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2일(화)
* 시작 기도
주님...
가나의 혼인집에 가장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집에는 포도주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정결예식에 사용하는 항아리에 물도 없었습니다.
이는 율법을 생명으로 하여 지키는 그들의 외식적인 삶의 모습 또한 여실히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은 율법주의와 유대주의 그리고 바리새적 외식을 겨냥한 일갈이었습니다.
비단 그들만의 외식이 아니라 나의 이중적이고 외식적인 삶을 꾸짖는 사랑의 음성임을 압니다.
율법주의를 복음의 포도주로 바꾸시는 은혜인 것이지요.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내 뜻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하오니 나를 복음의 사람으로 이끄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50:16-23
제목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 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어제에 이어서 계속되는 말씀이다.
당시 횡행하던 위선적인 종교인들의 잘못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악인이면서 그 입으로는 하나님의 법과 언약을 입으로 주절대는 이중적이며 외식하는 자들을 책망하신다.
이런 외식하는 자들의 행태는 이렇다.
주의 교훈을 미워하고 주께서 하시는 말씀에 등을 돌린다(17).
도둑과 함께 하며 간음하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어울린다(18).
입으로는 악한 말을 하며 거짓을 꾸민다(19).
형제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헐뜯고 그들과 한 형제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난을 삼가지 않는다(20).
그들이 이런 일을 행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잠잠하시니까 마치 하나님을 자기들과 똑같은 유로 생각했나보다(21).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여 그 죄를 하나하나 드러내실 것이다(21).
너희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다(22).
이제 너희들은 그동안 너무 쉽게 생각했으나 결코 내가 잊어버리지 않았고 이에 대하여 돌이키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을 것이며 그 누구도 결단코 너희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22).
이것을 반드시 명심할 것이다(22).
무엇보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23).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다(23).
나는 오늘 말씀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이 말씀이 내 폐부를 찌르는 이유는 내가 바로 이런 위선적인 종교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나올 수 없는데 나는 한 입으로 찬송과 악한 말을 내뱉는 가장 위선적인 종교인이었으니 말이다.
(약 3:10-12)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또한 나는 나 스스로 주의 성전이라고 하면서 우상의 전으로 만들고 살았던 자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고후 6:16-18)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지금 주님의 실존이신 말씀 앞에서 나의 마음을 찢는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꽤 괜찮은 목사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와 하나님은 나의 실상을 알고 있지 않는가?
내가 바로 악을 행하면서도 그 입술로는 찬양을 하고 주의 거룩하신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이런 나는 주의 교훈을 부담스러워 하며 입술로는 전하지만 내 마음으로는 그 말씀에 등을 돌리는 자이다.
도둑과 연합하고 간음을 일삼으며 입술로 거짓과 속임수 그리고 비방을 일삼고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징벌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악을 행하기에 부끄러움도 없고 주저함도 없으며 오히려 담대하다는 것이다.
(전 8: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그러나 이런 악을 행하는 나를 언제까지 참으시겠는가?
주님께서는 그런 자를 책망하여 그 죄를 나의 눈앞에서 낱낱이 드러낼 것이라고 하신다.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미 나의 모든 죄는 하나하나 숨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내가 숨긴다 한 들 어디에 숨기겠는가?
말씀이 나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시는데 말이다.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심판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나는 나의 실상을 안다.
내가 바로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닌가?
입술로는 주여 주여를 외치되 마음으로는 전혀 주를 따르지 않는 자,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라고 외치고 계시는 것이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내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아무런 여지가 없다.
오직 주님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다.
나는 오늘 그저 죽기를 바란다.
그런데 육신의 죽음으로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기 전에 나의 정욕과 육신의 소욕 그리고 모든 악한 일을 죽이는 진짜 죽음을 바란다.
먼저 주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죄 씻음을 구한다.
오직 주의 보혈만이 나의 죄를 정결케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 언약 백성으로써 새 언약 백성답게 오늘도 나의 신앙의 수준에 맞게 말씀으로 나아간다.
나는 오늘 새벽 이 말씀 앞에 나아오기가 너무 싫었다.
그야말로 말씀에 등을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 말씀이 나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야 할 곳은 여기임을 알기에 파레시아로 담대히 나아온 것이다.
죄에 깊이 빠진 이 몸임을 알수록 더 말씀 앞에 나와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피한다 한 들 내가 어디로 피할 것이며 숨는다 한 들 내가 어디로 숨을 수 있겠는가?
(시 139:7-10)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주님은 안 계신 곳이 없는데 차라리 내 심령이 찢어지고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주의 말씀에 깨져서 내가 가야할 곳인 주의 품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나를 죄의 소굴로 이끌어가는 내 안에 있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오늘도 거룩한 불구자로 살기 원한다.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 옛 사람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 역시 무력해진다.
나는 이 복음을 안다.
십자가의 능력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후안무치라고 욕을 당할지라도 내가 가야할 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에 나는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 품으로 나아간다.
그곳이 곧 내가 거할 아버지 집이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의 말씀 앞에서 날마다 죽고 매일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내가 되게 하소서.
영적 하루살이가 되어 오늘 하루를 잘 사는 자 되기 원합니다.
진정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그는 아들의 생명이 있는 자임을 아오니 오늘도 당신의 생명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게 하소서.
불법을 행하여 주님의 추상같은 불호령에도 담대하여 여전히 불법을 행하는 자의 일을 그치게 하소서.
이제는 나의 죄를 보고 깨달아 오직 주님의 품안에서 면목없고 좀 뻔뻔하지만 아들을 힘입어 담대함으로 인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게 하소서.
내가 일방적으로 드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 곧 산 제물이 되어 주님과 함께 주고받는 교제의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나의 손으로는 드리고 마음으로는 주님과 교제와 사귐이 있으며 몸으로는 주의 뜻을 이루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게 하소서.
죄에 깊이 빠진 불의한 이 몸일지라도 주의 십자가의 보혈, 보혈의 샘물에 푹 잠겨서 구속함의 노래를 부르는 진정한 성도의 찬양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