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달에
독후감 : -보봐리부인을 읽고- :
"문을 닫으면 산처럼 조용하고 책을 읽으면 어디나 정토와 같다" 옛 선인들은 독서삼매경을 그렇게 노래했다.
그것은 바로 독서하는 사람만이 누릴수 있는 지극한 환희를 표현한 말이 아닐까?
우리는 과학문명의 편리와 물적 풍요에 안주하며 정이 매말라 버린 삭막한 환경속에서 선인들이 물질적 결핍을 느끼면서도 유유자적하게 누려왔던 여유와 멋마저 송두리째 잃어가고있다. 조용히 눈을감고 생각해보면 오로지 물질만을 추구하고 기만과 사술로 아귀다툼하며 추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모습에선 이미 화조풍월의 서정이나 호연지기의 멋은 찾아볼수 없지 않은가?
인간은 고귀한 본능을 타고난 까닭에 시도 읊고 명화도 감상하고 감미로운 음악의 선율에 심취하려든다 .
또한 모방의 자기화가 가능한 까닭에 앞서 살아간 선인들의 행적마다에서 지혜를 얻어 미래삶의 이정표로 삼기도한다.
그결과 문명의 금자탑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첨단과학을 이루어내고 말았다. 오늘날 이 빛나는 삶뒤에 감추어진 진보 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은 두발로 걸을수 있는 신체적 유리조건, 그리고 불을 사용할줄아는 지혜로 지구상 모든 동물들의 위협을 물리치고 만물의 영장이 될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자의 발명이 오늘날 위대한 인간삶을 이루어낸 토대가 아니었을까?
문자의 발명은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했고 의사전달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허물수 있었으며 그 결과 수천년 또는 수만년 축적된 삶의 양식과 지혜를 후세사람들에게 전해줌으로서 경험에 뒤따르는 시간과 정열의 낭비,실패의 위험이나 시행착오 없이 차원높은 문화생할을 영위할수 있게한것이다. 독서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독서는 동서고금의 현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는 만남의 광장이 되기도하고 참된 나를 만드는 희귀한 창조적 행위일뿐 아니라 이상적인 학습능력을 배양케하고 자기경험과 사색의 고도화를 조력해 줌으로서 교양과 상식을 고루갗춘 훌륭한 인격체가 되게한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가기위해서는 물론 물질적 여건도 중요할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삶은 정신 그 내면의 성숙을 도모하며 격조있는 삶을 이루어 가는것이아닐까? 물질적 가치로 평가될수없는 가치가 더욱 귀하고 보배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달을 맞아 갖게된 독후감 발표행사는 이러한 전제에서 매우 뜻있는 일로 생각한다.또한 물질일변도로 치닫고있는 우리의 저급한 삶속에 청량감을 실어다 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문화의 달이라는 특정한 시기를 정해놓고 1년에 한번정도 독서를 권장하고 그 중요성을 일깨운다 해서 이미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 우리의 서글픈 독서문화가 제자리를 찾아갈수 있을것인지에 대해선 솔직히 회의할수 밖에없다.
