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4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있으면 살 것 같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그 무엇, 남편이 내게는 무엇인지요?
수가성 여인은 그 남편을 찾고자 매일 야곱의 우물을 전전하였습니다(요 4장).
그녀의 타는 목마름으로 사모하는 그 마음이 내게는 과연 있는지요?
그 사모함을 아신 주님께서는 신적 의지를 가지고 사마리아를 찾으셨습니다(요 4:4).
오늘 이 아침 내게도 오셔서 나의 메마른 심령을 성령의 단비로 촉촉이 적셔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육신으로 행하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아버지 품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어제는 하이퐁에 사는 교민 한 사람이 위 천공이 와서 급하게 수술을 하고 한국으로 이송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불과 얼마 안 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교민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모으기도 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 유가족들을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52:1-9
제목 :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7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 나의 묵상
표제어에 나오는 것처럼 오늘 본문은 삼상 21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윗은 사울의 눈을 피하여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받아가지고 나와서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가 여의치 못해서 도망나와 아둘람 굴에 숨었다.
그 후에 모압 땅에 갔다가 선지자 갓이 모압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올라가라는 말에 유다 땅 헤렛 수풀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이 있는 곳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사울이 자기 주변에 있는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다윗이 숨어 있다가 나를 치려고 하는데도 나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탄식한다.
그러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고한다.
자기가 놉에 있을 때 다윗이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왔었는데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과 칼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일로 인하여 사울이 아히멜렉을 비롯하여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다 불렀다.
그리고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아히멜렉을 비롯한 제사장 85명과 함께 제사장들의 성읍인 놉에 있는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아이들 그리고 모든 짐승들을 칼로 쳐서 죽였다.
이런 와중에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이 그곳을 피해 다윗에게로 도망가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다윗에게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이 지은 시가 바로 오늘 본문이다.
본 시는 1-5절까지는 스스로 자랑하는 자 곧 자긍하는 자의 악행과 함께 이런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영원한 진멸에 처할 것을 노래한다.
강포한 자 너는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고 다니느냐?
너는 어깨를 들고 목이 뻣뻣하게 곧추 세우고 으스대면서 다니는구나.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너의 혀는 악을 만들어내며 날카로운 칼처럼 간사를 행하는구나.
너는 착한 일보다 악한 일, 義보다 거짓을 더 사랑할 뿐이다.
너의 혀는 간사하여 남을 해치는 말하기를 정말 좋아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너를 심판하셔서 너를 영원히 진멸하실 것이다.
주께서 너를 결박하여 네 집에서 끄집어내실 것이며 네가 살고 있는 땅에서 뿌리를 뽑으실 것이다.
6-9절까지는 이처럼 강포한 악인이 반드시 멸망할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신은 하나님 품에 거할 것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의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행동하심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강포를 행하는 자들을 비웃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의 성 곧 피난처로 삼지 않고 오직 자기의 재물을 피난처로 삼아 악을 일삼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나는 청청한 감람나무와 같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 곧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의지할 것이다.
주께서 행하신 일에 나는 영원히 감사 찬양할 것이며 그분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들과 함께 나는 주의 이름을 사모하며 찬송할 것이다.
내 안에는 도엑의 강포와 탐욕이 가득하다.
강포는 탐욕에서 나온다.
도엑의 탐욕은 사울 왕에게 잘 보여서 한 자리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당시에 사울의 영이 온전하지 못하고 다윗을 잡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의 눈에 들고 구미를 맞추는 것은 곧 자신도 그 악함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사울을 기쁘게 할 수 있고 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도엑은 사울의 마음을 훔쳐서 그를 기쁘게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왔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사울은 그 제사장들을 모두 부른 후에 도엑으로 하여금 모두 죽이도록 하였다.
도엑은 사울의 명을 받아 제사장 85명과 놉에 있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심지어 젖먹이 아이들까지 다 죽이고 모든 짐승들도 죽이고 말았다.
그의 정욕과 탐욕은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의 사람들인 제사장들과 그의 모든 가족들을 다 죽이는 강포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도엑의 탐욕과 강포함이 내 안에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던 시절, 나는 담임목사님과 성도들에게 칭찬과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나에게 무슨 일을 시키든 불평하지 않고 해냈다.
다른 사역자들은 기관 하나 맡는 것도 버거워했지만, 나는 항상 2개 이상을 맡았고 어떤 때는 3개를 맡아서 감당했던 때도 있었다.
물론 육신적으로는 피곤하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왜 내게만 이렇게 많이 맡기느냐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 이면에는 철저히 칭찬과 인정을 원하는 자기 義 곧 자기주장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사역자가 나보다 잘 하는 것이 있으면 나는 견디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서야만 되었다.
