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골에서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소양호
춘천 오지마을 부귀리
춘천 소양호선착장에서는 30분마다 유명 사찰이자 관광지인 청평사로 가는 배가 뜬다. 청평사는 1972년 소양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걸어서 찾던 곳이다. 지금은 설악산에서 발원해 인제와 양구를 거쳐 춘천에 이르는 물줄기 전체를 소양강이라 부르지만, 옛날 청평사 골짜기 아래에는 ‘작은’ 신영강이 흘렀다.
[왼쪽/오른쪽]산소양댐 근처 맛집으로 소문난 명가막국수 / 소양호선착장에서 청평사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다.[왼쪽/가운데/오른쪽]청평사 근처에 중국 공주와 상사뱀 이야기가 전해온다. / 청평사계곡 구성폭포는 위아래 2단으로 이루어졌다. / 청평사는 고려 광종 때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소양호선착장과 청평사선착장 사이를 배가 30분마다 오간다.
신영강을 따라 난 비포장길을 버스로 달리면 양구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버스가 흙구덩이에 빠지거나 고갯길을 만나면 손님이 내려서 밀어야 했으니 좀더 걸리는 때도 있었지만.
이 모든 기억이 수몰될 무렵, 여러 마을 주민들이 춘천이나 더 먼 외지로 떠났다. 차마 고향을 뜨지 못한 주민들은 불어나는 물을 피해서 높은 산자락에 새 집을 지어 이주했다. 그래서 소양호 물줄기를 따라 섬마을이 여러 개 생겨났다. 부귀리와 오항리도 그런 섬마을 중 하나였다. 육지 속 섬마을이 된 곳은 하루 두 번 오가는 배가 외부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북산면 부귀리와 오항리선착장에도 오전 8시 30분과 오후 4시(동절기 3시)에 소양호선착장을 떠난 배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른다. 그런 섬 아닌 섬마을 부귀리에 1999년 임도가 뚫리고 2009년에는 아스팔트길이 났다. 비록 가느다란 소로지만 섬마을에서 벗어나게 해 준 생명선 같은 길이 놓인 것이다.
[왼쪽/오른쪽]부귀로 하우고개에서 만난 마을 주민 / 부귀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는 지금 생태체험장이 됐다.[왼쪽/가운데/오른쪽]물안계곡의 이름 없는 폭포 / 물안계곡을 따라 텃말까지 청정 자연 속으로 길이 이어진다. / 텃말로 가는 콧구멍다리 위[왼쪽/가운데/오른쪽]텃말 주민이 거주하는 통나무집 / 텃말 비포장길 끝에 자리한 배추밭 / 때 묻지 않은 청정 물안계곡과 비포장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춘천을 지나 오음리로 넘어가는 배후령 고갯길에 낙석이며 진흙이 쏟아져 내린 곳이 많다. 지난 폭우 때 산사태가 일어난 탓이다. 굽이진 길 저편이 보이지 않으니 속도를 줄이고 조심해서 지나는 수밖에 없다. 이 길은 춘천과 양구를 잇는 46번 국도였지만 새로 대로가 난 뒤로는 좀 방치된 느낌이다. 배후령을 넘어 첫 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 오봉산 고갯길을 넘어 청평사로 향한다. 청평사 가는 방법이 소양호를 건너는 뱃길만 있는 건 아닌 셈이다.
관광객들은 청평사선착장이나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난 길을 걸어서 청평사까지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중에 구성폭포를 구경하고 중국 공주와 상사뱀에 얽힌 전설도 만난다. 청평사는 여러 문화재를 보유한 유서 깊은 사찰로서 둘러볼 만하다. 그런데 주차장을 지나 청평사선착장 뒤편으로 이어지는 길로는 아무도 가지 않는다. 보기에 포장이 잘 돼 있고 자동차가 다니기에도 무리가 없는 길이다. 가봐야 별것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주차장 주변 상인들도 그저 북산면 부귀리 가는 길이라고만 한다. 이름하여 ‘부귀로’다. 부귀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청평사선착장에 배가 든 것을 바라보며 산허리 생김새대로 난 굽잇길을 따라 달리니 칡넝쿨이며 잡초며 이름 모를 야생화가 웃자라서 이만큼 쳐들어와 있다. 헬멧을 쓴 얼굴을 나뭇가지가 훑고 지나가고, 다람쥐가 길을 가로질러 후다닥 달려간다.
[왼쪽/오른쪽]건봉령 승호대 글씨는 우안 최영식 선생이 썼다. / 승호대에서 바라본 소양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왼쪽/오른쪽]육지 속 고요한 바다 같은 소양호 / 산막골 막다른 곳에 소양호를 배경으로 민가 하나가 자리 잡았다.[왼쪽/오른쪽]지금은 폐교된 내평초등학교 청평분교에 서예가이자 한국화가인 우안 최영식 선생이 작업실을 마련했다. / 우안 최영식 선생의 소나무 그림[왼쪽/가운데/오른쪽]건봉령 가는 길에 바라본 청평분교와 소양호 / 부귀리에서 산막골에 이르는 소로는 2009년에 포장됐다. / 산막골 가는 길에 집채만 한 바위가 무너져 있다.
