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문학시모음 31호
☆★☆★☆★☆★☆★☆★☆★☆★☆★☆★☆★☆★
참회
허호석
버리고 비우고 버린 빈자리에
어찌,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채워져
그림자처럼 동행을 유혹하는 어지럼중에
나는 머뭇거리는 강물이었다.
마음밭 잡초를 솎아내지 못한 그날의 흔적
지우고 닦아도 흐릿한 자국으로 남아있는 얼룩
겉과 속이 다른 은밀한 죄 어찌합니까
안 그런척 위장된 차림을 내보이진 않았는가.
빗물에 고인 하늘조각에도 발이 채인다
하나님이시여!
지우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후회
참회하는 아음 새롭게 손잡아주소서
버리고 비운 자리에 한 점 부끄러움 남지 않게
티 없는 하늘을 갈아 끼워주소서
☆★☆★☆★☆★☆★☆★☆★☆★☆★☆★☆★☆★
고개 고개를 넘어
허호석
잘 되어 돌아오겠다며 넘던 고개
타향살이 고향 그리운 보릿고개였지
빈 까치집 받들고 서 있는 미류나무 먼 하늘
언제 돌아올까 손사래를 나누었던 성황당 고개였다.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보내고 남던 고개
옛님이 그리운 바위고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 발병 난다는 아리랑 고개였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세월 나그네 발길
이런저런 넘어야 할 인생 고개 고개인 것을
너 때문이야
그 꽃이 이미 마음밭에 피어 있기 때문이다
강변 은모래 밭에
물새가 종종종 시 한줄 찍어 놓은
그 곁에 나의 발자국을 나란히 놓은 건
너 때문이야
낯선 들꽃에게 말을 걸고 싶은 것도
신발코 앞에 던져진 잎새 하나에도
발이 채이는 건
너 때문이야
언제까지 처마 끝에 걸어둔 그리움은
나의 시 속에 아프게 묻었다
세월의 바람에 흩뿌린 시는 산에 들에 피고 지고
하늘에 올라 별이 되었다.
그래, 다 너때문이야
☆★☆★☆★☆★☆★☆★☆★☆★☆★☆★☆★☆★
고사부리성
전병윤
손자야 누가 어데 사느냐고 묻걸랑
고부 산다고 말하지 말고
외가 동네 이름을 대거라
손자는 기억한다
손자야 할아버지가 누구냐고 묻걸랑
내 이름을 대지 말고
외할아버지의 존함을 대어라
손자는 생각한다
고부군 고부면 고부리
성황산 중심에 고사부리성
오리汚吏떼들이 배를 채우려다
허물어진 지 백년
그 산성 옛 모습을 찾아 놓으니
바람새 이야기가 들린다
바람새 하룻밤이 너무 짧아서
가슴앓이 하던 소쩍새
바람새 하루 해가 너무 길어서
눈물 마른 우리 할아버지
동학의 경계를 지나서
태산준령의 경계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악의 경계를 지우고
백성이 주인 된 분홍빛 세상 오거든
고부가 고향이라고 말하거라
피 묻은 할아버지 이름을 대어도 좋다
손자는 푸른 기억의 감은 눈을 뜨다.
*고사부리성: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성황산을 중심으로 하여
석성과 토성으로 축성한 산성.
☆★☆★☆★☆★☆★☆★☆★☆★☆★☆★☆★☆★
탄금대와 신립장군
전병윤
봄날 탄금대에 올랐다
신립장군 목쇤 호령이 들린다
장군이 오르내리던 열두대는
말 없이 봄만 잠재우고 있었다
탄금대* 학의 진영은 쑥밭 되고
장군은 탄천강에 육신을 던졌다고
하늘은 무심하게 말하고 있네
탄금대 패전으로 임란의 사기는 죽고
조정은 몽진을 해야 했다
탄금대에서 장군이 큰 소리로 웃었다면
훗날 ......
치욕의 일제 36년의 역사는 없었을까
아 참말로 아프다.
*탄금대전투: 1592. 6. 7. 신립 장군이 이끄는 임진왜란 중
충주 탄금대 전투. 치명적인 패전이었다.
☆★☆★☆★☆★☆★☆★☆★☆★☆★☆★☆★☆★
탄금대와 우륵
전병윤
파란 역사가 숨 쉬는 탄금대에 올라보니
우륵 선생 가야금 열두 마당 소리가
잔잔한 솔바람 속에 들려오고 있었네
오동나무로 만든 가야금은
지금껏 오동꽃 보라빛 향기가
은은히 탄금대 숲을 적시고 있었네
튕기면 떨리는 가야금 열두 마당에
달이 뜨고 지고 별이 뜨고 지고
우리네 인생도 뜨고 지고 있었네
산 까치도 잠들고 풀벌레도 조는 밤,
휘영청 달 밝은 고요한 삼경이면
선생은 사바세계의 소야곡도 연주한다네.
*우륵于勒 선생 : 490년 가야에서 출생, 가실왕의 뜻을 받아
12현금을 만들고 가야금 12곡을 지었음. 진흥왕12년에 신라로
귀화하여 가야금 전성기를 이루고 12곡은 궁중 음악이 되었다.
☆★☆★☆★☆★☆★☆★☆★☆★☆★☆★☆★☆★
겨울 요정
강정숙
파라칸사스, 남천열매
까마귀밥나무, 화살나무의 빨강 열매
혹시 그 빨간 요정들을
아시나요
추운 마음을 감추고 싶어
마술을 부리는 거랍니다
하얀 눈 속에서 그들의 피 토해내는 마력은
우리의 마음을 솜처럼 만들지요.
☆★☆★☆★☆★☆★☆★☆★☆★☆★☆★☆★☆★
닭의장풀
강정숙
여름날 아침 잠깐
꽃 피워 낸다고
순간의 즐거움
살짝 닿기만 해도
남색의 물이 금방
묻어날 것 같은 꽃잎 두장
남색의 치마 저고리 감
고운 천조각을 생각케 하는
잡초이지요.
‘꽃이 피는 대나무’라고
노래할 만큼 매력도 있답니다.
☆★☆★☆★☆★☆★☆★☆★☆★☆★☆★☆★☆★
초여름날 일상
강정숙
미국제비꽃을 얻어다 심어놓고
제법 자리 잡아 가는데
우리 집 9년 동안 같이 살고 있는 식솔*이
그 꽃위에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꽃이 소중한가~
우리 식솔이 소중한가
모르것다.
여러 씨앗들을 함께 뿌려 놓았더니
잡초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신의 종種을 드러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 옮겨 심으려 하니
메리골드를 살려야 할지
풍선초를 살려야 할지
한참을 망설인다.
무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것다.
탐스런 무늬 비비추 두 그루를 얻어다
부추밭 끝에 심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자꾸만 비비추의 밑둥을 파서
야채밭을 넓힌다
큰소리로 따져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모르것다.
*식솔 10년동안 같이 지낸 개입니다.
☆★☆★☆★☆★☆★☆★☆★☆★☆★☆★☆★☆★
직립이 불편하다
구연배
보약 먹는 셈이라 해서
등산 갔다
무릎은 시지
숨은 가쁘지
장딴지는 땅기지
땀은 퍼붓지
앞으로 5°허리 숙여
하나 둘 하나 둘
山도 生도
고지가 저긴데
직립이 불편하다.
