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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3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3:3, 5절).
그런데 이 종은 거듭남과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열심히 믿으면 되지, 하면서 나의 열심으로 믿는 것이 최선인 줄 착각했던 것이지요.
거기에는 나를 드러내는 나의 의 곧 자기주장의지도 있었고 나의 옛 사람으로 행하는 온갖 거짓과 꼼수 그리고 술수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기주장의지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도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주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고 주께서 인도한 무덤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무덤에서 거듭남 곧 창세전 생명이요 아들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일은 성령 안에서 얻는 생명입니다(요 6:63절).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나를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아둔한 어둠속에서 헤매지 않기 원하오니 빛이신 주님 안에서 이 하루도 살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51:1-19
제목 :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기뻐하시나이다.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 나의 묵상
본 시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에 2년여가 지나서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 그의 죄를 지적할 때 참회하는 마음으로 쓴 참회시이다.
죄를 지은 다윗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주의 인자와 긍휼이다.
주의 인자는 곧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다윗은 오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계시로 보면서 자신의 죄를 주의 보혈로 씻어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다윗은 자신에게 있는 그 죄를 알기에 주의 말씀이 의롭고 주의 심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윗은 어머니가 자신을 날 때부터 죄악 가운데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마음 중심이 진실한 자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진실한 자의 비밀한 곳에 또한 주의 지혜를 가르쳐주신다.
다윗은 계속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정결케 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우슬초로 자신에게 주의 피를 뿌려 정결케 해 주시면 자신이 정결케 될 것이다.
자신의 죄를 씻어주시면 자신이 눈보다 희어질 것이다.
주께서 즐겁고 기쁜 소식 곧 죄 사함의 선포가 자신에게 들려지면 비록 주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꺾어진 뼈까지도 즐거워 할 것이다.
뼈가 꺾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다윗은 그런 고통을 당하였지만 죄 사함의 소식이 넉넉히 그 고통을 삼킬 수 있음을 고백한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향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얼굴을 돌이키셔서 자신의 죄를 지워달라고 간구한다.
자신의 죄가 사함을 받고 정한 마음이 만들어지고 정직하고 견고한 영으로 새롭게 해 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가장 비통한 심령으로 간구하는 것은 자신을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말 것과 주의 성령을 자신에게서 거두지 않으시는 것이다.
주님으로 인한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며 그 마음이 억지로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 곧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결같게 해 달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죄인들에게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주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하나님,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하면서 자신이 우리아를 죽인 죄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주님이 그 죄로 인하여 자신을 심판하신 그 공의를 다윗은 찬양한다.
부끄러워 찬송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입을 열어 이제는 주를 찬송하는 입술이 되게 해 달라고 한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짐승을 태워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상한 마음이기에 자신의 상한 마음과 통회 자복하는 마음을 주께 드릴 때에 멸시하거나 거부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크신 은혜로 시온 곧 다윗 성인 예루살렘에 선으로 성을 쌓아달라고 한다.
하나님과 이처럼 온전한 의의 관계가 회복되면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드리는 모든 제사를 기뻐 받으실 것이며 또한 그 때에 백성들이 수소로 제사를 드릴 것이다.
오늘 본문 4절이나 14절을 보면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심판이 의롭고 옳다고 인정하는 다윗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백은 다윗이 밧세바와의 동침 사건과 우리야를 죽인 사건 후에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하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이다.
그는 이 어간에 그의 뼈가 마르는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 시편 32편에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 32:3-4)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숨기고 은폐시키고자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서 감추었을지 몰라도 그의 양심까지는 감출 수 없는 법, 외견상으로는 감추지만 그의 심령으로는 여름 가뭄에 말라비틀어지는 곡식과 같이 아마도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표현하기를 그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기 까지는 종일 신음하며 뼈가 쇠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 자신의 죄를 지적한다.
(삼하 12:7a)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삼하 12:9-10)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업신여긴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신다.
그 심판은 곧 밧세바가 낳은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삼하 12:13-14)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나단의 지적에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한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그를 죽이지 않으신다.
그 대신에 죄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데려가신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치시므로 그 아이가 심히 앓는다.
그 아이를 보고 다윗은 석고대죄하며 금식기도를 한다.
다윗의 신하들은 왕이 금식하며 꿇어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몸이 상할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들이 아무리 일으켜서 음식을 먹이려고 해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아이가 죽는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이다.
아이가 죽으니까 신하들은 안절부절이다.
