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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이광표]“비참하게 임종을 맞는 나라… 죽음은 준비할 때 존엄한 것”
출처 동아일보 :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80305/88948883/1
죽음학 강의 11년째,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
2007년부터 11년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죽음학 강의를 해오고 있는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내과 전문의). 그는 “평소 가족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가족관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암병동에서.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전남 완도에서 전해오는 한 상엿소리에는 “일만 하다가 나는 가오. 일만 하다 갈라고 허니 참말 원통해 못 가겠소”란 대목이 나온다. 엘리베이터 버튼에 숫자 4 대신 영어로 F라고 해놓은 건물도 있다. 4와 죽을 사(死)가 발음이 같아 불길하다는 이유에서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인공호흡기를 끼고 연명치료에 매달리는 것일까. 2007년부터 죽음을 강의해 온 ‘죽음학 전도사’ 정현채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63)로부터 죽음과 연명치료에 대해 들어보았다. 》
임종 준비가 너무 안 된 우리
―매일 아침 신문 부고기사를 챙겨 보신다고 들었습니다.
“매일 부고기사를 읽는 것은 임종(臨終)의 롤모델을 찾고 싶어서입니다. 우리 부고를 보면 경제적 세속적인 성취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죽기 전에 또는 죽음에 임박해 어떻게 삶을 마무리했는지 등에 관한 얘기를 만나고 싶은데, 그런 오비추어리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 임종과 관련해 어떤 롤모델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얼마 전 누군가가 어느 60대의 장례식에 갔던 얘기를 해주더군요. 발인을 마치고 화장장으로 가는 길에 운구버스 안에서 세상을 떠난 고인의 영상을 틀어주었답니다. ‘이렇게 비도 오는 궂은 날, 저의 장례식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의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너무 감동스러웠고 … 무사히 저의 생을 마치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조문 오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비 오는 날까지 맞췄다는 건 날씨에 맞춰 영상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겠지요. 놀랍고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 마무리를 잘 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편인데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조선시대 유교사회를 거쳐 온 것이 큰 영향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교는 내세관이 없잖아요. 그러니 현세에 집착하게 됩니다. 죽음을 놓고도 저승사자가 와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으로 묘사하곤 했지요.”
―의사는 사람 살리는 직업인데 언제 어떻게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15년 전쯤 제가 쉰 살이 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갑자기 이런 불안감이 엄습하더군요. 그렇다고 교회나 절에 나가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고 과학자인 의사로서 사후생(死後生)에 관심도 갖고 죽음 전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에 관심을 갖고 성찰하니 어떤 변화가 생기던가요.
“그때까지는 공부하고 논문 열심히 쓰고 그랬지요. 하지만 삶의 유한성, 죽음의 예측불가능성,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를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강의자료도 정리하고 월급 명세서도 정리해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 기증도 하고, 물론 유언장도 준비했지요. 제 장례식에 어울리는 음악도 200곡 정도 준비했습니다. 음악은 앞으로 더 추려낼 생각입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사실 레지던트 시절, 자살 충동에 빠지곤 했다. 그런데 죽음에 관심 갖고 공부하면서 완전히 극복했다”고 고백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이 마음에 위안을 주고 삶을 긍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近死체험은 신비 아닌 과학
정 교수는 2007년 12월부터 죽음학을 강의하고 하고 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 참여하면서 죽음학회 강의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을 돌며 대중과 죽음을 얘기해왔다. 대학의 최고위과정, 의학 관련 학회, 70대의 고교동창회 등 강의 대상도 다양하다. 최근엔 서울대 의대에 죽음학 강좌도 개설했다. 그의 죽음학 강의는 이번 달에 470회째를 맞는다.
―죽음학, 죽음 교육이라고 하면 뭘 가르치는 건가요.
“죽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우리 삶의 일부로 볼 수 있도록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 기본 취지입니다.”
―오해나 거부감은 없습니까.
“아직도 죽음학 하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기관에서는 강의 제목에 ‘죽음’ 이란 단어가 있다고 해서 거부하더니 내용은 바꾸지 않고 죽음 대신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이름을 바꿨더니 오케이하더군요. 한 번은 제주에서 강의할 때 엄마 손에 이끌려온 초등학교 3학년짜리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열심히 강의를 듣더군요. 독일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죽음을 공부합니다. 물론 반려동물의 죽음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요. 고등학교쯤 되면 윤리시간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 토론도 한다고 하네요. 죽음을 공부하면 사회가 한층 성숙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강의 때 근사(近死)체험 이야기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근사체험은 일시적인 죽음 체험입니다. 순간적으로 심장박동이 멈췄다가 심폐소생술로 회생한 사람 가운데 10∼25%가 체험하게 되죠. 체외이탈 경험, 밝은 빛과의 교신,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친지와의 만남 등이 근사체험의 주요 유형입니다.”