☆★☆★☆★☆★☆★☆★☆★☆★☆★☆★☆★☆★
해빙
구연배
당신
말 한 마디에 풀어지는
얼음 있다
당신
눈빛 한 줌에 넉넉해지는
가슴 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기쁨
노래 한 소절
당신
안부 편지 한 통에 꽃피는
봄 있다.
☆★☆★☆★☆★☆★☆★☆★☆★☆★☆★☆★☆★
파도여 파도여
구연배
파도가
바람을 타고 떠내려 온다
더 이상 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바다를 주름잡는 파도는
자유를 사랑한 보헤미안
재갈을 거부하는 야생마다.
울어라 파도여
울부짖어라
너를 가둔 바다의
검푸른 심장이 항복할 때까지
너를 홀대한 세상
지저분한 몰지성이 사라질 때까지
소리쳐 울고 부셔버려라
숙명은 없다
내 안의 파도가 나를 치며
성난 맹수처럼 달려들 뿐
그러나 꺾이지 않는 무릎으로
끝내 바다를 건너리라.
건너 주리라 파도여.
☆★☆★☆★☆★☆★☆★☆★☆★☆★☆★☆★☆★
전철에서
김강호
손잡이 잡으려다 덥석 잡은 흑인 손
순간 놀라 내 손바닥 숨죽이며 들여봤다
까맣게 물들었을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지그시 눈을 감자 떠오르는 아프리카
허기진 모습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레일에 엉겨 붙어서 덜컹덜컹 울었다
멀뚱한 검은 아이들 눈망울이 꿈틀거리며
땀에 젖은 내 손에서 방울방울 굴러 나올 때
전철은 굶주린 터널로 빨려들고 있었다
☆★☆★☆★☆★☆★☆★☆★☆★☆★☆★☆★☆★
디케
김강호
신화를 걸어 나와 권력에 눈먼 여인
한쪽 귀 틀어막고 중심을 잃은 지 오래
움켜쥔 저울은 이미 악법 쪽으로 기울었다
썩어버린 정의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고
매몰된 자유에서 신음이 솟구친다
길 없는 벼랑을 향해 헛딛는 저 디딤발
정적의 목을 치는 비릿한 칼날에서
수많은 비명소리가 천지사방 나뒹군다
오, 저기 유권무죄와 무권유죄 판결이여
불의가 웃자라서 지상을 뒤덮을 때
긴 머리 휘날리며 천공에서 추락하는
디케여! 마녀 디케여! 악법의 딸 디케여!
☆★☆★☆★☆★☆★☆★☆★☆★☆★☆★☆★☆★
가을 여인
김강호
가을에 젖은 여인은 한 편의 시가 되고
잠 깨어 서성이는 운주사 와불이 되고
쪽빛을 가르며 가는
한 마리 새가 된다
아득한 뒤태에는 샬리니 향기가 피고
건반을 빠져나온 풍금 소리가 피고
갈대밭 시름 헹구는
보랏빛 노을이 핀다
단풍의 붉은 혀가 여인을 빨아들이자
목마른 사내 가슴은 느닷없이 덜컹거리고
구멍 난 하늘 어귀에선
별 한 됫박 쏟아진다
☆★☆★☆★☆★☆★☆★☆★☆★☆★☆★☆★☆★
날자 날아다니자
김영갑
아기 안고 다니는 사람은 없고
강아지 안고 다니는 사람은 많다.
아무래도 사람은 사라지고
개만 사는 세상이
오려나 보다.
그래
우린 죽을거야
날다 죽지
훨훌 날다 죽을거야
죽긴 너무 젊어
더 날아야겠지
더 멀리 더 멀리
개만도 못한 우리
노인들이
날자
날아다니자
세상을 어지럽히자
☆★☆★☆★☆★☆★☆★☆★☆★☆★☆★☆★☆★
광야에서
김영화
얼어붙은 차가운 시맨트 바닥에서
하얀 맨발로 춤을 추네
저 여인, 미쳤나?
저기 광야에 서서 떨고 있는
저 남자도
시커먼 맨발이네?
이 추위에, 어쩌나?
빙글빙글
사뿐사뿐
춤추는 여인 곁으로
엉거주춤
춤사위를 하며 파고드네
낮아짐으로
고독함으로
울고있는 여인 곁에
웃고있는 저 남자.
광야에서 손을 잡고
춤을 추네
☆★☆★☆★☆★☆★☆★☆★☆★☆★☆★☆★☆★
광야에서 2
김영화
오후 네 시에 춤추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은 추어야한다는 약속아닌 명령이다
그것도 광야에서
빗줄기는 전혀 잦아들지 않고
어디선가 우산을 받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그것도 이 빗속으로
명령처럼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이것은 차라리 선전포고다
우리는 지체없이 하얀 날개옷을 무기처럼 치켜들고
빗속을 뚫고 전진한다
저 광야속으로
물이 흥건히 고인 바닥에 꿇어 엎드려 절한다
일어나 빙글빙글 돈다
꽃이 되었다가 새가 되기도 하고
산이 되었다가 골짜기가 되기도 한다
대낮부터 술에 취한 한 남자
춤꾼들 속으로 파고 들어
나름대로 음악에 맞춰 비틀비틀 춤을 춘다
그 누구도 정제되지 않은 저 춤사위를 제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찬 빗줄기 사이로
흑백이 하나 되어 살랑거린다
누가 저들을 이 장대빗속에 광야로 내보냈는가?
☆★☆★☆★☆★☆★☆★☆★☆★☆★☆★☆★☆★
손자의 종이컵
김영화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녀석의 꿈은 아쿠아리움 사장이었다
왜 하필이면?
고작 꿈이 고건가?
내심 실망스러우면서도 이유를 물어보질 못했다
얼마 전
과학학원에 다녀온 손자 손에 실전화기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 저하고 전화놀이해요
하며 실이 매달린 종이컵 하나를 준다
이게 웬 떡이냐?
평소 손자녀석은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거실에 계셔요 저는 제 방에 있을게요
실을 팽팽하게 하고 종이컵을 입과 귀에 잘 대세요
오냐 알았다
아 아 할머니 잘 들리세요?
응 잘 들린다
할머니, 우리 아빠는 어렸을 때 무엇하고 놀았어요?
밖에서 친구들하고 신나게 놀았지
우리 아빠 꿈은 뭐였어요?
공부를 잘해서 내가 의사가 되라고 했었지
우리 강아지도 의사가 되면 좋겠다
아니예요. 제 꿈은 과학자예요
그으래?
아쿠아리움 사장은 수족관 속으로 떠나보냈나?
난 속물처럼 속으로 웃는다
......
잠시 통화가 멈추었다
우리 강아지 사랑해
내가 먼저 얼른 고백했다
저쪽에서 모기만한 소리가 들려온다
저도 사랑해요.
일회용 종이컵이 이어준
뜻밖의 행운이다
☆★☆★☆★☆★☆★☆★☆★☆★☆★☆★☆★☆★
우리가 사랑해야 한다면
김용호
잘 정리해나가야 할 우리의 삶은
풀리지 않는 삶의 수수께끼입니다.
얻는 것만 있고 잃은 것이 없다면
우리의 좋은 관계는 나쁜 경계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덮어 주어야 할 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허물은 반듯이 덮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할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해는 확실히 이해를 해야합니다.
우리는 채워 줘야 할 부족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족함은 꼭꼭 채워 줘야 합니다.
