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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2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예수께서 앞장 서서 가시는데, 제자들은 놀랐으며, 뒤따라가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곁에 불러 놓으시고,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일러주시기 시작하셨다.
10:33 "보아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들은 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10:34 그리고 이방 사람들은 인자를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다."
10:35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10: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10:3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10: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10:39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10:40 그러나 내 오른쪽과 내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10:41 그런데 열 제자가 이것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였다.
10:4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10:43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10:44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10: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 주해
1. 막 8:27-10:45에서, 세 번의 수난예고는 마가복음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이다.
1) 처음 수난 예고에 베드로가 저항하자 자기 부인의 제자도를 가르치시고, 두 번째 수난 예고에도 “누가 크냐”며 다투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제자도를 가르치셨다.
2)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 부자에게 모든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 부자는 근심하다가 주님을 떠난다.
3) 예수님은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단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2. 베드로가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매우 칭찬하신다.
1)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토지를 버린 자는 이 세상에서 백배나 받고 내세에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는다.
2) 단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헌신이 교만과 자랑, 자기주장의지가 되면 죄의 종이 되어 꼴찌가 됨을 경고하신다.
3. 오늘 본문의 세 번째 수난예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주어진다.
막 10:33 "보아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들은 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막 10:34 그리고 이방 사람들은 인자를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다."
1)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넘겨지다”(헬, 파라디도미)라는 수동태는 하나님의 행위임을 말한다. 두 번째 수난 때도 “넘겨져 죽임을 당한다”고 하셨다.
2) 세 번째 수난 예고는 예수님에게 일어날 수난을 자세하게 밝힌다.
3) 인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대상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고, 그들은 이방인에게 예수님을 넘겨주고, 이방 사람들은 인자를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 후에 살아난다.
4.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세 번째 말씀하시나 제자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1) 그들은 마치 예수님이 수난을 전혀 이야기 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2) 이번에는 베드로처럼 항변하지도 않고, 묻기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3)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는데, 세 번째 제자들의 반응은 저항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4) 두 번의 수난 예고 때도 이해 못하는 제자들에게 제자도를 가르치신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제자들의 몰이해와 무관심이다.
5. 사람은 자기중심성이 있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1) 그래서 제자들은 아직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여 깨닫지를 못한다.
2) 제자들이 보고 싶은 것은 예수님이 왕이 되고, 자신들은 예수님 덕을 보아 덩달아 높아지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3) 그러니 예수님이 엄청난 표적을 행하심으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추종하는 것만 보인다. 이렇게 잘 나가는 분위기와 형통을 바라는 상태에서 수난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은 커져만 간다.
6.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이 영광을 받을 때에, 높은 자리를 청탁한다.
막 10:35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막 10: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막 10:3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1)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해 달라고 구한다.
- 그들의 요구는 예수님이 영광을 받을 때, 즉 왕이 되거나 메시야로 추대될 때,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하여 달라는 것이다.
2) 누가 크냐고 다툰 후에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여전히 자신들이 제자들 중에서 가장 큰 자가 되어야 한다고 예수님께 요구한다.
3) 섬기는 자가 큰 자요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예수님께 직접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뻔뻔하던지 어리석던지 둘 중 하나다.
7.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구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하신다(38절).
1) 자기도취와 성공 신화에 빠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받을 고난과 죽음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데 “할 수 있다”라고 대답한다.
2)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는다”하신다.
- 야고보는 사도들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고, 요한도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8. 다만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하는 일은 병행구인 마태복음 20:23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하신다.
1)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당한 후에 부활하시고 하나님은 그분을 가장 높이신다.
2) 마찬가지로 야고보와 요한은 사도가 된 후에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게 되며, 그 후에 하나님이 그들을 높여 주실 것이다.
3) 참된 영광은 십자가 건너편에 있다. 십자가에 동참하면 영광의 자리에서 주와 함께한다.
9. 10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청탁한 것을 알고 분노한다.
막 10:41 그런데 열 제자가 이것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였다.
1) 10제자들도 야고보와 요한과 똑같은 허영심과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과 기대에 빠져있다.
2)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다시 섬김의 도를 가르치신다.
막 10:4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10:43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10:44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10. 제자들은 이방 사람의 통치자들처럼 사람들을 다스리려 하고, 마구 내리 누르고 세도를 부리려고 한다.
1) 그러나 제자들 중에서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섬기는 사람,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2) 이 가르침은 두 번째 수난 예고 후에 가르친 섬김의 제자도의 반복이다.
11. 섬김의 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섬기는 자가 왜 큰 자인지, 섬기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얼마나 높임 받는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의 섬김을 말씀해 주신다.
막 10: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1) 제자들이 따르고 그리스도로 고백한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려고 왔다.
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내주어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까지 섬긴다.
3) 노예도 자기 목숨을 내주며 섬기지는 않는다. 즉 예수님은 종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가장 깊이 사랑으로 섬기는 종이 되려고 왔다. 그래서 제자들 중에서 으뜸이시다.
12. 교회 공동체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와 종이 되어 살아야 한다.
1) ‘집사’(디오코노스)는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명칭이 아니라, “섬기는 자”라는 뜻이다.
13. 대속물은 노예나 전쟁포로를 풀어주기 위해 보석금으로 지불되는 것을 말한다.
1) 인자는 죄의 포로가 되어 사망으로 끌려가는 많은 사람의 몸값을 지불하여 해방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그를 믿는 자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다!
2) “인자가 온 것”이란, 십자가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 생애가 섬기러 왔음을 뜻한다.
