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만난 후 사도 바울이 되어 복음전파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나니아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건강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었고 예루살렘입성 후에는 바나바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사도로서의 그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중풍병자 애니아는 베드로를 만났기에 나음을 얻었습니다. 다비다도 베드로를 만나서 죽음에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에는 기적과 회복과 생명이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모든 만남들이 그런 만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내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남들 가운데 성령이 동행하시며 회복과 생명이 있는 만남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은 주님과의 만남임을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9:40
이미 죽어서 씻은 시체를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참 귀해 보입니다.
살았을 때 얼마나 선행을 많이 했으면 사람들은 다비다의 죽음을 이렇게 슬퍼했을지 짐작을 해봅니다.
섬기며 사랑하며 살다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다비다의 삶입니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엄청난 기적의 연속 속에서도 자신을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아니하고 중풍병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라고 한 베드로니 그가 엎드려서 예수님을 간절히 불렀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
능력의 이름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불러야 할 이름 예수.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아시고 해결하실 이름 예수.
하루종일 머리 속에서 그 어떤 단어보다 생각보다 예수님 이름이 가장 많이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예수!
그 분을 사모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절)
하나님께선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식이 참 다채로우심을 느낍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변화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고, 아나니아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울을 위해 기도하고 그의 눈을 뜨게 하였고, 바나바는 여전히 의심받던 사울을 공동체 안으로 인도하며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사울처럼 크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나니아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순종할 수 있고, 바나바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에는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분의 뜻을 담을 수 있는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이 더 중요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제게 맡기신 자리가 어디든, 기쁨으로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5절)
사울의 회심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회심은 회개하고 돌아서는 마음을 뜻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회심에는 돌아서는 마음과 함께 행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어 그 사람은 같은 사람이나 그 그릇의 쓰임을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그 근본 됨이 완전히 변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위대한 일을 할 그릇이 되지는 못하지만 사울에게 안수하여 순종한 아나니아처럼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되어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지기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귀한 나눔의 일들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게 그에 합당한 순종과 성령충만함이 있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행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스데반이 순교할 때 같이 있었던 사울은 그가 전하던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주님을 전하고픈 강렬한 열망으로 '즉시' 주님을 전하러 회당으로 갑니다
시상식에서 연예인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에서 주님을 향한 열망을 짐작해 보게 됩니다
저의 모습에서도 주님을 향한 열망과 열정이 스며 나와 주님을 전하는 증인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울이 이렇게 변화되리라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상상치도 못할, 예상치도 못한 일이 주의 은혜로 일어났습니다.
주께서는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주를 박해하던 자를 선택하시고 사용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거룩한 자가 아니었기에 그로부터 전해지는 그 은혜와 감동이 더 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들짐승과 같았던 사울
그의 마음가운데 주가 들어가시니 그 사나움이 적대함이 변화되어 이제는 복음을 전파하는 이가 되었습니다.
이 모양 저 모양의 사람도 주가 매만져주시니 주의 사람, 주의 백성이 되어 쓸모 있는 이가 되었습니다.
나 혼자는 할 수 없으나 주가 매만져 주시고 주가 이끌어가시니 우리는 변화될 수 있고 주의 이름을 전파하고 선과 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주의 인도하심으로 주의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
수많은 양 떼 하나하나 길 잃어지버리지 않도록 이끌어주시고 길 잃어버린 양떼 다시 찾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해 늘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의 길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어 다시 보게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멸하려던 자 사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언하는 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택함 받은 그릇이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믿는 자들을 두렵게 하던 자 사울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아니면 사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시인할 수 없고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시기에 이 척박한 땅에서 복음을 전하며 이렇게 살 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택한 주님의 그릇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이곳에서 선교사로 지내며 주님께 부끄럽지 않은 자로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성령님 늘 충만하게 저와 함께 일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