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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6일 금요일 의정부문인협회 5월 월례회
1. 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2008.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심보선 시인의 데뷔 14년만의 첫 시집
청춘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107쪽)
2. 산문 <붉은손 클럽> 배수아의 소설. 2000. 9. 해냄출판사
1993 계간 <소설과 사상> 겨울호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
......기억이 사라져간다. 자동차 시트의 검은 가죽 냄새, 섹스숍이 있던 밤의 신림동 거리, 금반지의 정전기, 지하 음식점의 기름 냄새, 건강하고 단단한 이빨이 피부를 최초로 파고들던 한없이 불안한 고통, 붉은 손이군요. 그것은, 당신의 손입니까? 그 기억이 사라져간다. 기억의 서사 위에 꽃처럼 피어 있던 선명한 피 냄새가 이제 사라져간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아방가르드 요리 편집장은 무열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열과 다르지 않다. 그 생각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시간이 부패시키는 기억. 무열과 다르지 않다. 나는 방향을 잃고 사람으로 붐비는 지하철 환승역에서 기차를 잘못 탄다. 무열과 다르지 않다. 나는 뜨거운 한여름의 태양 아래 한 시간도 넘게 줄을 선 채 사람들의 행렬에 밀려 밀려 반핵 시위의 한가운데에 와 있다.무열과 다르지 않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반핵은 너무나 명백한 정치 용어였지만 이제는 환경과 경제의 용어에 가까웠다. 무열과 다르지 않다.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찬성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반대하고 있었다. 나는 길가에서 파는 콜라를 마시면서 바다를 향해 난 길을 걸었다. 내가 처음 어디로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섰는지 그것은 오래 전에 잊었고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토록 원하고 원하고 또 원했는데, 왜? 내가 원했던 것은 범죄도 아니고 핵 전쟁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지갑도 아니고 누군가의 인생 전체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나는 무당이 되어도 좋고 미친 여자거지가 되어 수용소에서 죽어도 좋고 동물원에 갇힌 늙은 코끼리가 되어도 좋고 죽는 날까지 쇠사슬에 묶인 한 마리 검은 개라도 좋았다. 한없이 한없이 가난해지고 한없이 한없이 추해져도 좋았다. 상징이 아니라 진정 그 자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이 사라져간다. 이제 무열과 다르지 않다. .....(183~185쪽)
배수아
배수아(裵琇亞, 1965년 3월 ~ )는 1965년 서울특별시 필동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이후 공무원(병무청)으로 일하였다. 작가로서의 경력[편집]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습작 기간이나 문학 수업을 받은 적도 없이 1993년 《소설과 사상》겨울호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실으며 등단했다. ‘90년대의 문학이 배태한 이질스럽고 지리멸렬한 환멸적인 이야기의 한 극점’이라거나 ‘이미지에 중독된 자’라거나 ‘우리 문학사에서 선례를 찾기 어려운 이단의 글쓰기’와 같이 엇갈린 평가들이 오간다. 그처럼 배수아의 소설문법은 기존의 문학적 전통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1] 소설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등장 인물들도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1년 간의 독일 체류를 마친 후 2002년에 사직원을 내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에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으로 제36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2004년에 《독학자》로 제17회 동서문학상을 받았다. 2015년 《Axt》 창간호부터 2017년 현재까지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고려원, 