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김활란] 왜 김활란이 문제적인가?번호142분류 조회/추천626 / 46글쓴이최은경 작성일1999년 08월 31일 01시 37분 36초
『전문 게시판-페미니즘 자료 (go SGFEMI)』 118번
제 목:[여성사] 왜 김활란이 문제적인가?
올린이:cognate (조여울 ) 99/04/03 18:13 읽음: 77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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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료는 이화여대 4회 페미니즘 문화제 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
<< 지금부터 여성의 역사를 쓰자 2 >>
"왜 김활란이 문제적인가?"
- 신정희진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과정)
[이 글은 김활란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 '대화'의
카탈로그에 실렸던 글을 수정, 요약한 것입니다.]
당신은 김활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화인과 페미니스트에게 김활란 논쟁은 고통스럽다. 이들은 김활란에
대한 입장표명을 끊임없이 요청받는다. 페미니스트에게 김활란은 '말하고
싶지 않음. 관심 없음. 모름. 뜨거운 감자'다. 반대로 남성들은 '김활란
= 친일파'라는 확신에 차있다. 김활란 논쟁이 고통스러운 것(골치 아픈것)
은 이 사건이 새로운 사유 방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여성의 눈으로' 보고자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고 방식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 여성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관점으
로 세계를 해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일 논쟁을 넘어, 여성의
눈으로 김활란을 보는 작업은 깜깜한 동국 속을 헤매는 것 같다.
그의 생애는 한국 사회 여성 문제에 대한 수많은 논쟁 주제를 함의한다.
김활란이라는 인물 자체, 그의 모순성은 철저히 시대적산물이다. 그는 위
대해지도록 '조건 지워진' 사람이다. 김활란이 '출세'한 여성이어서가 아
니라 그 인생의 '시대성' 때문에 그는 역사적 인물이다.
김활란 논쟁은 우리 사회가 흑백논리에 얼마나 익숙한가를 단적으로 보
여준다. 김활란 논쟁은 옹호, 비난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에게도 사회적
성원권을 주느냐, 여성의 삶과 경험도 역사의 구성 요소가 될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 문제가 친일파를 청산하려는 '정의'로운 세
력과 그렇지않은 세력간의 다툼, 혹은 민주세력과 (의식없는 부르조아)여
성들 간의 갈등으로 본다. 김활란 논쟁의 기본 성격은 무엇인가? 이 사건
의 본질은 여성과 남성 간의 권력관계이다. 이 권력관계에서 여성들은 전
형적인 남성적 사유 방식인 흑백 논리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민족(민중)이냐, 여성이냐?는 질문을 질문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운동을 효과적으로 억압하는 언설 중의 하나는 '민
족(민중)문제가 더 중요하냐 여성문제가 더 중요하냐'는 식의 말하기이다.
이런 생각에 익숙한 사람들은 여성문제만 나오면 '노동자 계급 남성과 중
산층 여성 중에 누가 더 억압받느냐'고 묻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성 운
동은 언제나 '중산층, 지식인중심'이라는 접두어를 갖게 된다. 이것이 사
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민족(민중)이냐 여성이냐는 질문은
이미 '정답'을 전제한다. 이 사고방식의 전제는 위계화된 이분법이다. 둘
중의 하나만 옳고, 다른 하나는 틀렸거나 사소한 문제다. 흑백논리에서는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찬성도 반대도 아닌 사람, 찬성/
반대의 기준 자체를 문제시하는 사람은 이 논쟁에서 모두 친일파로 매도
된다.
민족(민중)이냐 여성이냐는 질문에 중요한 전제가 또 있다. 민족과 민
중은 남자라는 것이다. 유관순 '누나'라는 호칭은 민족 주체가 누구인가
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성은 민족과 민중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일 여
성도 민족의 성원이고, 민중에 여성도 있다면 이러한 질문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여성 자체가 성 계급(sex class)으로서 민중인데, 어떻
게 '성 모순이냐, 계급 모순이냐'는 질문이 성립할 수 있는가? 여성과 민
중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여성이 권력을 가진 남자의 아내, 어
머니, 딸로서만 설명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을 통하지 않고도
자원에 접근할 수 있고, 남성없이도 자신의 지위가 설명되는 여성이 얼마
나 될까? 여성 자체가 바로 무산자(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다.
왜, 누구에게 김활란이 거부되는가?
김활란이 '문제적'인 것은 그가 남성 지식인도 아니고, 여성 민중도 아
니기 때문이다. '여성지식인' 김활란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왠지 얄미운(?)
