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맛집
연남동에서 수비드 삼겹살에 맥주 한 잔 어때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85호(2018. 8.15)
신민섭
(소비자아동01-08), 루블랑·에큘리 오너 셰프
좋아서 하는 취미로 생계를 해결하고 조금은 여유롭게 즐기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확행·워라밸이 새로운 라이프 트렌드로 부상하는 요즘 이미 4년 전부터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서울대 동문이 있다. 프랑스식 레스토랑 ‘루블랑’과 수제 소시지 전문점 ‘에큘리’의 신민섭(소비자아동01-08) 오너 셰프가 그 주인공. 루블랑은 개업 후 1년 만인 지난 2015년, 국내 첫 레스토랑 평가서인 ‘블루리본 서베이’에 ‘시간을 내어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맛집’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이후 4년 연속 등재됐다.
지난 7월 20일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에큘리에서 신민섭 동문을 만났다.
“전공을 살려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조직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에선 비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업무를 빨리,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매너리즘도 일찍, 자주 느끼곤 했어요.
몇 차례 극복하기도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다른 직업을 탐색했고 평소 좋아하던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게 됐죠.”
신 동문은 모교에 입학하면서 본가인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자취생인 탓에 어느 정도의 요리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졸업을 앞두고 함께 구직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늦은 시간까지 마라톤 회의를 거듭했고, 자연스럽게 신 동문의 자취방은 ‘모두의 휴식처’가 됐다. 취업준비에 지친 친구들에게 3분 카레나 라면을 대접할 순 없었던 신 동문은 요리에 대한 호기심이 불붙으면서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게 됐다. 주머니는 가벼워도 취향은 까다로웠던 친구들의 입맛도 거들었다. 자취방의 좁은 주방에서 이미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맛있다, 맛있다’ 하는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모두의 휴식처’는 곧 ‘모두의 레스토랑’이 됐고 요리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친구들 모습을 보면서 요리의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취업을 하고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식 재료 및 식기구들을 더 좋은 것으로 사들였습니다.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르 꼬르동 블루의 한국 분교에 등록한 것도 처음엔 그저 취미였죠. 셰프가 돼야겠다는 다짐보단 요리가 재밌으니까 더 깊이 즐기고 싶었던 거였어요.”
좋아서 시작한 요리 공부였지만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장인의 업무가 일과시간에만 있는 것은 아닌 터. 금요일 밤이면 쉬지 않고 이어지는 회식과 접대 탓에 토요일 아침 등굣길은 숙취로 인해 울렁거리기 일쑤였다. 1년이 지날 즈음 고비가 찾아왔다. 마냥 취미로 삼기엔 금전적 부담이 적지 않았고 셰프로 전향하자니 관련 업계엔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마음을 못 잡고 흔들릴 때 장인의 말 한마디가 신 동문을 잡아줬다. 르 꼬르동 블루 한국 분교의 교수이자 까다로운 프랑스인 셰프한테서 뜻밖의 칭찬을 들었던 것. 용기를 얻은 신 동문은 2년 동안 주말도 없이 요리를 배웠고 2014년 홍대에 루블랑을 개업하기에 이른다.
“서른 넘어 뛰어든 길이다 보니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우기도 애매하고 그쪽에서 받아주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시작부터 제 가게를 차렸죠.
개업하고 처음 2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아침 8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날이 수두룩한데도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습니다. 저희 가게가 목이 썩 좋은 위치는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는 한 서서히 입소문이 퍼져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거든요. 찾아오는 손님 한 분 한 분이 정말 소중했어요.”
루블랑 대표메뉴는 수비드 삼겹살. 육질이 뛰어난 듀록 돼지만 사용해 17가지 향신료로 7일 동안 숙성시킨 다음 7시간 훈연 후 다시 또 하루를 말리는 등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신 동문은 루블랑의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식 재료로서 소시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에큘리를 개점, 수제 소시지를 베이스로 한 새로운 맛을 선보이고 있는 것. 국내에선 아이들 간식으로 인식이 굳어져 있지만 유럽에선 와인에 곁들여 즐길 만큼 먹는 법도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기술력만 받쳐준다면 셰프의 창의성이 폭넓게 가미될 수 있고, 다른 식 재료에 비해 저렴하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홍대에 위치한 루블랑에선 뜻하지 않게 모교 후배들을 만나곤 합니다. 신용카드 기능이 탑재돼 있어 계산대에서 종종 후배들의 학생증을 건네 받기도 하거든요. 맛있게 드셨냐고 물어도 보고 기분 좋게 10% 할인도 해줬어요. 동문들께서 저희 레스토랑을 찾아주신다면 작은 성의지만 10% 할인해드리겠습니다. 루블랑·에큘리에 많은 관심 부탁 드려요.”
문의: 070-8849-2040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