌓기 시작하여, 인성, 보성, 안성에 걸치는 지역을 돌로 쌓았는데 높이가 17척 4촌(약 5.3m)에 이르고, 성둘레는 4,890척(약 1.5Km) 정도이며 동서남북 각각에 성문을 내었으나 후에 북문을 폐쇄하였다고 한다.
성벽 앞에는 돌하르방이 서 있는데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 그 성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으나 이곳 안성리에는 성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김정희 유적지'는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에 위치하여 있으며, 조선시대 현종 6년인 1840년에 이곳으로 유배되어 왔던 추사 김정희의 유적지로, 당시 그가 귀양살이를 했던 이곳에는 유허비가 서 있고, 그 옆엔 조그만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으며 그 안에 그의 유품들이 몇 점 전시되어 있다.
그가 9년 동안 머물렀던 초가집도 옛 모습 그대로 재현시켜 놓았는데, 이곳에서 그는 그 유명한 '세한도'를 그렸으며 마을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송악산'은 남제주군 모슬포에서 약 3.5Km, 산방산에서 마라도가 있는 쪽을 바라보면 산이 하나 보이는데, 그 산이 바로 송악산이다.
모슬포에서 송악산이 있는 '산이수동(山里水童)'까지는 버스를 이용하면 10분, 걸어서 간다면 대략 40분 쯤 소요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일대에는 교통이 좀 불편해서 관광객들이 잘 들리지 않는 곳이지만 수십척의 낭떠러지 해안과 측화산들이 솟아있어 오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또한 송악산은 작은 봉우리들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천태만상을 이루고 있어 옛부터 이곳에 신기루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송악산은 옛날에 귀양을 온 선비들의 휴양지로도 유명했던 곳이며 귀양살이 왔던 선비들이 개성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달래듯이 개성의 '송악산'을 그대로 옮겨붙인 이름이다.
송악산을 비롯한 산이수동 지역에는 청동기 시대의 무문토기도 많이 발견된 곳이며, 또한 패총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산의 서쪽에는 '여기동(女妓洞)'이라는 곳이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도승'이란 기생이 춤을 추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하는 설화가 있다. 또한 이곳에서 풍류객들이 탐승하여 북과 피리를 올릴 때는 바다 속에서 큰 거북이 나와서 춤을 추다가 잠수하는 곳이라고도 전한다.
해안가에 내려오면 옛 일본군이 파 놓은 동굴이 여러 곳에 뚫려 있다.
'산방산과 산방굴사'는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 제주발 모슬포행 버스로 40분 가량 서부 산업 도로를 타고가다 보면 우뚝 솟아있는 산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산방산이다.
휴화산인 산방산은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395m로서 조면실 안심암에 속하는 둥근형의 바위산이다.
옛날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슴을 쏜다는 것이 잘못하여 그만 옥황상제의 궁둥이를 맞추어 버렸다. 얼마나 아팠던지 화가 난 옥황상제가 손에 잡힌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집어던진 것이 이곳에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고 하며 그 봉우리가 뽑힌 곳이 움푹 패여 오늘의 백록담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산의 둘레가 백록담 둘레와 비슷하여 이런 전설이 나온 것 같다.
산방산 중턱에 있는 동굴은 해식 천연 동굴로 예로부터 부처를 모시고 불공을 드렸다. 이 굴에는 옛날 산방덕이라는 여인이 정절을 지키다가다 바위가 되어 흘리는 눈물이라는 전설어린 석간수가 천정에서 떨어지고 있다.
'제주 조각 공원'은 남제주군 안덕면 덕수리, 서부 산업 도로 버스로 하차 후 도보 5분 거리에 위치, 산방산 우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13만 평의 들판에 미술 조각품들이 띄엄띄엄 전시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새로운 관광 명소로서 특히 미술 애호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용머리 해안'은 산방산 앞에서 도보 10분, 바닷가 쪽으로 용의 머리처럼 뻗쳐 있는 언덕 아래쪽이 침식되어 이루어진 해안 절경 지대이다. 수 천 만 년 동안 쌓이고 쌓여 지각의 표본실처럼 층층이 겹쳐진 사암으로 이루어진 해안 절벽을 모진 파도가 때려서 만들어 놓은 오묘한 해안 절경이다.