존재다. 남성 지식인은 그들을 숭배하는 지지집단을 갖는다. 가부장제 사
회에서 남성으로부터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배운 대부분의 여성들 역시
그들의 주요 지지층이다. 여성이 모든 자원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위
대한 남성'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제까지 '위대한 남성'들은 여성
의 경험을 대신 해석해 주었다. 여성은 자신의 언어가 없기 때문에 자신
의 경험마저도 소유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지식인의 등장은 남
성에게는 물론 여성에게도 두려운 일이다. 여성 민중이 지지받을 때는 그
들의 주체성이 강조될 때가 아니라, 희생자로서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식
민지역사에 대한 수치심을 자극할 때 뿐이다. 김활란의 삶에는 대다수 여
자들의 인생인 '남자를 위한 희생'이 없다. 김활란은 남성이 여성에게 기
대하는 노스탤지어, 한 곳에 머물러 평생 남자를 기다리는 정박된 이미지
도 없고 구차스러움, 동정심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익
숙한 여성에 관한 역사는 '희생사'였다. 여성은 굴욕과 비참함의 상징이
었다. 그러나 김활란은 승리의 삶을 살았다. 그 시절에 여성으로서 '한국
최초' 타이틀을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했던대로 자기 의지대로
살았다는 의미에서 승리의 삶이었다. 그는 시대에 기죽지도 않았고, 조건
에 굴복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길에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여성
들을 동참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는 남성의 편의대로 살지 않았다.
그는 '여자의 길'을 거부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주님
의 소명과 이화라는 여성공동체의 절대적인 보살핌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
이다. 이렇게 짓눌리지도 피해자적이지도 않은 김활란의 삶은 여성에게는
당혹함과 어색함을, 남성에게는 거부감과 불편함을 준다.
김활란을 부정하는 이화 밖의 여론이 친일 문제라면, 학교 내부에서 김
활란을 비난하는 논리는 그가 특권층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엘리
트 여성을 위해 민중을 억압했다'는 이유로 김활란을 거부한다. 이 말은
1886년 이화의 첫 학생이 누구였는가만 알아도 반박할 수 있는 어이없는
논리다. 나는 이들이 여성이면서도 남성적시선으로 세계를 본다는 점, 자
신이 몸담고 있는 여성공동체를 타자화하는 사고방식에 주목한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을 비판하는 것은 우리는 '여성들간의 차이'라고 하지 않는
다. 이화인들이 다양한 여성주의로 서로 논쟁하는 것과, 이화인이 맺는
남성의 사회적 지위(민중과 결혼했나 상류층과 결혼했나)와 그 남자의 대
리인으로 논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얘기다.
몇 해 전 통신에 옆학교 남학생들이 '이대에도 공대가 있다니, 자원 낭
비다. 니네 내가 다 따먹어 봤는데 맛도 없는 것들이 공학 공부까지 하냐
.."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들은 여자대학을 지식인 집단으로 보지 않
는다. 여자가 배우려면 남자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면 된다는 것을 성적수
치심을 동원하여 역설(?)하고 있다. 김활란 시대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
자들도' 배우고 가르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증명해야 할 판이다. 우리가
진정 투쟁해야 할 대상은 김활란같은 여성 지식인이 아니라, 여성은 엘리
트가 될 수 없다고 믿는 세력, 여자 대학을 고등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다.
김활란, 이화의 담장을 넘지 말 것!
그러나 신사임당을 조선시대 지배계층이었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여성이 상류층, 매국노였어도 그 여성이 남성에게 순종하는 현모양
처였다면 그래서 남성 지배질서를 유지하는데 지장을 주지않았다면 별 문
제가 되지 않는다. 민중을 수탈하고 외세에 아부했던 지배 계급 남성들의
뒷바라지에 충실했던 여성들은 지배층남성에 의해서도, 운동권 남성에 의
해서도 별다른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남성들은 사임당의 인생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만을 뽑아, 그를 '진정한' 여성의 사표(師表)로
지정한다. 사임당은 '여자도 사람이다. 남자와 같다'라고 주장하지도 않
았고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한 지도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남성의 자아
(ego)를 위협하지 않는다. 사실, 남편없이도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이화인은 극소수의 선각자들 뿐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활란이
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의 처벌은 오랜 역사
를 갖는다. 노처녀를 일컫는 영어의 spinster는 원래 베짜는 여성이라는
뜻으고,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폄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문제가 바로
김활란이 친일 행위 말고도 그토록 지탄받는 이유다.