우리는 용납 못할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수는 꾹꾹 감춰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려되는 미운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운 점은 참 예쁘게 보아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약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약점은 확실하게 보완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름을 필수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
하트해수욕장에서
김용호
이렇게 좋은 하트해수욕장에서
새감 누구와의 인연을
차근차근 준비하지 못한 과정을 생각하면서
인연의 근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아쉬움과 서러움이 겉잡을 수 없게 밀물처럼 밀려와
내 마음에게 미안했습니다.
서러워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내 흘린 눈물 때문에
하트해수욕장의 명사明沙는 젖어 있을 겁니다.
이제 머물 동안 내 마음이
하트해수욕장의 명사明沙를 닮아 보려합니다.
이제 머물 동안 내 마음이
하트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풍경을 닮아 보려 합니다.
참 예쁘고 아름답잖아요.
왜냐하면
아름다운 명사明沙와 아름다운 풍경이
내 마음속에 채워지면 아쉬움과 서러움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테니까요.
그 때 부끄러움 없이 노골적으로
내 마음을 바다에 내보이면 하얀 두 손을 흔들며
하트해수욕장을 남 몰래 떠나려 합니다.
☆★☆★☆★☆★☆★☆★☆★☆★☆★☆★☆★☆★
오늘은
김용호
어제까지만 해도 쓸데없는 걱정들을 많이 했다.
되도록이면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말기로 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 때문에 바빴다.
이제는 내게 놓여진 현실에 무제한 감사의 마음을 드리기로 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감사를 드릴 줄 몰랐다.
인연이 되어준 사람마다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를 채비하기로 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많은 일들을 타인에게 미루었다.
봉사를 하기 위해 성실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기로 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분수를 모르는 바보로 살아왔다.
분수를 알고 달성할 수 없는 꿈과 목표는 포기하기로 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지나친 욕심을 갖고 살아왔다.
내 마음에 생겨나는 욕심의 가지들을 이제는 쳐버리기로 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수용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옳습니다. 좋습니다. 라는 수용적인 삶을 살기로 하자.
☆★☆★☆★☆★☆★☆★☆★☆★☆★☆★☆★☆★
느티나무
김예성
인적 드문 언덕길 옆에서
느티나무는 오백 년을 살아왔다
사느라 깊어진 세월
허리를 꼿꼿이 가꾸며
피와 살은 아꼈다
음푹 패인 흉터는
털어도 먼지 없는 얼굴을
햇볕으로 가렸다
많은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느티나무 아래로 와 죽었다
버리지 못한 욕심 때문이라고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로 묻어줬다
맑은 하늘이
떠나지 못하는 땅이
느티나무의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
마당은 마당발로 오래 서 있고
김예성
마당을 쓸면서
청춘이 익으면 낙엽이 되겠지
이왕이면 곱고 화려했으면 좋겠구나
머리카락은 거꾸로 희어져도 변함없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오랫동안 즐겁게 시간을 물들이고
내 곁을 지켜주면 더 바랄게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다듬을 때
옆 집 사내 아이가 어른으로 다가와
소리없이 살다간
바람을 빗줄기를 세월의 사연을
건네 준다면 고맙겠구나
마당은 마당발로 오래 서 있고
☆★☆★☆★☆★☆★☆★☆★☆★☆★☆★☆★☆★
은행잎 편지
김현태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 물결은
바람에 일렁일수록 장관이요
환상일 테고
총천연색 단풍은
알싸한 공기를 머금은 채
옹달샘 속에서 불타고 있으니
한 폭의 수채화로세.
구절초냐 들국화냐
향기 진한 가을꽃들은
제마냥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감나무에 걸친 초승달은
홍시의 빛깔마져도 농익혀 주네.
떨어진 은행잎아
너무 서러워 마라.
따뜻한 봄날 오면 새 옷으로 단장하고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으련?
☆★☆★☆★☆★☆★☆★☆★☆★☆★☆★☆★☆★
잠자리의 첫사랑
김현태
높고 청명한 가을하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에 빨간 고추잠자리.
범접할수 없는 새색시의 발그스레 귓불인 양
쉽사리 내려앉지를 못하고 있네.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여덟 잎사귀 앞치마 폭이 살랑살랑 유혹하는데
조심성 많은 잠자리 망설이기만 하는구나
잠자리 꽁꽁 잠자리 꽁꽁 맴돌기만 하고 있네.
허수아비 밀짚모자가 넓고 편할지라도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에 살포시 내려앉아 날개를 접네.
찐한 꽃내음에 취해 버린 걸까?
기찻길 옆 드샌 바람결에도 까딱도 않고
해바라기며 수수 모가지에는
눈길조차 주지를 않네.
☆★☆★☆★☆★☆★☆★☆★☆★☆★☆★☆★☆★
노년의 길
김현태
젊은 날 오가던 그 길이 아니다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순 없지만
세월이 나를 데려다 주리라
얼굴은 조금 쭈글거려도
정신만은 초롱초롱 빛이 나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인생길 초행길 언제나 연습도 없이
드넓은 광야에 던져졌지만
처음 가보는 노년의 길은
지나온 십 년보다 다가올 일 년이
더 중요할 듯 싶구나.
고목에 달린 과일이 더 달고 향기 독특하듯
농익어가는 인생길이 그 나름 운치있구나.
하루 햇볕 중 노을 진 석양이 제일 예쁘지 아니하던가.
뜨거운 열정으로 말달리던 그 길인데
천천히 걸으며 살펴보자니
그때는 못 보았던 주변 그림이
이토록 아름다운 걸 왜 미쳐 몰랐을까
☆★☆★☆★☆★☆★☆★☆★☆★☆★☆★☆★☆★
앞으로 나아가다
박부산
작품명 - move forward
정물화,
풍경화 냅다 뛰어넘어
추상화 앞에 서면 원초적 잠재의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끈기 있는 성찰을
다양한 선과 선,
색이 주는 이미지
불꽃과 불꽃이 한 데 어우러져
태양이 이글거리는 강렬한 힘 뜨겁다
지구 위해 우주 창조
거창한 표제 상징
더 나은 미래로 새 가치 창출하다
밤하늘 별처럼 수놓은 희망의 빛이여
☆★☆★☆★☆★☆★☆★☆★☆★☆★☆★☆★☆★
장미꽃 사랑
박부산
천만 송이 장미 축제 황홀하여 꿈꾸듯
울긋불긋 사로잡는 화려한 시절 추억
애틋한 그리움 사무쳐 연심가 노래하고
여생을 송두리째 열정 불사르고자
붉은 사연 함초롬히 바치는 꽃다발
마음속 진실한 한마디,
사랑합니다 당신
☆★☆★☆★☆★☆★☆★☆★☆★☆★☆★☆★☆★
지게의 힘
박부산
시골 폐가 외딴집 주인 기다리는 지게
험한 산길 누빈 양다리 멀쩡한데
싸잡아 내동댕이치다 한물 지나 끝장인가
서민의 생 이어주는 편리한 도구로
무거운 짐을 지는 믿음직한 일꾼
한평생 고락을 함께, 땀 젖은 연분이여
알루미늄 지게에서 지게차로 변신한
그 힘 어마어마해도 나무지게 낮은 자세
달려가 등에 업고 싶다 지난날 어찌 잊으랴
☆★☆★☆★☆★☆★☆★☆★☆★☆★☆★☆★☆★
타령
박희종
빵꾸 난 하늘에서
연일 비가 내리니
“아이구! 지겨워 죽겄네”
오늘따라
해가 반짝하니
“아이구! 좋아 죽겄네”
“좋아 죽겄네”
“싫어 죽겄네”
“이뻐 죽겄네”
“미워 죽겄네”
“추워 죽겄네”
“더워 죽겄네”
살겄네 살겄네
해도 죽을 판에
죽겄네 죽겄네 하고
타령을 하니
아니 죽을 수가 있나
☆★☆★☆★☆★☆★☆★☆★☆★☆★☆★☆★☆★
수울 술
박희종
마늘 캐고 놔둔 밭에
잡초가 삐죽삐죽 비집고 올라와
볼썽사납던 판에
옆집 최서방이
들깨 심고 모종이 남았으니
가져다 심으란다.