이곳은 최근에 와서 관광 안내인들에 의해서 주요 안내 코스의 하나로 부각된 곳인데 그만큼 제주 관광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 자원인 것이다.
'안덕 계곡'은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에서 동쪽으로 2Km 지점인 감산리에 울창한 숲과 언덕 사이로 흘러내려가는 계곡을 볼 수 있다.
안덕 계곡은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으로서 조용하고 쾌적하여 가족 단위, 팀 단위의 여행객들에게 좋다.
항상 맑은 시냇물이 흘러내리고 절벽으로 굽이쳐진 양쪽 암벽에는 구실잣 밤나무 등의 상록수-국가 지정 문하재 천연 기념물 제182-6호-가 울창하여 한여름에도 서늘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맑는 용천수가 솟아나오는 곳이 많고, 천상의 바위들은 물에 닳아 한층 자태가 곱다. 계곡 바닥에 깔린 돌들이 장방형(長方形)으로 넓고 편편하며 미끈한 비스켓 모양인 것은 연중 쉼없이 흐르는 물로 끊임없이 침식 작용이 반복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한라산'은 1970년 3월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라산(漢拏山)의 속뜻을 풀어보면, '한(漢)'은 '천하.은하'를 뜻하고, '나(拏)'는 '손을 들어 잡는다'는 뜻으로 결국은 '손을 들어 은하수를 잡을 수 있는 산'이란 뜻이다. 그 만큼 한라산은 높고 높은 만큼 하늘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한라산 정상에 움푹 패인 분화구 백록담은 진달래와 녹음과 단풍과 설경이 사라사철 앞다투어 그 아름다운을 보여줄 뿐 만 아니라 하얀 사슴이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의 최고봉인 한라산은 외형적인 곡선미의 완만함으로 여성적인 산이라 하여 많은 등산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일단 산에 들어서면 한라산은 완전히 남성-무적의 장사로 돌변해 버린다. 즉, 험난한 산길, 사람을 날려버릴 듯한 산정의 바람,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변화,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개와 폭설, 폭풍우 등이 그러하다. 특히 한라산의 기상 변화는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한라산 정상에 위치한 둘레 3Km, 깊이 140m나 되는 둥근 화구에는 '백록담'이라는 연못이 있다. 사시사철을 통하여 담수의 양은 적지만 옛날 등산객이 드물었던 시절에는 물이 전혀 오염이 되지 않은 천연 생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시사철 올라오는 등산객으로 인해 수량은 적어지고 물의 맑음도 옛만 못하다. 이곳 백록담에 쌓여 있는 눈은 4월까지도 녹지 않아 있다. 그래서 '녹담 만설(鹿潭晩雪)'이라는 영주 10경의 하나이다.
옛날 백록담에는 매년 복(伏)날이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멱을 감았다. 이를 알게 된 한라산 신선은 산 북쪽 밑에 있는 '방선문'으로 내려가 선녀들이 빨리 멱을 감고 하늘로 올라가기를 기다리곤 하였는데, 어느 복날에는 미처 방선문을 내려가지 못한 신선은 선녀들이 옷 벗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 황홀한 모습에 정신이 빠져 정신을 잃고 서있는 신선을 본 선녀들은 기겁하면서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이를 일러바쳤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옥황상제는 격노하여 한라산 신선을 하얀 사슴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사슴이 된 한라산 신선은 그 후 매년 복날이 되면 백록담에 나타나 슬피 울부짖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백록담'이라는 이름도 이곳이 '흰 사슴이 나타나는 못'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것이다.
'아흔아홉골(九九谷)'은 제주시에서 제2횡단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5Km쯤 올라가면 어승생을 눈 앞에 두고 기암과 계곡이 나타난다. 이곳은 '넓고 좁은 골이 매우 많다'하여 '아흔아홉골'이라 한다.