부귀로를 따라 굽잇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곧 가파른 비탈로 바뀌어 고도가 높아진다. 하우고개 고갯마루 근처에 오르자 왼편으로 오봉산과 부용산의 우람한 산줄기가 힘차게 뻗은 모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산줄기들 사이로 소양호반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길가에 정차한 뒤 물 한 모금 마시고 저만치 발 아래로 펼쳐진 경치를 눈에 마음껏 담는다. 이마에 번진 땀을 훔치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고갯마루를 넘어서자 부귀리 산촌생태체험마을이라는 알림판이 나타난다. 녹색마을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부귀리 노인정 앞 부귀교를 중심으로 길이 사방으로 나 있다. 부귀교 위로는 물안계곡을 따라 비포장길이 텃골까지 이어지고, 도중에 천전초등학교 부귀분교 터에 산촌생태체험장이 들어서 있다. 아래로 뻗은 길은 산막골까지 이어진다. 부귀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산골짜기마다 집이 몇 채씩 흩어져 있고, 제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마을이 존재한다.
산막골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작은 굽이가 한참 이어진다. 도중에 길 아래로 보이는 소양호반이 멋지다. 산막골을 2.5km 남겨둔 지점에 ‘건봉령 승호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소양호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고갯길을 돌아서는 순간, 뭐라 형언키 어려운 환상적인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육지 속 바다라고 할까? 아니면 산중 도원경이라고 할까? 호반은 하늘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고, 작은 섬들이 군데군데 떠 있는 모습이 어느 고요한 바다를 만난 듯하다. 아니, 그 어떤 바다보다 더 빼어나다. 이런 곳에 이만한 절경이 숨어 있다니, 마치 보물을 만난 듯 기쁜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왼쪽/오른쪽]부귀교 아래 계곡에 유치원생들이 소풍을 나왔다. / 부귀리 들판의 소나무 군락. 우안 선생의 그림 소재가 되었다.[왼쪽/오른쪽]부귀고개를 넘어 오항리 가는 길가 콩밭에 수숫대가 자랐다. / 오항리에 소재한 북산면사무소[왼쪽/오른쪽]오항리 배터로 가는 길 / 큼직한 잣나무가 볼 만한 오항리 배터오항리 막다른 길이 소양호와 만나는 곳
건봉령 승호대에서 바라본 소양호 절경의 여운을 음미하며 산막골에 이르자 또 하나의 폐교가 나타난다. 1992년에 폐교된 상천초등학교 청천분교다. 풀이 자란 교정에 안내판이 서 있다. 1948년에 내평초등학교 청평분교로 설립돼 몇몇 이름을 거치다가 소양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원래 자리보다 고지대인 현 위치로 옮겨왔고, 거주민 감소에 따라 자연히 폐교됐다는 내용이다.
안내판을 읽고 있자니 건물지기 어르신이 더운 날씨에 칡차라도 한잔하라며 부르신다. 알고 보니 한국화가이자 서예가인 우안 최영식 선생이다. 폐교된 청천분교 교사를 개조해 작업실로 쓰고 있으며 14년째 거주 중이라고 한다. 우연한 만남이지만 우안 선생이 부귀리 내력이며 소양댐 수몰과 관련된 옛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재미난 이야기를 경청하자니 조금 전 하우고개와 텃골에서 만난 주민들이 생각난다. 그들 역시 낯선 여행자에게 마을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모두가 마을에 애착이 크다. 지난 추억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물 밑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쓴다.
[왼쪽/오른쪽]오항리 배터와 내평리로 나뉘는 갈림길 / 거울 속에 오항리 갈림길이 보인다.[왼쪽/오른쪽]오항리 갈림길 앞 정자와 석등 / 오항리 입구에 청정마을임을 알리는 문이 서 있다.오항리에서 추곡리로 가는 길
산막골을 돌아 나와 물안계곡이 소양호와 합류하는 지점까지 가 본다. 부귀교 위쪽 상류처럼 하류 쪽 물안계곡도 아기자기한 물길이 바위를 휘감아 돌거나 폭포와 소를 이루며 소양호에 흘러든다. 계속된 폭우 뒤끝이라 수위가 턱까지 차오른 합수 지점에 낚시꾼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대를 휘둘러 미끼와 찌를 멀리 던지는가 싶더니 고요가 찾아든다. 그 풍경 속으로 잠자리가 날아들어 물가 풀잎에 내려앉는다.
부귀리 고개를 넘어 오항리로 향한다. 오항리는 북산면 소재지다. 부귀리와 마찬가지로 한때 섬마을이었다가 추곡리를 지나는 국도와 길이 뚫리며 오지마을을 면한 곳이다. 그래도 여전히 강가에 배터가 있고, 하루 두 차례 배가 드나든다. 면소재지에서 좀더 들어가면 ‘수청’이라 새긴 현판이 걸린 정자가 보이고,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 내평리와 오항리 배터까지 이어진다. 어느 쪽이든 끝나는 지점은 소양호다.
내평리와 오항리를 둘러본 뒤 추곡리 쪽으로 빠지면 춘천~양구 간 국도를 다시 만난다. 추곡리는 뭐니 뭐니 해도 추곡약수가 유명하다. 약수골을 찾아 약수를 바가지에 가득 퍼서 벌컥벌컥 마신다. 씁쓸한 듯 쇠 맛이 감돌며 청량한 기운이 몸안에 퍼져나간다. “크~ 좋다!” 요즘 대유행하는 ‘힐링’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부귀리와 오항리를 달리며 때 묻지 않은 청정한 기운을 온몸 가득 받아들인 뒤 춘천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왼쪽/오른쪽]추곡리 들판과 소양호 / 추곡리 들판과 소양호 너머로 옛 46번 국도가 지난다.[왼쪽/오른쪽]추곡약수는 1812년 추곡리 주민 김원보가 발견했다고 전한다. / 추곡약수는 씁쓸한 듯 쇠 맛이 감돌고 청량감이 일품이다.
글, 사진 : 김종한(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