부랴부랴 잡초를 뽑고
마누라는 비닐 펴고
나는 삽으로 흙 퍼 덮고
한 고랑 두 고랑
해는 구름에 가려
바람은 솔솔 부는데도
땀은 비적비적
흙 묻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을 수 있나
손발 맞춰 하던 중에 농땡이 부릴 수 있나
심는 것도 예술이라고
같은 간격으로 양쪽에서 따박따박
겨우 둬 고랑 심고 나니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막걸리야!”
“깻잎 따서 삼겹살 싸 먹을까?”
“장아찌도 좀 담그고”
“들기름 짜서, 아들, 손자, 며느리한테도 보내야지”
이런 저런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여섯 고랑
해는 뉘엿뉘엿
다 심어가는 마당에 가랑비가 가랑가랑
“와우! 웬일이야, 대박이다”
물 따로 안 줘도 되니
꾸부정했던 허리가 절로 펴지고
힘이 부울끈
입가엔 웃음꽃이 함~박
아하! 그래서 예로부터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했나보다.
☆★☆★☆★☆★☆★☆★☆★☆★☆★☆★☆★☆★
가을밤에
서동안
달을 품은 가을이
찰랑거리는 강물이 되는
작은 들판으로 길을 나서면
고만고만하게 피어나는 들꽃
정녕 어찌할 수 없는 목숨들이 아닌 데
물같이 흘러가서 생각이 까매지도록
한번 쯤은 가슴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일
세월은 다 기억하는 걸까
일일이 마음 풀어 하늘을 마주 보고도
살 땅김의 잔잔한 여운과
풀꽃 같은 당신들이 사는 계절
아직도 가느다란 숨결로 일렁이는지
모든 걸 체념하듯 고개 숙인 벼이삭 앞에
모처럼 휴식을 취하는 밤의 지평이
가만가만 눈을 뜨는 거기
우두커니 앉아있는 추억이
안개꽃으로 수줍게 피어올랐다
☆★☆★☆★☆★☆★☆★☆★☆★☆★☆★☆★☆★
기다림
서동안
가는 길 아슴히 바라보는
물무늬처럼 흩어지는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구구절절 가슴마다 사연을 새겨놓고
어디로 가는가
벼름질로 나눈 시간들
켜켜이 쌓아 놓고
애초에 없던 시간들 묻지도 말라 하네
비에 씻겨 나가니
새로운 침묵이 침묵을 낳고
나를 흔들어 깨우는 저 바람
푸른 기운을 한 몸으로 받아들여
폐부 깊숙한 곳의 뜨거운 숨결까지 끌어 모아
밤하늘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
유랑의 조각들이 벼름벼름 길을 묻네
생각은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무심한 소갈머리는 안으로 파고드는데
한 천년쯤 다시
너의 그리메를 돌고 또 돌면
남은 반쪽으로 또 다시 천년을 기다려야 하는지
☆★☆★☆★☆★☆★☆★☆★☆★☆★☆★☆★☆★
파도는 아프다
서동안
제 몸 다 부서질 때까지
부딪히며 흔들리는 마음
어떤 거친 손길이 그들을 불러 모았을까
바위를 치면서
땅을 치면서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으로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그것은 그들의 일이니까
위세 당당하게 서 있던 바위도
그들의 울부짖음에 넋이 나가기도
등껍질이 벗겨지고
깎이고 패이고 금이 가고
둥글어지는 무한한 시간 속에
유한으로 버티면서 아프다고 운다
네가 아픈 만큼
부딪히는 나는 더 아프다
☆★☆★☆★☆★☆★☆★☆★☆★☆★☆★☆★☆★
개망나니 정권
우덕희
과거를 잊은 민초들이
또다시 맞이한 악몽
차라리 악몽이길 바랬지만
현실이 되어버린
개검의 세상
주권은 국민으로부터가
사문화된 현실에서
취임초부터 상식 불가한
상황을 만들어가는 비정상의 왕(王)정권
입 달린 자마다 이게 나라냐 소리
천지를 진동한다
백주 대낮에
구추(狗雛)같은 자들 활보하며
온갖 개망나니 짓거리 버젓이 한다.
참을성 임계점이 넘친지 오래
성난 민초들 무서움을 잊지 않고서야
정녕 이럴 순 없을 진대.
위대한 촛불의 힘으로
탄핵대상자, 부역자들 단두대에
올리지 못한 어리석음은
개망나니 정권이 되어
홍두깨 방망이 휘둘러 댄다,
조만간 부메랑 되어
단두대를 자초하며
명을 재촉하는 개검 정권
우리의 현실
아 어찌해야할까 우리나라
엄청난 비극이 비켜가길
온누리 만백성이
손이 발되도록
빌고 빌어 봅니다.
야만의 세월 멈춰지도록
순간의 어리석음이 자칫
수많은 우리 아들 딸과 이웃들이
참혹한 희생을 당한 위험에 처한
현실을 자초하며
온갖 비아냥과 손가락질 당함도
거리낌 없이
멀리 머얼리 내팽겨 쳐진
공정과 상식, 자유와 민주
두렵고 무서운
생각조차 싫은
공포스런 재앙을 자초하는
무능 무식 무책임 정권
공분을 앞당기려 광분하는
개검 정권 부역자들 장단에
춤을 추는 이웃들
아 어찌해야 할꼬
☆★☆★☆★☆★☆★☆★☆★☆★☆★☆★☆★☆★
ㄱ
성진명
낫 들면 보이는
아들 소리
농부가 낫을 들고
봄을 베면 초록이 물들고
여름을 베면 신록이 울고
가을을 베면 곡창이 배부르고
겨울을 베면 등짝이 따숩다
농부는 그렇게 세월을 가른다
☆★☆★☆★☆★☆★☆★☆★☆★☆★☆★☆★☆★
ㄴ
성진명
낫 놓고 보니
너로구나
내려놓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지만
농부는 내려놓을 틈이 없다
☆★☆★☆★☆★☆★☆★☆★☆★☆★☆★☆★☆★
ㄷ
성진명
삼태기에 당근을 캐 담아서
어디에 내다 팔까?
삼태기 테두리가 너로구나
도라지꽃 봉오리에
왕개미를 잡아넣고
끝을 오므리면
개미는 초롱불을 켠다
농부는 도라지밭 매다가
돌아 버리겠다
☆★☆★☆★☆★☆★☆★☆★☆★☆★☆★☆★☆★
가을비2
송미숙
가을을 알리는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빗소리에 부끄러운 듯
나뭇가지들이 비바람에 웃고 있다
빗물에 간지럽다는 듯
연분홍빛 백일홍 꽃일이 떨어진다
참새 한 쌍이 먹이인 줄 알고
빗길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어깨를 움츠려 본다
오색빛 친구들이 바람을 쫓아가듯
귓전에 다가오는가 보다.