1995) ISBN 89-12-06257-3 《부주의한 사랑》(문학동네, 1996) ISBN 89-8281-006-4 《붉은 손 클럽》(해냄, 2000) ISBN 89-7337-337-4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이룸, 2000) ISBN 89-87905-35-7 | ISBN 978-89-5707-625-8 《이바나》(이마고, 2002) ISBN 89-952-6640-6 《동물원 킨트》(이가서, 2002) ISBN 89-90365-00-7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문학과지성사, 2003) ISBN 89-320-1398-5 《에세이스트의 책상》(문학동네, 2003) ISBN 89-8281-778-6 《독학자》(열림원, 2004) ISBN 89-7063-428-2 《당나귀들》(이룸, 2005) ISBN 89-5707-160-1 《북쪽 거실》(문학과지성사, 2009) ISBN 978-89-320-1978-9 《서울의 낮은 언덕들》(자음과모음, 2011) ISBN 978-89-5707-610-1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자음과모음, 2013) ISBN 978-89-5707-721-4
소설집/중편소설/문고본[편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고려원, 1995) ISBN 89-12-06523-8 《바람 인형》(문학과지성사, 1996 / 2001 재판[5]) ISBN 89-320-0839-6 《심야통신》(해냄, 1998) ISBN 89-7337-185-1 중편소설 《철수》(작가정신, 1998) ISBN 89-7288-097-3 | ISBN 89-7288-210-0 | ISBN 978-89-7288-409-5 《그 사람의 첫사랑》(생각의 나무, 1999) ISBN 89-88045-73-4 / 《소설집 No.4》[6](생각의 나무, 2001) ISBN 89-8498-079-X | ISBN 89-8498-456-6 《훌》(문학동네, 2006) ISBN 89-5460071-9 《올빼미의 없음》(창비, 2010) ISBN 978-89-364-3713-8 문고본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테오리아, 2016) ISBN 979-11-955706-5-2 주요 단행본 미수록 소설[편집] 장편 <시간은 미래로 흐르는가>, 《한국일보》 2000년 연재 <목요일의 점심식사>, 《문학동네》 1998년 여름호 '젊은작가특집' 산문집[편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이룸, 2000) ISBN 89-87905-13-6 | ISBN 978-89-5707-626-2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gasse`가쎄, 2014) ISBN 978-89-93489-44-6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난다, 2015) ISBN 978-89-546-3733-6 시집[편집] 《만일 당신이 사랑을 만나면》(르네상스, 1997) ISBN 89-8748-704-0 공저 · 추천사[편집] 소설 <은둔하는 北의 사람>, 《1999 제2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내 마음의 옥탑방》(문학사상사, 1999) ISBN 89-7012-314-8 소설 <켈로이드 아이>, 《잊혀진 자의 고백》(오늘의 선택, 2000) ISBN 89-88218-05-1 소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 <그 사람의 첫사랑>, 《20세기 한국소설 50 배수아 김연수 외》[7](창비, 2006) ISBN 89-364-6260-1 산문 <잊혀져 가는 꿈>, 《색깔 있는 자유가 좋다》(중앙M&B, 1997) ISBN 89-461-0364-7 산문 <고양이의 미래>, 《나이들면 뭐할까?》(지호, 1998) ISBN 89-86270-27-7 산문 <엄격에 사로잡힌 이유>,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열화당, 2004) ISBN 89-301-0087-2 산문 <예술이 아니라서 재밌다>, 《내 인생의 영화》(씨네21, 2005) ISBN 89-956659-0-4 추천사 <추천글>, 윤대녕,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문학동네, 2001) ISBN 89-8281-348-9 추천사 <추천의 글 - 그와 그의 간접적인 것들>, 이충걸, 《슬픔의 냄새》(시공사, 2004) ISBN 89-527-3560-9 각색된 작품[편집] 1996년에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방영되었다. 2007년에는 <은둔하는 北의 사람>이, 2008년에는 <징계위원회>가 각각 드라마시티에서 방영되었다. 2000년에 변병준 그림으로 만화 《프린세스 안나》(대원씨아이) ISBN 89-528-0308-6 가 출간되었다.