"책을 읽는 민족의 장래는 보장되고 책을 읽지않는 민족의 미래는 없다!" 는 명제는 오늘날 번영과 복지를 조화롭게 이루어 희망과 꿈이있는 축복의 삶터를 만들어가는 민족이 과거 그들의 일상에서 책을 얼마나 사랑하고 책과의 대화에 귀중한 시간을 얼마나 할애했던가를 돌이켜보면 그답은 자명해진다.사람마다가 책을 사랑하고 비단 독서의 달만이 아닌 일년삼백육십오일 내내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독서의 생활화가 이루어 질때 오늘의 비생산적이고 퇴폐적인 우리의 여가생활은 서서히 자라는 나무처럼 대망의 미래를 위한 민족의 저력으로 축적되어 갈것이고 우리의 정신세계는 고도과학사회에 걸맞게 성숙되어 우리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한줄기 빛이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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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베르가 1851년에 집필하여 1856년에 탈고한 "madam bovary" 는 농부의 딸로 태어난 예쁘고 청순한 소녀 "엠마" 가 상처한 의사인 "샤를르 보봐리" 와 결혼하면서 부딪치는 새로운 갈등을 사단으로 전개된다.지금까지 소녀의 가슴에 동경해온 꿈과 정열이 자신의 것으로 실현되는줄만 알고, 구름처럼 모습을 바꾸고 바람처럼 회오리치는 기분을 쏟아놓고 싶었지만 "샤를르" 는 그렇지 못해 감동도 꿈도,웃음도 없고, 수영도, 검술도, 권총도 쏠줄모르는 남자라고 비하하게 되는데 "엠마" 는 적어도 남자는 그래서는 안되고 모르는것이 없고 여러방면의 할동에서 뛰어나야하며 정열이라든가 세련된 생활의 즐거움 속에서도 신부를 신비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남편의 태평스러움. 우둔함에 실망하며 그녀가 남편에게 준 행복마저도 억울하게 여긴다, 그러든 중에 보이에샤르의 후작 "로돌프"집에 초대를 받게되는데 우단처럼 펼쳐진 잔디, 석남화와 산매화가 아름답고 이름모를 관목들이 조화를 잘이룬 정원에서 로돌프 후작과 바이얼린 연주에 맟춰 꼬디엥땐서 카드릴 춤을 춘 무도회의 황홀한 추억이 그만 그녀의 마음속에 지워지지않을 사치와 허영의 분화구를 만들어놓고 만다.우리의 삶에 하나의 작은 사건도 때로는 무한한 변화를 일으키고 무대의 배경마저 바꾸어 놓기도 하는법이다.화려한 생활속에 정열적이고 세련된 로돌프 후작과의 뜨거운 사랑이 가져다줄 설레임과 흥분을 그녀는 무한히 갈구하게된 것이다.
마침내 마을 공진회에서 재회한 '엠마"와 "로돌프" 는 마치 목마른 사막의 길손이 오아시스를 만나듯 뜨거운 사랑의 불씨를 지피게된다.
그러나 로돌프는 정열적인 사랑을 불태우더라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현실을 냉정하게 조망하는 탁월한 절제력과 분별력을 갗추고있었고 '엠마"는 광풍같은 사랑을 삶의 전부인양 여김으로서 필사적인 애착을 가지게되고 로돌프를 사랑하면 할수록 남편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커갔고 마침내 그녀의 영혼은 마약에 중독된듯 체면에 걸린듯 거품같은 도취에 젖어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된다.
처음에는 둘이서 멀리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자던 맹세도 했던 로돌프의 절제로 식어버린 불장난 같은 로맨스에 아쉬움을 견디다못한 엠마는 법률사무원인 총각 "레옹"과 다시한번 금지된 쾌락을 탐하게 되는데 밀애에 숨가쁜 그녀에겐 사치스런 치장과 유흥비에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런 엠마의 심중을 꿰뚫어본 방물장수 "뢰뢰"는 그녀의 사치심과 허영심을 부추겨 진귀한 물건들을 마구 팔고 어음을 받아 잇속을 챙긴다. 결국 3000프랑의 빚을 갚을길이 없게된 엠마는 자존심을 팽개치고 옛애인 로돌프와 레옹을 찾아가 돈을 빌려줄것을 애원했건만 그들은 이미 스쳐간 하찮은 여인이라 여기고 아무런 연민도 관심도 느끼지 않고 냉정히 거절함으로서 절망에 부딪힌 그녀가 비소를 먹고 자살하고 만다는것이 이작품 대강의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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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베르는 인간본연의 심리현상을 치밀하게 꿰뚫고 관능적 욕구를 거침없이 표현하면서도 추하지 않게 그려내는 작가의 천부적 소양을 발휘함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후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정신분석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높히 평가 받았다.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사물의 진실을 해부하여 미적인 감각으로 섬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해 내는 그의 창작성은 의사였던 아버지의 관찰력과 판단력 .그리고 노르망디인 특유의 낭만적이고 몽상적인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소인에서 영향받았다고 볼수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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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들은 생활속에 뿌려진 작은 금모래알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사치에 접촉함으로서 허영과 낭비벽에 물들고 관습과 제도를 뛰어넘어서라도 도발적인 사랑에 몸을 내맡겨 활활 불태우고 싶은 충동과 욕구를 누구나가 지니고있기 마련이다. "금지된 쾌락 " 그 짜릿함과 황홀함의 추억은 넓은 황야의 눈위에 나그네가 되어버리고간 모닥불보다 더 뜨겁게 가슴속에 타올라 관능적 욕구를 일깨우고 현실적 의지마저도 뿌리째 뽑아버리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마저 거추장 스럽게 여기고 마침내 감정의 봇물이 터지는 욕정의 봉우리를 넘을때 아편의 연기에 취하듯 허망한 꿈을 따라 미끄러져가고만다. 주름이 잘 잡힌 옷은 때로 동요하는 마음을 감추고 정숙해 보이는 고운 입술은 주체하지 못하는 욕정을 숨기기도 하는법 " 훔쳐진 정사! " 그 저속한 쾌락에 굴욕을 느끼면서도 혹시나 더 짜릿한 쾌락이 그 언저리에 도사리고있지나 않을까? 그 달콤한 미련에 끌려가다가 오히려 진정한 행복의 샘마저 말려버리고 절망의 벼랑길에 서게된다.