―신비로운데… 영혼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근사체험 하면 영성술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과학적 실재입니다. 저는 과학자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근사체험은 랜싯(Lancet)이나 미국신장병학회지 같은 의과학 전문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내용입니다. 영혼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육신이 작동을 멈추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또렷이 유지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겁니다. 신비체험이라면 그런 학술지에 실릴 수가 없겠지요.”
―다른 사람의 근사체험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 겁니까.
“타인의 근사체험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공포를 없애줄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죽음이었지만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특히 말기암 환자처럼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크게 누그러뜨릴 수 있어요.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어 자살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15년 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것도 근사체험 현상을 공부한 덕분이었습니다.”
말기암 환자 연명치료는 무의미
―요즘 우리는 거의 모두 병원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우리는 가장 비참한 임종을 맞는 나라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가족들과 마지막 눈빛도 주고받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지요. 품위 있는 죽음과는 아주 거리가 먼, 외롭고 비참한 죽음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손자 손녀가 집에서 모두 지켜봤는데….”
―그래도 중환자실은 더 붐빕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연명치료가 늘어났습니다. 환자나 가족 의료진 모두 생명을 연장시키지 않으면 의료행위의 실패로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말기암 임종자까지 연명치료를 적용해야 할 것인지 의문입니다.”
―최근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동의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의 고통만 가중시키고 가족들에게 더 큰 아픔만 남기게 되지요. 연명의료결정법은 일본도 입법을 못했는데 우리는 했습니다. 연명치료에 집착하는 관행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자신이 말기암인지도 모르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사람도 있습니다.
“말기암 환자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건 좋지 않습니다. 환자에게 병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 더 효과가 좋을 수 있고 남은 생을 더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존엄하게 죽는 것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며칠 여행을 다녀올 때도 가족들에게 ‘문단 속 잘하고 밥 잘 챙겨먹고’ 이런 얘기를 하는데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아무런 얘기도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한다니요.”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생존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는데요.
“사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100세 환상’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100세 시대를 참 쉽게 얘기하는데 솔직히 100세까지 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여든이든 아흔이든 나름대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삶의 길이를 연장하려는 것보다는 삶을 잘 마무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족과 죽음을 얘기할 수 있어야
―주변 사람들의 장례식장에 가시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우리의 병원 장례식장에 가면 망자(亡者)는 없습니다. 시신도 그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떨어진 곳 냉동칸에 있지요. 떠나간 사람이 좋아했던 음악이나 영상 등을 조문객들이 공유하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죽음학자이자 의사로서 죽음은 뭐라고 정의하십니까.
“죽음은 겨울옷을 입다가 봄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입니다.”
―그럼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평소에 가족과 죽음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족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그때 그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유언장도 써보고 내가 좋아했던 음악이나 그림도 찾아놓고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해도 더 커질 겁니다.”
정 교수가 근무하는 서울대병원은 하루 종일 분주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암병동을 지나려니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그때 정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의사가 이런 말하면 욕먹겠지만 병원 입구에 ‘인간은 늙고 죽는다’는 문구를 적어 크게 붙여 놓고 싶습니다.” 죽음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광표 논설위원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
세상이 이토록 혼탁해지고 조화롭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인간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언젠가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죽지 않는 듯, 죽음을 먼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죽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때가 되면 맞이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자기 것인 양 움켜지고 놓지 못하는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따라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이 없다고 한 번 상상해보라. 인간의 교만함은 끝을 모르고 치달을 것이며, 결국 그 교만한 마음이 자기 자신의 삶 또한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자연스럽듯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늙어 죽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이 또한 우주의 배려인 것이다. 쌩떽쥐페리의 동화에 나오는 어린왕자가 죽음을 통해 무한한 우주공간을 뛰어넘어 자신의 소혹성으로 돌아갔듯이, 우리는 죽음을 거침으로써 진정한 성장과 삶의 완성을 이루어 또 다른 영원한 세계, ‘빛viit’ 의 삶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며, 나는 이 사실을 고요한 혼자만의 명상 속에서,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접 할 때마다 선명하게 느끼곤 한다.
