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My Life 26
'오늘도 무사히' 요양원 24시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19호(2018. 8. 09)
백종덕(35회) 성림케어덕소 센터장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
‘무사하다’라는 단어가 지금 이 저녁에 고마울 수밖에 없는 건 내 직업 때문이리라.
남들처럼 대학 나와 대기업
취업해서 다니다가 몇 년을 사업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고달프지만 평범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오십이 되어 겁도
없이 어르신들 모시는 요양원사업을 시작했다. 경험도 없고 수익성도 없다며 주위에서 말리기도 하고 나
자신도 자신이 없어 주춤거리기도 했다. 요양원(노인복지시설)이라는 곳이 보통사람들에게는 마치 수용소처럼 느껴진다며 편견을 가지는 게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요양원은 평범한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소소한 기쁨들이 무수히 많은 곳이기도 하다. 매일 한껏 멋을 부리고 다른 직장인과 똑 같은 시간에 출근해 어르신들에게
아침마다 인사를 하러 다닌다. 예쁘게 꾸민 나를 멋지다, 잘생겼다 하면서 안아주는 할머니들 품이 참 따뜻하고 좋다. 방마다 들어가 손을 잡고 인사를 하는 동시에 열이 있는지 없는지 밤새 안녕하신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매일 그렇게 손을 잡아드려도 단기 기억장애가 심한 어르신들은 처음 보듯이 “어디서 오셨나, 내 아들 친구인가, 내 남편도 이렇게 생겼는데” 하면서 반가워하신다. 방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무수한 말들이 나를 반긴다. 나만 보면 무조건 “허허” 웃기만 하며 얼굴을 한없이 쓰다듬는 어르신, “왜 밥 안 줘. 나쁜 년들아!” 하루 종일 화를 내는 화쟁이 어르신, 매일같이 똥 덩어리를 쥐고 있는 어르신 등...... 또 “나 핸드폰 잃어버렸어 아들한테 전화해야 돼 빨리 찾아줘” 매일 핸드폰 달라는 어르신 방이 있다. 어르신이 찾아 헤매는 핸드폰은 집에 전화를 너무 자주한다고 아들이 벌써 갖고 간지 오래다. 또 다시 돌아 나오는 어르신에게 점심 먹고 하나 사드린다 하고 달래 들여보내지만“ 핸드폰 줘, 아들한테 전화해야 돼”하며 또 눈물을 흘리신다. 한평생 당신 자식 먹이고 입히느라 온 생을 살다가 이곳에 들어온 어르신들이 늘 행복하기만 했겠는가.
“자식과 이야기하고 싶어……”, 벽에 입술 그림 그려
운영초기에 내 애간장을 많이 태운 기억 때문에 난 지금도 핸드폰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느 날 겁에 질린 간호사가 전화를 했다. “어느 어르신이 까만 똥을 누어요.” 보호자를 기다리다 안되겠다 싶어 어르신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장출혈이면 어쩌나 싶어 속이 탔다. 이 검사 저 검사를 마치고 정상임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 내리는데 나중에야 사회복지사 직원이 실토한다. 붓글씨 프로그램 때 어르신이 먹물을 한 컵이나 마셨단다. 그날 사회복지사는 여기저기서 오만 가지 욕을 들었다.
또 다른 어르신은 보호자가 가져온 홍시를 드시고 질식해 숨을 못 쉬어 온 직원이 매달려 거꾸로 들고 손으로 파내어 겨우 숨을 다시 쉬게 했다. 나는 사무실에 돌아와 혼자 조용히 감사기도를 했다.
우리 요양원에는 어떤 방 한쪽 벽에 입 모양만 그려져 있는 벽이 있다. 면회 오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묻기도 하지만 난 그 벽만 보면 마음이 아프다. 뇌출혈로 쓰러져 와상으로 한쪽 벽만 하루 종일 쳐다보고 계신지 수년이 된 어르신의 벽면이다. 어느 날 아침 라운딩 중 어르신 손을 잡고 “잘 주무셨어요?”라고 묻고 평소에 워낙 말이 없으신 어르신이라 대답이 없으려니 하고 돌아 나오는데 어눌한 말씨로 “벽에 입 좀 크게 그려줘”하신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아들 입 모양을 크게 그려 달라하신다. 아들과 얘기하고 싶다고......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핑 돌아 고개만 끄덕였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가족들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아들의 입모양을 그려 달라 했을까. 다음날 어르신의 오케이 사인이 나올 때까지 열심히 그렸다.
저 깊은 외로움을 채워 드릴 수 있을까
그날 이후부터 우리 직원이나 봉사활동자들은
어르신들께 동화책 읽어드리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르신의 깊은 외로움을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단지 이런 것들뿐이다. 오늘도 어르신들이 재미있게 지내시기를 바라며 못 부르는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국적불명의 동작으로 춤도 곁들여 동화아틀리에 공연도 한다.
대기업에서 큰 사업을 기획하고 세계를 누비며 진급을 해 임원이 되거나, 개인사업에 성공해서 수십 수백 명의 직원을 두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도 분명 성공한 삶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저마다의 인생이 있는 법.
나는 날마다 재롱둥이 광대가 되고, 마음을 얼러주는 의사, 따뜻한 간호사가 되기도 하고, 어르신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또 하나의 자식이자 남편이 되기도 한다.
난 오늘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어르신들의 웃음과 하소연, 울음이 있는 우리 요양원으로 향한다. 오늘 하루 무사하게 잘 지냈다는 봉투 두둑한 일당을 받으러 출근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