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의 ‘화동(花童)’과 ‘화견(花犬)’
제가 어릴 때, 그 시절에는 개를 집 안에다 키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를 방안에서 키우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개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하며 개에게 먹이는 사료가 나오고 통조림이 나오더니 이내 길거리에 개를 껴안고 다니거나 차에 태워 다니는 모습이 부쩍 눈에 띄었습니다. 애완견을 많이 키우기 시작할 즈음의 다소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개에 대한 사람의 생각이나 시각이 급속도로 바뀌면서 아이 대신 개를 유모차에 태워 다니며 개를 사람 취급하고 자식같이 돌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개의 아빠, 엄마로 지칭하며 개도 아들이나 딸로 부릅니다. 이어서 애완견 숍 이나 동물병원이 기하급수로 불어나기 시작하고 개를 치료하는 비용이 웬만한 사람을 치료하는 비용보다 더 비싸게 되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인삼이 들어간 고급 사료가 만들어지고 개를 위한 특별한 영양제니 다이어트 식품 등이 생겨납니다. 개를 지도하는 개 유치원이 문을 열고 개가 쉬는 카페가 생기고 심지어 개를 위한 호텔이 성업 중입니다.
병든 부모는 쫓아내어 요양원으로 보내지만 개 만은 꼭 부둥켜안고 사는 세대가 되었고 편안한 호텔에 모시는 날이 왔습니다.
개가 죽으면 장례식을 잘 치러주며 화장장에 가서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시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죽은 개의 사체가 화구속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그 앞에 서서 절을 합니다. 어느 교회의 힘 있는 장로 권사 부부가 키우던 개가 죽자 교회의 부목사가 가서 임종 예배, 입관 예배, 발인예배, 하관 예배까지 풀세트로 드렸다고 합니다. 물론 요즘은 개나 고양이 부고장도 돌린답니다.
어제 우연히 어느 결혼식 풍경을 담은 영상을 보았는데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꽃바구니를 든 어여쁜 아이‘화동(花童)’는 보이지 않고 대신에 꽃바구니를 입에 문 개 ‘화견(花犬)’가 쫄랑쫄랑 입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세상이 온통 개의 천국, 개 세상, 개판이 된 듯합니다.
오래전 제가 벨기에 Belgium에 살기 시작할 때(1989년 여름)의 일입니다.
그 당시의 벨기에 인구가 약 900만 명이었는데 그들이 키우는 개의 숫자가 약 1,100만 마리였습니다. 그래서 벨기에 사람들에게 이 개들 다 통조림 만들어서 굶주려 죽어가는 아프리카에 보내며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어떤 사람은 깜짝 놀라며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하였고 또 많은 사람은 그래도 괜찮을 듯하다며 웃었습니다. 도시 외곽 주택지는 물론이고 브뤼셀 Brussel의 모든 공원마다 마다에 가면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허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죽으면 수십억의 재산을 물려받는 개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개들은 전담 변호사와 보호자가 지정됩니다.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며 키우는 것은 건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가, 고양이가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릴 때 포인터라는 좋은 품종의 개를 키워보았고 성인이 되었을 때도 순종 말티즈도 키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형편만 허락한다면 로트와일러를 두 마리 정도 키워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를 개로 키우지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더 욕심을 내면 정말 강하고 민첩한 흑표범을 키우고 싶은데 그것은 어렵겠지요.
동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주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용하는 것이 지혜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