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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사람 시리즈 –아브라함⑭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참고말씀: 창17:13-21; 32:28; 35:10; 민13:16; 겔36:36; 요1:42; 행11:26; 롬8:16; 12:2; 고후5:17; 엡2:19; 빌1:6; 살전5:24; 딤전6:11; 딤후2:13; 히10:23; 벧전2:9
읽을말씀: 창17:2-8
주제말씀: 창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첫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창17:2)
비전을 찾고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아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비전을 찾고 이루는데 가장 필요한 원동력 중 하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데 어찌 우리가 중도에 비전을 포기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람은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아브람에게 당신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셨습니까?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신 점입니다. 창세기 17장에만 ‘내 언약’이라는 표현이 몇 번이나 등장합니까? 무려 9번입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2절) /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4절 상) / “내가 내 언약을 나아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7절 상) /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창17:9 하) / “너희 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17:10) /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창17:13 하) /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17:14 하) /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창17:19 중) /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창17:21)
왜 이 같이 표현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셨고, ‘친히’ 몇 번이고 확인 내지는 보증해주셨 으며, ‘직접 책임지고’ 이행 중이셨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겔36:36 하)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강력히 증거 합니까? 미쁘신 하나님 내지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분이심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4) /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10:23) /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3)
참고로, ‘미쁘시다’(헬, 피스토스)는 ‘믿을 만한, 진실한, 믿는’이라는 뜻으로,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성품 중인 하나인 신실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기에 책임지고 약속들을 이루어주시고(살전5:24),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고 도와주시며(딤후2:13), 하나님은 신실하기에 우리를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히10:23)
그러므로 비전의 사람들은 어찌 하여야 합니까? 비전을 찾고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 중 하나인 신실성(信實性)을 깨닫고 자신의 비전을 찾고 이루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이 언제나 그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비전의 여정을 끝까지 완주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신실성을 깨닫고 비전을 찾고 이루는 이 일을 끝까지 붙들고 있습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향한 당신의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면서 오늘도 비전의 길로 나아가고 있느냔 말입니다.
둘째, 새로워져야만 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닫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17:4,5)
또 비전을 찾고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전의 길은 새로워져야만 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닫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무엇을 새롭게 지어주셨습니까? 이름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5절 상) 어째서입니까? 그가 새 이름과 함께 새로워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제 2막(幕)을 열어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야곱이나 호세아, 베드로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창32:28) /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창35:10) /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민13:16 하) /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1:42 하)
사실 비전의 삶은 옛 사람의 삶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거나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비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합니까?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가 새로워질 때 비전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애벌레일 때 넘어설 수 없는 길을 번데기를 거쳐 나비로 탈바꿈할 때 능히 넘어설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새로운 삶은 언제나 새로운 이름과 함께 시작됩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권속, 성도, 그리스도인, 천국시민, 하나님의 사람 등 말입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하) /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하) /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8:16)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딤전6:11 상)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2:9 상)
이것들 외에 또 어떤 이름을 더 부여 됩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담긴 비전네임(vision name)입니다. 아브람의 경우에는 어떤 특별한 이름이 부여되었습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어떤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까? 아직까지 약속의 자손이 없던 그를 여러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시겠다는 크고 놀라운 계획입니다.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5절 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애벌레일 때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바위도 나비로 바뀌면 능히 넘어설 수 있는 것처럼, 비전의 길은 새로워져야만 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닫고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 새로워지고 기도와 찬양으로 모일 때 새로워지고 있느냔 말입니다.
셋째, 공동체로 눈을 돌릴 때 찾을 수 있음을 깨닫고 생각의 지경을 확장해야 합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17:5)
끝으로, 비전을 찾고 이루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동체로 눈을 돌릴 때 비전을 찾고 이룰 수 있음을 깨닫고, 생각의 지경을 공동체로 확장해나가야 합니다. 본문의 경우처럼, 개인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시선을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람’이란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고귀한 아버지입니다. 어떤 성격을 지녔습니까? 개인적인 성격입니다. 즉 개인적으로 보면 너무도 좋은 이름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까 할 정도로 말입니다.
반면 ‘아브라함’이란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많은 무리의 아버지’입니다.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4절 하) /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5,6절) 어떤 성격이 강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적인 성격입니다. 한 개인의 삶, 한 가정의 삶을 넘어서서 민족을 바라보고 열방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비전을 찾고 이루는 것은 생각의 전환, 시선의 전환, 국면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즉 개인의 삶에만 치중할 때는 잘 보이지 않다가도 눈을 돌려 공동체를 바라보고, 민족과 열방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발견되고 또 이루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의 이름을 바꿔주셨습니까? 개인적인 삶을 넘어서서 공적인 삶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또한 개인의 삶에만 치중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여러 민족, 나아가 세계 열방을 품으라고 교훈하시기 위함은 아니었으며, 개인과 가정을 넘어서서 민족, 열방에까지 그 생각의 크기를 확장해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6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비전을 찾고 이루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생각의 크기를 교회 공동체, 민족공동체와 열방에까지 점차 확장시키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시선을 전환하길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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