책속에서는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행복, 사랑, 정열 등의 낱말이 실재인생에 있어서는 어떤 의미와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시험하려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랑에라도 빠지게되면 그 짜릿함을 흐트리지 않기위해 아무것도 보고싶지도 듣고싶지도 생각하고싶지도 않아지기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우상에 손을대지 않는것은 거기에 칠해놓은 금박이 벗겨져 흠을 남기고 손을 더럽히고 한낱 조각물에 불과하다는 실망을 두려워하기 때문인것과 같이 ...............
일부러 찾아야할 행복이 어디 따로있겟는가? 행복에 넘치는 미소에도 권태의 하품은 있기 마련이고 가슴벅찬 환희에도 지루함이,광풍같은 쾌락에도 혐오가 ,불타는 정열의 키스에도 충족되지 못한 갈애가 지친입술에 남아 맴돌기 마련인것을......
늘 불꽃같은 사랑이 가슴에 뜨겁게 타지 않는다는 아쉬움에서 불륜의 그림자는 소리없이 드리우게된다.
그러나 어찌 평생을 살아가는 부부의 사랑에 활화산 같은 정열이나 폭풍우같은 격렬함이 있겠는가?
물론 연심이나 애정이란 것은 본디 바람이나 물결같이 한곳에 머물러있는것이 아니라서 뇌성이나 번개의 섬광처럼 별안간 타오르는것이긴 하지만 돌풍이 불어오듯 애욕의 불길이 옴몸을 감쌀때 이성의 물줄기로 식히고 돌아서는 아쉬움을 대개의 사람들은 간직하고 살아간다.
오래 머물러줄것같은 훔쳐진 정사 ! 그 천박한 쾌감의 뒤에는 갈등과 불안.그리고 좌초당해 찢어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모든것들이 다 흩어져 버린뒤 난파선의 수부처럼 절망적인 눈을 굴리며 멀리 수평선위로 흰돛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만 열렬히 사랑했다고 믿었던 연인들은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수렁으로 떨어져가는 자신을 훔쳐만 보고 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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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계는 문예사조라고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작품을 양산시킨다. "WATT"의 증기기관발명 "CROMTON"'의 수차방적기 발명으로 장원제도가 붕괴되고 농노해방으로 이어진 산업혁명의 거센물결은 "테스"라는 명작을 남겼고 수천년 동안의 진부한 전통을 깨뜨리려는 용기있는 작가 "로렌스" 는 영국의 신사정신에 반한다는 이유로 장장 60 년동안 출판을 금지시켜야했던 불후의 문제작 "아들과 연인" 을 집필했으며 러시아혁명의 놀라운 사태앞에 자신들의 장래가 어떻게될것인가? 초초해하며 상황변화를 당혹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러시아 농민들의 심리현상을 그려낸 개척되는 처녀지가 그렇고, 전시광기에 양심이 마비되어야했던 인류의 불행 2차세계대전의 와중에 돈만 벌려는 주인공 조켈러의 비극적종말을 그린 아서밀러의 작품 "아들을 위하여"가 또 그렇고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내일이 없는 월남인들의 슬픈 삶을 그린 "머나먼 쏭바강"이 또한 그렇듯이 문학작품은 독자에게 시대상황을 전해주는 사료가 되기도한다.또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기마련이다, 프로베르는 "보봐리부인"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던가?