● 시신에라도 빛을…
박정우 교수를 만난 것은 1998년 가을, 한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였다. (이하 중략 물음표 P171 참고)
● 자신의 괘(掛)는 몰랐던 사주가
우연한 기회에 유명한 사주가인 박제상 씨를 만난 적이 있다. 평소친분이 있던 박래훈 국세청장의 식사초대에서 (이하 중략 물음표 P173 참고)
● 무불선사의 눈물
요즘 세상살이가 힘든 만큼 현실을 탈출하여 이상 세계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 1997년, 오랜 세월 기 수련을 통해 그 경지가 매우 높고 따르는 제자가 많다는 무불선사를 만났다.( 이하 중략 물음표 P175 참고)
하버드 대학에서 뛰어난 두뇌와 재능을 인정받았던 석학 박정우 교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이름 높았던 사주가인 박제상 씨 그리고 정신세계의 한 부분을 이끌었던 무불선사. 그리고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이름과 덕망 높은 수도자와 성직자들까지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자신의 마음 혹은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 불안에 떠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에 소흘하였다면 제 아무리 살아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또한 갈 길을 몰라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마음의 방황이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통해 영원히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통해 그의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의 세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면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듯 생각하는 바도 모두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인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살아생전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물론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 대단한 추앙을 받고 있는 한 성직자 역시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자 ‘죽고 나면 어디로 가는지 정 선생은 아시냐’고 물으며 불안한 속내를 비쳤다. 이처럼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 이후 무언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본능처럼 감지하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시작 앞에 무언가 나름대로 대비로 복을 많이 쌓은 사람은 그나마 마음이 편안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엄청난 불안과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육체를 근본으로 하는 물질의 삶을 지탱하고자 평생 애지중지했던 많은 것들이 육체를 벗어난 비물질의 삶에 있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막상 죽음의 문턱에 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왜 열심히 돈을 벌지 못했나’ 혹은 ‘나는 왜 더 좋은 집에 호강하며 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보다는 ‘나는 왜 좀 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지 못했을까’, ‘나는 왜 좀 더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지 못했을까’, ‘나는 왜 내 자신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았을까’ 그리고 ‘왜 죽음이 찾아온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았을까’ 와 같은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즉 순간순간의 삶에만 집착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베푸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죽음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삶을 마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박 교수는 왜 마지막 순간까지, 시신을 통해서라도 ‘빛viit’ 을 만나고 싶어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 이끄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놀던 아이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듯, 모든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난 본연의 마음이 돌아가는 곳이 바로 ‘빛viit’ 이다. 우리의 마음이 본래 그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 알 수 없는 이끌림은 일생을 머나먼 바다에서 살던 연어가 죽기 전 자신이 태어난 계곡의 물 냄새를 찾아 돌아오는 것과 같이 신비롭고 또한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다.
이제 여러분도 ‘빛viit’ 이 전하는 죽음의 원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죽음은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통해 늘 자신의 마음을 돌 본 사람은 죽음이라는 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원래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주 근본의 힘, 우주의 ‘빛viit’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출처 : 물음표(?) 2005/07/05 초판1쇄 P. 170 ~ 180
보이지 않는 세계
“큰 은혜를 받고
갚지 못하고 가게 돼서 송구스럽습니다.
학회장님, 건강하게 이 땅에 오래오래 머물러주시고
생각하시는 빛viit의 뜻이
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시길 진심으로 비오며….”
지난 2011년 4월 29일 유길영 회원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날 우표까지 붙여서 남겨놓은 편지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사후의 세계로 넘어가는 분이 남기고 간 편지이다.
그분은 죽음 직전 무엇을 보았기에
밝은 미소 띠고 마지막 편지까지 남겼을까?
그 분은 어디로 갔을까?
육체는 남겨져 시체가 되었고,
시체가 되기 전까지 그 마음인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 저승도 좋고 천국도 극락도 좋겠지만
빛viit의 나라
광채의 나라면 더욱 좋겠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12.08.25. 초판 6쇄 P. 156~157 중
죽음을 통해 찾아가는 영원한 삶의 의미
태어남, 삶 그리고 죽음. 이것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큰 흐름이다. 들풀이나 곤충과 같은 미물에서 인간 그리고 은하계의 무수한 별들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살고, 죽는 과정을 거친다.