아흔아홉골은 해발 1100m의 어승생 계곡에 자리한 기암 계곡으로, 무수한 나한을 닮은 기암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있어, 마치 금강산의 만물상 (萬物相)을 방불케 하며, 가을 한때 오색 찬란한 단풍이 물들어지면 지나가는 길손의 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서쪽 비탈길에는 천왕사가 있다. 산 남쪽으로 500m정도 오르면 폭포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이 마치 병풍의 그림을 보는 양, 풍류객이면 여기에서 시 한수를 지으며 산천의 아름다움을 구가(謳歌)할 만한 절경이다.
이 지명과 관련된 전설은 옛날 제주 사람들의 한계 의식을 잘 보여준다. 골짜기가 하나만 더 있어서 백골만 됐어도 제주도에는 호랑이나 사자같은 맹수가 있을텐데.... 하나가 모자라 제주에는 맹수가 없고 더불어 일국의 왕도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라 한다.
'한라영송'은 제2횡단도로 천백고지와 어리목 사이 즉, 천백고지에서 약 1.5Km밑에 위치하여 있다. 이곳은 행정 구역상 북제주군 애월읍에 속한다.
이 영송은 도로변에 있고 제주도 지형을 닮아서, 늦었지만 1982년부터 2중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다. 이 영송은 제2횡단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다. 어리목을 지나 한참 가다보면 왼쪽에 통나무 다리가 보이고 그 다리 안에 표지판이 보이며 그 앞에 '한라영송'이 보인다.
'한라영송'은 높이 1m, 둘레 20m, 수령이 100년을 넘은 적송(赤松)으로 한라산 산신이 무척 아끼던 사슴이 죽은 자리에 소나무가 자랐는데 한라산 산신이 너무 쓰다듬어 옆으로만 자랐다. 이 나무는 '신령이 깃들었다'하여 '한라영송(漢拏靈松)' 즉, '눈(누운) 사슴 소낭'이라 불리운다.
'영실(靈室)과 오백나한(영주 십경의 하나)'은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에 영실이라는 명승지가 있다.
그곳엔 수 많은 기암 괴석들이 하늘 높이 솟아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데, 그 바위들을 가리켜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 부른다.
옛날, 어떤 어머니가 아들 오백 형제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식구들은 많고 마침 흉년이 들어, 하루는 오백 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서 먹을 죽을 끊이다가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런줄도 모르고 오백 형제들이 돌아와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맨 막내 동생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졌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했다. 동생은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이 틀림없음을 알았다. 그제야 이런 사실을 안 오백 형제들은 한없이 통탄하다가 그 자리에서 모두 바위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한라산 '영실'에는 오백 장군들의 몸이 서 있고, 목석원 '영실'에는 한(恨) 많은 오백 장군의 영들이 모여 살고 있다.
'추자도'는 북제주군 추자면, 제주에서 목표 고속훼리로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추자도행 헬기로는 약 20분이 소요된다.
38개의 무인도와 4개의 유인도로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이 추자군도는 어업의 중심지이며 낚시터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옛날 고려 말엽 탐라에서 저항 중이던 원나라군을 토벌하기 위해 제주를 향하던 최영 장군이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갔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 추자도 항구 뒤쪽 산 중턱엔 최영 장군의 사당이 세워졌다.
현재 4개의 유인도 사이에 다리가 놓여 섬과 섬을 펀리하게 연결하고 있다.
'비양도'는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20여Km 떨어져 있는 북제주군 한림읍 바로 앞바다에 위치하여 있으며, 왕복선으로 약 15분이면 갈 수 있다.
이 섬의 중앙에 솟아있는 봉우리 정상에는 2개의 분화구가 분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 한 복판에 분화구가 봉우리로 이루어진 것은 한라산에서 큰 봉우리가 분화.폭발하면서 떨어져 날아와 생겼다고도 한다. 그래서 이름도 '날아와서 생긴 섬'이란 뜻으로 '비양도(飛揚島)'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비양도가 중국에서 내려왔다는 설도 있다.