[8] 또한 변병준은 같은 해 만화잡지 《영챔프》에 <프린세스 안나>의 외전격인 <나쁜피>를 게재하기도 하였다. 번역된 작품[편집] 영어[편집] 장정화, 앤드류 제임스 키스트 역, Bae Su-ah 《Time in Gray(회색 時)》(아시아, 2013) ISBN 978-89-94006-07-9 소라 김-러셀 역, Bae Suah 《Highway with Green Apples(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9](StoryFront, 2014) eISBN 978-1-4778-7260-4 소라 김-러셀 역, Bae Suah 《Nowhere to Be Found(철수)》(AmazonCrossing, 2015) ISBN 978-1477827550 Deborah Smith 역, Suah Bae 《A Greater Music(에세이스트의 책상)》(Open Letter, 2016) ISBN 978-1940953465 Deborah Smith 역, Suah Bae 《Recitation(서울의 낮은 언덕들)》(Deep Vellum Publishing, 2017) ISBN 978-1941920466 독일어[편집] 안소현, 하이디 강 역, <Ein Rudel schwarzer Wölfe(검은 늑대의 무리)>, 《Ein ganz einfaches gepunktetes Kleid: Moderne Erzählungen koreanischer Frauen》(Pendragon, 2004) ISBN 3-93487-257-3 브라질 포르투갈어[편집] Bae Su-ah 《Sukiyaki de Domingo(일요일 스키야키 식당)》(Estação Liberdade, 2014) ISBN 978-8574482422 번역한 작품[편집] 야코프 하인, 《나의 첫 번째 티셔츠》(샘터, 2004) ISBN 89-464-1472-3 야콥 하인,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영림카디널, 2007) ISBN 978-89-8401-116-8 미하엘 파인코퍼, 《토트 신전의 그림자》(영림카디널, 2007) ISBN 978-89-8401-123-6 마르틴 발저, 《불안의 꽃》(문학과지성사, 2008) ISBN 978-89-320-1861-4 예니 에르펜베크,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을유문화사, 2010) ISBN 978-89-324-7161-7 헬레네 헤게만, 《아홀로틀 로드킬》(열린책들, 2010) ISBN 978-89-329-1062-8 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쟁교본》(WORKROOM, 2011) ISBN 978-89-94207-05-6 디미트리 베르휠스트, 《사물의 안타까움성》(열린책들, 2011) ISBN 978-89-329-1097-0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문학과지성사, 2012) ISBN 978-89-320-2291-8 에트가 힐젠라트, 《나치와 이발사》(열린책들, 2012) ISBN 978-89-329-1576-0 사데크 헤다야트, 《눈먼 부엉이》[10](문학과지성사, 2013) ISBN 978-89-320-2408-0 막스 피카르트, 《인간과 말》(봄날의책, 2013) ISBN 978-89-969979-2-4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제국》(문학과지성사, 2013) ISBN 978-89-320-2505-6 프란츠 카프카, 《꿈》(WORKROOM, 2014) ISBN 978-89-94207-34-6 토마스 베른하트르, 《비트겐슈타인의 조카》(필로소픽, 2014) ISBN 978-89-98045-42-5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봄날의책, 2014) ISBN 978-89-969979-6-2 W. G. 제발트, 《현기증. 감정들》(문학동네, 2014) ISBN 978-89-546-2612-5 (반양장), ISBN 978-89-546-2663-7 (양장)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글》(봄날의책, 2015) ISBN 979-11-86372-00-5 헤르만 헤세,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을유문화사, 2015) ISBN 979-89-324-7324-6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집》(허밍버드, 2015) ISBN 979-89-6833-070-4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대심문관의 비망록》(봄날의책, 2016) ISBN 979-11-86372-06-7 베른하르트 슐링크, 《계단 위의 여자》(시공사, 2016) ISBN 978-89-527-7681-5 W. G. 제발트, 《자연을 따라. 기초시》(문학동네, 2017) ISBN 978-89-546-4453-2 로베르트 발저, 《산책자》(한겨레출판, 2017) ISBN 979-11-6040-049-6