여성이 지식인이 된다는 것, 자신의 경험에 언어를 부여한다는 것의 의
미와 효과는 무엇일까? 어떤 의미에서 여성 교육의 의미를 먼저 알아차린
것은 여성들이 아니라 남성들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언어와 지식 생산 체
계를 독점해왔던 남성들에게 여성 지식인의 등장은 두려운 일이다. 그 두
려움은 혐오와 무시로 드러난다. 지금 여성들은 김활란을 매개로 그간 남
성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져 왔던 역사에 대한 '평가, 선별, 정리, 해석,
기록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기성 세대의 김활란에 대한 평가는 남녀를 떠나서 젊은 세대는 보다 우
호적인데, 이는 80년대 이후 김활란의 친일 행위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점
에도 이유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급격하게 증가한 여성의 사회진
출 때문이다. 공적 영역에 진출한 여성이 거의 없고, 중요한 위치에 여성
들이 거의 없을 때 한 두명 뛰어난 여성의 활약은 남성 중심 사회를 크게
위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토크니즘(tokenism, 구색맞추기)은 여성
들의 사회 진출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가시화되면, 심각한 문제가 되기 시
작한다. 여성들이 중요한 사회 '세력'으로 등장하고 적극적으로 자기 목
소리를 낼 때 김활란의 의미와, 그렇지 않을 때 김활란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즉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 의해 김활란이 여성 지도자로 부각되느
냐의 문제는, 권력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정치학의 현장이 된다.
또한 남성들의 김활란 비판은, '여성' 김활란의 의미가 이화라는 일개
학원에 그치지 않고 이화의 담장을 넘어 '사회화'되는 것,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는 것에 대한 거부이다. 여성은 여성들만의 인물은 될 수 있을지언
정(그것도 남성들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여성이 전체 인간을 대표
하는 사회적 인물이 되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김
활란 죽이기'는, 여성이 여성을 여성의 시각에서 평가하겠다는 시도에 대
한 남성 중심사회의 처벌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인증권을 감히 여성도
갖겠다고 나서는데, 이 어찌 간단한 문제겠는가?
여성의 경험은 역사에 반영되었는가
여성과 남성은 김활란을 다르게 경험한다. 김활란에 대해서 여성의 경
험을 말하는 것, 여성의 이해와 요구를 드러내는 것은 곧바로 '친일을 옹
호하는 것, 객관적이지 않은 것, 개인의 기억'으로 해석된다. '불변의 진
리'로서 김활란의 친일행적은 이에 매우 효과적으로 동원된다. 친일의 역
사가 강력히 각인되면서 여성의 역사는 완전히 지워진다. 친일이라는 잣
대 외에는 어떠한 다른 시각도 '용서'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활란이 '여
성'이라는 사실이 여성들에게는 다른 친일파와 구별짓게하는 중요한 변별
요소가 되지만, 남성들에게는 김활란이 여성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비판하기 쉽다. 김활란이 여성,
교육, 기독교계에 헌신한 점이나 일본으로 유출될 문화재를 열심히 모아
박물관에 기증한 것, 친일행위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받은 사실 등은 다
른 친일파도 그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이들에게 여성억
압은 당연하거나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는 자신의 모델이 될만한
사람 혹은 대안적인 세계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사상 수많은 위
대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사회적 지지 속에 체계적으로 전수받은 남성들과,
여성의 역사가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당한 여성들에게 김활란과 이완용이
어떻게 같은 의미일 수 있겠는가? 여성은 결혼하면 남성을 위해 살아야했
고,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업적을 이룬 여성은 자손을 남기지않았기 때문
에 그들의 역사는 후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남성들은 이런 모순을 경험하
지 않는다.
신라 시대까지만 해도 모계 상속이 있었다는 것,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
왕의 자손가운데 절반이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는 것, 허난설헌이 당시 일
본과 중국의 독자들이 열광한 국제적 베스트 셀러 시인이었다는 것, 아인
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사실은 부인의 연구 업적이었다는 것, 실존주의
의 타자성 개념은 사르트르가 아니라 보봐르의 아이디어였다는 것, 이화
가 남녀 공학을 통틀어 한국 최초의 종합 대학, 최고(最古)의 대학이라는
사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 전수되지 않도록, 여성 스스로가 여성의 역
사를 부정하도록 하는 세월을 살아왔다. 여성의 역사는 은폐와 망각과 소
실과 침묵의 역사였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1호'로 진출한 사람들에게 김활란은 너무나 소
중한 인물이었다. 김활란은 당시 여성들에게 꿈꿀만한 모델, 살아있는 미
래였다. 김활란은 그들이 남성 중심사회를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개인
의 성별은 한 인간의 삶의 방향을 경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남
성들은 '여자도 신념과 건강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김
활란의 메시지를 여성과 똑같은 심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때까지는 특
권층 여성조차도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다. 계급을 초월하여 여
성이 배운다, 성취한다는 것은 개인의 죄악을 넘어 사회악이었으므로 누
구도 여성을 그렇게 독려하지 않았다.