아이가 죽기 전에도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는데 이 아이가 죽었다고 하면 왕이 어떻게 되실까 생각하니 아마도 그들은 끔찍했을 것이다.
그들이 이런 일로 서로 웅성거릴 때 다윗은 눈치를 채고 아이가 죽었냐고 묻는다.
신하들이 그렇다고 하자 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차리게 해서 먹는다.
(삼하 12: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그 때 신하들이 의아해 하면서 왕에게 묻는다.
아이가 살았을 때는 금식하고 우시더니 정작 아이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일어나서 음식을 잡수실 수가 있어요?
다윗이 대답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는 혹시 나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아이를 살려주실 수 있겠지만, 아이가 죽은 후에야 내가 금식한다고 한들 그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가 없지 않느냐고 한다.
아이가 죽은 것을 안 후에 다윗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 옳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음을 뜻한다.
이것을 가리켜 시편 51:4절 곧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토설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그 즉시로 사함을 받았고 그의 마음이 평강을 얻게 되었다.
(시 32:5-6)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옳습니다’ 하고 심판을 받아들인 자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의가 세워지고 의의 결과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미치지 못하는 진정한 평강이 찾아온다.
(사 26:8-9)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밧세바와 다윗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었다.
그러나 모든 심판을 받아들인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선물을 주신다.
곧 아들을 주시는데 다윗은 그 아이의 이름을 ‘솔로몬’ 곧 샬롬(평강)이라고 짓는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이름을 친히 ‘여디디야’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지어주신다.
나는 죄는 짓고 회개는 하지만, 죄의 대가는 받기를 싫어하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치시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죄에 대한 용서는 받지만, 그에 대한 대가인 심판은 피할 수 없다.
물론 그 심판은 아이가 죽는 것 같은 극단적인 양태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임한다.
그 심판을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모두 받기 싫어한다.
그것은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지은 죄가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모양의 심판, 곧 징계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심판을 받기 싫어하여 그것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런 상황을 피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었다.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는 전혀 모른 채 그저 기도해서 그 고난의 상황을 피하고 해결하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기도로 문제가 해결되면 믿음이 좋은 사람, 기도를 해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믿음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만물 안에서 믿음이 온전할 리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만물 안의 삶인데 그 삶을 기도로 해결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하셨을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주님 앞에 설 면목이 없다.
그런 나는 정말이지 죽어도 골 백 번은 죽어야 했다.
죄 짓고 회개하고 죄 짓고 회개하는 식의 신앙생활이 계속 되었다.
물론 진심으로 회개하면 주님께서는 즉시 사해주신다.
그러나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물으시는데 그것이 곧 주님의 심판이다.
이제는 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심판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말이다.
예전에는 그것을 피하려고 하거나 받아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내가 들어가야 할 무덤인 줄 알기에 말씀으로 잠잠히 그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한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생명의 삶인 것이다.
밧세바를 범한 다윗.
우리아를 죽인 다윗.
그것을 은폐하려고 애쓰는 거짓의 다윗.
그것은 지금부터 3,000년 전의 다윗이 아니라 바로 나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나단의 지적은 곧 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오늘 내 안에서 다윗을 본다.
간음하는 나, 살인하는 나, 거짓 증언하는 나를 본다.
육신적 소욕으로 불타오르는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간음하는 다윗이다.
남을 미워하는 나의 심령은 그야말로 살인을 밥 먹듯이 한다.
거짓말은 나의 양식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죽기에만 합당한 나를 주님은 용납해 주셨다.
당신의 십자가의 피로 말이다.
나는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리고 거기서 흘리신 주의 보혈로 나를 씻는다.
보혈의 강이 나의 놀이터가 되어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날마다 거하기를 원한다.
오늘 하루가 나의 그런 모습이며 그곳이 바로 아버지 품속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다윗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고도 엄청난 죄를 수도 없이 지었습니다.
그런 나는 당연히 죽어야 할 자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끊이지 않는 고통이 있사오니 그 고통을 제하여 주소서.
문제는 그 고통이 내 죄를 토설하지 않음 때문이오니 나를 권하여 온전히 죄를 자백하고 토설케 하옵소서.
주의 강권하심이 나로 하여금 주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무슨 필요를 구하는 엎드림이 아니라 나의 죄를 토설하는 진정한 엎드림이 되게 하소서.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기억나게 하시고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하게 하소서.
그리고 내게 주시는 참된 샬롬의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오늘이 바로 그 날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나를 구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주의 공의로 나를 심판하사 온전히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