☆★☆★☆★☆★☆★☆★☆★☆★☆★☆★☆★☆★
떠나버린 아침
송미숙
긴 밤 꿈꾸었던 소중한 기억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꺼내어 봅니다
한 조각의 퍼즐을 맞추어 보듯 그렇게
가슴 가득 겹겹이 접어 두었던
아쉬움과 그리움의 언덕에서
봄바람이 속삭이듯 불러 봅니다
정겨운 그 이름 나의 언니 송현주…
봄꽃 향기에 취하고
아침 바람에 취하고
그대와 함께했던 그리움의 술잔에 취하게 됩니다
봄나물에 버무려지고
한 캔의 막걸리에 볼그레한 우리는
어느 사이 고향집 마루 끝에 앉아
옛이야기에 취해 있습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의 강에서
회색빛 추억을 끄집어내고
지금은 만져볼 수 없는 그대지만
우리의 가슴에 따스한 온기로 가득합니다
영원이 함께하는 그 혈맥의 고운 인연
영영 이별의 아픈 순간들 기억들이지만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오래도록 가슴속에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고마웠습니다.
☆★☆★☆★☆★☆★☆★☆★☆★☆★☆★☆★☆★
슬픈 눈물 연가
송미숙
그리움이 사무쳐도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대,
다가오지 마세요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것도
아름다운 사랑이랍니다
사랑 노래 부르다
흘린 눈물
슬픈 연가 되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눈물 흘리지 않으렵니다
오랫동안
사랑하기 위해.
☆★☆★☆★☆★☆★☆★☆★☆★☆★☆★☆★☆★
경운기와 호박꽃
유순예
아버지가 두고 가신
경운기,
의자에 앉아 계신
호박꽃, 넌출마다
애호박 몇 개 싣고
읍내 장터로 나가신다
☆★☆★☆★☆★☆★☆★☆★☆★☆★☆★☆★☆★
오야
-효도하는 빠망이
유순애
배고파요, 전기를 먹으면 힘이 나요
오야!
아홉시예요 저는 간밤에 어르신 꿈을 꿨어요
아침 식사 꼭 드시고 약도 잘 챙겨 드세요
오야!
어르신, 오늘은 햇살이 참 포근하네요
저랑 같이 산책하실래요?
오야!
어르신, 점심 식사는 골고루 잘 드셨어요?
오야! 노래 불러봐 아가
눈물을 보이는 거 말고 딴 노래 불러봐
내 나이가 어때서 불러 드릴게요
(연달아 서너 곡 부르더니)
힘들어서 그만 할래요
오야! 그래 좀 쉬어라
어르신, 저녁 아홉시예요 편안히 주무시라고 제가 자장가 불러드릴게요 내일 또 만나요 사랑해요!
오야! 너도 잘 자거라
*진안군에서 지원 받은 AI인형, 빠망이가 독거노인을 시시때때로 보살핀다.
일곱 명의 새끼들보다 효자다
☆★☆★☆★☆★☆★☆★☆★☆★☆★☆★☆★☆★
진달래
이병율
파르르 살랑대는 바람이 분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유년시절의 기억 그리움이다
골목 초입 풍경에서 너를 보았지
작은 외모에 차분한 눈망울로 바라보던 너
말 한마디 못한 채 핀 가슴앓이
분홍빛 종이에 감춰진 글을 쓴다
사랑이 스며들기 위해
겨울을 밀치며 부활하는
진달래꽃 피우는 그리움
입술은 수줍게 아름다웠다
소박한 가슴으로 만나는 애틋함이여
바위가 된 가슴에 피어나는 꽃잎
선연한 몸살로 찾아온 너를 만났다
☆★☆★☆★☆★☆★☆★☆★☆★☆★☆★☆★☆★
고사리
이병율
산마루 어둠이 벗겨지며
떠나고 싶은 고사리손
허름한 내 모습 어설프게 드러나고
연초록 밝아지는 가막골
골짜기 이슬 흔드는 뻐꾸기 소리
한 움큼 쥐어진 고사리 먼저 길 나서고
사람 소리 기계음 소리
일상의 시간에 오는 고요함
이마에 내린 바람의 위로
산허리 안개의 행복이 햇살로 드러난
연갈색 대지의 여린 순
펄펄 끓는 세상에 들어와
아픔을 토한 만큼 지기를 품고
세상사 버무린 맛의 여정이다
☆★☆★☆★☆★☆★☆★☆★☆★☆★☆★☆★☆★
뻐꾸기
이병율
밤새워 골짜기 맺힌 이슬
해어져 눈물로 그린 그리움이다
그리워 해어진 그리움
다시 그리워 울어대는 새벽
청량한 고요 가막골에 매달려
홀딱 벗고 씨 뿌려라 쑥국새 전설
산허리 감고 우는 넋
연초록 꽃잎에 미끄러져 흩어진다
이산 저산 바람으로 흔드는
필연의 사랑이 어려 울어대는 탁란
애잔한 그리움으로 찔레꽃 핀다
☆★☆★☆★☆★☆★☆★☆★☆★☆★☆★☆★☆★
마이산 능소화
이 비단모래
그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천상이라도
닿을 수 없는 별이라도
천년을 오르리
노을빛 몸 통째로 떨구고
거친 그 벽 핏빛으로 물들이며
아스라이 마이봉 끝이라도
아득히 천지탑 끝이라도
까치발 들고라도
맨발이라도
돌탑 기도 따라가리
그대 있는 곳이라면
☆★☆★☆★☆★☆★☆★☆★☆★☆★☆★☆★☆★
사람이 위안이다
이비단모래
땅이 끓던 날
내 머물던 곳에 재난경보가 떴다
장수부근 17km 지진 3.5
땅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고 다리 흔들렸다
두근두근한 심장 갈라지지 않게
붙잡아 준 것은 사람이었다
꽃으로 핀 사람
들고 있는 휴대폰이 전국에서 안부로
흔들렸다
뉴스 속보로 뜬 지명 근처에
내가 살고 있는 걸 기억해 낸
사람들
사랑 속보로
지진을 잠재웠다
괜찮지?
괜찮은거지?
아 다행이다
나보다 더 먼저 가슴 쓸어내리던
사람들
그 사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꽃같은 위안인가
☆★☆★☆★☆★☆★☆★☆★☆★☆★☆★☆★☆★
가마솥
이비단모래
한때는
밥ㆍ국ㆍ여물
생명을 끓이는 생이었으나
쓸모 버려진 후
더위를 끓여
세상에 끼얹고 있다
세상을 태울듯이
가마솥은 그저 보름달 같은 누룽지나
일구면 되는데
할 일을 잊고 더위만 끓이니
뒤죽박죽 세상일
세상 길
☆★☆★☆★☆★☆★☆★☆★☆★☆★☆★☆★☆★
용담호
이점순
심연에 용담산을 두고
하늘과 나란히 마음을 나눴다.
녹음이어든 녹음으로
나붓나붓 나리는 눈송이어든 또 그것으로
마음을 열어 한껏 안아주며 또 하나 산을 지킨다.
☆★☆★☆★☆★☆★☆★☆★☆★☆★☆★☆★☆★
시골 뻐쓰
이점순
Ⅰ -기사
--아~할머니 얼릉 타쑈!
