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대의 침략史를 미화 또는 호도하려는 일본의 보수우파 정치인들은 731부대와 정신대 문제를 가장 감추고싶어 한다. 특히 731부대의 만행이 어떠했는지가 하나씩 밝혀지자, 당황한 보수우파 정치인들은 아예 그런 부대가 없었다고 잡아떼기까지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처럼 부끄러운 731부대를 全세계에 다시 한 번 부각시킨 인물은 아베 총리 자신이었다. 2012년 12월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2013년 5월 18일 자위대를 순시하는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731번 항공기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움으로써 옛 731부대를 숭상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는 여론이 들끓자 미꾸라지처럼 우연의 일치라고 둘러댔다.
731부대에 가장 많은 국민이 희생당한 중국은 2014년 1월 10일 731부대의 만행을 입증하는 400여 쪽의 관련문서 81권과 시청각자료 70여 건을 공개했다. 이어 2월 22일에는 731부대의 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하얼빈시에 있는 <731유적 진열관>을 증축하기 시작했다. 진열관에는 현재 6천여 가지의 731부대 관련 유물과 문건이 진열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2012년 초부터 2년에 걸쳐 찾아낸 1740점이 따로 전시되고 있다. 모두 경솔한 아베가 자초한 일이다. 중국정부는 현재 <731유적 진열관>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다. 인류에게 일본인들의 잔학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일본의 보수우파 정치인들은 731부대의 악행을 숨기기 위해 부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갖은 거짓말을 자행해왔지만, 한편으로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은 꾸준히 실상을 밝혀왔다. 츠네이치 게이시의 「사라진 세균전부대 관동군 제731부대」, 「의학자들의 조직범죄-관동군 제731부대」, 「731부대-생물병기 범죄의 진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악마의 포식」 시리즈, 아오키 후키코의 「731-이시이 시로와 세균전부대의 비밀을 폭로한다」 등이 731부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일본인들의 대표적인 저작물이다. 다만 이 저작물들은 731부대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집필되었기 때문에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731부대는 1932년 일본군 부대 가운데서 유일하게 히로히토 천황의 칙령에 의해 창설되었다. 1931년 9월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뒤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운 직후였다. 목적은 인체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인간을 대량 살상할 수 있는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설립목적 자체가 잔학했던 것이다. 부대 창설은 세균 전문 의사인 이시이 시로 육군중장이 주도했다. 그는 병리학 박사로 미국에서 세균학을 연구한 엘리트였는데, 귀국하자마자 세균무기를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동료 5명과 함께 육군 군의학교 연구실에서 본격적으로 연구에 착수했다. 이시이는 육군 수뇌부에 세균무기를 사용할 특수부대 창설을 줄기차게 건의했다.
731부대 창설자 이시이 시로 중장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미국의 보호 아래 천수를 누렸다.
1933년 8월, 만주국 주재 관동군 산하 제731부대가 처음으로 문을 연 곳은 베이인허였다. 부대의 위장명칭은 <관동군방역반>이었다. 부대는 군인 65명, 군속 105명 등 모두 170명으로 구성되었다. 부대원들은 이시이 중장의 가명을 따서 ‘도고부대’라고 불렀다. 731부대는 만주 곳곳에 지부를 두고 광범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1936년부터는 대대적으로 시설 확장에 나서 1940년 7월에는 부대 인원이 군인 1235명, 군속 2500명 등 모두 3735명으로 크게 불어났다. 예산도 대폭 증액되어 도쿄제국대학교와 맞먹는 연간 200만 엔에 이르렀다.
각 분야별로 박사급 전문가를 책임자로 하여 연구를 마친 731부대는 곧 생체실험에 들어갔다. 이시이가 만주에 부대를 설치한 목적도 실험 대상자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독립운동에 가담한 조선인, 거동이 수상하다는 애매한 이유로 잡혀온 수많은 중국인과 몽골인, 스파이 용의자라며 잡혀온 러시아인 등이 곧 수용시설을 가득 채웠다. 인종, 성별, 연령 등에는 제한이 없었고 흑인도 섞여 있었다. 여자들은 주로 성병 연구에 사용되었다. 부대원들은 이들을 마루타, 즉 통나무라는 암호명으로 불렀다. 일본인 중에도 병에 걸리면 마루타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마루타는 사람이 아니므로 번호로만 불렸다. 전후 생존자는 없었다.
