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5님의 솔직한 조언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디 교회개혁이 헌금개혁 뿐이겠습니까? 저는 몸된 교회 본질을 바로 보는 것이 진정한 교회개혁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생명의 문제이고, 분열없는 하나의 문제임을 본다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 생명(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교회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 "내가..내 교회를 세우겠다"(마16:18)는 주님의 말씀을 우린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을 특정 분파가 자기들을 선전하는 것으로 본다는 자체가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진리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요?
십일조는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여서는 안됩니다,,만약에 님께서 비록 십일조는 율법이지만 해도 된다고 한다면,,,결론적으로 님은 거짓교사가 되는겁니다...그리고 헌금과 연보의 공통점은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는 겁니다,,헌금이라함은 하나님께 돈을 바친다 라는 개념으로,,종교적 의무적 색채가 진한 단어 입니다 ,연보라함은 함께합시다 라는 뜻으로 이웃의 부족함을 채워주라는 곧 사랑이라는 성경말씀의 핵심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단어 입니다 ,,, 지금이라도 십일조라는 단어를 쓰지말고,,헌금보다는 연보라고 쓰는것이 맞다고 봅니다...간단히 저의개인적 견해를 적어봅니다
붕어두마리 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한국교계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원수입니까? 개혁을 하는 방법이 여러가지일 수 있습니다. 칼빈이 스위스에서 하는 방식은 힘으로 누르고 처단하는 방식이었고 사도 바울이 하는 방식은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 같은 편지를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후자에게는 전자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위가 느껴집니다. 이 둘중 어느 방식이 한국교계에서 통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지향하는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그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이 율법적이면 그것이 참된 순종과 회개를
어떤 분들은 제가 동문서답 한다고 생각하시고 예스 노우 답변을 왜 안 하냐고 답답해 하시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저는 더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믿는 이들이 하나를 유지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같은 믿는 이들이 사랑의 표현을 가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진리의 빛을 비추어 비진리에 있는 사람들도 굴복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율법이 틀렸다며 율법적인 잣대와 칼을 휘두르는 방식보다는 좀 더 온유한 방식으로 생명의 율을 따라서 그러나 분명한 진리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시크릿 가든님은 칼자루 쥔 위치에
첫댓글 십일조를 하고 안 하고가...우리의 신앙을 구성하는 핵심진리일까요?
각자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진 분별력으로 볼 때, 이 문제는 현 한국교계에서 매우 영향력이 큰 문제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을 구성하는 핵심진리는 아닙니다.
십일조나 헌금이 핵심진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십일조나 헌금 때문에 이웃사랑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잘 지키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헌금제도에 있다는 문제제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핵심진리에 근접한 중요한 내용인 것입니다.
김바울님이 그렇게 논의하는 '지방교회'에서는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서 헌금에 대하여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없나요?
단순히 의무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실 것이 아니라, 김바울님이 '소속한 교회'에서 하는 헌금은 이런 의미이다. 따라서 예향의 헌금론이 미처 다루지 못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고 이야기 해주시길 고대합니다.
예향은 한국교회의 개혁의 출발점이 헌금에 있다고 보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헌금에 관한 이야기를 논하지 않으시겠다고 한다면 이곳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론만 고집한다면 김바울님의 교회에 대한 광고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봄날 5님의 솔직한 조언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디 교회개혁이 헌금개혁 뿐이겠습니까?
저는 몸된 교회 본질을 바로 보는 것이 진정한 교회개혁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생명의 문제이고, 분열없는 하나의 문제임을 본다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 생명(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교회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
"내가..내 교회를 세우겠다"(마16:18)는 주님의 말씀을 우린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을 특정 분파가 자기들을 선전하는 것으로 본다는 자체가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진리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요?
십일조는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여서는 안됩니다,,만약에 님께서 비록 십일조는 율법이지만 해도 된다고 한다면,,,결론적으로 님은 거짓교사가 되는겁니다...그리고 헌금과 연보의 공통점은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는 겁니다,,헌금이라함은 하나님께 돈을 바친다 라는 개념으로,,종교적 의무적 색채가 진한 단어 입니다 ,연보라함은 함께합시다 라는 뜻으로 이웃의 부족함을 채워주라는 곧 사랑이라는 성경말씀의 핵심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단어 입니다 ,,, 지금이라도 십일조라는 단어를 쓰지말고,,헌금보다는 연보라고 쓰는것이 맞다고 봅니다...간단히 저의개인적 견해를 적어봅니다
붕어두마리 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한국교계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원수입니까?
개혁을 하는 방법이 여러가지일 수 있습니다.
칼빈이 스위스에서 하는 방식은 힘으로 누르고 처단하는 방식이었고
사도 바울이 하는 방식은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 같은 편지를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후자에게는 전자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위가 느껴집니다.
이 둘중 어느 방식이 한국교계에서 통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지향하는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그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이 율법적이면
그것이 참된 순종과 회개를
가져 오게 할까요?
이것이 제가 던진 근본적인 문제제기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동문서답 한다고 생각하시고
예스 노우 답변을 왜 안 하냐고 답답해 하시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저는 더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믿는 이들이 하나를 유지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같은 믿는 이들이 사랑의 표현을 가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진리의 빛을 비추어 비진리에 있는 사람들도 굴복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율법이 틀렸다며 율법적인 잣대와 칼을 휘두르는 방식보다는
좀 더 온유한 방식으로 생명의 율을 따라서 그러나 분명한 진리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시크릿 가든님은 칼자루 쥔 위치에
서 상대방에게 머리를 내밀라고 윽박지르면서 단칼에 목을 내칠 기세로 다가가시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개혁이 그런 식으로 될 일이면 벌써 되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십일조강조 ,그리고 복받을려면 잘해? ,,이런거 없으면 목사를 직업으로 한다면 가정을 이루고 살기가 힘든거는 압니다,,그러나 사도바울 선생이 본을 행하시고 ,교회 성도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무척 고생?하신거 성경에 나옵니다,, 그래서 너희는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신거 같아요,,, 저도 무슨말 하는지,, 어찌되었든 ,.. 만약에어떤사람이 죄사함을 위해 교회서 소한마리 잡으려 한다면 못하게 해야지요 고기는 나누어 먹을수 있으나,하나님이 원하시지 않기에 그리하면 안된다는 거지요,, 율법과우리는 무관하기 때문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시크릿가든님 글에서 많은걸 배우는걸요..시크릿가든님은 존경 받으실 분 입니다,,
시크릿 가든님은 나름대로 은사가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추켜 세우는 분은 많으니 이 시점에는 다소 균형감각을 갖게 돕고
겸손을 더 배우게 하는 지체들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 안에서 너무 한 사람이 튀어 보여도 좋은 것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