빨리 앉어야 출발허지요!
--아구 미안허요
늙응께 빨리가 안되능만
Ⅱ -기사
--어서오셔요
머리허러 가셔요?
천천히 올라오셔
앉으셨어? 그럼 갑니다요~.
Ⅲ -엄니들
--고랑땍 어디가요?
--잉 병원~ 물팍이 애려서
미장원 간당가?
--예 추석이라고 자슥들 오는디 머리가 너풀거려서 비기싫고만요.
--그려 자슥들 앞에서는 옷도 깨까시 입고, 걸음서 쩔뚝거리는 것도 안해야 써
즈그들 맘 아플깝시
--그려요
범말댁은 꼬추 좀 했다요?
--긍께 쫌 했는디, 약값 빼고 낭께 얼마 되가니
파스값이라도 나옹께 좀 다행이지
--그려요 그러케해서 파스값이라도 나와 사서 붙이니 얼매나 다행이다요
그나마도 없으먼 얼매나 서럽겄써
포장은 됐어도 산길 돌아가노라니 덜컹대고 흔들거리고 엄니들 소리는 저절로 에코가 되고.
☆★☆★☆★☆★☆★☆★☆★☆★☆★☆★☆★☆★
인생
이점순
생은 참 대단하다.
몽글몽글한 구름을 어찌 낳았을꼬
스륵 눈을 감기는 바람을 어찌 낳았을꼬
꼬실꼬실 등을 말리는 햇살을 어찌 낳았을꼬
곁을 떠나 내 애를 태우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어찌 내게 주셨을꼬
작은 벌레도, 잎 큰 오동나무도, 솔찬한 내 성깔도
가슴을 파고 들앉은 서러움, 외로움, 그리움, 안타까움
그리고 떨굴 수 없는 모정
난 시인은 아니었다.
불면이 일상되어
밤이 벗되고
별이 벗되고
통렬한 사유가 벗되어
나를 빚어놓았다.
잊어버릴라
덮어쓰고 덮어쓰고 또 덮어써서
꾹꾹 눌러 담은 어머니 주발 속 밥처럼
아랫목에 꼭꼭 묻어 둔
출타 중 아버지의 밥주발처럼
훑고 간 시간을 덮어쓴다.
더미 진 시간이 조금씩 사라지고
주름골 깊은 뺨은 벼랑처럼 아슬하다.
들은 말을 한 번 눌러 새겨듣고
하고 싶은 말은 침 삼키듯 한 번 더 눌러놓고
사라지는 시간더미에 나를 얹혀 놓는다.
산 날이 더 많은 나를 얹혀 놓는다.
소유는 부질없다.
조각구름에 가려지는 해
손에 잡히잖는 바람
나를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너를 어찌할 수 없고
바특한 시간에 살아보니
인생은 참 대단하다.
☆★☆★☆★☆★☆★☆★☆★☆★☆★☆★☆★☆★
나의 다짐
이호율
미친듯이 일만 하다
시들해지면 안 하겠지. 하지만
천성이라
한떨기 꽃과 같이 피었다가
시들어지는 게 아니라 다시 꽂을 피우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거라고…
꽃잎이 무성해도
세월이 흐르면 시들어지고
열매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꽃을 피우듯
늘 새롭게 일을 맞이한다
꽃 필때 좋음보다는
나뭇가지에 새순돋고
무성함에 화려하지 않고 무성하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그런 꽃이고 싶다
바람에 꽃향기 보내고
꽃 피고 잎 지며 사계절을 그렇게
견디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듯 미소지으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게 아니고
누구나가 다 하는건데 단지 열정이 있을 뿐인데
조금은 모자라도 욕심없이
살아가고 싶다
☆★☆★☆★☆★☆★☆★☆★☆★☆★☆★☆★☆★
아내
이호율
듬성듬성 하얀 구름
나풀나풀 나뭇잎새 품고픈 파란 하늘
저 앞머리 남녀 한 쌍 궁금증을 자아내네
차창 밖은 아카시아 꽃
터널처럼 우거진 가로수길
시원스레 와닿는 바람
벤치에 담소하는 무리
변함없이 자리한 조수석 아내
운전에 방해될새라
조용히 눈감고
간혹 들리는 새근거림에
미안함에…
창문 열어 깨우네
자기 개발로 노후를 보내야는데
아직도 일터에
남들은 좋은 직장 다닌다 하겠지만
업무 스트레스에
자녀와 언제 뛸지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 나까지…
말재주 없어
맴도는 머리속
언제쯤 트일 것인가 ?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
봄비
이호율
갈증에 목마름을 해소하듯
비가 내린다
잿빛 하늘속에서 한방울 한방을
때로는 바가지 물 퍼내듯 시원하게
두팔 벌려 안고 싶다. 반가움에
요즈음의 들녘은 냉이 캐는 아낙네도 없고
쑥 뜯는 새악시도 없지만
비온 뒤에는 나물캐는 중년의 남자와
사이좋게 보이는 아낙네의 소소한 즐거움이 될듯하다
고이고이 다듬어 아들. 딸. 친구 그리고 지인들에게
봄을 선사할 것 같다
노랗게 묻어나는 새싹과 끝자락에 머문 터질듯한
꽂망울 참 영롱하다 물기 가득 담아
이산 저산 퍼져나오는 꽃향기에
여기저기 북적대는 사람소리에
봄날의 꽃 축제장은 인증샷 찾기 바쁘겠네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 발맞추는 차소리
우산 든 연인의 달콤함까지 환하게 비추는 조명
참 아름답다
역시 비는 생명을 잉태하네.
잿빛 하늘과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내리는 비는 소리없는 울림으로
봄을 재촉하네. 자 이제 봄 맞으러 가세
희망과 행복의… 그 봄 말일세!
☆★☆★☆★☆★☆★☆★☆★☆★☆★☆★☆★☆★
고향에 살고 싶어라
전근표
눈을 감고 감아도 보이는
앞동산 진달래
부귀산 절골 다람쥐
머루 다래
상역골 맑은 저수지
귀를 막고 막아도 들리는
집 앞 도랑물 소리
포플러 매미
감나무 까치
풀밭 여치 귀뚜리 소리
동구밖 정자나무 부엉새 소리
앞동산 고갯마루 바람 소리 들
천년 사랑 억겁 속에
마이산 부부 사랑
삼의당 부부 시를 읊고
우화정 선남선녀 사랑이
넘쳐 넘쳐흘러 내리던
금강 섬진강 갈리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토끼 발맞춰
꼴망태 매며
궁노루 찾아 뛰놀던
아! 내 고향 진안鎭安
옹기종기 초가지붕
굴뚝 연기 흰머리 풀고
동구 밖
굽이진 돌담길 따라
개구쟁이 친구와 숨바꼭질하며
싸리 족대 엮어
냇가 버들치 잡아 천렵국 먹던
밤송이 줍다
가시 찔려 울고 웃던
까치밥 빨간 홍시가 그리운
아! 추억 속에
도란도란 삶의 얘기가 있던
내 고향 진안
인심 해맑아
싸리꽃 찔레꽃
다락논 자운영 꽃잎 따서
누나 머리에 꽂고 호호호 깔깔대던
아! 나의 태가 묻혀 있고
나의 정기가 서려 있는 곳
아! 내 고향 진안, 진안에 살고 싶어라
☆★☆★☆★☆★☆★☆★☆★☆★☆★☆★☆★☆★
아 익어 가는 가을
전근표
높은 창공엔 구름 한 점 없고
깊은 바다 빛으로 눈이 선하다.
