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환난날에 주님을 부르니
모든 어려움 속에서 건져주십니다.
주님의 생명싸개 손안에 있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보혈만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진리를 보고 기뻐 춤추는 동안
상처로 너덜거리는 영혼이 강건하게 회복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본문 주해)
16~20절 :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어찌하여 감히 내 법도를 전파하며, 내 언약의 말을 감히 너의 입에서 읊조리느냐?
너희는 내 교훈을 역겨워하고, 나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고 말았다.
도둑을 만나면 곧 그와 친구가 되고, 간음하는 자를 만나면 곧 그와 한 패거리가 되었다.
입으로 악을 꾸며내고, 혀로는 거짓을 지어내었다.
동기간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말하고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기들을 비방하였다.”(새번역)
감사로 제사하지 않고 제사를 복을 받는 도구로 사용하는 악인들도 하나님의 율법도 읽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가증하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자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교훈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돌린다. 그 결과, 도둑과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 편에 서며, 입으로 나쁜 말을 하고 거짓말을 부풀려 꾸며낸다. 형제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헐뜯고 다니고, 자신과 한 핏줄인 사람에 대해서도 비난하고 다닌다.
21~22절 : “이 모든 일을 너희가 저질렀어도 내가 잠잠했더니, 너희는 틀림없이, '내가' 너희와 같은 줄로 잘못 생각하는구나. 이제 나는 너희를 호되게 꾸짖고, 너희의 눈 앞에 너희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보이겠다.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 이 모든 것을 깨달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을 때에 구하여 줄 자가 없을까 두렵구나.”(새번역)
이런 일을 하는 데도 하나님께 잠잠하시니, 하나님도 자기들과 같은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책망하여 죄를 그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신다
악인의 특징은, 악에 대한 보응이 즉각 임하지 않을 때 악을 정당화하는 데 있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을 두고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줄로 착각한다. 계명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일이 어디 있느냐고 오판한다.
이것은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멸시하는 것으로, 스스로 매를 버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돌이키길 원하신다.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면 그들을 찢으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도 그를 구원할 자가 없다.
23절 :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새번역)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자란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 즉 삶의 예배를 드리는 자이다. 그의 삶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다.
(나의 묵상)
‘성경에서 악인이 등장하면 그 사람이 곧 나 자신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라고 하신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런데도 이런 말씀을 대하면 나는 절대 ‘악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문제이다.
17~20절에 열거된 악인의 행태를 나는 저지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요, 혹 내가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내 앞에 있고, 이러한 말씀을 보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올려질 만한 삶, 그 올바른 길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나의 결단과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반성이나, 그 잘못된 것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대신하는 선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어떤 인간도 스스로 그 행위를 옳게 할 수 없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없다.
태어나기를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의 후손 즉 죄인으로 났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들에게 구약 시대 율법을 주신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길을 갈 수 없음으로 알고, 장차 오실 메시아를 믿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모진 고난과 조롱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안고 하나님께로 데려가 주신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에서 자유하게 된 자들이 날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그 삶이 향기로운 제물로서의 삶이요, 올바른 길인 것이다.
그 삶을 살고, 이 길을 걷는 자들이 바로 성도이다.
하지만 성도라고 해서 이 땅에서의 삶이 언제나 향기로운 것이 아니다.
그들도 오늘 본문에 나열된 악인의 모습에 휩쓸려 살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묵시적으로는 이미 하늘에 앉히운 자이지만, 이 역사 속에서는 육신을 입고 사는지라 언제나 죄의 세력에 노출되어 있다.
이 연약한 자들이 때때로 쓰러지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주님께서 지금도 하늘에서 중보하고 계시고, 또한 성령을 보내셔서 인도하여 주시기에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는 것이다.
어제, ‘열심히 말씀을 묵상해도 달라지지 않는,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낙심과 실망’에 대해 지체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다른 사람’ 중의 한 명이 나였다.
나는 그 말에 화를 내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나의 신앙의 ‘Increasing’이란 내가 점점 멋진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내 죄를 자세히 깨닫게 됨으로 주님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의 죄가 정당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죄에 더욱 민감한 자가 되어 주님의 보혈을 더욱 의지하게 되니, 그야말로 주님께 ‘착붙’하는 포도나무가지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악인의 행실이 내게 있음을 알게 되니 오늘도 나지막이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 그런 내게 말씀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4~16)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드리는 나의 삶, 그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을 나는 믿는다.
(묵상 기도)
주님,
손과 발로, 입으로, 온갖 악을 저지르면서도 뻔뻔하게 살아갔을 자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해 나의 허물과 죄를 보게 하십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드리는 나의 삶, 이 감사의 제사를 받아주옵소서.
이것이 주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이니 제게 기쁨이 넘칩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