마루타에 대한 실험 및 학살에는 일본인들의 본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독일의 유대인 가스 처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잔인하고 악랄했다. 부대원들은 파트를 나누어 마루타들에게 페스트‧콜레라‧이질‧매독‧스피로헤타 등 각종 병균을 주입한 뒤 죽어가는 과정을 연구했다. 각종 장기의 상태를 연구하기 위해 살아있는 마루타의 몸을 절개하여 마구 잘라내기도 했다. 절개나 절단에 마취는 일절 하지 않았다. 마루타의 피부를 몽땅 벗겨내어 감염상태를 관찰했으며, 피부 없이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시간을 재기도 했다. 팔이나 다리를 잘라 출혈상태를 관찰하면서 얼마나 피를 흘리면 죽는지도 측정했다. 채찍질을 가하며 계속 달리게 하여 죽어가는 과정을 관찰하기도 했으며, 목을 매달아 죽는 시간을 측정하기도 했다. 한 중국인은 말뚝에 매달린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45일 만에 죽었다. 남녀의 생식기를 잘라 서로 바꿔 붙여서 생리적 변화를 살피기도 했다. 새로운 무기가 나왔을 때도 마루타를 일렬로 세워놓고 성능을 실험했다. 화염방사기나 수류탄의 위력도 마루타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가장 관심이 큰 실험은 마루타들을 말뚝에 묶어놓고 세균폭탄을 터뜨린 뒤 얼마나, 어떻게 전염되는지를 관찰하는 일이었다. 페스트‧콜레라‧탄저균 등의 세균을 옷에 묻혀 입힌 뒤 발병상태를 관찰하기도 했다. 동맥이나 심장에 공기를 주입하여 색전증이 생기는 시간을 체크하기도 했다. 혈관에 말의 오줌을 주입하기도 하고 동상을 방치하여 죽음을 살피기도 했다. 이 밖에도 각종 실험방법이 1페이지 반에 걸쳐 설명되어 있지만 생략한다. 이렇게 개발된 세균무기는 1939년 5월에 일어난 노몬한사건※ 때 소련군과 몽골군을 상대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 1131회에 걸친 생화학무기 사용으로 중국인 50만 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 노몬한 사건 ; 1939년 5월 11일 노몬한 부근에서 만주국 경비대와 외몽골군의 교전으로 발생한 전투. 일본 대본영은 사건의 확대를 원치 않았지만, 사건을 일으킨 관동군은 끝까지 외몽골군을 추격하여 본때를 보이려 했다. 외몽골과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고 있던 소련군은 마침 신무기 실험이 필요하던 때라 옳다꾸나 하고 출격했고, 8월 하순 소련군 기계화부대의 공격으로 관동군 제23사단이 전멸했다.
2011년 일본국회도서관에서 발견된 731부대 연구원들의 박사학위 논문에는 그들의 연구결과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내용은 폭탄 투하 일시, 장소, 세균의 종류, 감염자 수, 사망자 수 등이다. 그러나 이들 논문을 모두 취합한다고 해도 전체 규모는 파악할 수 없다. 누락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731부대 안에서 죽어간 마루타의 수 역시 정확하게 밝혀낼 방법이 없다. 부대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환산하면, 1936년부터 1945년까지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하얼빈일보는 2005년 8월 2일 생체실험 대상자 1463명의 명단을 확보하여 보도했지만 역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731부대는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참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서둘러 철수를 시작했다. 철수하기 전 부대원들은 천인공노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살아남은 마루타를 모두 죽여 시신을 태우거나 화학약품으로 녹인 뒤 송화강에 내다버리고, 실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을 폭파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귀국하는 부대원들에게는 철저한 함구를 명했다. 인간백정들의 우두머리인 부대장 이시이 시로 중장은 중요한 실험 데이터를 미국에 몽땅 넘겨준 대가로 미군의 보호를 받았으며, 미국은 넘겨받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또 다른 대량학살을 준비했다. 미국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한 독일인들은 엄단에 처했지만 이시이 중장을 비롯한 731부대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 학살된 사람들이 대부분 하찮은 동양인들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이중 잣대를 가진 대국에 불과하다.
※ 이어 일본군 위안부 항목이 나오는데, 위안부의 실상 대신 대부분 1965년 한일회담 때 청구권 협상의 잘못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일관하고 있어 생략한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성토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좌파들은 한일 양국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된다는 진취적인 생각은 할 줄 모른다. 그들의 의식은 증오와 파괴로 가득 차 있어 대한민국이 망하는 날까지 친일분자들이나 색출하여 후손들에게 모욕을 가하고 온갖 불이익을 안겨줄 생각뿐이다.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온 국민이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여 정계에서 좌파들을 몰아내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제사회에서 좌파정권이 무너뜨린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데, 그들을 대체할 보수우파 인사들이 없어 절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