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6코스 (괴곡성벽길)
광주매일신문 기사 등록일 : 2017. 06.20.
산·호수가 만들어낸 ‘지붕 없는 미술관’
강원도 태백 대덕산 자락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조양강·동강이라는 이름으로 정선과 영월 땅을 적시며 굽이굽이 흘러간다. 아름다운 협곡을 빠져나온 동강은 평창에서 영월로 흘러온 서강과 합류해 남한강이 된다. 영월에서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덩치를 키운 강줄기는 충청북도 단양으로 흘러든다. 단양과 제천·충주를 거쳐 흘러가던 남한강은 충주댐을 만나면서 거대한 인공호수가 된다.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담수량이 많아 소양호 다음으로 규모가 큰 이 호수는 충주에서는 충주호, 제천에서는 청풍호라 부른다. 충주댐 건설로 빼어난 절경을 가진 도담삼봉, 옥순봉, 구담봉의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됐지만 절경만큼은 여전하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이 ‘청풍호 자드락길’이다.
청풍호 자드락길 6코스가 시작되는 옥순봉 쉼터에 도착하자 청풍호의 푸른 물결과 옥순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옥순대교에 서서 옥순봉을 바라본다. 거대한 죽순 모양으로 돌기둥을 이룬 바위들이 신비하고 기묘하다. 돌기둥처럼 생긴 석봉들은 비가 갠 후 옥과 같이 푸르고 흰 대나무 순이 돋아난 듯하여 옥순봉(玉筍峯)이라 했다.
옥순봉은 단양8경 중 유일하게 단양 땅이 아닌 제천시 수산면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순봉은 단양8경 중 하나다. 옥순봉이 단양8경에 속하게 된 것은 조선 명종 때 이황에 의해서였다.
당시 단양군수였던 그는 단양8경을 정하면서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도담삼봉, 석문, 사인암, 구담봉 등 일곱 개의 경승지에 옥순봉을 꼭 포함시켜야 단양팔경이 제대로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이황은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풍부사에게 청했지만 청풍부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황은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고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여겼다고 한다.
옥순봉은 청풍호를 사이에 두고 가은산과 마주하고, 호수 뒤로는 말목산이 뾰쪽하게 솟아 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푸른 숲과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절경을 이룬다.
옥순대교가 있는 자리는 충주댐이 생겨 수몰되기 전에는 괴곡나루터가 있었다. 옥순대교를 건너자 청풍호 자드락길 안내판이 갈 길을 제시해준다.
오늘은 꽤 더운 날씨인데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길이 청량한 기운을 전해준다. 오르막길이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 오르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다. 숲길을 걷다보면 청풍호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산자락을 따라 돌고 돌아가는 청풍호는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수려한 산세와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가 됐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옥순봉과 말목산, 가은산은 물론 금수산까지 가세해 청풍호의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지금 걷고 있는 능선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격전을 벌였던 현장으로, 예전에는 능선자체가 천연요새요 자연이 만들어준 성곽이었다. 그래서 자드락길 6코스의 이름을 괴곡성벽길이라 했다. 괴곡성벽길에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3층으로 설치된 전망대다.
3층 전망대 위에서 본 청풍호의 모습은 자연이 만들어낸 빼어난 풍경화 한 폭이다. 그러니 이곳은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옥순대교 위쪽으로 펼쳐지는 청풍호 상류는 호수 폭이 넓지 않아 강 같은 느낌이 든다. 수려한 산세를 가진 봉우리들이 잔잔한 호수와 어울리니 풍경미가 배가된다.
금수산과 나란히 동산과 작은동산, 작성산 같은 산들이 청풍호를 아름답게 장식해준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청풍대교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호수의 모습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운치 있는 청풍호의 모습을 구름도 넋을 잃고 바라본다.
전망대 서쪽에는 두무산 8부 능선에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다불리 마을이 있고, 그 뒤로 멀리 월악산도 바라보인다. 남쪽으로는 1천m 내외의 산들이 첩첩하게 산 공화국을 이루고 있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산군 속에서 나를 바라보니 나 자신이 개미 한 마리와 같은 존재로 보인다. 거대한 대자연 속에 나를 비춰보면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달래 다불리로 향한다. 산길이 끝날 쯤 마을로 가는 길에 주막이 있다. 산길을 따라 1시간 이상 올라와 민가를 만나니 신선하다.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다 보니 산비탈은 개간돼 밭으로 활용되고, 산허리를 둘러 길을 만들었다.
마을 뒤쪽에 둥지를 튼 다불암을 거쳐 두무산으로 올라간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두무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신비하게 생긴 형제바위와 독수리바위다. 형제바위는 아래쪽에서 보면 하나의 바위로 보이는데, 근처에 가보니 탑처럼 생긴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다정한 형제처럼 마주보고 있어 이름을 형제바위라 했다. 형제바위 위쪽에는 독수리처럼 생긴 독수리바위가 멀리 청풍호와 주변의 산들을 바라보고 있다. 형제바위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사뭇 장쾌하다.
두무산에 오르니 단양 방향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리드미컬하다. 붕긋붕긋 솟은 봉우리들이 큰 그림을 그리고, 봉우리 사이에는 골짜기가 형성돼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은 모여서 강이 되고, 강줄기를 막으니 호수가 됐다. 나는 두무산 정상에 서서 산봉우리와 골짜기, 청풍호가 어울린 풍경화에 넋을 잃는다. 아름다운 환경은 아름다운 마음을 만들고, 아름다운 마음은 훌륭한 인품을 형성시킨다.
두무산에서 다불리 마을 뒤 고갯마루로 내려와 403봉으로 완만한 능선을 오른다. 멀리서 월악산이 지켜보고 있고, 가깝게는 두무산과 독수리바위가 손짓을 한다. 울창한 숲속에서도 가끔씩 청풍호가 자기존재를 알려온다. 군계일학처럼 서 있는 낙락장송 두 그루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산비탈을 내려와 어느덧 지곡리나룻터에 도착했다. 청풍호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곡마을이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시원한 하산주 몇 잔으로 뜨거워진 가슴을 식힌다. 맥주 몇 잔 마시고나서 청풍호와 금수산을 바라보니 그 모습이 더 아름답다.
※여행쪽지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은 청풍호반과 어우러진 정겨운 산촌을 둘러보는 길로, 57.7㎞ 거리에 7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 청풍호 자드락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인 6코스(괴곡성벽길)는 옥순봉쉼터→옥순대교→청풍호전망대→다불암→두무산→403봉→지곡리나루터까지 9.9㎞에 4시간 정도 걸린다.
▶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청풍 방면으로 우회전 11.7㎞ 이동→청풍대교 건너기 직전 좌회전 12.4㎞ 이동→옥순봉쉼터(옥순대교 건너기 직전)
▶ 지곡리나루터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의 수산면소재지에 있는 ‘가람’(043-651-2264)에서는 주인이 청풍호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로 끊인 어탕(7천원)과 더덕 뽕잎 돌솥정식(1만5천원) 등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제천 괴곡성벽길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