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1월 22일, 성녀 세실리아 축일
음악 및 음악가의 주보 성인. 성녀 세릴리아.
그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세례명으로서 쓰일 때는 체칠리아라고도 하며,
이 때는 체칠리아로 표기를 통일시키고 있다.
축일은 가톨릭과 정교회 모두 11월 22일.
본디 로마 제국의 명문 귀족의 딸이었지만 종교에 귀의하여 평생 동정으로 살았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그녀를 발레리아노라는 청년에게 시집보냈는데,
첫날 밤에 남편에게 '전 평생을 동정으로 살기로 결심한 몸입니다' 라고 고백한 뒤
남편과 남편 친구에 남편 동생까지 모조리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후에 잡혀 목욕탕에서 쪄죽이는 형벌을 언도받고 24시간 동안 감금시킨 뒤
문을 열었으나 놀랍게도 죽지 않아 목을 쳤는데,
한 번에 치지 못하고 여러 번을 친 나머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이 때가 서기 230년 경.
그녀의 시체는 카타콤에 매장되었는데,
821년 교황 파스칼 1세가 이장을 위해 무덤을 열었을 때
시체가 전혀 썩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성녀 체칠리아가 음악과 엮인 사연은 그녀의 결혼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결혼을 원치 않았었기 때문에 당시 결혼 음악과 환호성을 전혀 듣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또다른 음악주보에 대한 설로서...
어떻게 세실리아 성인이 음악의 주보 성인이 되었을까?
화가인 라파엘로나 루벤스 등의 그림에서 성인은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다.
또 도메니치노는 작곡가와 바이올리니스트로 빌링턴은 가수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실리아가 정말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가수였을까?
그렇지 않다. 본래 세실리아는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가톨릭을 전파하다가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아 순교한 사람이다.
그러다가 1584년 로마에 음악원이 생기게 되었는데,
마침 그 음악원의 자리가 성 세실리아 성당이 위치했던 곳이었기에
그 이름을 따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이라고 명명되었다.
그 후 몇몇 음악가 모임에서도 세실리아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면서
결국 오늘날과 같이 음악의 주보 성인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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