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일반적 종말론-11
제2장 천년 왕국과 부활-4
제1절 천년 왕국에 관한 질문-4
3. 전천년설(前千年說, Premillennialism)-2
2)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al Premillennialism)
역사적 전천년설은 주님의 재림을 천년 왕국 전에 있을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같으나, 천년 왕국을 신약적 성격의 나라로 보는 점에서 세대주의적 견해와 다릅니다. 이 견해는 초대교회에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등의 교부들이 가졌던 견해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전천년설이라고 불립니다.
*저스틴(순교자 저스틴): 100년경 팔레스틴의 플라비아 네아폴리스에서 부유한 프리스쿠스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나 유대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찾아 여러 헬라 철학자들에게서 사사하였으나 아무에게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였는데 그러다가 33세에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저스틴이 당시 따르고 있던 플라톤의 사상을 논박한 다음 그리스도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한 만남이 회심의 계기가 되고, 또 당시 순교자들이 보여준 신앙의 용기에 탄복하여 저스틴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플라톤의 사상에 기쁨을 느끼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받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이 죄악과 쾌락 속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로마로 와서 학교를 세우고 진정한 철학으로서의 기독교를 가르쳤는데, 공개토론에서 패배한 철학자의 고발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때 붙잡혀 165년경 다른 6명의 성도들과 함께 순교하였기 때문에 순교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지만, 사실 그의 찬란한 업적은 살아있을 때 기독교 진리를 열렬하게 변호하고 이단을 냉철하게 비판한 데 있습니다.
*이레니우스: 130~140년경에 로마제국의 속령이던 소아시아 지방에서 출생하여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갈리아지방, 즉 오늘의 프랑스땅의 리용에 가서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로 리용의 감독 포티누스가 순교한 후 리용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한 목회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이단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고, 기독교를 변호하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그는 2세기 기독교 교리를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신론과 인간론과 구속의 교리를 해설하였습니다. 그는 교회적으로는 소아시아 교회의 전통과 로마 교회의 전통을 연합시킨 공헌이 있으며 202년경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습니다. 터툴리안은 이레니우스를 “모든 가르침에 대해 호기심이 가장 많은 연구가”라고 말했고, 그리스의 섬 살라미스의 교회 감독이었던 에피파니우스는 그를 “성령에 의해 행동했던 사람이며 참된 믿음과 지혜의 은사로 입혀진 사람이며, 이단들의 헛된 소리를 극복하고 승리했던 사람”이라고 평하였습니다.
*터툴리안: 2세기 중엽 카르타고에서 로마군의 이교도 백부장 아들로 태어난 터툴리안이 기독교를 접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193년, 법학을 배우고 변호인으로 활약하던 중에 신앙으로 박해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접하고 아마 이 시기 신앙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틴 신학(북아프리카학파)의 아버지로 불린 터툴리안은 철학에 비판적인 대단히 신앙적으로 열정적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헤브라이즘)과 아테네(헬레니즘)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터툴리안의 유명한 말이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헬라) 철학이 기독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터툴리안이 그리스(헬라) 철학에 대해 신학적으로 반대편에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즉 증명을 원하는 그리스 철학에 대항하여 그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근대에 벵겔, 고데, 랑게, 알포드, 엘리콧, 잔 등 성경 주석가들이 이 견해를 취하였습니다. 한국 장로교회는 초대 평양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 이눌서(레이놀드) 선교사에 의해 전천년설이 전수되었고, 그 후 총회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박형룡 박사에 의해 이 견해가 전수되었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설의 근거는 이 견해가 요한계시록의 본문에 가장 적합한 해석일 것으로 생각하는 점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의 순서는 앞(9월26일 강의)의 후천년설에 대한 반론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① 대환난시대(6~18장),
② 그리스도의 재림(19:11~16),
③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멸하심(19:19~21),
④ 천년 간 사탄의 결박(20:2),
⑤ 첫째 부활(20:4,5),
⑥ 천년 간의 왕노릇(20:4,6),
⑦ 천년 후 사탄이 놓여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전쟁케 함(20:7~9),
⑧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함(20:9),
⑨ 사탄이 불못에 던져짐(20:10),
⑩ 마지막 심판(20:11~15).
이 사건들을 문자적 순서로 보면, 사탄이 결박되는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 즉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지옥 불못에 던져진 직후입니다. 재림의 주께서 사탄으로 하여금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온 세계에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천년 왕국에서 심판의 권세를 받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자들(계20:4)은 누구인가?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들은 순교자들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들 곧 참된 성도들입니다.
첫째 부활(5절)은 예수 믿는 성도들의 부활입니다.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그러면 둘째 부활은 악인들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 됩니다.
또 부활한 성도들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그때 세상에 남아 있는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8절에 나오는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이며 마지막으로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 전쟁을 일으킬 자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설에도 어려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외의 신약성경은 전체적으로 천년 왕국에 대해 침묵합니다. 또 신약성경의 종말론에서 천년 왕국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매우 약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과연 그런 임시적, 그러나 천년 간의 긴 왕국이 필요하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더욱이, 신약성경이 전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의인과 악인이 다 부활하고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점은 천년 왕국에 대한 문자적 신념을 약화시킵니다.
사실 천년 왕국은 성경의 교리 중에서 매우 난해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세계 장로교회의 전통적 견해는 무천년설 내지 후천년설이었고, 한국 장로교회의 전통적 견해는 역사적 전천년설이었습니다.
고(故) 박형룡 박사는 이런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천년기를 중심으로 하여 갈라진 재림 삼론(무천년설, 후천년설, 전천년설)은 교파의 구별 없이 정립(鼎立)하여 개인들의 자유 취사(선택)를 기다리게 된다. 그것은 대 교파들의 신경(信經)들은 이 삼론에 대하여 취사를 행하지 않은 고로 아무라도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이것들의 시비(是非)를 결정하기 곤란한 때문이다. 다른 여러 가지 근본적인 신념들에서 서로 동의하는 같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도 재림과 천년기 문제에 대해서는 삼론의 정립(鼎立)함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은 이 삼론의 하나를 자유로 취하되 다른 이론을 취하는 자들에게 이해와 동정으로 대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