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메트로 노선도 중 일부입니다. 가운데에 있는 N12번 (Namboku센 12번 역이라는 의미로 서울지하철에서 사용한 방식과 동일합니다.) 역의 영문 표기가 Todaimae 로 되어 있습니다.
이 역을 일본어로 제대로 표기하면 '東大前'. 읽으면 동대전... 이 아니라, '도다이마에' 로. 그 의미는 '동대(도다이)'. 그러니까 동경대 앞 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지하철 노선도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ㅇㅇ대입구' 'ㅇ대앞' 역들과 같은 방식의 명명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대앞' 이면, 'Handaeap'이 아닌 'Hanyang Univ. at Ansan' 으로. 그 의미 쪽을 중시해서 '번역'. 한글역명과 영문역명을 완전히 독립된 이름 취급하는 데 비해서, 일본 쪽은 온전히 자기네들 발음을 중시하는 것이 차이점이라 하겠습니다.
일장 일단이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은 표기 방식은, 너무 '과잉친절'로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지는 않나. 또 표기원칙의 일관성을 깨뜨리고 있지는 않나 걱정되기도 합니다.
(1) 서울2호선 '을지로입구' 역을 예로 들어보면.
분명히 한글 표기는 '을지로입구' 인데, 영문 표기는 'Euljiro 1(il)-ga' 로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는 이름을 이야기 합니다. 외국인이 와서 'Where is Euljiro 1-ga station?' 하고 묻는다면, 오히려 이쪽에서 '을지로2가' '을지로3가'는 알지만 '을지로1가'란 역도 있었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을 지경입니다.
'Eulji Street 1st Avenue' 라고 써놓지 않는 것을 그나마 다행히라고 생각해야 할지요. -_-
반대의 경우로 '교대 역에서 내리라' 고 알려줬는데, 외국인은 'Gyodae' 를 찾으며 허송세월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겠습니다.
(2) 부산3호선 '강서구청' 역과 같은 경우,
Gangseo-gu Office. 뭐, '강서구' 란 이름의 사무실 빌딩 이름인지 헷깔리는 외국인까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만. 기어코 영어로 '번역'을 하고야 말겠다면 차라리 Gangseo-gu District Office 가 맞지 않나 싶은데 말이지요. ^^
(4) 각종 '시청' 및, 광주1호선 '도청' 역과 같은 경우,
그럼 '인천시청' 은 Incheon-si Office 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Incheon city hall. 식으로 완전히 '번역'하여 표기합니다. '시'라는 행정단위야 외국에도 많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도'는 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광주1호선의 도청역 같은 경우 완전히 번역된 'Province Office' 란 표기를 사용합니다. (Jeonnam Province Office 가 아닌, 곧이곧대로 '도청'만 번역하여 Province Office라고만 표기하는 것도 문제의 소지는 있을 수 있겠습니다.)
(5) 서울지하철 2호선 교대 (법원검찰청) 역의 경우,
지하철역 관련 DB 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영문 역명의 필드값 사이즈를 이 역에 맞추면 대개 맞다는 팁을 전해 드립니다. ^^ 이 역 영문 표기가 Gyodae 라면 간단 하겠습니다만. 이 역 표기는
Seoul Nat`l Univ. of Education. (Court & Public Prosecutor`s Office)
그나마 Nat`l Univ. & 등의 약자를 써서 표기를 줄였습니다만. 읽어줘야 할 경우라면 정역명만 읽어도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으로 17음절에 달하는 역명을 몽땅 읽어주어야 하는데, 참으로 비능률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Seoul National University 역이 따로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읽어주지 않은면 곤란한 상황이 생기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한국어 주역명은 '서울교육대학'을 '교대'로 줄인다거나. '건국대학교입구' 를 '건대입구' 로 줄이는 등 6~7음절 이내로 최대한 억제하여 편의성을 높이고 있습니다만. 영문 부분은 이러한 대책 없이 곧이곧대로 완역을 하다 보니 역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경우가 보이고 있습니다.
(6) 선릉, 학여울, 청량리, 왕십리 역의 경우.
선릉역의 경우. Seonreung 이 맞는 표기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Seolleung 이 맞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표기는 '선릉'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를 발음했을 때 '설릉' 이라고 읽는 것이 표준 발음법에 맞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 하는데 (구개음화니 뭐니 이런 이론적 배경은 전공하신 분이 설명해주시겠지요. ^^)
이쪽으로 파고들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의 깊으신 뜻이야 있겠지만은,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논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우리말 표기도 실제 발음을 반영하여 '설릉' 이라고 써놓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혼란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실제발음을 반영하여 외국인의 혼란을 줄인다.' 고 하는 친절이. 외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혼란의 동기를 제공하여. 외국인을 위한 자료를 작성할 때 'Seonreung' 이라고 잘못 쓰는 사람들, 청량리를 쓸 때 'Cheongryangri' 로 잘못 쓰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부터가 엉망진창으로 쓰다 보면 외국인들의 혼란은 오히려 더 심해지지 않을지요?
ps > 입장을 바꿔서, 우리가 외국(일본)측 노선도를 본다면?
일본인들이 친절하게도 자국 노선도 상의 모든 한자 지명을 한국어식 발음으로 번역하여 노선도를 만들어줬다고 상상해 봅시다.
新宿(신쥬쿠) 역은 '신숙'...
大阪(오사카) 역은 '대판'...
熊本(구마모토) 역은 '웅본'...
塚本(츠카모토) 역은 '총본'...
天滿(텐마) 역은 '천만'...
이라고 적어놓겠지요.
(뭐 한술 더 뜬 친절을 베풀어준다면. 각각 '새집' '큰판' '곰뿌리' '큰 무덤'... 이라고 순한글 번역을 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라면, 이런 노선도를 가지고 일본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_-
첫댓글 언제나 그랬듯이 과유불급입니다. 어떤 독자가 모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고 일침을 날렸던 게 생각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