말은 동역자라고 했지만, 나에게 있어 다른 사역자들은 동역자가 아니라 철저히 경쟁자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나를 빛내주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사역을 했기 때문에 담임목사님과 많은 성도들에게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인정과 칭찬을 받았었다.
그 공로로 교회에서는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교회 개척을 나에게 시켜주기도 했다.
그 시절 나의 교만과 탐욕 그리고 강포는 하늘을 찔렀다.
내 눈에는 사역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전도축제를 하고 난 다음 월요일에는 사역자들이 모두 쉬는데 나는 열심이 특심이어서 혼자 사무실에 나와 전도축제와 관련된 모든 통계를 내서 화요일에 담임목사님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면 여지없이 담임목사님의 칭찬이 날아들었다.
나는 그렇게 칭찬과 인정을 먹고 살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그런데 이것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일 뿐, 복음 안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칭찬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결국 그 바탕에는 탐욕이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그 탐욕의 결과 다른 이들과 동역이 아니라 경쟁의 관계가 되기 때문에 결국 나 자신의 성정은 강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처음부터 함께하는 부교역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섬기는 모습이 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나는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데 그런 나의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런 내 안에는 항상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였고 때로는 부교역자들에게 강압적인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목회란 교인들 숫자를 빨리 늘려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멋지고 번듯한 성전을 지어서 사람들에게 목회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 곧 한 마디로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부교역자들이나 성도들에게 전도하라고 다그치면서도 정작 나는 하지 않는 그런 자로 살아왔다.
그런 곳에 천국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항상 환난과 곤고함이 끊이지 않았다.
숫자가 늘어서 교회의 중직을 세우게 되었는데 결국 그런 와중에 사달이 났다.
그 결과 급성 폐암에 걸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서도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수술을 하고나서 치유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런 탐욕과 강포한 목회를 계속했었다.
그러다가 탈진하게 되었고 나는 목회를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다.
바로 그 때 이 복음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통합복음을 들으면서 무릎을 쳤다.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던 자기주장의지가 얼마나 큰 죄악이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사역에 대한 욕심은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탐욕적인 열심에서 파생되는 살인적인 파편들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것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아프고 힘들게 했는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자기 義로 행하는 자기주장의지는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앉는 것이다.
결국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원욕(헬, 휘브리스)이다.
나는 이런 원초적인 탐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장본인이다.
그러니 이런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예전에 부교역자로 있을 때 행했던 나의 모든 사역을 뒤돌아보면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다.
그저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다.
물론 지금도 그 당시 함께 사역했던 사람들과 만나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나를 칭찬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악하고 강포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도엑과 같은 나를 주님께서는 당신의 무덤으로 초청하셨다.
나는 그 무덤에서 주님과 함께 장사되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무덤에 연합하였고 그 안에서 생명을 얻어 살아난 것이다.
이제는 자기주장의지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나를 칭찬하는 것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
아니 칭찬하지 말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직 주님이 하셨습니다, 하고 주님께 그 공로를 돌린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리고 오늘 본문 8절 말씀처럼 나는 날마다 아버지 집에 거한다.
말씀으로 날마다 나의 죄를 발견하고 그것을 보혈로 씻으며 나와 함께 교제하시는 주님의 품에 거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이다.
그 안에 있을 때만 나는 푸르고 청청한 감람나무가 된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인자하심 곧 사랑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것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복종을 통해서 얻어지는 은혜요 은총이다(요 15:10).
* 묵상 후 기도
주님...
패역하고 완악한 자를 주님께서는 용납해 주셨습니다.
이런 나는 죽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용서하셨는지요?
내 안에 충만했던 탐욕과 강포는 이제 날마다 말씀 앞에서 성령의 검으로 자르나이다.
도엑이 제사장들의 목을 잘랐던 것처럼, 이제 도엑과 같은 내가 내 안에서 나를 좀먹는 탐욕과 강포의 목을 치나이다.
이제 오늘도 자기주장의지는 내 안에서 계속 튀어나오려고 부단히도 몸부림치지만, 나 또한 그것을 죽이려고 끊임없이 십자가로 달려갑니다.
주의 십자가에 못 박은 옛 사람과 자기주장의지는 온전히 죽여주시고 오직 성령 안에서 주님으로만 행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직 주님만 찬양을 받으소서.
주님만 높임을 받으소서.
그 안에 주의 영광이 임하나이다.
그리고 나를 받으소서.
산 제물로 주께 드리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