현재 친일 행적은 한 사람의 호, 이름을 딴 기념 사업들은 상당히 많다.
팔봉비평문학상, 동인문학상, 공초문학상, 월탄문학상, 노산문학상, 육당
시조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조연현문학상, 난파음악상, 동랑연극상, 용
재상, 인총상... 물론 민중운동의 성장이라는 시대 상황의 변화를 감안해
야겠지만 어떤 경우도 김활란만큼 부정시 된 인물은 없었다. 식민지 지배
와 가부장제,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무엇이 더 억압적이라고 얘기할수 있
는가? 어떤 남성의 위대한 업적이 그가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모조리 부정되는 경우를 우리는 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우
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김활란은 식민지 체계, 독재 정권에는 협력했지만 가부장제에는 적극적
으로 저항한 사람이다. 김활란은 그 시대 가장 강력한 터부에 도전했다는
의미에서 '혁명가'였다. 왜 가부장제에 저항한 사람은 훌륭한 역사적 인
물이 되지 못하는가? 김활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성들이 모두 김활
란처럼 반공주의자는 아니다. 김활란의 인생은 다양한 여성주의적 가치관
의 등장에 따라 후대의 페미니스트들과 갈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여성들은 시대사적 맥락에서 그녀를 여성사의 중요한 인물로 위치시키고
자 한다. 나는 민족모순과 계급 모순 등 다른 사회적 억압을 부정하지 않
으며, 어려운 여건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회운동가들을 존경한다. 우리 사
회에는 아직도 보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독립 투사의 자녀들이 많
고, '애국 지사들이 멸시받고 친일매국자가 추앙받는 사회'이다. 그것 역
시 분명하고 중요한 부정의이다. 그러나 김활란의 친일 행적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여성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무시한다. 이 점이 바로 '새
로운' 사유와 그렇지 않은 사고 방식의 차이이다.
여성의 눈으로 역사 만들기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은 '원래'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역사상 뛰어
난 여성이 없다고 가르쳐왔다. 여성이 열등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생물
학적으로 증명(?)하여 그것이 마치 자연과학적 사실인양 '객관화, 과학화'
시켜왔다. 여성주의자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위대한 여성을 힘들게 발
굴해서 내세운다. 그러면 또다른 방식의 남성 중심주의(대표적으로 맑시
즘)가 바통을 이어 받아 이번에는 그 여성이 특권층인 것을 문제 삼는다.
여성이 위대해질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다양하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뛰어난 여성인물이 대부
분 그 시대 특권층이었다는 사실자체가 여성이 얼마나 억압받았는가를 증
명한다(그러나 김활란은 특권 계급 출신도 아니었다). 남성은 하층민일지
라도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지만, 교육 혜택이나 공적 영역에 나올 수
있었던 여성은 오랫동안 매우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나는 김활란이 일제시대 징병제를 옹호하고 동원연설을 했다는 것을 부
정하지 않으며, 그의 친일행위가 다른 업적으로 용서되거나 상쇄될 수 있
는 '작은 오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친일행위와 여성주의적으로 평
가되는 업적은 다른 차원, 다른 패러다임의 문제다. A라는 문제가 B라는
문제로 환원, 상쇄될 수 있다는 논리는 전부냐, 전무냐(all or nothing)
의 양자택일 사고방식에서 나온다. 이렇게 되면 김활란 논쟁을 놓고 우리
사회의 담론 유통 방식을 성찰하거나 새로운 사유 방식을 고민할 여지가
없어진다.
한편, 여성들이 김활란을 비판하는 것과 남성들이 비판하는 것은 다르
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김활란 비판은 여성비하가 혼재되어 있다. 김활
란의 친일을 소리높여 비난하면서 이화를 가르치려는 대다수 남성들은 매
매춘과 아내구타, 강간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 개
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성적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성들
은 김활란의 친일 행각을 비판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에 저항
한다.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친일청산을 바라지만 동시에 친
일을 청산하는 작업이 남성들에 의한 역사 독점화, 역사 공식화로 이어지
는 것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