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 세조(1417 ~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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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원래 세종의 아들 중에서는 가장 명민하고 왕위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역사를 무력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세조의 실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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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치세는 어느 왕 못지않은 훌륭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교정치의 생명은 명분이요 도덕이다. 세조의 쿠데타는 이 땅의 많은 사림을 변절자로 만들었고, 이 땅의 지식의 도덕적 정통성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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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업은 이방원이 지어놓은 업의 연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방원의 악업은 그 나름대로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조의 악업은 개인의 탐욕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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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행적은 금강경이 설파하는 진리에 완전히 위배되는 업의 삶이다. 그러나 그는 금강경에 몰입했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금강경언해는 바로 세조가 직접 한글로 토를 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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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사육신 등 세조의 잔악한 칼날에 베임을 당한 수없는 원혼의 피맺힌 원한을 압구정 앞을 흐르는 도도한 한강물에 씻어 보내기라도 할 셈이었는가?
/ 김용옥 ‘금강경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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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세종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면 조선왕조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부에만 몰두한 장남 문종과 안평대군과는 달리 수양대군은 거침없고 욕망이 강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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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병약한 문종과 어린 단종을 보면서 수양대군의 존재를 걱정했다. 원래 수양대군은 진양대군이었다. 세종이 수양대군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수양산에서 절개를 지키다 굶어 죽은 백이처럼 절개를 지키라는 의미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속마음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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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문종은 어린 아들을 김종서, 황보인 등의 원로대신에게 부탁했고, 수양대군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단종 즉위 이후 정국은 수양대군파와 문종의 고명을 받든 황보인·김종서파로 나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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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단종 1) 10월 10일, 수양 대군은 계유정난이라 불리는 기습 공격을 통해 무방비 상태의 김종서와 황보인을 철퇴로 죽였고 라이벌 안평대군을 강화로 귀양 보내 버렸다. 수양대군의 핵심참모였던 한명회는 살생부를 작성해 입궐하는 대신들을 모조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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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 윤 6월 11일, 어린 단종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거의 강제로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때 왕의 옥새를 전달하던 성삼문이 옥새를 부여안고 대성통곡을 하자 세조가 성삼문을 한참 동안이나 노려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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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왕위에 오른 후 단종을 상왕으로 추대하고 금성대군의 집에 살게 했다. 말이 상왕이지 가택연금하고 군대가 철저하게 감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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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재위기간 중에도 사육신 사건, 단종 복위운동, 이시애 난 등 자신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일어난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집현전 출신의 젊은 학자들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삼문과 박팽년을 중심으로 하는 집현전 출신의 젊은 관료들과 단종, 문종의 처가 식구들은 세조와 측근을 죽이고 단종을 복위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의 거사는 채 이루기도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성삼문과 함께 단종복위를 도모하던 김질이 단종 복위음모 사실을 누설해 버린 것이다.
세조: 너희들이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는가.
성삼문: 옛 임금을 복위하려 함이다. 천하에 누가 자기 임금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는가. 어찌 이를 모반이라 말하는가. 나 성삼문이 이 일을 하는 것은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백성은 두 임금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지지고 팔을 잘라내는 잔학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세조를 ‘나으리’라 부르며 왕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그러나 성삼문은 도모하던 동지들의 이름을 대었고, 박팽년, 하위지 등의 사육신들이 체포되어 사살 당하거나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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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복위사건은 단종에게는 악재로 작용했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다. 사육신 가문은 도륙 당했고, 성삼문의 아내 차산은 박종우에게, 박팽년의 아내 옥금은 정인지에게 주어졌다. 결국 세조는 금성대군과 노산군에게 사약을 내려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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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창업자는 태조(太祖)라는 묘호를 쓴다. 조(祖)는 주로 창업 개국자에게 주어지는 묘호이고 나머지 후대 왕들은 ‘종(宗)’자를 쓴다. 세조의 경우도 원래 묘호로 거론된 것은 신종, 예종, 성종이었다. 그러나 세조라는 묘호는 후대 왕인 예종이 고집하여 결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세조는 개국자가 아닌 계승자이므로 ‘조’가 아닌 ‘종’을 쓰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계승한 왕이라는 ‘세(世)’자와 나라를 세운 왕이라는‘조(祖)’자를 모두 가진 왕이 되었다. 이는 그의 평범치 않은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조의 특별함은 묘호만이 아니다. 세조와 그와 함께한 공신들은 국가 재건의 공로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세조는 종묘에서 아무리 대수가 달라져도 결코 신주가 옮겨지지 않는 불천위(不遷位)의 지위를 가졌다.
/ 네이버 캐스트 편집.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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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호적 제도를 강화해 효율적인 국가 방위체제를 구축했고, 북방 개척과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에도 힘썼다. 그리고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여 국가수입을 늘리고, 농서를 간행하여 농업을 장려하였다. 집현전을 폐지했으나 경국대전을 편찬하게 함으로써 성종 때 완성을 보게 하는 등 서적과 불경을 많이 편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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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조는 강압적인 철권통치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한명회, 신숙주등의 측근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은 가차 없이 죽여 버렸다.
/ 네이버 지식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202&docId=136520479&qb=7IiY7JaR64yA6rWw&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1&pid=gEmRZ35Y7tGssa2UfLCssc--147387&sid=Tmg@XHs0aE4AAGpHB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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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행적은 마키아벨리가 설파한 지침과 매우 닮아있다. 공교롭게도 마키아벨리는 수양대군이 죽은 다음 해에태어났다.(1469년)
군주가 도덕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군주는 운명과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는 임기응변을 갖추어야 한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하면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1532)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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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공주의 남자'에서 조선이 수양대군 김영철의 손아귀에 들어간 가운데, 인터넷도 수양대군이 장악했다. 수양대군이 포악해질수록 팬들은 그에게 더욱 더 열광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영철의 섬뜩한 카리스마 연기가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 스포츠 조선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090100063720005216&servicedate=20110908
자칭 ‘선비’ 김용옥이 역사의 필연성을 운운했지만, 역사에 필연성 같은 것은 없다. 태조든, 단종이든, 세조든 인위적인 권력 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북한과 같은 현대 왕조 국가를 보면 당장 알 수 있지만, 왕조는 단단한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잔혹한 폭력이 아니면 유지하기 어렵다. 폭력적인 권력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유럽 왕조를 다룬 문헌들도 왕조는 폭력과 부패를 반드시 수반한다고 지적한다. 사태를 이방원이나 수양대군 개인의 인격적인 문제로 다루면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최선이라 보기 어려울 수 있으나, 최악은 막을 수 있다’는 버트란드 러셀의 지적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연기가 훌륭한 측면도 있지만, TV 드라마는 잔인한 캐릭터일수록 인기를 끌어 모으는 특성이 있는데, 이것도 인간의 ‘관음증’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TV가 보급될수록 사회가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TV는 아무래도 폭력을 학습하기에 좋은 매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