배수아 낯설고 매혹적인 작가 『당나귀들』 “낯설고 매혹적인”이라는 말은 배수아(1965~ )의 소설세계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종의 관사다. 배수아의 주인공들은 “검은 늑대의 무리”들이다. 그들은 백화점 액세서리 매장이나 국도변 주유소에서 일한다. 그들은 요즘 인기 있는 젊은 만화가의 만화를 탐독하고, 중국 영화나 비디오테이프를 즐겨 보며, 다이어트 코크나 밀러 맥주를 마시고, 애인과 함께 잔다. 그들은 마리떼 프랑소와저버나 캘빈클레인 청바지를 좋아하고, 손목에는 금빛 팔찌가 번쩍이기도 한다. 1988년 이후 활짝 열린 고도 소비사회의 거리로 이 “검은 늑대의 무리”들이 갑자기 뛰쳐나온다.배수아의 소설을 두고 “‘이미지에 중독된 자의 글쓰기’, ‘성장 없는 세대의 소설’, ‘유년기의 공주 콤플렉스’, ‘포스트모던한 세계의 현시’, ‘세기말적 허무주의의 증좌’, ‘가족의 해체와 붕괴’”와 같은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다.1) 통사적 규범을 거스르는 문장들, 범람하는 상품 기호들, 과도한 이미지의 차용, 영혼의 성숙을 거부하는 “십대를 항상적 참조틀”로 삼는 글쓰기들이 배수아 소설의 특징들로 거론되었다. 그런데도 “만화·동화·로맨스·사진·영화와 같은 여러 문화적 텍스트들이 중층적으로 놓이는 공간”으로 이해되는 배수아 소설은 여전히 “낯설고 매혹적”이다.2)1993년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배수아는 창작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1995), 『바람인형』(1996), 『심야통신』(1998), 『그 사람의 첫사랑』(1999) 등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1995), 『부주의한 사랑』(1996) 등으로 주목받은 1990년대 대표적인 여성작가의 한 사람이다.배수아는 텔레비전 키드다. 그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테이프와 같은 영상매체의 젖줄을 물고 상상력의 부피를 키워왔다. 영상매체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현실의 표면을 미끄러져 간다. 배수아 소설은 현실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이미지를 복제한다. 그 소설들이 낯선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사람의 첫사랑』의 전작인 『심야통신』에 실린 「갤러리 환타에서의 마지막 여름」, 「마을의 우체국 남자와 그의 슬픈 개」, 「프린세스 안나」 …… 그것들을 채우는 것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멋진 테니스 코트가 딸린 휴양시설, 방사선에 오염된 바다, 아프리카 열병이 휩쓰는 도시, 안타깝고 달콤한 연애이다. 영상매체가 재현하는 현실의 이미지는 배수아의 소설을 다시 복제하고 있다. 작중 인물들은 어떤 두려움도 없이 “지금 이 순간 그대로 전쟁이 나버렸으면”하거나 “도대체 언제쯤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마치 전쟁을 소풍날처럼 기다린다(「프린세스 안나」). 왜냐하면, 전쟁은 무차별적인 살상과 끔찍한 파괴가 일어나는 현실이 아니라, 끝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툭툭 손을 털고 일어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스포츠 경기”와 같은 것이니까(「내 그리운 빛나」).배수아는 “기억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잘못된 필름처럼 끊겨 있기 일쑤다.”(「나의 첫개」)라고 말한다. 배수아는 그 기억의 끊긴 부분들을 텔레비전·만화·비디오테이프·영화와 같은 것에서 빌려온, 환상이라는 효모의 작용으로 비현실적으로 부풀어 오른 재현된 현실의 이미지들로 채워 넣는다. 배수아가 복제하는 비현실적 서사는 「1999년, 네덜란드 모텔을 떠나며」에 잘 구현되어 있다. 스물아홉 살 난 여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에 그림을 그리는 삽화가다. 여자는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나이 든 남자와 불륜관계에 있다. 어느 날 여자는 전화의 자동응답기에 “사라는 여행을 떠나요. 네덜란드 모텔로 가거든요. 사라를 찾을 일이 있으면 네덜란드 모텔로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녹음해놓고 사라진다. 여자는 네덜란드 모텔이 있는 서울 근교의 강에 가라앉는다. 그해는 다이애나가 그의 애인과 함께 교통사고로 죽은 1997년이다. 여자가 더러운 강물 속에 수장되어 있던 2년 동안 “꿈은 낮고 고요하고 행복하게 흘러갔다. 내 진짜 생보다도 더.” 1999년에 여자는 강물에서 걸어 나와 옷을 빨아 입고, 젖은 머리칼의 물기를 말리고 자신의 옛 남자를 만나러 간다. 