비양도의 북쪽 바닷가에는 '애기 업은 돌'이라고 불리는 여인의 형상을 닮은 바위도 있다.
이곳에서는 어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처음 이 섬에 있는 주민들은 음료수 때문에 곤란을 겪었으나, 바다 밑으로 수도관을 뭍어 식수를 해결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해저 수도인 것이다.
'차귀도(무인도)'는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절부암 있는 곳-에 위치하여 있는데 서회선 직.완행 버스로 고산에 하차, 고산에서 지구내 약 3Km로 도보 30분 소요, 차귀도로 가는 정기 배편은 없으며 민간 선박이 수시로 왕래하고 있다.
옛날 중국의 '호종단(胡宗旦)'이라는 사람이 중국조정에서 제주의 9혈을 찾아 자르라는 명을 받고 제주도에 왔다가, 실패하여 돌아가는 호종단을 때려 잡은 섬이라 하여 '차귀도(遮歸島)'라는 명칭이 생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차귀도에 우뚝 서 있는 장군 바위는 영실에 있던 오백 장군 중 막내가 떨어져 나와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라산의 오백 장군석을 실지로는 499개 뿐이라고 한다.
'가파도'는 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약 5Km, 여객선으로 약 30분이면 마라도의 5-6배 면적을 지닌 가파도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 섬은 바다위에 뜬 평원지로 보인다.
가파도에는 19세기 중엽 전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은 목마장이였으나 지금은 약 1천 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배편은 하루 2번씩 왕래하고, 바람이 없어야 정상 운항되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 름바위'로 불리우게 된 것은, '누군가 이 바위에 오르기만 하면, 뒤이어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불어 닥친다'고 해서 불려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바위에 올라가거나 걸터앉지도 못하도록 신성시하고 있다.
'마라도'는 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에서 약 50분이면 갈 수 있다. 마라도는 모슬포에 하차하여 도보로 10분 정도 걸으면 마라도 객선 터미날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마라도행 배편을 타면 갈 수 있다.
한국의 최남단에 있는 섬으로, 예로부터 바람이 많고 물이 귀하고 거주하는 주민이 몇 명 안되는 곳으로 알려져 왔으나, 현재 20여 가옥이 있다.
남쪽의 망망대해위에 고구마처럼 길다랗게 생긴 모양으로 마라도에는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잔디만이 자랄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뱀과 개구리가 없다. 옛날에는 목축업을 했으나 오늘날에는 해조류 또는 작은 어선에 의지하는 어업으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이곳이지만 집집마다 물탱크 시설이 있어 그리 문제되지 않고, 연료도 집집마다 가스렌지 시설이 되어 있어서 별 문제없이 갈 수 있다.
마라도 여행시 유의할 점은 먼저 일기 예보를 잘 들을 것, 숙박 예약을 재확인 할 것과 배편은 하루 1회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한나절 섬-짙푸른 물감위에 떠 있는- 주위를 돌아보면 마치 꿈나라에 온 듯, 착각에 빠져들 것이다.
'범섬(무인도)'은 서귀포시 삼매봉 공원 아래 있는 외돌괴의 오른쪽 법환동에서 바로 건너다 보이는 섬이 범섬이다. 섬 모양이 마치 '웅크리고 앉은 범'같이 사나운 티가 있어서 붙어진 이름인 것 같다. 이 섬에는 코구멍처럼 생긴 '대문바위'도 있다.
범섬은 무인도로 해안은 절벽을 이루고 있으나 섬 가운데는 평평하다. 이 범섬은 고려 공민왕 때 이곳을 침략하였던 원나라의 잔류 세력이 이곳 섬으로 건너와 마지막 저항을 하던 곳이었다. 그 잔류 세력을 최영 장군이 전멸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다.