보봐리부인이 비소를 먹고 죽어가는 임종의 자리에 세사람의 인물이 등장한다. 사제와 의사 그리고 걸인 ,보봐리는 사제가 나타나고 의사가 달려와도 이미 그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관심도 보이지 않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거지가 지나갈때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충격을 받고 일어나게된다. 마지막 숨을 거두어가는 보봐리부인을 거토록 놀라게한 걸인 !! 우리는 그장면에서 이제 사제와 의사의 시대는 모두 끝이나 버리고 걸인의 시대가 오고있구나 ! 하는 암시를 받게된다. 의사는 육신의 생명을 구제하는 인간으로 과학주의와 물질주의에 의한 인간구제의 희망을 의미하는 존재로서 그 세계는 이성의 해부도로 인명을 구명하는 영역이고 그와는 반대로 사제는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는 자로 초월적이고 계시적인 힘에 의해서 인생을 구원하려는 희망의 상징이되는 존재이다. 그러나 걸인의 이미지는 어떤가?
걸인은 의사와 사제와는 대립되는 상징을 지닌자로서 의사와 사제가 영육이라는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남을 구제하는 자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걸인은 구제를 하는자가 아닌 구제를 받는자 라는것, 무수한 거절속에서 구제해줄자를 찾는 구걸자! 누구에게서든지 무엇인가를 얻어내야만 하는 "구걸과 거절" 접촉과"소외"의 반복적 생을 살아가는자, 아무도 구제해 주지 않기때문에 영원히 구제의 갈망속에서 해메야만하는 구걸자로 상징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프로베르는 바로 그 소설속에 투영시키고있는것이다. 걸인은 불어로 "바뉘삐에" 즉 맨발로 세상을 걸어가는 자로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는 0 의 인간이다. 거지의 얼굴에서는 도덕적인 젊잖은 위장이나 포식한 교양의 개트림이나 ,유산을 상속받은 백만장자의 교만한 웃음 따윈 찾아볼수 없고 가식물로 꾸며놓은자가 아닌 바닥까지 파헤쳐져 폭로된자, 한곳에 머무를수없는 방랑자.고향이란 낱말까지도 무의미한 것이며 자기몸을 쉴수있는 주거가 없는자! 항상 떠나야 한다는 방황의 연속 .이러한 점에서 현대인은 너무나 걸인과 흡사한점이 많다는것을 알수있다. 우리는 바로 걸인의 이미지를 탐색함으로서 오늘의 인간상을 이해할수있고 걸인의 삶을 본질적으로 통찰하려고 접근함으로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해볼수있지 않을까? 프로베르는 가식과 위선, 환상과 착각이 아닌 진실한 인간을 애타게 갈구했다. 타인을 위해 땀과 피를 흘릴수있는 참인간을 애타게 기대했던 것이다.그것은 바로 오늘의 비정한 현실에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설사 그것이 간절한 우리의 바람으로 끝나고 만다 할지라도 문명의 이름으로 더럽혀진 오늘의 기계적 인간을 타매하고 정과 나눔의 가슴을 지닌 참인간으로 거듭나려는 우리의 눈물겨운 몸부림이 될수는있을것이다. "프로베르" 그는 위대한 작가가 지닌 식견의 편린들을 모아 선지적 영감으로 승화시킴으로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바 미래를 제시해주고있다.그는 "보봐리부인"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인간사회의 역리와 모순의 타파 없이는 공동체의 안녕과 조화는 언제나 위기앞에 설수밖에 없으며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엠마" 의 슬픈 인생역정을 따라갈수 있다는 필연을 암시해주고있다. 그는 엠마의 갈등과 방황 그리고 비극적 종말을 가슴 아파하는 독자들에게 행복할수도 있었던 그녀가 왜 그토록 무모하게 자신의 삶을 팽개쳐 버렸는가? 그 동기와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엠마의 자유분망하고 관능적인 기질에 연유하는가? 아니다. 결코아니다. 배금주의.물질우위풍조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몰인간적 병리구조가 비단 엠마뿐만 아니라 이세상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절망과 비극을 그림자를 드리우고있다는 경고적 메시지를 보봐리부인 이라는 작품을 빌어 던지고 있는것이다.
첫댓글 건강 하시고 편안 하세요~
감사합니다. 늘 좋은날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