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동 촌국수' 골목
국수 먹으러 경남까지 '웬호들갑'
상쾌하다.
유월의 시원한 바람이 사람들 마음을 죄다 씻어주는 듯하다.
부산의 젖줄 낙동강.
낙동강만 건넜는데도, 타지에 온 듯 이렇게 여유롭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볕도 좋고,바람도 좋은 날. 하늘도 푸르고,강도 푸르다.
온 천지가 녹색의 물감을 칠한 듯 대동 가는 신작로 길 주변은,한 폭의 아주 잘 그린 풍경화 그 자체다.
경남 김해 대동.
구포에서 낙동강을 건너면, 낙동강 상류 쪽 제방 신작로 따라 대동 수문 가는 길.
서낙동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 부산과 김해 대동도 따사로이 만난다.
강과 사람이 모두 한가로운 곳.
대동 수문에서 신작로 따라 잠시 가다보면, 돌연 마을이 하나 불쑥 나온다.
이 마을에 점심 무렵이면, 부산의 차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상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다.
조용하던 마을이 갑자기 몰려든 차와 사람들로, 아연 시장이 선 것 같으니 말이다.
대동 촌국수 골목.
정확한 지명은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안막마을.
이 곳으로 부산사람들이 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해 낙동강을 건너는 것이다.
국수 먹으러 경남으로 간다고? 웬 호들갑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국수집마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원래 이 곳은 김해 안막장이 있던 곳.
1980년 장이 폐쇄되고 난 후,조그마한 시장이 들어서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시절 장꾼들에게 국수를 팔던 할매국수집이,입소문을 타면서 '촌국수 골목'으로 변한 것이다.
이곳의 특징은 잃어버린 구포장의 구포국수 맛을 볼 수 있다는 것.
구포국수의 특징은 양념이나 면발이나 모두 설렁설렁 하면서도 고유의 깊은 맛이 우러난다는 데 있다.
특히 육수의 진하고 쌉싸래한 맛은 과연 압권이다.
그래서 이 곳에는 전날 과음한 술꾼들이,쓰린 속을 풀기 위해 삼삼오오 늘 모여든다.
멸치를 내장째 서너 시간 우려낸 육수는,짙으면서도 쓴 맛이 돌기 때문에,술꾼들의 입 맛 살리는 데는 특효라 할 수 있다.
대동 촌국수 골목의 원조인 할매국수집에 앉는다.
아직도 방 한 칸에 평상과 목로의자 몇 개뿐이다.
간판도 없다.
40여 년의 원조집다운 자존심이다.
차림표를 보니 국수 하나 달랑이다.
이 먼 길 국수 먹으러 왔으니, 왕이 된 듯 왕곱빼기를 시킨다.
국수를 기다리며 주전자의 육수를 한 잔 붓는다.
땡초 다진 것 한 숟가락 넣어 훌훌 마신다.
얼큰하면서도 쌉싸래한 것이 속이 다 풀린다.
석 잔만 마시면 해장이 된다고 한다.
국수 왕곱빼기가 왔다.
큰 대접에 국수가 가득이다.
보기만 해도 푸짐한 것이 기가 질린다.
국수 위에는 정구지, 단무지 채,김 등이 가지런히 놓였다.
속을 풀려면 땡초 한 숟가락을 듬뿍 넣어 먹어야 한다.
한 젓가락 크게 입에 넣는다.
입 안 가득 들어찬 국수면발로 깊은 포만감이 새삼스럽다.
진한 육수와 알싸한 땡초가 곁들여 얼큰하니 해장국수가 따로 없다.
달랑 깍두기 찬 하나에도 푸지고 푸지다.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나니,입 언저리가 얼얼하다.
포만감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슬슬 날이 더워지면서, 입맛을 잃어버릴 시기다.
얼큰한 국수 한 그릇으로 입맛을 되돌릴 수 있다면,보약 한 첩 무어 부럽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낙동강을 건너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