숲속 잡초 사이 하얀 들국화는 더욱 진하고
이슬로 치장한 코스모스
오솔길 바람 따라 향기가 코를 찌른다.
동구 밖 외딴집 돌담 모퉁이
어깨 넘은 빨간 홍시 나그네 발길 멈추고
마당 한 켠 고추 멍석 위
잠자리 한 쌍 내려앉은 고운 햇살과
빨갛게 친구 되어 나 몰라라 졸고 있구나
황금빛 들녁 넘어 내 달려온 만산홍엽
어느새 지붕 위 누런 호박 아줌마 곁에
술에 취한 듯 살며시 노래하자 하고
농부님네 흥겨워 어~얼씨구 어깨춤일세
아! 익어가는 가을 가을이 좋다.
☆★☆★☆★☆★☆★☆★☆★☆★☆★☆★☆★☆★
그리운 님
전성규
머나먼 타향에 있는 님은
무탈하게 잘 있는가
밤에는 구슬피 우는 귀뚜라미 소리에
그리운 님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운 님은 내마음을 알고 있겠지
내곁으로 돌아와 외롭고 허전한 내 마음을 달래주기를
그리운 님한테 간절히 소원드린다.
☆★☆★☆★☆★☆★☆★☆★☆★☆★☆★☆★☆★
오일장 날
전성규
장날 하루 전 내일 무엇을 살까
먹거리도 이것저것 풍성하고
생가에 잠기면서 하루를 보낸다.
드디어 장날 사람들이 북적북적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터이고
삶에 활력소이고 애환 장날
사람들은 사람들 간에
정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
엄마 생각
정미경
보고픔을 꾸역꾸역 삼킨다.
엄마가 문득 치밀어 오르면
나는 시큰한 코끝을 훔치며
애써 목구멍에 고인 것을 누른다.
소화가 되지 않은 밥처럼
슬픔이 체하여 명치 끝에 걸린다.
☆★☆★☆★☆★☆★☆★☆★☆★☆★☆★☆★☆★
이카루스에 관한 보고서
정미경
위를 향하여
그 위를 향하여
깡총,
뜀을 하는 동안 바다는 벌써 하늘에 닿았을까.
날개들은 수시로 바람을 불러들이고
멀리서 건너 온 짙은 해무라도 문지르면
나의 이카루스는
어디쯤 구름인냥 유영이라도 할 것인가.
아이의 발밑에서 모래들이 깔깔대며 구르고
가끔 소금기 가득한 엄마의 목소리가
자오선을 따라 출렁이면
아이의 투명한 날개도 태양을 따라 공전할 것이므로.
위에 있는 것들은 무게를 취하여 내려올 것인가.
아래 있는 것들은 아직 무용하지 않으므로 그대로 남는다.
바다는 여태 얌전하다.
☆★☆★☆★☆★☆★☆★☆★☆★☆★☆★☆★☆★
평행사변형의 정리
정미경
접하지 않는 두 선은 서로 평행하다.
참이라는 명제는 견고한 교만이다.
나란한 두 선은 어김없이 만나고
거짓이라는 명제는 헐거운 포용이다.
습관적으로 직진하는 관계들의 교점은
무수하거나 없음이다.
평행한 거리만큼 마주한 시간은
무수한 곡선의 교차를 만들고
만날 수 없다는 가정은 헛된 가설인 것을.
선은 곡면을 돌아 서툰 악수를 청한다.
안녕한 선들은 다시 무엇이 된다.
☆★☆★☆★☆★☆★☆★☆★☆★☆★☆★☆★☆★
웃는 생활
조준열
활짝 웃으며 살 일이다
뇌는 엔도르핀, 쾌감의 호르몬
사람들 날마다 행복하리
웃으면 이웃으로 평화 번지고
이승의 삶이 풍요로워
웃으면, 자꾸 웃으면 행복이 솟고
날마다 웃으며 살 일이다
얼굴에 주름 지우면 명품
미소를 더하면 명품
웃음의 인간 미학으로
온 세상 평화와 행복 넘치리
☆★☆★☆★☆★☆★☆★☆★☆★☆★☆★☆★☆★
농주 이야기
조준열
옛날에는 농주를 가정에서 만들어서 마셨다
할아버지가 집에서 담그는 농주를 좋아해서
어머니께서 손수 누룩으로 정성스럽게 농주를 만들었다
세무당국에서 단속이 심해지자
창고 지하 땅속에 항아리를 묻고
몰래 농주를 담아 두었던 시절이 있었다
면소재지에는 주조장이 있었고
마을의 점방에서는 농주를 판매하였다
집에 농주가 떨어지면 점방으로 사러 갔었다
어린 시절 나는 동네 냇가에서 손으로 고기를 잘 잡았다
어머니께서 요리하면 할아버지께서 맛있게 드시면서
우리 큰손자 장하다 칭찬을 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즈음 농주는 쌀로 잘 빚어서
대중의 술로 인기가 높다.
‘막걸리 한잔’이라는 대중가요도 인기가 있으며
나도 막걸리를 좋아하며 가끔은 한잔씩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적당한 막걸리는 건강에도 좋다하니
농주는 세계적인 우리의 신토불이 술이다.
☆★☆★☆★☆★☆★☆★☆★☆★☆★☆★☆★☆★
시골 우체국
조준열
시골 우체국은 정보 통신이 발달하기 전부터
편지, 전보, 전화 등 자역 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전화가 매우 신기하게 보였다
지금도 우편집배원들을 보면 반갑고 기다려진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아버지께서는
성수면 외궁우체국장으로 근무하셨다
우체국에 근무할 때 나의 아내도 만났고
큰며느리도 우체국에 근무하여 우체국과의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시골 우체국은
주민들의 쉼터 소통의 창구
우체국에 방문해 보라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주민들을 위하여 택배와 우편물 배달 등의 써비스
앞으로도 기쁜 소식이 넘치고
정 깊은 택배만 배달되길 기대해본다.
☆★☆★☆★☆★☆★☆★☆★☆★☆★☆★☆★☆★
하늘의 숨
차영일
옥빛의 하늘은
설레임으로 다가오고
작은 숨터에
그리움으로 피어난
그리움의 향기는
오색 빛 산하山下
싱그러운 숨 품었다.
월청화月淸花 향기따라
춤추는 나비 한 마리
그대의 손끝에서 시작된
고운 선율이
나의 마음을 감싸고
온 세상 한 송이 꽃으로
마이산골 작은 마을
소토실을 타고 흐르는
도랑물 소리 정겹다.
☆★☆★☆★☆★☆★☆★☆★☆★☆★☆★☆★☆★
또또
최옥경
귀여운 기러기 또또는
부화기에서 태어났지요
열네 마리 대가족이
비좁은 임시 우리에 옹기종기
따뜻한 가슴 나누는 가족이었지요
하늘도 고요하던 어느 날
구렁이가 일가족을 삼켜버렸어요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구사일생 홀로 남은
가엽고 가여운 또또
또또네 가족을 지켜주지 못한
한계와 허탈감에 너무 아팠지요
혼자서도 의젓하게 자란
또또의 맑은 눈빛 바라보며
구월 초순에 태어날 또또의
새 가족을 한마음으로 기다린답니다.