14.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름으로 제자들은 큰 칭찬을 받았지만(10: 28-30)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1) 제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섬기려고 노력해 왔다. 내 힘으로 섬기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런 섬김은 결국 보상을 원하여 섬김만큼 높아지고자 한다.
2) 예수님은 힘써서 섬기지 않으신다. 그분의 생명 자체가 섬김의 생명이다.
- 물고기 생명이 물 안에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예수님의 생명은 섬김의 생명이어서 섬김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3) 예수님의 생명이 제자들의 생명이 될 때, 제자들은 섬김의 길을 가며, 섬기면서 받는 고난도 영광임을 알게 된다.
15. 예수님과 함께 종이 되고, 고난을 받는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높임을 받는다.
1)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된 자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우게 된다(엡 2:6).
2) 후에 사도들은 내 안에 있는 예수생명이 내 생명임을 앎으로 섬김의 삶을 산다. 예수님처럼 고난의 증인으로 섬기는 자가 되고, 영광에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 나의 묵상
내 안에 생명, 아들 안에 있는 생명, 예수 생명이 있음을 알아,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기를 원하고 기도한다. 예수 생명은 섬기는 생명이다. 그런데 나는 내 생명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살고자 한다. 내 자아로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한다. 예수님처럼 섬기려고 한다. 예수 생명으로 섬기면 그 섬김은 자연스럽고 힘들지 않다. 생명 자체가 섬김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명으로 섬기려고 하니 섬김이 많아지고 깊어지면 지치고 힘들다. 스트레스가 되고 곤핍하게 된다. 급기야 나의 섬김은 자기주장의지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화내며, 주장하는 자가 된다. 대부분 화가 나고, 따지고, 분리되기 전에 섬김이 있다. 나는 이렇게 섬겼는데, 당신은 왜 섬기지 않느냐가 나의 주된 논리다. 그러면서도 나는 예수 생명으로 섬기지 않은 것을 회개하지 않고, 내 자아로 섬긴 것으로 합리화하고 주장한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많은 무리들을 섬겨온 후에 높아지고자 하는 그 마음이 내 마음이다. 3년을 지독히 헌신하고 섬겼으니 이제는 높아지고 편안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그 마음이 내 마음이다. 예수님의 생명이 아닌 제자들의 생명으로 섬긴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결과로 제자들은 점점 죄의 세력에 사로잡혀 가며, 예수님과 다른 길을 간다. 생명에서 떠나 사망으로 가고 있고, 겸손을 떠나 교만으로 가고 있고, 십자가를 떠나 자기를 주장하는 길을 가고 있다.
제자들을 관찰하면 뻔히 보이는 교만의 길, 자아의 길인데, 나 스스로 그 길을 멈추지 못한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을 깨닫지 못하고 섬김의 제자도를 보지 못하듯이 말이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나의 추악한 욕심과 간교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다. 다만, 주님의 길과 반대 길을 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십자가로 나아가 주의 긍휼을 구하며 불쌍히 여겨 주시길 간구한다.
십자가와 고난을 통하여 주의 영광에 참여하는 길을 알게 된 사도들처럼, 성령께서 복음을 알게 하시고, 십자가가 헬라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유대인에게는 꺼리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영광으로 보여지길 원한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공개된 비밀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 교만을 가지고 십자가로 나아간다. 옛 세상을 파괴한 십자가의 능력으로 나의 교만과 자아생명을 파괴시켜 주시길 기도하며 십자가로 더 가까이 나아간다. 그 보혈의 은총으로 씻음을 받고, 십자가 사랑을 받아들이며, 그 십자가와 연합됨에 이르기를 원한다.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지만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하는 불신을 도와주시기를 간구한다. 주님이 죽으실 때 나도 죽었고, 주님이 장사될 때 나도 장사되었으면 주님이 부활하실 때 나도 부활하였다. 부활한 생명은 옛생명과 전혀 다른 가치, 목적, 행복의 기준을 가진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 영광이 된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이 나의 참 생명이다. 그 생명이 나의 전인격으로 나타나길 기도한다. 그래서 내 생명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생명으로 섬기를 원한다. 땅의 차원에서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하늘 차원에서 섬기는 자가 되길 원한다. 내 안에 사신 그리스도는 나의 왕이며, 만물의 통치자이시다. 주님께 나의 영혼육의 통치를 맡긴다.
◈ 묵상 기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성령을 받았음에도, 십자가 이전의 제자와 너무나 동일하고, 그 제자들보다 못한 저를 어찌합니까?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도리어 믿음이 떨어져서 십자가를 외면하고 야고보와 요한처럼 오른편, 왼편 자리를 청탁하는 자입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따르나, 마음은 멉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힘으로 능으로, 결단으로 십자가의 길, 섬김의 길, 대속물로 주는 길을 가지 못합니다. 성령님, 저의 영혼육을 온전히 주장하시고 인도하사 내 안에 생명 있음을 알게 하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내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알아, 그분이 나의 생명 되어, 섬기는 생명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 결단으로 되면 지치고 힘이 듭니다. 섬기는 생명, 종이 되는 생명으로 행하게 하소서. 예수 생명으로 교회와 각 성도들을 섬기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지체 사이를 거니시고, 만지시고, 통치하여 주옵소서. 어둠의 권세를 멸하소서. 할 수 있거던이라는 불신을 기도를 버리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믿음 없음을 통회하며 도움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은 만물의 통치자요 교회의 머리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 능욕과 침 뱉음과 채찍질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 부활하신 주님의 길이 저의 길, 성도들의 길, 교회의 길이 되게 하옵소서. 성도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과의 사귐안에서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