「1999년, 네덜란드 모텔을 떠나며」는 지리멸렬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주 욕망을 그린 소설이다. ‘네덜란드 모텔’은 삭막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꿈의 공간이다. ‘네덜란드 모텔’은 “천진난만하고 인생이 솜사탕처럼 친절과 부드러움으로 가득하다고 가르치는 동화의 삽화 속에 푸른 풀밭과 아득한 침엽수림이 흩어진 가운데 아주 멀리 조그맣게 보”인다. 그곳은 현실 저 너머에 있는 몽환의 세계며, 가상현실이다.배수아의 『그 사람의 첫사랑』은 「징계위원회」나 「은둔하는 북의 사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조직이나 분단 현실에서 소재를 차용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소재만 바뀌었을 뿐이지 ‘불행의 서사’에 한없이 예민해지는 배수아 소설의 주제가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배수아의 소설들은 여전히 느슨한 인간관계들과 그 느슨함에서 비롯되는 권태, 그리고 우리 삶의 이면을 이루는 불안과 파멸의 징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와이셔츠」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의 일상적 삶의 표면을 뒤덮은 “몸이 떨리도록 지루하고 불안한” 그 무엇에 작가는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를테면 「병든 애인」의 주인공인 ‘나’는 독신 여성이다. ‘나’는 사촌 무열의 지진아 아들을 떠맡고, ‘나’의 애인은 무열이 떠맡긴 아프리카 우간다산 선인장 가시에 찔려 흑색 종양을 앓는다. ‘나’의 의식을 뒤덮은 것은 “몸의 모든 구멍에서 썩은 수채 냄새가 나는 물”이며, 그것은 “모든 막연한 희망에서 조롱당하는 고통”으로 이어진다. 그 여자의 삶은 정체불명의 흑색 종양을 앓고 있는 삶, “나쁜 꿈”의 삶이다.아직 텔레비전과 만화, 혹은 동화들이 유포해낸 몽환적인 가상현실에서 깨어나지 못한 배수아의 작중 인물들에게 현실은 꾸고 싶지 않은 “나쁜 꿈”이다. 그들이 현실에서 감지해내는 것은 도저한 허무주의, 그리고 환멸과 권태다. 그들이 빈번하게 자폐증이나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은 그 “나쁜 꿈”인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욕망이 만들어낸 육체적 징후다. 그래서 배수아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미성숙에서 성숙에 이르는 궤도를 벗어나 자전(自轉)”(김동식)한다. 어쩌면 우리는 밤늦게 들린 24시간 편의점에서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초기에 영원한 미성숙에 머물 것 같은 소외된 아이들의 연애와 배회를 감각이 돋보이는 문체로 그려내던 배수아가 어느 때부터인가 관념으로 돌아섰다. 삶과 세계에 대한 해석을 바로 진술하려는 욕망이 커졌기 때문이리라. 『에세이스트의 책상』, 『독학자』 등에서 이야기를 압도하는 ‘관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관념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핵으로 감싸며 펼쳐진다. 우연인 듯 무심하게 끼워 넣은 대화의 한 부분, 즉 “도살장 인부의 칼날 아래 굴욕적인 포즈로 매일매일 던져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한국인 보편의 초상에 대한 통찰이다. 그 통찰이 일어난 자리는 포만과 쾌락에 대한 인류의 무분별한 탐닉에서 비롯된 죄의식의 자리와 겹쳐진다. 그 죄의식은 더 나아가 동물 도살과 육식을 향한 혐오를 낳기도 한다.배수아는 끝도 없이 그 도덕적 자의식의 이면을 더듬는다. 배수아는 인류 보편에 대한 성찰보다는 개별자 내면의 성찰과 묘사에 더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작가다. 그럼에도, 작가는 ‘나’가 아니라 ‘너’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지금 변화 중이다. 그 변화의 핵은 물화(物化)하는 삶에서 멀리 도망가려는 거부의 징후를 통해 천천히 드러난다. 그 징후의 하나로 떠오른 게 채식주의다. 작중 인물은 채식주의의 숭고한 이념에 기울며, 앞으로 채식주의자로 살게 될 것이라는 암시들을 남긴다. 채식주의에 관한 언술은 절대적 채식주의자인 한 이방인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보기라는 형식을 취한다. 외국인인 ‘그’는 한국에 와서 문화적 충격을 겪는다. 그 충격의 결과는 병이다. ‘그’는 한국에 온 지 한 주일도 지나지 않아 심하게 앓는다. ‘그’가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은 육식주의의 아래에 깔린 탐욕적이고 무차별적인 삶에 대한 저항이다. 구체적으로는 “고기와 시체와 살육과 식욕과 포식에의 열망”에 뿌리를 박은 육식주의에 대한 거부며 저항이다. 