그림의 삼각형은 빛을 펼칠 때마다 내 손바닥에 나타나는 형태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단순한 도안이나 상징물이 아니라 실제 이 힘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심벌마크다.(그림의 삼각형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P. 215참고)
삼각형의 세 개의 변은 각각 태어남, 삶, 죽음을 뜻하며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서로 동등하게 맞물려 이어진다. 다시 말해 태어남, 삶, 죽음 중 어느 하나도 더 중요하거나 혹은 덜 중요하지 않으며, 우주는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섭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삼각형 안에 우주를 뜻하는 큰 원이 존재하고 그 안에 우주로부터 본성을 물려받은 ‘진정한 나’, 빛viit마음을 의미하는 작은 원이 들어 있다. 삼각형 안에 이 원이 들어 있는 것은 우주의 모든 생명 가운데 그 무엇도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이 우주의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선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바탕으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생명이 탄생했고, 바로 나는 지금 이 순간 그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유한하며 어느 시점이 되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죽음은 육체를 ‘나’에게서 떠나보내는 과정일 뿐 끝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이 ‘나’인 줄 알고 열심히 먹이고 입히고 가꾸고 치장하지만, 이 육체조차 때가 되면 ‘나’와 분리해 떠나보내야 한다. 마치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듯 내가 한동안 머물러 있었던 몸을 벗어나 또 다른 영역, 비물질의 세계로 넘어간다.
죽음의 의미를 알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 또한 분명해질 것이다. 어떻게 사는 삶이 의미 있는지, 죽어서 허무하고 한스럽지 않은 삶이란 무엇인지,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죽음을 통해 예수나 부처와 같은 성자들께서 사랑과 자비를 나누거나 베풀 때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조차 모르게’ 할 것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무주상보시’를 하라고 한 의미를 알게 된다. 즉, 죽음 이후에도 나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줄 진정한 내면의 복은 남에게 과시하거나 드러냄 없이 순수하게 지을 때 쌓이기에 진정한 복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빛viit은 내 안의 나, 진정한 내가 유래한 바로 그곳에서 오는 힘이다. 따라서 이 힘과 함께하는 죽음은 내 마음의 고향,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태어나 성장하고 노화되는 일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흐름에 따른 것이듯 죽음 또한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결코 고통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빛viit과 함께하는 죽음이야말로 이론이나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힘을 통해 현실에서 직접 체험하는 웰다잉(well-dying)이다.
출처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2017.01.01. 초판 35쇄 P. 214~216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 죽음
세상이 이토록 혼탁해지고
조화롭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인간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은 죽지 않는 듯
먼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자기 것인 양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기에
떠날 때도 반드시
빈손이 되어 간다.
그것은 조물주가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공편한 진리이다.
따라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262중
첫댓글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직용,죽음 " 감사드립니다.
삶이 언제나 지속 될것 처럼 살았던것 같습니다 큰 깨달음을 주신 글 감사합니다 빛을 만나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주마음님 학회장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죽음에 대한 사설 자세히 기록되어 있군요.~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인 죽음 ~ 죽음을 통해 찾아가는 영원한 삶의 의미 ~ 감사드립니다. 자세히 정독하고 담습니다.!!
죽음은 삶의 소중한 정화작용...소중한 글 다시 읽어봅니다.
그리고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님의 인터뷰 글도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우리모두 빛viit과 함께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임종에대한" 논단글과 귀한 빛글 감사드립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빛안에서 떨쳐버리고 빛의 나라로 갈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겠다는 마음과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귀한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삶이 영원할거 같지만 무한이 아니라 유한인것을 못 깨닫고 살아가는거 같습니다.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빛을 알게해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한번 깊이 새깁니다.
나누는 생활, 자신을 내려놓는 삶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시간을 향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에 대해 빛의 글과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죽음과 삶의 자세 잘 배우고 갑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에 대한 귀한 빛의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1년 빛의세상으로 떠나간 유길영회원님의 편지에 공감이갑니다
우리는 빛과 함께 빛으로가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수있기를 기대합니다
귀한글 잘 읽고갑니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이라는 내용,
다시한번 마음으로 새기며, 현실의 삶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진심으로 잘보겠습니다.감사합니다.
죽음에 관한 서울대 의사의 말씀이 학회장님께서 하신 말씀과 닮아있습니다.
우리 모두 평소에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하여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여야겠습니다.
덕분에 현재의 나를 좀 더 진실되게 최선을 다하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생각해야지만 편하게 우리의 고향으로 갈수 있겠습니다
.죽음이 마지막 정화작용임을 마음에 담으며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