'문섬(무인도)'은 서귀포시 삼매봉 공원 아래 있는 외돌괴에서 보면 앞바다 왼쪽에 손에 잡힐 듯이 떠 있는 섬이 '문섬'이다. 이 섬에는 예로부터 모기가 많다고 하여 모기 '문(蚊)'자를 써서 '문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전설에 위하면 옛날 어느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는데 실수로 옥황상제의 배를 활집으로 건드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크게 노한 옥황상제는 한라산 봉우리를 움켜쥐고 집어 던졌던 것인데 그것이 흩어져 서귀포 앞바다의 문섬, 섭섬이 되었다고 전한다.
'새섬'은 서귀포항의 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길다란 섬이다.
밀물 때에는 방파제 끝에서 10m사이에 물이 들어오지만 썰물 때는 바지를 걷고 건너갈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된다.
제주 해저 관광선은 이 새섬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현란한 해저 풍경을 유람객에게 제공해 주기도 한다.
'섭섬(무인도)'은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약 300m지점에 있는 손에 잡힐 듯한, 푸른 숲으로 덮여있는 우뚝한 섬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화살을 만드는 대가 많이 자랐다고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 없고, 대신 여러가지 식물군이 자생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놓은 섬이다.
이곳에서 자생하는 식물은 10여 종의 상록수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온대성 상록 밀림 지대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섬은 파초일엽 자생지로써 유명한데 이 '파초일엽'은 아열대성 상록.양치류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1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우도'는 제주도의 부속도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북제주군 성산읍 성산항에서 15분이면 갈 수 있다. 우도의 면적은 약 6.7평방Km, 해안선의 길이는 약 17Km이다. 해안선을 걸어서 일주하면 약 5시간 정도 걸린다. 배편은 하루에 3회이다.
이 섬이 '우도(牛島)'라고 불리는 까닭은 사방의 길이가 4Km에 걸쳐져 있는 이 섬의 모습이 마치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 같기도 하고, 소가 드러누운 와우형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남단에는 높이 132m의 '섬머리'가 있다. 그 외는 대부분은 나지막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섬에 처음으로 우마가 방목된 것은 숙종 24년(1698년)이며, 헌종 10년(1844년)에 김석인(金釋隣)이 섬에 처음 들어와 개척되었다.
또한 이 섬 남쪽에는 큰 동굴이 있다. 이 동굴에 햇빛이 들어와 바다를 비추면 그 빛이 다시 암굴의 천장에 반사, 둥근달이 떠 오르는 듯 한 정경을 이룬다. '주간명월'이라는 이 동굴의 정경은 예로부터 영주 12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다.
이 주간 명월을 구경하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볼 수 있고, 맑은 날 12시 전.후에 이 광경을 볼 수 있다.
우도에는 영주 12경인 주간명월과 더불어 우도 8경이라는 비경이 있다.
'토끼섬'은 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 동회선 완행 버스로 하도까지 1시간 여 소요되며 하도리에서 토끼섬까지는 1Km이다.
'토끼섬'이란 이름은 한여름 하얀 문주란 꽃이 온 섬을 뒤덮을 때 그 모양이 토끼 같아서 붙어진 이름으로 이 섬은 960여 평의 면적에 흰 백사장과 10여m 높이의 현무암 동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조시에는 걸어갈 수도 있고 만조시에는 백사장과 동산이 분리되고 또한 육지부와도 분리된다.
이 섬에는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문주란이 자생하고 있는데 문주란-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 기념물 제19호-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상록 다년생초로서 높이 60-70Cm까지 자란다. 한여름인 7-8월이 되면 백설같이 하얀 꽃으로 온 섬을 하얗게 뒤덮으며 은은한 향기 또한 그지없이 좋다.
그 옛날 멀리 아프리카 남단에서 파도를 타고 온 씨앗이 장착하여 뿌리를 내렸는지도 모른다는 이곳 토끼섬 문주란 자생지는 천연 기념물 제182-3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문주란은 더운 열대 지방의 식물로 따뜻한 해안의 모래에서만 서식하며, 해독 효과가 있다.
위의 관광지를 전부 구경하려면 약 열흘 정도는 걸린다. 관광지의 곳곳을 세세히 구경하면서 전설과 역사적 의의를 깊이 생각하면서 경치를 구경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