육식주의의 이면은 “불꽃처럼 팽배한 생활의 의지, 동시에 금욕에 대한 낯섦과 지독한 거부감”이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한국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병에서 회복되자 바로 한국을 떠난다. 그런데 ‘당나귀’라니! 못생기고 왜소하고 비틀리고 게걸스럽고 옹졸하고 게다가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어 눈에는 눈곱이, 피부에는 종기가, 그리고 가슴속에는 의심과 온갖 더러운 생각이 들끓고 있는데 꿈꾸는 것이라고는 오직 귀리가 가득한 먹이통이 전부인! 대대손손 포식을 위해서라면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영혼 따위는 팔아넘겨 버릴! 그 하찮은 존재 자체를 말이다. 물론 이런 추악한 존재는 네가 추구하는 그 머나먼 예술이란 것과 거리가 멀 테지. 그러나 만약 이런 당나귀 자체가, 벌거벗은 그 자신 이외에 다른 어떤 조건도 짊이 지지 않은 그런 존재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술적 자아의 주인공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니 가장 적절하고 타당한 권리를 가진 유일한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너는 그것을 믿을 수 있겠니? 그 당나귀를 바로 경험과 인식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그런 당나귀 떼 중에서도 가장 못생기고 가장 비천한 눈멀고 귀먹은 너의 당나귀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지쳐 쓰러져 죽을 때까지 찾아 헤매고 다닌 그 예술의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가 바로 다름 아닌 노예 당나귀 그 자신으로서의 삶, 그 형상 그대로의 운명일 뿐이라면, 그가 그것을 바로 직전에야 깨닫는다고 하면, 오 그 얼마나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당나귀 예술가 지망생의 허무한 종말인가!물론 이 ‘당나귀’는 누구나 내부에 있는 짐승에 관한 하나의 기호다. 이 동물 표상은 “못생기고 왜소하고 비틀리고 게걸스럽고 옹졸한” 내 안의 나, 즉 얼어붙은 정신, 어리석은 자아, 세계로부터 기만당하는 자아를 가리킨다. 동물들은 표현의 층위에서 불가해한 인간의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다. 동물들은 시인과 철학자들의 상상세계에서 기표의 진열장이다. ‘당나귀’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아라는 점에서 결핍의 기호다. 그런 맥락에서 공중의 제왕이지만 땅에서는 날개를 질질 끌며 선부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알바트로스’(보들레르)나 정신의 단계에서 하위에 있는 ‘낙타’(니체)와 같다.니체는 말한다. 인간은 “병든 동물”이라고. “인간은 그 어느 다른 동물보다 더 병들고, 불안정하며, 변덕스럽고, 불완전하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은 병든 동물이다.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틀림없이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이 합쳐진 것보다도 더 대담하고, 더 새로운 것들을 행하고, 더 과감하고, 더 운명에 도전해왔다. 그 자신에 대한 커다란 실험기구인 인간은 최후의 지배권을 위해서 동물, 자연, 신들과 투쟁하는 자, 불만을 터뜨리는 자,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자이다.” 작가로서 재능 없음과 영감의 부족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메아리 없이 고독하고 지지부진한 작업”에 대한 지독한 회의가 자신을 “오직 굶주림의 기억만을 간직한 눈멀고 귀먹은 당나귀”라는 모멸적 표상에 구겨 넣게 했을 것이다.한국어 이외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과 주변적 단상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당나귀들』은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닮았다. 더구나 이번 소설에서는 존 쿳시의 『동물의 생』이나 밀란 쿤데라의 『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래드클리프 홀의 『너의 존』과 『고독의 우물』, 그리고 찰스 부코우스키의 시와 알테 뮤직에 대한 단상들이 장황하게 펼쳐진다. 독서에의 맹렬한 열망과 취향의 고양, 그리고 독서감상문을 적어보려는 욕망은 이미 『독학자』에서 그 싹을 보였다. “스무 살을 넘기면서 어떤 의무감처럼 본격적으로 사색의 일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만을 위한 유일한 책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나는 책, 오직 책에 굶주리고 있었다.”