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례식
박은정
어리석은 엄마가 내게 선물한 것은
여자의 삶이 얼마나 하찮아 질 수 있는지
붉은 혀의 거짓말이 얼마나 진실될 수 있는지
돌 사진도 없는 나는 동네 남자애의 이마를 찢어 놓았다
죄 없는 돌멩이
내 죄는 죄 없는 돌멩이에 피를 묻힌 것
아빠의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우리는 절을 했다. 왼손과 오른손 중에 어느 손을
먼저 맞잡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향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여름밤의 모기들은 집요했다
입술을 깨물며 십자가를 긋다 조문객들이
고개 숙여 국밥 먹는 모습을 보았다
식은 음식들을 정리하는 손이 있다
성실한 밤이 뒤돌아 나갔다
엄마는 울지 않았고 상복을 입지 않았다
반짝이는 형광등이 눈부신지 국화꽃 위로
향 가루처럼 하루살이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곳에는 발목이 부러진 멧돼지가 찾아올 수 있다
길 잃은 고양이가 사람의 기분으로 두리번거릴 수 있다
이천이십일년 칠월 삼십일
있지도 않은 남편은 해외 출장 중이고
딸아이는 나와 함께 어색하게 웃는다
엄마는 이 모든 일들이 다행스러운가
천천히 음식 드시다 가세요
먼 길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장례식장 이 층 난간에서
몰래 담배를 피운다
상복에 담배 냄새가 밸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발견하고 돌아설 것이다
이 모든 지난한 일들이
죽음보다 앞서 삶을 이끌고 간다
그날 내가 신에게 던진 돌멩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누군가의 통곡소리가 들리고
옆 호실에서는 찬송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죽음이 삶을 데려온다
어떤 울음은 신에게 던진 돌멩이보다
더욱 처절하게 던져진다
서둘러 장례식장을 나서는 사람들
바람을 헝클던 나뭇잎들이 벤치 위
찢어진 이마처럼 붉게 쏟아졌다
손안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