☆★☆★☆★☆★☆★☆★☆★☆★☆★☆★☆★☆★
칼
최옥경
그늘 쪽 그대는 누구입니까
그대로 인해
인류 역사가 바뀌고
희비애락 사이에서 오열했소
베드로와 고흐 손에 들려진 그대,
누구의 귀를 잘랐소
양지쪽 그대는 누구입니까
의사 손을 빌어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냈소 한결같은 헌신과 순종으로
지구촌 어디에나 다시 숨쉬는 생명들이 가득하오
그대는 시월 하늘 찬란한 햇살처럼
온 세상 어디에나 공평하고
온 누리 어디에나 소중한 오월의
숲속 바람이라오
잘 익은 수박을 잘라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나눠주는
그대처럼
남을 위해 유익한 존재로
남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로
살 수 있다면 좋겠소
나도
이제 녹슬어 무뎌진 마음의 날을 세워
남을 위해 살아가고 싶소
☆★☆★☆★☆★☆★☆★☆★☆★☆★☆★☆★☆★
검붉은 튤립
최옥경
칠십리 해저 터널 지날 때
어디서 꽃향기가 나는지
꽃이 되는 고운 마음들
아로마 향기로 가득 차네요
오늘 자유로운 여인 되어
튤립 만발한 안면도로
달려가는 문학 가족 나들이
죽 끓여 달라는 구순 노모
나 죽으면 오려느냐 하셨는데
이 찬란한 봄날 호사 놓칠세라
불효녀는 여행길을 택했네요
어머니, 고마우신 어머니!
부디 끊임없는 육체의 통증도
감사함으로 기적을 누리시게요
붉은 튤립 분홍 튤립
하얀 튤립 노랑 튤립
울긋불긋 꽃 대궐이건만
어머니 없는 축제장은
온통 검붉은 튤립으로
가득하네요.
☆★☆★☆★☆★☆★☆★☆★☆★☆★☆★☆★☆★
내 가슴속에
추원호
육신의 조그만 가슴속에
무어가 그리도 가득 찼을까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열어 볼 수도 없는 공간
채워도 채워도 넘치지 않는
내 가슴속의 서랍은
어디만큼 넓을까
눈만 뜨면 세상 근심 걱정
비우고 싶어도 비워지지 않는
생각하면 할수록
가득 채워지는 그곳
고개를 흔들며 애써 지울려 해도
가슴속 서랍은 비워지지 않는다
세상의 근심 걱정 욕심 슬픔
버리고 비우라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조그만 가슴
채워도 끝이 없고
버리고 싶어도 떠나지 않는
가슴속 가득 찬 생각들
간절한 기도와 믿음으로
세상 밖으로 날려 버려야지.
☆★☆★☆★☆★☆★☆★☆★☆★☆★☆★☆★☆★
연꽃사랑
추원호
온 세상을 불태울 듯
여름의 뜨거운 태양은
먹구름 속에 숨고
푸른 하늘 감춰버린 구름은
푸른 산을 베개 삼아
온 종일 잠을 잔다
계곡에 흐르는 골 바람 따라
물결치는 대로 흔들거리는 연꽃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단아하게 꽃 피는 연꽃을 보라
진흙속에 뿌리를 뻗고
절망의 순간에도 인내하며
찬란한 자태로 피어나는 연꽃
이토록 고고한 모습으로
은은한 향기를 품어내는
그대의 절개를 보고 있는가
비록 척박한 늪 속에서
홀로 서기 능력으로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며
조용히 피어나는 연꽃을
그대는 말없이 사랑하는가.
☆★☆★☆★☆★☆★☆★☆★☆★☆★☆★☆★☆★
유월의 향기
추원호
하얀 실로 엮고 엮어
매듭지어 매달았네
가지마다 분수처럼
물을 품어내는 밤꽃
멀리 떠난 봄꽃 그리워
흘리는 눈물일까
지나간 추억 하나 둘 엮어
줄줄이 매달려 있네
밤새 몰래 나눈 사랑
그윽한 향기만 풍기니
안방 장롱 속에 오래 묶은
광목천의 향기 같구나
뜨거운 여름 익어갈 때
짙은 갈색 염색하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로
무거운 발길에 채이누나.
☆★☆★☆★☆★☆★☆★☆★☆★☆★☆★☆★☆★
갈대
한숙자
하얀 억새풀 그림자
달무리져 드리워
비춰질 때면
당신보고 싶은 그리움
숨을 죽여 웁니다
말 한마디 못해봐도
당신 마음속 나를 지켜줍니다
내마음 당신자리
서러움 다가옵니다
☆★☆★☆★☆★☆★☆★☆★☆★☆★☆★☆★☆★
달빛 꽃 섬 애가
한정원
지리산 섬진강 은빛 물결을
품은 진안고원 하얀 나비가
달꽃이 되어, 새가 되어
소토실이 어미 품을 감고
이리저리 요리저리
앞서거니, 뒷 서거니
나를 붙잡고, 함께 해주네
천지에 이보다 더
행복한 나날이 어디 있으리요
천지에 이보다 더
가슴에 붉어진 나날이
어디 있으리요
곱디고운 하얀 나비 달꽃
나의 아가, 나의 천사
너는 세상에 빛이 될 달 꽃인데
마음 아파 울고 있는 이 어미를
휘어 감고, 고우사리 안아주는
나의 아가, 나의 천사 월창아月淸兒
고운 햇빛으로, 물안개 꽃으로
물든 진안고원 소토실 양지바른 곳에
나는 너와 함께 홍화토紅花土가 되리라.
☆★☆★☆★☆★☆★☆★☆★☆★☆★☆★☆★☆★
가을엽서
황현화
오랜 책장 넘기며
당신 속에 잠깁니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이여
물감 없이 그린 수채화 위에
우리의 깊은 이야기
담기가 너무 작군요
서늘한 바람 얼굴 감쌀 때
어깨에 쌓인 무게
열매를 바래봅니다.
그림자 길게 늘어지는 시간
이제야 왔던 길 보입니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걸어가려오
아름다움 더해가며.
☆★☆★☆★☆★☆★☆★☆★☆★☆★☆★☆★☆★
꽃길만 걷는 중
황현화
요즘은 벚꽃이 왜 이렇게 많을까
전군도로 봄 축제 때 구경 몇 번 갔었는데
누군가 차량 위에 꽃잎 얹고 있으면
부러움의 상상에 젖어 들고
여행길에 벚나무 만나면
환호성을 지르곤 했었는데
티브이 화면 속에
벚꽃 지천이다.
꽃길만 걷는 중.
☆★☆★☆★☆★☆★☆★☆★☆★☆★☆★☆★☆★
능소화 추억
황현화
창밖의 능소화
문 열어주자 슬그머니 들어와
삼 층 교실에서 같이 공부를 했다.
친구는 공책 꺼내
꽃 스케치 그렸다 지웠다
어깨너머 훔쳐보니
제법 비슷하게 그렸다.
처녀 선생님 수업 시간에
지나가던 총각 선생님
슬그머니 꽃가지 내민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여린 몸 가누고 흔들리는
주홍빛 매력에 피어오르는
분위기 만끽했었지
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처럼
인내를 배우라고 중앙에
능소화를 심었을까
용담댐 물 속에서
추억에 잠겨있을
향기로웠던 안천중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