(『독학자』) 『당나귀들』에서는 작중 인물이 읽은 책들에 대한 리뷰들이 플롯과 상관없이 섞여 나온다. 리뷰와 시와 고상한 음악에 대한 취향, 육식혐오증, 내면의 몽상가적 기질 등이 뒤섞인 이 소설은 그래서 정통 서사의 플롯에서는 멀어지고 에세이에 좀 더 가까워진다. 서사의 중추가 희미해지면서 자유로운 몽상과 사유는 플롯 위로 흘러넘친다.우리는 살기 위해 누군가를 바라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바라봐줄 타인의 ‘눈’을 필요로 한다. 배수아가 인용하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한 줄, 즉 “자신의 삶을 응시해줄 어떤 환상적인 눈”, 바로 그것 때문에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리석고 멍청한 ‘당나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의 삶을 응시해줄 어떤 환상적인 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끊임없이 독자를 사유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배수아의 소설은 읽기가 쉽지 않아졌다. 배수아 소설읽기의 한 즐거움이던 감각의 경쾌함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건조한 사유다. 배수아의 소설에서 재미의 요소들이 사라진 대신 진지함의 부피는 늘어난 것이다. 배수아 [裵琇亞] - 낯설고 매혹적인 작가 (나는 문학이다, 2009. 9. 9., 나무이야기) 소설 <철수>에서의 작가의 말 (20년 전) 철수는 밤 아홉 시에 전화를 하고 그리고 열한 시에 또 전화를 했다. 첫 번째 전화는 보고 싶었다, 오랜만이다, 이 전화번호를 가지고 다녔다, 지금 신촌 어디쯤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내용이었고 두 번째 전화는 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나 술을 마셨다. 너를 만나러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겠다. 미안하다. 그랬다. 두 번 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너 없이도 나는 십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삶의 도식성과 도덕적 우월감. 철수는 나에게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떠났다. 나는 빈곤감에 시달렸다. 나도 그런 것이 갖고 싶었다. -1998년 11월 강원도에서 돌아온 다음 날 / 배 수 아 ....................................................
나쁜 시간 / 칸나 크림스프를 만들기 위해 버터를 녹였다. 그 이후 일상이 부드러워졌다. 고소하고 달콤한 이생이 왜 나는 부끄러운지. 검색과 삭제와 텍스트를 잇는 작업이 간혹 슬플 때도 있었다. 불명확한 주소지의 근교에서 나는 많이 헤맸다. 단순하지 않은 노동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군. 결백하지 않은 것들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부터 줄곧 따라다닌 부끄러움으로 내일의 너를 감아올린다. 부서진 자전거 살이 나의 허벅지를 찌르던 오후에. 나의 비밀은 눈부신 어린 누이들의 치마폭에 숨겨놓은 바이올린 G 현. 식자층으로부터 고요히 빠져나온 나쁜 습관을 그리워하지만 다시 부르지는 않는다. 접시에 담긴 크림스프, 이것은 나의 온유한 절망. 모든 것이 고통스럽지 않아서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너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갈라져서 사십 가닥의 이름을 땋으며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구나. 부산에 가야겠다, 유순한 알츠하이머가 되어. 우리의 기억 없음은 곧 저들의 기억이 되겠지. 점자책 같은 슬픔이 두둘두둘 몇 장이나 넘어가고 나의 일월은 쨍하면서 얼음처럼 부서지는구나. 짧은 잿빛 털이 일월 내내 나부꼈는데! 필요 없는 주석을 지우면서 오로지 번짐과 뭉침으로 그것을 속독했다. 흐릿했던 일월 내내 곡비의 언 발까지 읽은 후 나도 잠깐 울었다. 책은 덮을 수 없고 글은 심장에서만 펄떡거린다. 오늘 나는 왜 이리 추운가. 오늘 나는 왜 이리 그리운가. 이 생의 중독을 나는 어쩔 수 없다. 케냐 AA원두처럼 먼 곳에 결핍의 출생지가 있구나. 내 몸으로 생을 할퀴어 버릴 테다. 오늘은 그렇게 삐뚤어질테다. 구겨진 지도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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